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나라처럼 갈라선 ‘빈부 갈등 분단’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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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이번 주 이 책

자본주의의 미래

자본주의의 미래

자본주의의 미래
폴 콜리어 지음

“고소득 전문직 세금도 늘리자”
옥스퍼드 공공정책학 교수 제안

윤리 강조하는 자본주의 모델
빌 게이츠 “묻고 싶은 부분 있다”

김홍식 옮김
까치
 
이달 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정치적 사안만은 아니었다. 경제가 관련된 사안이기도 했다. 중부 내륙 러스트 벨트 말이다. 이 지역의 좌절한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이 4년 전에 이어 또다시 선거 결과의 주요 변수였다니 말이다. 그들의 고통의 원인은 결국 경제, 먹고 사는 문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음은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사상 최악의 혼란으로 기록될 것 같은 요즘 국내 부동산 시장이 그 사례다. 불로소득을 잡겠다는 나름의 공정과 자유로운 이윤 추구를 막겠다는 거냐는 저항 심리가 정면충돌해 파열음을 내는 양상이다.
 
동떨어진 것 같은, 하지만 잠시 따져 보면 희미하게 연결될 것도 같은 두 문제가 새 책 『자본주의의 미래』에서는 하나의 그물에 신기하게 꿰어진다. 장소에 따라 경제 격차가 점점 커지는 지리적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지대(地代)에 대한 영리한 과세, 그러니까 과열 부동산 규제책으로 비칠 수 있는 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형식을 통해서 말이다. 단순히 세금 더 거둬 저소득층을 위한 선심성 복지예산으로 사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영국 옥스퍼드에서 경제학과 공공정책학을 가르치는 폴 콜리어 교수의 제안은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풍부하다.
 
지난해 미국 미시간의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민들. 미시간은 중부 내륙 러스트 벨트에 속한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미국 미시간의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민들. 미시간은 중부 내륙 러스트 벨트에 속한다. [AFP=연합뉴스]

저자는 빈부 격차, 양극화 현상을 악화시킬 뿐인 자본주의의 기능 상실을 ‘분단’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세상이 지리적 분단(미국의 소외된 내륙 유권자들이 직접적인 피해자다), 계급적 분단, 세계적 분단으로 갈기갈기 찢겨 있다고 본다. 각각 한 나라 안의 지역별 경제 격차, 고소득 전문직과 저소득 비전문직 간의 격차,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간의 격차가 거의 분단 수준이라는 거다. 미국의 트럼프나 영국의 브렉시트는 이런 분단 현상의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옹호자나 대중 영합주의자는 대중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해도 점차 해로워지는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저자는 이데올로기 옹호자(진보 좌파 정부로 볼 수 있다)나 대중 영합주의(우파 정치세력이겠다) 모두를 비판한다. 실용주의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제시한 해결책이, 지리적 분단의 경우 지대에 대한 과세와 더불어 대도시에 거주하며 일하는 거액 임금의 전문직 종사자에게도 세금을 더 걷는 방안이다. 논쟁을 격화시킬 만한 대목이, 이런 방안의 바탕에 시장주의 신봉자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19세기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경제학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저자에 따르면 헨리 조지는 “집적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독특하게 과세하는 윤리적 논거를 펼쳤다.”(224쪽) 도시권 토지의 지가 상승에 과세하자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집적(agglomeration)’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도시화, 그러니까 집적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득은 결국 지대의 형식으로 토지주에게 돌아가니 이에 과세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저자는 여기에 현대성을 가미한다. 현대 대도시의 복잡성 증대로 인해 헨리 조지의 방안이 이제는 효력을 상실했다는 분석이다. 영리하게 재설계한 과세 방안이 대도시 전문직들에 대한 과세인데, 결정적으로 런던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대도시 집적으로 생겨나는 전체 이득의 절반이 토지주, 나머지 절반이 고임금 전문직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힌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돈을 더 버는 전문직들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거다. ‘응분’이라는 논리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저자의 실용주의적 해결책이 거의 모든 사안에 걸쳐 유례 없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글로벌 양극화 현실에서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영어 원서는 2018년 출간됐다. 빌 게이츠는 지난해 자신이 콜리어 교수의 빅 팬이라면서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자유주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마틴 울프는 2018년 리뷰에서 콜리어를 세계적인 개발경제학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하고는 책 내용이 “경제적인 것만큼 윤리적(as much ethical as narrowly economic)”이라고 썼다. 고장난 자본주의, 경제학의 민낯, 그 바탕에 깔린 정치철학 사상의 변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신준봉 전문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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