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감독 반란… "98월드컵 퇴장 때보다 힘들었다"
[K리그 30년 사상 처음으로 강등 팀 나온 날… 살아남은 자와 밀려난 자]
왼발의 달인 하석주, 시즌 중 꼴찌 전남 맡아 1부 리그 잔류시켜
속은 바싹 탔지만 내색 못하는 호수 위의 백조같은 신세… "모두 무서워하는 팀 만들것"
마흔넷의 초보 감독은 볼살이 쏙 빠져 있었다.
지난 8월 프로축구 K리그 최하위였던 전남 드래곤즈의 지휘봉을 잡은 하석주 감독은 넉 달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난파 직전의 팀을 맡아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고 팀을 살려놓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어서였다.
하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팀 선수로 활약할 당시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불과 3분 뒤 퇴장당해 1대3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차라리 그때가 나았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엔 한 경기 고통이었지만 전남에선 매일 비슷한 스트레스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불면증은 지난 24일 성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해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하면서 사라졌다.
"호수 위의 백조 같은 신세였죠. 백조는 물 위에선 우아해 보이지만 밑에선 물에 뜨기 위해 쉴 새 없이 갈퀴를 움직이잖아요? 제 속이 바싹바싹 탔지만 선수들이 조급해할까 봐 내색도 못했어요. 성남전이 끝나니까 긴장이 풀렸는지 10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감기까지 걸렸다니까요."
하석주 감독은 현역 시절 '왼발의 달인'으로 불렸다. 대표팀 왼쪽 수비수로 A매치 95경기에 나와 23골을 넣었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지도자의 길은 순탄치 못했다. 지난 2003년 은퇴 후 포항·경남·전남 등에서 코치를 했지만 팀 감독이 자리를 떠날 때마다 함께 옷을 벗었다. 하 감독은 "나름 모시던 감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작년 프로 무대를 떠나 모교(母校) 아주대학교를 맡아 팀을 11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올려놓았다. 당시 아주대는 8경기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하석주 감독은 수비 조직력을 다지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자 지난 8월 프로 감독으로 데뷔할 기회가 왔다. 당시 리그 꼴찌 팀이던 전남에서 팀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했다. 전임 정해성 감독이 부진한 팀 성적으로 물러난 뒤였다.
당시 전남은 6승8무14패로 리그 16개 팀 가운데 최하위였다. 지난 6월 23일 광주전과 7월 21일 제주전에서 각각 0대6 패배를 당한 데다 11경기(2무9패) 연속 승리가 없었다. 반등(反騰)을 하지 못하면 K리그 역사에 남을 최초의 강등 팀이 될 위기였다. 하석주 감독은 고민을 거듭하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감독직을 수락했다.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부임 첫날 감독실 책상 서랍을 여니 전임 감독이 먹던 진통제와 수면제가 있더라고요. 그걸 보곤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죠."
하석주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팀에 메스를 댔다. 먼저 선수들에게 감량을 지시했다. 살을 빼지 않으면 그라운드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팀의 최고참 이운재(39)도 7㎏ 이상 살을 뺐다. 하 감독은 웨이트 트레이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4개월 동안 팀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지냈다. 밤에는 감독실에서 혼자 경기 영상을 보면서 팀의 문제점을 돌아봤다.
"선수들과 같이 뛰면서 나도 몸무게가 6㎏ 빠졌어요. 경기에서 진 날은 밤에 잠이 안 와서 술 생각도 났지만 꾹 참았죠. 선수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해놓고 정작 감독이 풀린 모습 보이면 누가 믿고 따르겠어요."
효과는 금세 나타나지 않았다. 전남은 하석주 감독이 부임한 첫 경기에서 경남을 1대0으로 꺾으며 반짝했지만 다시 1무2패로 부진했다. 현역 때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던 하 감독은 선수들을 윽박지르기보단 기를 살려주는 데 애를 썼다. 공격이나 수비 실수를 한 선수에게 따로 '힘내라'는 문자를 보내고, 소극적인 성격의 선수는 방으로 따로 불러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했다. 하 감독은 "감독이 초조하면 선수들이 더 급하고 주눅이 든다"며 "일부러 4개월 동안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고 했다.
하석주 감독의 '긍정 리더십'은 통했다. 선수들은 경기마다 몸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해 상대 공격을 막았다. 하 감독 부임 이전 경기당 평균 1.6골이던 실점(28경기 45실점)이 부임 후엔 0.93골(15경기 14실점)로 줄었다. 김영욱·이종호 등 부진했던 공격수들은 연달아 골을 터트리면서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전남은 28일 홈에서 대전을 3대1로 꺾으면서 최근 10경기에서 5승5무로 무패 행진을 벌였다.
4개월간의 '지옥'에서 벗어난 하석주 감독은 벌써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2부 리그 강등을 걱정하는 팀이 아니라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팀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미 개인 선수별 훈련 과제는 마련했다. 하 감독은 "올해는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내는 데 총력을 다했다"며 "내년엔 빠르고 근성 있는 축구로 전남을 상대가 무서워하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지난 8월 프로축구 K리그 최하위였던 전남 드래곤즈의 지휘봉을 잡은 하석주 감독은 넉 달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난파 직전의 팀을 맡아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고 팀을 살려놓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어서였다.
하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팀 선수로 활약할 당시 멕시코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불과 3분 뒤 퇴장당해 1대3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차라리 그때가 나았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엔 한 경기 고통이었지만 전남에선 매일 비슷한 스트레스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불면증은 지난 24일 성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해 1부 리그 잔류를 확정하면서 사라졌다.
프로축구 K리그 전남 드래곤즈 하석주(44) 감독은 지난 8월 최하위였던 팀을 맡아 2부 리그 강등 위기에서 구해냈다. 27일 전남 광양에 있는 전남 드래곤즈 전용구장에서 만난 그는“내 축구 인생을 건다는 각오로 팀을 이끌었다”며“내년엔 1부 리그 잔류가 아니라 상위 8위 진입이 목표”라고 했다. /김영근 기자 |
"호수 위의 백조 같은 신세였죠. 백조는 물 위에선 우아해 보이지만 밑에선 물에 뜨기 위해 쉴 새 없이 갈퀴를 움직이잖아요? 제 속이 바싹바싹 탔지만 선수들이 조급해할까 봐 내색도 못했어요. 성남전이 끝나니까 긴장이 풀렸는지 10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감기까지 걸렸다니까요."
하석주 감독은 현역 시절 '왼발의 달인'으로 불렸다. 대표팀 왼쪽 수비수로 A매치 95경기에 나와 23골을 넣었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지도자의 길은 순탄치 못했다. 지난 2003년 은퇴 후 포항·경남·전남 등에서 코치를 했지만 팀 감독이 자리를 떠날 때마다 함께 옷을 벗었다. 하 감독은 "나름 모시던 감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 전남은 6승8무14패로 리그 16개 팀 가운데 최하위였다. 지난 6월 23일 광주전과 7월 21일 제주전에서 각각 0대6 패배를 당한 데다 11경기(2무9패) 연속 승리가 없었다. 반등(反騰)을 하지 못하면 K리그 역사에 남을 최초의 강등 팀이 될 위기였다. 하석주 감독은 고민을 거듭하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감독직을 수락했다.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부임 첫날 감독실 책상 서랍을 여니 전임 감독이 먹던 진통제와 수면제가 있더라고요. 그걸 보곤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죠."
하석주 감독은 취임하자마자 팀에 메스를 댔다. 먼저 선수들에게 감량을 지시했다. 살을 빼지 않으면 그라운드에 내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팀의 최고참 이운재(39)도 7㎏ 이상 살을 뺐다. 하 감독은 웨이트 트레이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4개월 동안 팀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지냈다. 밤에는 감독실에서 혼자 경기 영상을 보면서 팀의 문제점을 돌아봤다.
"선수들과 같이 뛰면서 나도 몸무게가 6㎏ 빠졌어요. 경기에서 진 날은 밤에 잠이 안 와서 술 생각도 났지만 꾹 참았죠. 선수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해놓고 정작 감독이 풀린 모습 보이면 누가 믿고 따르겠어요."
효과는 금세 나타나지 않았다. 전남은 하석주 감독이 부임한 첫 경기에서 경남을 1대0으로 꺾으며 반짝했지만 다시 1무2패로 부진했다. 현역 때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던 하 감독은 선수들을 윽박지르기보단 기를 살려주는 데 애를 썼다. 공격이나 수비 실수를 한 선수에게 따로 '힘내라'는 문자를 보내고, 소극적인 성격의 선수는 방으로 따로 불러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했다. 하 감독은 "감독이 초조하면 선수들이 더 급하고 주눅이 든다"며 "일부러 4개월 동안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고 했다.
하석주 감독의 '긍정 리더십'은 통했다. 선수들은 경기마다 몸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해 상대 공격을 막았다. 하 감독 부임 이전 경기당 평균 1.6골이던 실점(28경기 45실점)이 부임 후엔 0.93골(15경기 14실점)로 줄었다. 김영욱·이종호 등 부진했던 공격수들은 연달아 골을 터트리면서 감독의 기대에 보답했다. 전남은 28일 홈에서 대전을 3대1로 꺾으면서 최근 10경기에서 5승5무로 무패 행진을 벌였다.
4개월간의 '지옥'에서 벗어난 하석주 감독은 벌써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2부 리그 강등을 걱정하는 팀이 아니라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팀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이미 개인 선수별 훈련 과제는 마련했다. 하 감독은 "올해는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내는 데 총력을 다했다"며 "내년엔 빠르고 근성 있는 축구로 전남을 상대가 무서워하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광양=손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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