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6.5
안진우展 / ANJINWOO / 安鎭佑 / photography 2011_0608 ▶ 2011_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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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아직 우리는 따뜻한 사람이잖아요_피그먼트 프린트_가변크기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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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1_06_0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아이 GALLERY I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13번지 2층 Tel. +82.2.733.3695 www.egalleryi.co.kr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모체로부터 완벽히 벗어나는 몸부림의 고통 끝에 이루어진다. 세상의 빛을 보기위해 10달동안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지내 온 안식처, 아늑한 그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 좁고 긴 산도를 지나기 위해 아기는 안간힘을 쓴다.
이제 막 세상으로 머리를 내민 아이의 눈에는 온 세상이 희뿌옇다. 우렁찬 울음과 함께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찾는 아이, 처음으로 안겨보는 엄마의 따스한 품, 사랑의 온기가 젖줄기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간다. 안진우의 세 번째 개인전 '36.5'는 미약한 온기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기쁨에 감격하는 작가의 독백에서부터 시작한다.
● 안진우의 이번 전시는 'A wind', 'Dream of body'와 같이 기존에 선보인 작품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1,2회 개인전에서 보였던 그의 작업은 움츠린 인간의 몸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여져 어둠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어둠은 작가가 대면해야 하는 매일의 삶속에서 마주하는 두려움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술을 통해 무엇인가 실현해 내야 한다는 예술가로서의 의무 내지는 사명에 대한 고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의 상황에 안착하지 못하고 이상과 현실의 언저리를 오가며 배회해야만 했다.
좌초의 연속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유일한 길은 그에게 주어진 카메라 한 대로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입증하는 신체를 향해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보는 것이었다. 어둠, 그 고요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벗어던진 작가의 신체는 카메라 셔터의 박자에 맞춰 서서히 안락의 세계로 빠져든다. 어떠한 강박도 침입할 수 없는 자유의 시간, 자신의 모든 치부를 덮을 수 있는 어둠은 생명의 근원을 품은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음이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어둠이 바로 그의 초기 작품의 모티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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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Time To Say Good Night_단채널 비디오_00:01:00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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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낮잠 #01_캔버스에 피그먼트 프린트_150×200cm_2011
그런데 그렇게도 어둠을 쫒던 작가가 돌연 어둠을 저버렸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누나의 집에 가게 된다. 누나의 품에 안겨 쌔근거리며 잠든 조카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존재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태어남,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근원적 삶의 가치를 사소한 일상에서 문득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작가는 집에 돌아와 3월 초, 아직 겨울의 냉기가 여전한 아파트에서 난방도 하지 않은 채로 잠들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헝클어진 자신의 잠자리에 다시 들어가는 순간, 어제 조카의 모습을 통해 발견한 존재의 가치가 오버랩되면서 '온기'라는 단어로 정리되었다. 작가의 손길 닿은 모든 사물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담긴 온기가 서려있었다.
● 온기에 대한 애착은 기존 카메라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매체를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의 작업실 한 켠에 자리한 사소한 사물들...외출 후 걸어 놓은 자켓, 신발에서부터 시작해서 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종로거리까지 온기가 담긴 모든 것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열을 담아내는 1차원적 방법에서 작가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보다 치밀하고 정제된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사진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전달하고 싶었는가.
미약한 온기로도 세상은 충분히 따뜻하고 소중했기에 작가는 가식의 껍데기를 한 꺼풀 벗겨낸 내면의 덩어리로 사물을 인식하기로 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며 자신의 모든 추함을 인식하고 인정 한 후에 오는 초연함에서 작가는 세상을 보다 느긋하고 따스하게 느끼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더이상 자기 자신이 두렵지 않은 초연함 같은 것. 더 이상 어두울 필요가 없다.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관념의 전환은 작가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밝히고 싶은 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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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오늘의 운세_피그먼트 프린트_140×14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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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낮술_피그먼트 프린트_140×14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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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봄봄_피그먼트 프린트_120×120cm_2011
이번 작업의 방향이 결정되기까지 작가는 이미 발견한 생각 속에서 아직도 자신을 감추고 있는 생각되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를 좀 더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시선과 사유의 기다림. "생각하는 것은 존재자의 존재로부터 본질을 청취하는 것인데 이 청취하는 것이란 하나의 응답"이라고 했던 하이데거의 읊조림처럼 보다 더 근원적인 발견을 위해 기다리고 천천히 생각하는 것으로 작업을 재정비해야만 했다. 자신이 감추려 했던 어둠을 없애니 세상이 밝아졌지만 너무 밝아 어디서부터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르는 신선한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긴 찰나의 적나라함은 존재의 진리를 망각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생에 처음으로 따스함을 느낀 순간을 돌이켜보니 그것은 시각의 우선보다 촉각의 우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기술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색을 날려버린 뒤, 따스함의 푼크툼(punctum) 불러일으켰던 요소만 남겨두기로 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손길에서, 신문가판에서 복권을 사며 인생의 행운을 기다리는 할머니 손길에서, 가족을 위해 양손 한아름 장을 봐가는 아주머니의 손길에서, 다시 일어서고 싶은 애착을 갈구하는 노숙자의 손길에서... 생의 온기를 부여잡기 위한 애착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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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우_낮잠 #02_피그먼트 프린트_100×100cm_2011
그렇다. 작가 안진우는 앞서 언급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인생의 1/3의 지점에서 혹독한 싸움을 치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모태로부터 완전한 독립체로 분리되는 산고의 과정과 같은 것이리라.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을 벌이며 어둠의 동굴, 자신을 가두었던 강박적 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의 희열을 이제야 맛본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산도를 뚫고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아이는 금세 세상에 빛에 눈뜰 수 없다. 작가가 서있는 지금은 막 태어난 간난아이가 어미의 초유를 맛보며 외부세계에서 처음으로 삶의 애착과 온기를 어미의 젖을 통해 느끼는 순간과도 같다. 더 이상 자신의 실존에 두려울 것이 없다.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이미 소중한 나를 느꼈으니 말이다. 작가 안진우의 사진에는 36.5도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체온이 담겨있다. ■ 갤러리 아이
Vol.20110608c | 안진우展 / ANJINWOO / 安鎭佑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