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부역자는 국립묘지 얼씬도 못 해" 여당, 백선엽 등 '친일 파묘법' 박차

김상범 기자 입력 2020.08.13. 17: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송영길,안민석,이상민 의원실 등 공동주최로 열린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 고 백선엽 장군 등 친일파 묘비 모형들이 전시돼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친일 인사를 국립묘지에서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준비하는 한편, 오는 15일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여론 띄우기에도 돌입했다. 송영길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해 13일 국회에서 열린 ‘상훈법·국립묘지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페탱 장군,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등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해외 인사들의 사례를 들며 친일파 ‘파묘(강제이장)’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김홍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일부개정안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 행위자 등을 국립현충원 등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달 타계한 고 백선엽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여당 일각에서 ‘친일파 파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던 백 장군은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돼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백 장군은 6·25 전쟁의 영웅”이라며 “여권에서 국론 분열에 앞장선다”라며 파묘에 반대한다.

이날 공청회를 주최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친일 인사 강제이장을 위한)국립묘지법 개정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정신적 가치를 재확립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국립묘지 안장을 엄격히 심사하고 사후에도 재평가를 통해 안장 자격을 박탈하는 해외 사례들을 소개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전 총통이 대표적이다.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마드리드의 국립묘지인 ‘전몰자의 계곡’에 묻혔다. 34년이 지난 지난해 스페인 정부는 프랑코의 시신을 파내 가족묘지로 옮겨 묻었다. 시신 이장을 주도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이번 결정으로 국가의 공적인 장소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도덕적 모욕에 종말을 고했다”라고 자평했다.

프랑스는 사회 유명 인사를 국립묘지인 ‘팡테온’에 안장하기 전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최소 10년 이상 유예기간을 두고 사망자의 정치적 공과를 검증한다. 프랑스 혁명가 미라보가 ‘배신 행위’가 드러나 안장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는 미라보가 사망한 뒤 그를 팡테온에 안장했다. 하지만 훗날 공개된 자료에서 미라보가 혁명 중에 루이 16세 측과 밀통한 사실이 드러났고 프랑스 정부는 그의 유해를 팡테온에서 끌어낸 바 있다.

한때 프랑스의 ‘국부’로 칭송받았던 앙리 필리프 페텡 원수는 안장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페텡 원수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공로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한 독일군에 항복하고 이후 괴뢰정부인 ‘비시 내각’ 수반으로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 레지스탕스 명단을 나치에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부역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대서양의 외딴 섬에서 복역하다가 사망한다. 프랑스군 최고 계급인 원수까지 지냈으나 팡테온은 물론이고 유명 장군들이 묻히는 ‘앵발리드 묘역’에도 안장되지 못한다.

김 전 관장은 “더 이상 독립운동가와 일본군 출신들이 같은 장소에 잠들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국가의 상징적인 추모 위령시설에 부역 인사들을 안치하는 비정의가 지속되지 않도록 국회가 국립묘지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관련 태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