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엔] 전광판만 13억원… 국회 본회의장에 쏟은 혈세
정보공개청구로 본회의장 시설 구입가 단독 입수
단말기, 전광판 등 의정 활동 지원 시설만 38억원
세계 최고 디지털 시스템에도 불구 의정 활동 수준은…
국민의 대표들이 모여 토론하고 법안을 최종 의결하는 국회 본회의장은 의회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성숙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기 일쑤다. 3개월이 넘는 장기 공전 끝에 열린 이번 본회의만 봐도 그렇다. 여야 의원 간 막말과 고성, 삿대질이 오갔고 대정부질문 중엔 3분의 2 이상이 자리를 비우는 구태도 반복됐다. 텅 빈 의석엔 수백 대의 단말기와 명패, 투표기 등 의정 활동용 기기들만 남겨졌다. 이쯤에서 세금을 내는 국민이라면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대체 저게 얼마짜리일까.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19년 1월 현재 국회 본회의장에 설치된 시설 및 기물의 구입 가격을 입수해 살펴보니 의자와 책상, 발언대, 전광판 등을 구입하는데 38억원 이상이 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엔 내구 연한을 6년 이상 넘긴 경우도 있지만 거액의 교체 비용이나 전체적인 의정 활동 활용도를 볼 때 세금 낭비라는 지적 또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세부적으로 보면 구입 단가 기준 최고가는 의장석 좌우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이다. 대당 약 6억8,000만원에 달한다. 품목별 총액으로는 의원석과 국무위원석, 의장단석에 설치된 신클라이언트(Thin Client) 단말기 342대 가격이 약 14억1,600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단말기 대당 가격은 419만원 정도다.
구입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은 의자와 책상으로 2005년 도입 후 15년째 사용 중이다. 구입가는 의석 1식(세트)당 95만원, 의장석은 326만원 정도다. 2015년 9,380만원을 들여 도입된 국회 상징 표시는 가장 최근 도입된 사례다. 이 밖에도 의장석 앞 발언대가 820만원, 그 위에 설치된 마이크 2대 가격은 715만원가량이었다. 의석마다 설치된 전 자명패가 107만원, 버튼식 투표기는 55만원이고 28대의 스피커 구입에는 8,915만원이 소요됐다.
장애인은 어떻게 금융업무를 보냐고?
현재 본회의장에서 의정 활동용으로 사용 중인 시설 및 기물의 상당수는 2005년 ‘디지털 국회본회의장’ 구축 때 처음 도입됐다. 당시 의석 단말기부터 전자명패, 단말기 매립이 가능한 책상까지 일괄 구입하는 데 25억원이 들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시스템 덕분에 의원들은 서류 보따리 대신 단말기를 통해 의안 정보를 검색하고 투표도 할 수 있어 회의 진행 속도가 크게 향상됐다. 회의 결과나 의원 발의가 모두 저장되고 유권자들의 의정 활동 직접 감시도 가능해 지면서 ‘일하는 국회’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스템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단말기 등 하드웨어의 내구 연한도 5년으로 비교적 짧다. 실제로 1기 시스템은 2010년을 지나면서 장애가 빈번해졌고 국회는 2013년 60억원을 들여 단말기와 중앙 서버, 전광판 등을 전면 교체했다. 현재 사용 중인 단말기 역시 이미 내구 연한을 지난해 넘겼다. 국회 입법정보화담당관실 관계자는 26일 “내구 연한을 넘기더라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을 때 교체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현재 사용중인 시스템에 문제가 없고 교체 계획 역시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디지털 시스템을 중단하지 않는 한 계속적인 거액의 교체 비용 발생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브렉시트 법안 표결에 관심이 쏠리면서 외신에 자주 등장하는 영국 하원 회의장에선 전광판이나 단말기 같은 디지털 기기를 거의 볼 수 없다. 지정석은커녕 의원들이 앉을 공간마저 부족하다. 그에 비하면 의원 각자가 지정석에 앉아 단말기를 통해 의안 정보를 찾아보는 우리 국회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을 갖췄다는 디지털 본회의장의 면모에 걸맞게 의정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참여연대의 국회 감시 전문 사이트 ‘열려라, 국회’에 따르면 25일 현재 국회에 접수된 의안 19,529건 중 68.89%가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주요 시설물의 기능
#1 국회 상징 표시 93,810,000원
국회 상징 표시는 한자 표기인 ‘國’에서 한글 ‘국’으로 바뀌면서 2015년 1월 교체됐다. 청동 재질로 지름 2.6m, 무게는 1톤에 달한다. 기존에 비해 무궁화의 크기가 더 커졌고 변색을 막기 위해 금박으로 감쌌다. 당시 국회보는 “전각체의 글자체로 국회의 품격과 신뢰를 강조하고”라고 밝혔다.
#2 전광판 678,798,000원2013년 아날로그 전광판을 대체했다. 기존 전광판보다 20배 밝고 LED 방식의 HD급 디지털 영상을 제공한다. 의원들이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도 볼 수 있다. 가로 5.15m, 세로 2.19m의 대형 화면이라 뒷자리에서는 잘 보이나 앞 좌석이나 국무위원석에서는 보기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다.
#3 씬클라이언트 단말기 4,193,370원본회의장에는 중앙서버에서 대부분의 업무를 실행하는 ‘씬클라이언트’ 단말기가 342대 설치돼 있다. 2005년 ‘디지털 국회본회의장’ 구축 당시 도입된 단말기의 노후에 따라 2013년 대체한 것이다. 비밀번호로 로그인하는 방식이므로 대리 투표를 막을 수 있다. 과거 단말기를 이용해 연예인 사진을 감상하는 의원들의 모습이 포착되면서 ‘25억원짜리 국회 PC방’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4 전자명패 1,073,830원검은색 삼각뿔 모양이던 기존 명패는 2005년 디지털 시스템 구축 당시 전자 명패로 교체됐다. 초소형 전광판 형태로 의원 성명을 표시하고 출결 상황도 연동된다.
#5 발언대 8,200,000원의장석 앞에 설치된 발언대는 좌우로 회전이 가능하다. 토론이나 연설 시엔 정면을 향하고, 대정부질문 때에는 국무위원 쪽으로 방향을 바꿔 사용한다. 2005년 설치됐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그래픽 강준구 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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