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족쇄·신체의 한계 넘어…신인류 시대 온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 맥스 테그마크 지음 / 백우진 옮김 / 동아시아 펴냄 / 2만6000원

  • 김슬기 기자
  • 입력 : 2017.12.08 15:45:45   수정 : 2017.12.08 17: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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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레이 커즈와일, 닉 보스트롬, 스티븐 호킹…. 이 책을 추천한 이름만 늘어놓아도 '스타워즈'를 방불케 한다.

심지어 "인공지능(AI)이 노동시장, 전쟁, 정치 체제에 미칠 영향을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폭넓게 펼쳐 보인다. 이 이슈를 더 잘 이해해야만 우리가 처한 다음 딜레마를 파악할 수 있다. 과학이 정치가 될 때, 과학에 대한 무지는 정치적인 재앙을 낳는다는 딜레마"라고 유발 하라리가 추천사를 썼다.
맥스 테그마크라는 이름과 AI가 만났을 때 얼마나 강력한 화학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 출신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BBC 등의 과학 다큐멘터리에 단골 출연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인 데다 2014년에는 AI가 도래할 미래를 준비하는 생명의 미래 연구소(FLI)를 공동 설립했다. 그런 저자가 책의 첫 장에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번 세기에 초지능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요'라고 답한 이들을 위해 그는 40쪽의 프롤로그를 썼다. 일종의 픽션이다. 비밀리에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인 오메가팀은 프로메테우스라는 초지능을 몰래 만들어낸다. 탄생 직후 용역 크라우드 소싱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한 시간에 9%의 수익률로. 처음 수십억 달러를 벌기 위해 이들이 택한 건 '겨울왕국' 풍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모든 영화의 원작과 리뷰를 1분 만에 분석한 뒤 만들어낸 영화로 이들은 사람을 홀리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를 만들어내 전 세계 모든 언어를 지원하도록 했다. 더 이상 TV쇼나 영화는 경쟁자가 아니다. 수익이 하루에 1억달러를 돌파한 뒤 돈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전 세계 기술 기업의 배후가 된다. 부작용이 없는 약, 인간 지능에 도달한 로봇, 혁명적인 에너지 기술 등이 탄생한다. 모두가 프로메테우스가 준 선물이다. 마지막 종착지는 권력. 미디어와 기술 기업으로 세계를 장악한 뒤 뉴스 채널을 만든다. 2년 만에 이들은 전 세계의 적대적 갈등을 중재하는 수준의 미디어와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교육혁명을 시작한다. 민주주의, 세금 감축, 정부의 사회적 서비스 감축, 군비 감축, 자유무역, 국경 개방,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기업이라는 7가지 슬로건을 내건 정당으로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전 세계 인구 대부분에게 '기본소득'도 도입된다. 프로메테우스를 만든 오메가팀은 지구상 최초로 단일한 권력을 완성했다. 수십억 년 동안 번성할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예'라고 답한 이들을 위해 저자는 다시 책을 시작한다. 픽션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실제로 거쳐야 하는 논의와 기술적 가능성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것이다. 빅뱅 이후 138억년의 역사를 거쳐 인류는 처음으로 라이프 3.0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생명에는 세 단계가 있다. 40억년 전 도달한 생물적 진화, 10만년 전 등장한 문화적 진화, 마지막으로 아마도 다음 세기 중에 도래할 기술적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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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한 장면. 영화는 리플리컨트라는 강화·복제인간이 일상화된 미래 사회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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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삶이 DNA에 의해 결정되고 생존과 복제만 가능한 생물의 시대가 라이프 1.0이다. 언어, 스포츠, 직업 능력 등을 익힐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설계자인 인류가 등장한 것이 라이프 2.0이라면 3.0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의 재설계가 가능한 시기다. 다시 말해 진화의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10배로 키를 늘리거나, 1000배로 뇌 용량을 늘리는 것도 가능해진다는 가설이다.

그는 머스크가 주최한 파티에서 늦은 밤까지 칵테일을 마시며 한 뜨거운 논쟁을 소개한다. 초지능의 미래를 여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 구글의 래리 페이지는 디지털 이상주의 입장에 섰고, 머스크는 AI가 불러올 파국을 염려했고, 그를 포함한 파티 참석자들은 의견이 갈려 논쟁했다. AI 전문가 중에도 물론 기술 회의론자가 있다. 바이두의 수석 과학자 앤드루 응은 초지능을 만드는 일은 너무 어려워 수백 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입장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기장에 입장한 선수들의 의견을 차근차근 설명한 뒤 AI의 안전성과 미래에 대한 논의야말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대화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초지능의 등장 시기에 대해 그는 '금세기' 안이라고 못 박는다. 그러면서도 SF 영화처럼 AI와의 전쟁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기계의 '악의'가 아니라 '능력'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목적과 어긋난 지능이 인터넷에 연결되면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 다만 초지능은 적어도 수십 년 뒤의 일이며, 초지능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도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그는 불안에 떠는 러다이트운동자들 목소리를 일축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AI가 다가오는 10년 동안 일자리, 법률, 무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써내려간 시나리오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음 1만년, 그리고 다음 수십억 년, 우주 속 생명의 궁극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전한다. 자신의 꿈이었던 태양계와 은하계 탐험을 넘어 그 이상을 상상하는 우주적인 스케일에 말 그대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프로메테우스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했지만, 이제 그의 능력은 인간을 뛰어넘었고 오메가팀은 그의 말을 완벽한 신탁으로 받아들였다.
즉 프로메테우스는 그들이 물어보는 모든 것에 대해 명석한 답변과 조언을 충실하게 제공했다."

프롤로그의 픽션에서 그는 AI와 인류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AI는 신탁을 내리는 신이 될 것인가, 인간의 도구가 될 것인가. 저자는 "AI 시대를 만들어나가는 우리는 생명의 미래의 수호자들"이라고 말한다. 인류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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