"대출 못받는 강철중 형사 이젠 옛말"…10만 경찰의 구매파워

10만 경찰 급여계좌 빠져나가니, 시중은행 앞다퉈 금리 내려노컷뉴스|장규석|입력2012.12.01 06:03

[CBS 장규석 기자]

"대한민국 경찰 15년 차가 돈 5천도 대출이 안 될 만큼 불안한 직장이라는 거요! 내가 대한민국 형사요! 형사! 사람죽으면 시체 피 쭉쭉 빨아먹으면서 죽인 놈 잡으러다니고 돈 가지고 사기치는 새끼들있으면 내 돈 들여가면서 이 나라 끝까지 가서 잡아오고, 영수증 하나 첨부 안 해! 대한민국 형사들이 다 그래요!!"

영화 < 강철중 > 의 한 장면. 극 중에서 형사 15년 차인 주인공 강철중은 전세대출 5천만 원을 못받아 전전긍긍하면서 은행에서 울분을 쏟아낸다.

과장된 면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처럼 경찰관들도 주택자금이나 자녀 교육비 등으로 대부분 대출을 끼고 사는게 현실이다.

그러나 형사 강철중이 지금 은행을 방문하면 확실히 상황이 달라질 듯하다.

현재 전국 경찰관들은 은행에서 신용등급 1등급 대우를 받는다. 4%대 또는 그 미만의 낮은 이율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4~7등급, 이자 부담에 허덕대던 경찰관들이 은행에서 갑자기 우량고객 대우를 받게 된 연유는 뭘까.

◈ 시중은행 9곳 경쟁시켰더니…

올 4월 경찰청 경무국은 시중은행의 대출상품 분석을 시작했다. 가계대출 1천조 원 시대에 경찰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이자부담에 허덕이는 경찰관이 많아지자 경찰청 차원에서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실제로 은행의 대출 약관을 꼼꼼이 뜯어보니 우대를 받을 수 있는 조항이 여럿 있는데, 은행이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경찰청은 분석결과를 토대로 시중은행 9곳에 맞춤형 대출 상품을 만들어달라고 제안을 했고, 각 은행이 제시한 조건을 검토하고 협상에 들어갔다. 석 달에 걸친 작업 끝에 지난 7월 신한은행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경찰관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4%대의 저리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파격적인 조건에, 무려 3만4천 명이 급여계좌를 옮겼다.

이들이 대출을 갈아탄 규모만 2조3천억 원, 평균 6~7% 였던 대출금리가 4%로 내려가면서 경찰관 1명당 연 평균 150~200만 원 가까운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급여계좌가 대거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다른 은행들도 부랴부랴 같은 조건의 상품을 다급히 내놨고, 결국 지금은 모든 시중은행이 경찰관에게 저리대출을 해주고 있다.

신한은행으로 굳이 계좌를 옮기지 않고도 이렇게 혜택을 받는 경찰관이 추가로 2만여 명 정도 되는 것으로 경찰청은 추산하고 있다. 대출상품 개발로 전체 경찰의 절반 이상이 혜택을 본 셈이다.

경찰청 복지정책과 이주민 과장은 "현재 금리가 내려가서 신용대출 금리는 더 낮아졌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박봉에 시달리는 경찰관의 연봉이 2백만 원 정도 더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자부담이 낮아져 실질 소득이 상승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 이자부담 덜었더니.. 실질소득 상승 + α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경찰관의 봉급은 일반직 공무원보다 1.7% 높게 책정돼 있다.

그러나 판검사를 제외한 검찰이나 법원의 사무직 공무원에 해당하는 공안직이 일반 공무원보다 5% 더 높은 봉급을 받는 것에 비하면 적다. 게다가 경찰 계급 중 가장 많은 경사와 경위는 거꾸로 일반직 공무원보다 봉급이 더 적다고 한다.

이처럼 격무와 상대적인 박봉에 시달리던 경찰관들에게 조금이나마 소득이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 것에 더해, 자긍심도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는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이 과장은 "신용도가 함께 상승한 것이어서 은행의 태도가 확실히 바뀌었다"며 "경찰관들도 자긍심이 높아지고, 또 이자부담에 시달리다 비리를 저지를 확률도 조금은 줄어들었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2012년 11월 15일 현재, 전국 경찰관 수는 10만3천195명. 결국 이들이 결집해서 생긴 구매력이 은행을 이긴 것이다.

경찰청은 이번 성과를 토대로, 건강검진과 물품구매, 여가활동 등으로 공동구매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경찰관 10만명과 경찰관 가족 32만명, 퇴직경찰관으로 구성된 경우회 100만 명까지 합치면 무려 150만 명에 가까운 엄청난 구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또 소방과 해양경찰도 경찰을 벤치마킹해 대출상품 개발에 나서는 등 그 파급효과도 무시못할 수준이다.
ha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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