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분석심리학적 이해 : 꿈은 정신의 삶을 반영한다.

기획 김현정 헬스조선 편집장|2015/01/20 15:01


종종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모든 사람은 매일 밤 꿈을 꾼다. 우리는 꿈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꿈의 심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 아침에 기분 좋은 간밤의 꿈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하고, 심지어 복권을 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기분 나쁜 꿈을 꾼 상태로 잠에서 깨어났다면, 오늘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짐작하거나, 조심해야지 하고 스스로 경고한다. 혹은 기분 나쁜 꿈을 주변의 안 좋은 사건과 연관시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려 애쓴다. 이처럼 우리는 꿈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꿈의 심상을 의식의 삶에 반영하고 있다. 


심층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꿈의 심상이 갖는 영향력은 무의식적 정신에 의한 것이다.  흔히들 무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무의식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나 정신은 엄연히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의식적 정신활동은 의식과 마찬가지로 활동한다. 낮 시간에는 의식이, 밤 시간에는 무의식적 정신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적 정신은 생명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모든 정신활동의 기초가 되므로, 의식의 기저에서 의식과 더불어 항상 활동한다. 밤 시간은 의식의 활동이 중지됨으로써 배경에 있던 정신이 전면으로 드러남으로써 그의 현상이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꿈의 심상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의식적 정신에 영향을 받는 것에 해당한다.


무의식적 정신의 활동은 비단 꿈 뿐만은 아니다. 공상이나 환영 등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생겨난 심상들이며, 오히려 우리가 그것에 매료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꿈은 잠자는 동안 생산되므로 의식의 개입 없이 드러날 수 있는 무의식의 자발적 산물이다.

20세기에 이르러, 무의식적 정신 영역을 다룰 수 있게 됨으로써, 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이루어졌다. 심층심리학자들이 꿈에 관하여 다양한 해명을 해오고 있다. 정신분석학자들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은 꿈이 전날의 사건이나 기억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꿈의 장면과 전날의 사건 등을 연결하여 ‘내가 요즈음 이러저러 했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는구나’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꿈의 장면들을 살펴보면 전날의 것들과 연결하기 어려운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꿈 꾼 사람들이 모든 꿈을 반드시 전날의 사건이나 심적 상태와 연결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꾸면 그것은 오히려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태도는 꿈의 심상이 가진 영향력을 앞으로 있을 일들에 적용한 것이다. 무언가 안 좋은 느낌을 주는 꿈들을 과거형으로 이해함으로써 가능한 그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것이고, 좋은 예감의 꿈들을 미래형으로 이해하여 오히려 영향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 두 태도는 모두 무의식적 정신활동에 대한 의식의 반응에 관한 것이 되기도 한다.


꿈을 과거의 충격적 사건이나 성애적 욕망과 관련시켜 이해하려는 태도를 인과적 혹은 환원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꿈을 원인론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꿈의 심상들이 꽤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환원적 해석은 꿈을 이해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무의식적 정신활동은 궁극적으로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이 생겨나므로, 꿈의 형성에 대한 목적론적 관점이 필요하다.

S.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는 꿈이 무의식적 의도를 숨기기 위하여 형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래서 꿈은 소원충족적으로 은밀하게 욕망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꿈은 욕망을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정신의 고유한 의도를 가능한 자아의식에 알리기 위하여 형상화를 시도한다. 의식에게 알려지려면 어떤 식으로든 형상화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정서나 충동상태는 자아가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여러 번 반복해서 꾸는 꿈들은 반드시 자아의식이 알아차려야할 내용을 제시한다. 악몽 등으로 강한 정서적 반응을 하면서 꿈을 깨야하는 경우 자아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경고나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의식적 정신활동은 고유한 자신의 목적의미(Zweeksinn)를 갖고 있다. 무의식적 정신활동은 맹목적이고 지리멸렬한 것이 아니다. 자아의식의 태도에 대해 반응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총체적 인격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정신의 활동을 분석심리학자들은 ‘보상적 기능’이라 부른다. 이를 흔히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하거나, 혹은 프로이트 식으로 소원충족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악몽들은 소원충족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충격적이다. 자아의식은 낮 동안 외부 세계의 요구에 따른 활동을 하느라 자신의 본성적 욕구나 혹은 전체 정신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꿈은 자아의식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뿐 아니라, 자아의식에 보완 및 보충을 해야 하는 내용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현실의 반대이거나 소원충족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결국 무의식은 꿈의 심상을 통하여 의식의 태도를 교정하려 하고, 그래서 전체 정신의 목적에 부합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무의식적 정신은 인간성 속에 내재한 인간정신의 궁극 목적을 의식의 삶에서 실현하고, 개별 인간으로서의 인격의 성숙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종 사회적 역할에 지나치게 동화되어 자신의 개별적 인격의 가치를 상실할 때, 무의식은 내면의 자성적인 소리를 높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석연치 않은 꿈들, 악몽들은 모두 의식의 태도를 한번 쯤 되돌아보게 하는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꿈이야 말로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에 가장 부합한 내용을 다룬다.
 

정신분석가는 심층적 심리 분석 치료에서 피분석자의 꿈을 반드시 살펴보게 된다. 피분석자들이 가져오는 꿈에는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중요한 단서들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심리 치료를 받으러 오는 피분석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증상이나 삶의 어려움에 대하여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찾아와서 설명하곤 한다. 그러한 피분석자들의 설명에 정신분석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설득 당하기 쉽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차츰 피분석자들이 제시했던 문제나 원인이 달리 다루어져야 함을 확인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피분석자가 와서 자신의 소극적이고 위축된 삶의 원인은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있다고 호소하였다.

그는 당시에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었다; 이층 방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누군가 자신의 방을 향하여 아래층에서 계단으로 난폭하게 뛰어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너무도 무서워서 침대를 빠져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경계하는 공포의 상태에서 잠을 깨곤 하였던 것이다. 그는 꿈에서 자신의 방을 향해 돌진하는 그 존재가 도끼 같은 것을 들고 자신을 죽이러 올라오는 아버지일 것으로 믿고 있었다. 정신분석가는 그에게  꿈에서 방문을 열고 누가 올라오는지 확인하도록 청하였다. (이런 요구는 위축된 남성이 무섭지만 용기를 내어 문을 여는 행위를 통하여 적극적인 의식의 의지력을 갖게 하는데도 의의가 있다.)

어느 날 그 피분석자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꿈의 침입자가 방문 가까이 온 순간 방문을 열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너무도 무시무시한 모습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이 꿈을 통하여 피분석자가 보였던 소극적인 삶의 태도는 모두 소위 '모성-콤플렉스'에 기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많은 '모성-콤플렉스'를 가진 아들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이처럼 피분석자가 제공하는 정보와 실제적 심적 사실과는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꿈을 참고하지 않는다면 정신분석가는 피분석자의 호소나 고백과 같은 이야기에 의존하여 심리상태를 파악해야 하므로, 자신도 모르게 피분석자의 의식적 태도에 의해 유도된 내용으로 접근한다. 혹은 그에 따르지 않기 위해 일방적으로 정신분석가의 심층심리학적 가설에 기초한 심적 상태로 단정하여 끌어갈 수도 있다.

꿈을 적용하면 정신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에서 중재가 가능하다. 꿈은 현재의 심적 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궁극적으로 어떻게 의식적 정신이 나아가야 하는지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위의 꿈에서 보면 피분석자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생활하기보다는 이러저런 이유를 대며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았다. 무의식적 정신은 그런 자아에 대하여 잠이 들려면 엄청난 위협적인 힘으로 압력을 가하며 깨어나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의 무기력하고 심약한 자아는 무섭게 위협하는 무의식에 의해 주눅이 든 모습이거나, 위협적인 힘에 저항하지 않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피하고 있는 모습 둘 다를 의미한다. 이는 꿈을 통해서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꿈을 다루는 작업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차원의 것만은 아니다. 자아가 꿈의 심상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꿈을 이해하여 자아의식의 태도를 개선하게 됨으로써, 보다 성숙한 인격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심층적 꿈의 작업을 위하여, 그리고 상징을 이해하는 데에는 특별한 전문적 훈련이 필요하다.



▲ 이유경






이유경

철학박사
융학파 정신분석가 
분석심리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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