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혜원 기자
- 호수 626
- 승인 2019.09.23 11:14
‘로봇 배송’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아마존은 지난 1월 본사가 있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교외에서 로봇 ‘스카우트’로 배송을 시작했다. 최근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아마존은 빠른 편이 아니다.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과 노던애리조나 대학의 캠퍼스, 그리고 영국 일부 지역에는 ‘스타십 테크놀로지스(스타십)’의 배송 로봇이 돌아다닌다. 스타십 로봇은 지금까지 피자 6000개, 커피 8000잔, 바나나 1만5000개를 배달했다. 누적 배달 건수가 10만 건을 넘었다.
두 로봇은 모두 바퀴가 여섯 개 달린 아이스박스처럼 생겼다. 우리가 상상하는, 인간을 닮은 로봇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로봇들은 스스로 지형을 인지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해 움직이며, 장애물을 만나면 멈추거나 피한다. ‘자율주행 배송 로봇’이다. 자율주행 배송 로봇은 세계적 트렌드다. 중국 2위 물류기업 징둥은 바퀴가 네 개 달린 자율주행 로봇으로 배송한다. 한국의 대학생들도 로봇에게 배달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서울 건국대 캠퍼스에서 자율주행 로봇 배달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왜 ‘자율주행 배송 로봇’일까? 김요섭 우아한형제들 로봇딜리버리셀 이사는 수요 폭증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 12월 2800만 건이었던 월 주문수가 지난 7월 3200만 건으로 늘어났다.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달서비스인 배민라이더스의) 라이더(배달원)를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어렵다. 우리뿐 아니라 배송 쪽은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 외국에서도 로봇 배송을 테스트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문제 해결 방법으로 2017년부터 로봇을 연구했다.”
우아한형제들은 2018년 5월 천안의 한 푸드코트에서 자율주행 서빙 로봇인 ‘딜리’, 8월엔 피자헛 서울 목동점에서 ‘딜리 플레이트’를 테스트했다. 지난 7월23일부터는 서울 송파구 ‘메리고키친’에서 ‘푸두봇’으로 자율주행 로봇 서빙을 선보이고 있다. 점원이 테이블 번호를 입력하면 로봇이 해당 고객을 찾아간다. 로봇에 장착된 선반을 통해 한 번에 최대 7개 요리를 배달할 수 있다.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 간다. 작동 오류는 0.6%. 이마저도 직원의 조작 실수를 포함한 수치다. 실제로 거의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이야기다. 홀 직원 2명을 고용하고 있는 권향진 메리고키친 대표는 “사람 구하기도 어려운데 무거운 걸 들어주는 등 로봇이 한 사람 몫은 하는 것 같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며 인건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배달의 민족 로봇 서빙 식당 ‘메리고키친’에서 로봇이 주문한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4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본 로봇 개발사 ‘ZMP’의 자율주행 배송 로봇 ‘캐리로’를 시범 운행하기도 했다. 테스트 이전에 2주 동안 해당 단지의 초정밀지도를 생성시켰다. 그 지도에 로봇이 다녀야 할 길을 표시했다. 테스트 결과, 로봇이 자율주행으로 특정 지점까지 이동하는 데 성공한 경우가 시범 배송의 97%를 점유했다. 나머지 3%는 사람이 개입해야 했다.
마침 이사철이어서 이사 차량이나 소파 같은 장애물이 보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배송 로봇의 속도는 사람보다 느렸지만 일정했다(시간당 4.5㎞). 도착 시점을 시간 단위로 예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구들로부터 ‘미리 고지받은 시간에 배송되어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존, 로봇 10만 대 넘게 운용
우아한형제들은 로봇과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접목할지도 고민하고 있다. 실내 로봇 배송에서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층간 이동이다. 이미 배송 로봇은 엘리베이터를 탈 뿐 아니라 이를테면 짝수 층에서 홀수 층으로 갈아타는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올 하반기에, 인간 라이더가 건물 1층으로 가져온 음식을 로봇이 받아 엘리베이터로 여러 층에 배달하는 시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김요섭 이사는 “(배송 로봇 서비스를 시작할 시기를) 2022년으로 잡고 있다. 로봇 단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인건비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본다. 다만 현재 기술로 인간 라이더를 대체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송 수요 폭발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미국의 온라인 소매 판매는 16% 증가했다. 이전에는 배달을 기대할 수 없었던 식료품의 온라인 시장도 크게 성장하는 추세다. 아마존 등 배송업체들이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 중 하나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아마존은 2012년 물류 로봇 생산업체 ‘키바 시스템즈’를 인수했다. 이후 자사의 물류센터를 로봇으로 자동화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움직이고 있는 로봇이 10만 대를 넘어섰을 정도다. 물류센터에 물품을 보관하다가 내보내는 단계인 ‘퍼스트 마일’이 상당 부분 자동화된 것이다. 남은 것은 배송의 마지막 단계로 물품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라스트 마일’을 자동화하는 일이다. 지금은 인간 라이더가 차량을 몰거나 걸어 다니며 수행하는 라스트 마일 배송을 로봇에게 맡긴다는 의미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2018년 보고서에서 앞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라스트 마일 비용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어떻게 가능할까? 물류창고에서 나온 물품을 자율주행차에 싣고 주문자의 소재지 부근으로 간다. 예컨대 아파트 건물 앞이다. 자율주행차 안의 배달원이 물품을 들고 차량 밖으로 나와 주문자에게 전달한다. 이 배달원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다. 로봇들은 충전만 하면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 역시 일종의 로봇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율주행차가 주변을 인지하는 데 필요한 카메라, 라이다, 레이더 등 센서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그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관련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국제적인 온실가스 규제에 따라 전기차로의 전환이 기정사실이 된 가운데, 자동차 업계에서는 기술적으로 자율주행차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본다.
자율주행차 시대는 ‘차를 소유하기보다는 빌려 쓰는 흐름’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이른바 ‘서비스로서의 교통(Transpor-tation as a Service:TaaS)’이다. 대표적인 TaaS 업체가 바로 우버 같은 플랫폼 기업이다. 자주 타지도 않는 자동차를 비싸게 사서 유지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우버를 빌려 타는 편이 경제적이기에, 사람들의 주된 이동 패턴이 ‘자동차 소유’에서 TaaS로 전환될 것이라고 미국의 싱크탱크인 ‘리싱크엑스(ReThinkX)'가 예측한 바 있다.
TaaS 업체는 사람들에게 빌려줄 차량으로 자율주행차를 선택할 유인이 크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 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 우버로 자동차를 이용하고 돈을 내면 약 77%가 운전자에게 돌아간다. 우버 측이 가져가는 몫은 23%에 불과하다. 이 비율을 100%로 만드는 방법이 뭘까? 자율주행이다. 우버가 2015년부터 ‘첨단기술센터(Advanced Technologies Center)’를 세우고 자율주행 연구에 투자한 이유다.”
이렇게 운전자를 제거한 TaaS 플랫폼은 24시간 내내 자율주행차를 돌릴 것이다. 그런데 차량 수요는 출퇴근 시간 등 특정 시점에 몰린다. 나머지 시간은 수요보다 차량이 많다. 사람만 태워서는 수익을 충분히 올리기 어렵다. 심지어 자율주행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내부 공간이 넓다. 차량 앞쪽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공간을 차지하는 ‘내연기관 엔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이므로 운전대가 없어도 된다. 넓어진 내부 공간에 더 많은 사람과 물품을 태울 수 있다. 고태봉 본부장은 “결국 24시간 쉬지 않는, 차량 공간이 넓어진 자율주행 TaaS를 운영하려면 출퇴근 시간에 사람을 실어 나르는 정도로는 수익성을 맞추기 힘들다. 화물 운송은 물론이고 점심시간의 음식 배달, 오후 시간의 택배, 심야 시간의 배송까지 (TaaS의) 영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음식과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자율주행차에 탑승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로봇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길거리의 수많은 택배 기사와 오토바이를 탄 라이더들이 로봇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배달·배송 업체뿐 아니라 전통적인 물류 업체도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정우진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물품을 자율주행 트럭으로 이송한다고 해도, 마지막 단계(라스트 마일)까지 자동화되지 않으면 (인건비 절약 측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한다. 글로벌 물류 업체인 페덱스가 배송 로봇 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가까운 미래에 자율주행 트럭이 실제로 다니게 되는 경우, 라스트 마일만을 위해 그 트럭에 사람이 타게 되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덱스는 지난 2월 앞쪽 바퀴를 들어 올려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배송 로봇 ‘세임데이 봇’을 공개하기도 했다. 라스트 마일용 로봇이다.
로봇이 실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라스트 마일을 책임지기까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만만치 않다. 정우진 교수의 말이다. “실내에서 돌아다니는 로봇은 주변의 기둥이나 문, 벽 등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바닥도 비교적 평평해서 바퀴로도 (다니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실외에서는 훨씬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모양새의 주변 환경을 인식해야 한다. 로봇이 굴러 떨어지거나 충돌할 수 있는 위험지형도 많다. 일반적으로 실외 주행의 난이도가 (실내 주행보다) 더 높다.”
완성차 제조업체들도 자율주행 전기차와 TaaS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차량 제조’에서 TaaS로 업종을 전환하려 시도한다. 완성차 업체가 배송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다. 미국의 포드는 지난 5월 로봇 스타트업 ‘어질리티 로보틱스’와 손잡고 개발 중인 로봇 ‘디지트(Digit)’를 영상으로 공개했다. 자율주행차가 물건을 싣고 목적지 근처로 오면, 뒤쪽에 타고 있던 로봇이 두 손으로 택배 물품을 들고 두 발로 걸어 현관 앞으로 간다. 2020년 초 시범 운행을 시작한다. 도요타는 피자헛과, GM 자회사 크루즈는 미국 음식배달 플랫폼 도어대시와 협력해서 자율주행 배송을 시도하고 있다.
‘로봇세’ 토론할 시점이 오고 있다?
지금의 자동차 업체나 플랫폼 업체, 물류 업체들은 결국 ‘자율주행과 결합한 TaaS’를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미 방대한 이용자와 데이터를 보유한 우버 등 ‘차량 호출 업체(광대한 플랫폼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플랫폼 업체로 불리기도 한다)’가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영미권 우버,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시아 그랩, 인도 올라, 브라질 99(2018년 디디추싱에 인수) 등 전 세계 주요 차량 호출 업체들에 거액을 투자한 상태다. 이와 함께 로봇 업체들과도 제휴한다. 소프트뱅크는 자율주행 로봇 업체 ‘누로’와 GM 자회사 크루즈에 지분을 갖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대표적 로봇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한국 최대 배송업체인 쿠팡도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수조원을 투자받았다. 소프트뱅크는 도요타와 공동 출자해 자율주행차 서비스 회사인 ‘모네 테크놀로지스(MONET Technologies)’를 설립했다. 여기엔 혼다·스즈키 등 일본 주요 완성차 업체가 주주로 참여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가능해진다. 고태봉 본부장의 말이다. “만약 모네가 미국에 진출하면 우버, 중국에 진출하면 디디추싱,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면 그랩과 손잡을 수 있다. 이를테면 쿠팡 배송에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을 활용하는 형태도 상상할 수 있다. 이게 플랫폼의 힘이다.”
한국의 경우, 카카오모빌리티가 최대 플랫폼이지만, 기존 택시 사업자와 같이 가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로보틱스 팀을 꾸리고 웨어러블·서비스·마이크로 모빌리티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는데, 지도 및 주행 데이터를 가진 플랫폼 업체와의 협력은 활발히 진행되지 않는 형편이다. 고태봉 본부장은 “향후 자율주행 TaaS 시대에 한국 플랫폼의 주도권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해야 한다. 완성차와 플랫폼 업체가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자율주행차·자율주행 로봇 중심으로 전환하는 일도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자율주행과 TaaS의 결합은 로봇을 통한 라스트 마일의 자동화 및 무인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생산성과 효율성이 극적으로 상승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마련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제안했던 ‘로봇세’를 토론할 시점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자회사인 ‘웨이모’가 자율주행차에 돈을 받고 승객을 태우고 있다. 물론 자율주행이 곤란할 경우에 대비해서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 있기는 한다. 완전한 의미의 ‘로봇 택시’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잦은 개입 없이 웨이모의 택시가 피닉스 곳곳을 누비는 중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우버의 자율주행차가 시범 운행 중에 사망 사고를 일으켜 논란을 빚긴 했지만 자율주행 기술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우버는 2020년 테스트를 거쳐 2023년 ‘드론 배송’을 상용화할 계획인데, 이 역시 로봇의 한 형태다. 로봇 혁명이 바꿀 이동과 배송의 미래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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