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해도해도 너무 다 해먹는 모피아

전운 금융부 부장입력 : 2020-11-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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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공이 경제학 중에서도 금융이다. 경제개혁연대에서도 재벌개혁 못지않게 금융개혁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김상조 <종횡무진 한국경제> 중)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할 때, 금융개혁을 두고 밝혔던 소신이 재조명을 받았다.

그의 저서의 부제는 ‘재벌과 모피아(옛 재경부 출신 관료가 마피아처럼 경제‧금융계를 장악하는 걸 지칭)의 함정에서 탈출하라’였다. 그가 금융관료 중심의 금융정책을 부정적으로 봐왔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김 실장은 2013년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모피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금융감독체계를 왜곡하는 힘의 원천이 ‘모피아’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모피아 통제장치 없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설립 방안은 허울일 뿐”이라며 “‘정답이 없다’는 말로 모피아 지배체제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사실상 국내 금융정책을 가장 높은 자리에서 관장하는 정책실장의 소신인지라, 모피아로 얼룩진 금융권에 변혁이 예상됐다. 하지만 빗나간 예상이었다.

‘금융 적폐’로 불리는 모피아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조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들어 역대급 낙하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정권 말기에 접어든 청와대가 모피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올해의 경우 5곳에 달하는 금융 협회·기관의 수장자리를 두고 모피아들이 서로 나눠 가지는 상황까지 연출되면서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상 역대급 ‘나눠먹기’다. 심지어는 행정고시 선후배끼리 자리를 서로 양보해 한자리씩 꿰차는 모종의 합의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모피아 낙하산은 금융권이 당연히 원하는 인사일 수도 있다. 사모펀드‧키코 사태, 실손보험제도 개선, 즉시연금 논란 등 당국과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는 금융권으로서는 대관 능력이 출중한 관 출신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관료의 특징인 선후배 인맥 등을 활용한 로비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몇 민간 출신 협회장의 성과가 미미했기 때문에, 관 출신을 원하는 금융권의 바람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피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금융산업 발전에 장애가 되고, 정부의 정상적인 경제정책을 왜곡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는 조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구성된 모피아는 관치금융의 본산이다. 정치가에게는 이것만 한 도깨비 방망이가 없고, 국민들(또는 금융사)조차 때로는 그 마약의 단맛을 주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치금융이 판을 치는 곳에서 금융이 제대로 자랄 수는 없다.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이 숱하게 쏟아졌지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아직도 낙후되어 있다.

저축은행 발전을 위한다며 신나게 나팔 불었던 88클럽은 대규모 저축은행 구조조정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은행산업에 메기를 넣겠다면서 시작한 인터넷전문은행도 BIS 자기자본비율조차 충족하지 못하면서 케이뱅크는 수년 동안 중환자로 지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도 관치금융에서 비롯됐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는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공식화됐다. 금융위원회가 저지른 크나큰 오류였다. 문제가 터진 뒤 제대로 된 제도 개선도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국내 금융시장의 발전 저해는 물론, 피해자까지 양산한 장본인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들이다. 이들이 지금 각 금융사를 대표하는 협회장과 이사장으로 내려오겠다는 것이다.

모피아는 아니지만 낙하산 인사로 인한 폐해는 세월호 사태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주의 돈벌이를 위해 승객 안전을 소홀히 여기던 해양수산부 출신 관피아들이 업계에 재취업하며 막강한 권력을 얻었다. 퇴직 관료들이 ‘관’의 힘을 배경으로 협회나 공공기관에 기관장이나 임원 등으로 재취업해 민·관 유착의 고리 역할을 했다.

이 유착관계는 현직 관료들이 선배 퇴직 관료들을 챙기는 전관예우 문화가 바탕이다. 여기에 업계의 탐욕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퇴직 후 고액 연봉 자리를 보장받는 비리구조가 맞물려 선심 행정과 방만 경영 등 각종 부조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협회는 공공성이 있다는 이유로 취업심사를 면제받고 있으나 업계 이익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협회‧기관 역시 똑같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당초 취지와 반대로 금융개혁을 방해하고 여러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토건과 금융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2001년 일본은 한때 '일본의 곳간'이라고 불렸던 대장성을 결국 해체하고야 말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재정과 금융은 물론 예산 수립 기능까지 틀어쥐고, 사실상 한국 금융을 농단하고 있던 기획재정부를 해체했다. 각 기능들을 총리실과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로 분산시키는 등 그런 뼈를 깎는 개혁을 일본도 했던 것이다.

YS가 하나회를 군대에서 밀어냈듯이, 경제 민주화 과정에서 모피아들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이 한 번은 반드시 필요하다. 모피아 척결이 관치를 끊을 수 있고, 이것이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것이다. 곧 한국의 금융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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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jw@ajunews.com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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