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마이크로 로봇 몸속 12만5000㎞ 혈관 청소

미국의 SF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환상적 항해’에는 혈액 안을 돌아다니는 초소형 잠수정 ‘프로테우스’를 타고 인체 탐험의 모험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1987년 선보인 공상과학영화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맥 라이언 출연)에서도 적혈구만한 크기의 초소형 잠수정이 등장한다. 사람 몸에 투입된 이 잠수정은 인체 구석구석을 항해하며 암세포를 발견하고 치료한다.

영화 속 장면이 현실로

이러한 소설이나 영화 속의 상상이 현실로 바뀌고 있다. 전남대학 로봇연구소와 의과대 연구팀이 최근 이 같은 상상을 실현시킬 기술에 한 발짝 다가섰다. 지름 1㎜, 길이 5㎜ 크기의 마이크로로봇이 살아있는 동물의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막힌 혈관을 뚫는 기술을 구현해냈다. 이번에 연구팀은 강한 혈류와 혈압이 발생하는 동물 혈관 안에서 로봇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등 혈관 속 로봇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자석 성질의 로봇이 외부의 전자기력을 통해 움직이며 혈관 속을 계획대로 이동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이용해 돼지 혈관의 3차원 형상을 만든 뒤 로봇의 예상 이동 경로를 미리 설정했다. 이어 주사기로 혈관에 로봇을 넣은 후 외부에서 X선 형광투시기(Fluoroscope)로 혈관 속을 보며 로봇을 조종했다. 외부에서 강한 자기장을 걸어 로봇을 설정된 경로대로 이동시켰는데, 로봇은 1초에 최대 10㎜씩 이동했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자들이 생체 로봇을 연구해 왔지만 이처럼 실제 로봇을 동물의 몸 안에 넣고 위치를 제어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 전남대 박종오 박사팀이 전남대 의대 심장센터에서 살아있는 미니돼지 혈관에 마이크로 로봇을 집어넣고 이를 이동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 photo 전남대
뿐만 아니다. 연구팀은 돼지의 몸속을 본떠 만든 인공혈관 속에 넣은 미세 드릴을 분당 1200~1800회 회전시키며 막힌 곳을 뚫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혈관을 이동하는 이동로봇에 미세드릴과 센서, 초음파기기 등을 붙이면 실제 살아있는 혈관의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는 완벽한 마이크로로봇이 된다.

사실 이번에 연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로봇은 자체 동력도 없고 드릴이나 센서도 달려있지 않은 작은 자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로봇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이 초보적인 로봇이 해낸 혈관 속 이동기술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혈관 손상 없이 관련치료 가능

▲ 혈관 치료용 로봇(실물크기) / photo 전남대
우리 몸에 퍼져 있는 혈관의 총길이는 12만5000㎞로 지구 둘레 두 바퀴 반을 감고도 남는다. 꼬불꼬불한 데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이런 긴 혈관에 피를 돌리기 위해 심장에서는 엄청난 압력으로 피를 뿜어댄다. 이 압력을 헤치며 로봇이 혈관 속을 거슬러 올라가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또 지금까지 선진국에서 개발된 마이크로로봇은 혈관 속을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정확한 관찰이 필요한 곳에서 멈추는 기능은 갖고 있지 않았다. 국내 연구팀이 혈관 속에서의 로봇 위치 제어에 성공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의료계에서 막힌 심혈관을 뚫는 데는 가느다란 철사를 혈관 속에 집어넣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는 혈관을 손상시킬 우려가 크다. 또 방사선 요법도 부작용이 많다. 만약 혈관을 이동하는 마이크로로봇이 현실화되면 이런 기존 치료법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없이 혈전 제거는 물론, 심혈관 질환 예방까지 가능하다.

물론 국내 연구팀이 개발한 마이크로로봇은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로봇이나 센서가 작동하도록 꾸준히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자체 동력(배터리)이 내부에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정명호 전남대 의대 심혈관내과 교수는 자체 동력과 센서 등을 갖춘 혈관 로봇이 상용화되려면 앞으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10년 후에 우리 몸속을 돌아다닐 로봇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일까.

이젠 나노헬기를 띄워라!

과학자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마이크로로봇(10-6m)보다 더 작은 나노로봇(10-9m)이다. 왜 나노일까. 우리 몸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 단위가 나노미터 크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과 물과 친한 친수성을 모두 갖는, 이른바 양친매성 구조를 지닌 나노미터 크기의 지질분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형성한 세포막으로 보호되고 있다.

나노로봇의 주된 역할은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병균이 침입했을 때 싸우는 것이다. 또 고통스러운 내시경 검사도 나노로봇 캡슐 하나만 삼키면 끝나게 된다. 또 나노로봇을 삼키면 암세포가 자라는 곳으로 달려가 집중 공격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코넬대학의 몬테매그노 교수팀이 제작한 ‘초소형 헬리콥터’가 그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나노 간호사’란 별명이 붙은 이 나노헬기는 중심을 잡아주는 지름 80나노미터의 원통형 니켈 나노 기둥에 생체분자(ATP)로 이루어진 바이오모터가 달려 있고 모터에 니켈 프로펠러가 연결되어 있다. 작동은 바이오모터가 체내의 세포 에너지인 ATP(아데노신삼인산)를 연료로 사용해 구동하는 방식이다. 모터에 연결된 니켈 프로펠러는 1초에 8번 회전한다. 그러면 나노헬기가 혈관 속을 헤엄쳐 다니며 세균을 잡거나 약물을 전달한다. 아직은 몬테매그노 교수팀이 개발한 400개의 바이오모터 중 몇 십 개만이 작동될 정도로 연구 초기 단계이지만 보다 발전하면 외과수술 기능을 갖춘,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나노로봇이 현실로 나타난다.
캡슐형 내시경에서 DNA 로봇까지

세계는 지금 생체 로봇 만들기 붐이다. 미국 유타대학 연구팀은 박테리아를 이용해 생체 로봇을 개발했다. 박테리아의 운동기관인 편모를 떼어내 실리콘 원반에 붙여 한 몸을 만들었다. 지름 20나노미터 정도의 편모가 이 로봇을 움직이게 한다.

일본 도후쿠대학 연구팀과 스웨덴 린세핑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로봇은 자석의 힘을 이용해 혈관 속에서 움직인다.

DNA 로봇 개발도 한창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밀란 스토야노비치 교수는 4나노미터 크기의 DNA 분자 로봇을 만들어냈다. DNA 경로를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이 분자 로봇은 궁극적으로 인체 조직의 표면을 따라 이동하면서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로봇 군단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키는 캡슐형 내시경은 미국에서 벌써 나왔다. 카메라가 부착된 캡슐형 내시경을 삼키면 내시경이 스스로 몸속 기관을 돌며 체내 모습을 찍어 몸 밖으로 영상을 전달한다.

나노로봇은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 전달에 무엇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의 먹는 항암제나 항암 주사제의 경우 효과는 작고 부작용이 많았다. 그 까닭은 약물이 몸 전체에 무작위로 보내져 그중 일부만 병소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조직에까지 약을 쏟아부어 정상세포까지 손상시켰고 정작 병균을 공격할 시점에는 ‘실탄’이 모자랐던 것이다. 나노로봇은 암세포가 증식할 때 내놓는 유전물질과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아 암세포만을 정확히 공격한다. 종양 부위에만 강력한 약물(표적 항암제)을 투입하여 암을 치료하므로 정상세포에는 해가 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전망하는 이런 나노로봇의 상용화는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10년 뒤면 나노로봇들이 살아있는 세포의 분자 구조를 보수하고 다시 배열하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부를 절개하지 않고 의료용 마이크로로봇이 수술하는 시대 역시 2020년쯤 도래할 전망이며 그 후 사람 몸속에서 병균만을 죽이는 인공 나노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나노입자 통한 유전자 치료 연구도

과학자들 중에는 나노로봇과 같은 운송 수단을 따로 만들지 않고 나노입자를 바로 인체에 투입해 유전자 치료에 곧바로 적용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노입자보다 큰 바이러스성 입자를 사용하는 지금의 유전자 치료는 세포 수준에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나노입자는 세포질이나 핵과 같은 세포 속의 특정한 구획까지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 구(球) 모양의 나노입자에 약물 등을 넣어 인체에 투여하면 나노입자가 체내에서 분해되면서 약물을 서서히 방출시키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2014년쯤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나노입자를 통한 약물 전달 시스템이 우수한 것은 표적성 때문이다. 원하는 특정 질병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인 세포 사이의 간격은 100나노미터인데, 암세포 주변의 혈관세포는 이보다 넓다. 따라서 약물을 전달하는 나노입자의 크기를 100나노미터 이상으로 조정하면 암세포 조직으로만 나노입자가 흡수된다. 바이러스성 입자가 적이 숨은 집을 통째로 공격하는 것이라면, 나노입자는 집 안방에 숨은 적을 직접 겨냥하는 방식인 것이다.

멤스(MEMS)

눈에 보이지 않는 수㎛ 크기 기계를 만드는 기술

인체용 마이크로로봇이나 나노로봇은 크게 보아 ‘멤스(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 기술의 하나다. MEMS는 ‘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의 약자로, 말 그대로 전자기계 소자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수㎜에서 수㎛(마이크로미터) 크기로 제작하는 기술이다. 일본에서는 마이크로머시닉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매크로 세계(거시세계)와 대비되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 즉 마이크로 세계(미시세계)를 위한 기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단순히 기존의 기계를 축소만 한다고 마이크로 기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MEMS 기술로 만들어진 기계는 뇌와 신경에 해당하는 논리회로, 시각 또는 청각 등을 담당할 각종 센서, 팔과 다리 역할을 할 기계 장치, 그리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구동기까지 완벽하게 갖춘, 느끼고 생각하면서 운동하는 하나의 통합 시스템이라야 한다.

예를 들어 MEMS는 개미와 같은 곤충을 모방한 마이크로로봇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운동이나 작업을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미의 눈이나 촉각에 해당하는 각종 센서, 뇌나 신경에 해당하는 논리 회로, 팔과 다리에 대응하는 마이크로 메커니즘,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마이크로 액추에이터를 하나로 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MEMS 기술은 미래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예컨대 초소형 비행체가 휴전선을 넘나들며 북한군 움직임을 샅샅이 사진으로 찍어 송신하더라도 이 비행체는 워낙 작아 레이더로도 잡히지 않을 뿐더러 새나 곤충과 구별되지도 않는다. 정보통신기기, 센서, 의료기기, 오락기기, 개인 서비스용 기기 등의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기기들을 탄생시킬 기술이 바로 멤스다.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과학잡지 Newton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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