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내려오라" 악플 받는 차지연을 위한 변론

[사심 실드] <복면가왕> 5회 우승 '여전사 캣츠걸'이 걸어왔던 길

16.01.18 12:59최종업데이트16.08.01 17:01

▲ 감격에 겨워 우는 캣츠걸지난 17일 방송된 MBC <복면가왕>에서 '여전사 캣츠걸'이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가왕 자리를 유지했다. 김연우도, 거미도 해내지 못한 신기록이었다.ⓒ MBC


지난 17일 MBC <복면가왕>에서 '여전사 캣츠걸'이 5회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우도, 거미도 세우지 못한 기록이다. 많은 팬의 환호를 받으며 신기록을 세운 그녀는 방송 중 눈물을 쏟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그녀를 응원했던 필자도 같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여전사 캣츠걸은 '아마도' 뮤지컬 배우 차지연일 것이다. 사람들은 캣츠걸을 보며 더는 저 사람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미 차지연이라고 생각하며 보고 있다. 몇 승을 하며 더 가왕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에 관심이 쏠려있을 뿐다.

많이 대중화 됐고 지금도 대중화 과정에 있지만, 뮤지컬은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다. 소수의 마니아 위주로 소비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뮤지컬 무대에서 대스타라고 하더라도 대중적 인지도는 적은 경우가 많다.

차지연이라는 배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톱클래스이지만,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보컬은 아니다. <열린 음악회>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약간 알렸지만,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차지연 아세요?"라고 물어보면, 예스(YES)보다는 노(NO)라는 답변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35세라는, 뮤지션으로서는 뒤늦게 유명세를 치르게 된 그녀. 배우 차지연이 본업에서는 과연 어떤 매력을 뽐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넘버 몇 개를 소개하려 한다.

[하나] 뮤지컬 <서편제> '살다 보면'


차지연은 원래 판소리를 전공했다. 그녀의 외가는 대대로 명인을 배출한 국악인 집안이었다. 어렸을 적에 참 판소리가 싫어서 거부했다는 그녀. 서울예대를 중퇴하고 가수를 준비하다가 무산된 이후, 그녀는 2006년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다. 이후 그녀는 '운명처럼', 뮤지컬 <서편제>에 끌렸다고 말한 바 있다.

뮤지컬 <서편제>의 주인공 송화 역을 얘기할 때 항상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배우 중 하나가 차지연이다. 극을 닫으며 부르는 심청가도 일품이지만, 역시 차지연의 짙은 호소력과 애절함이 잘 드러나는 건 '살다 보면'이다. 한을 예술로 승화하는 우리네의 정서가 듬뿍 담겨 있다.

[둘]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더는 참지 않아'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아래 <마리앙>)는 참 못 만든 극이다(관련 기사 : '말이 안통하네트'에게 이 뮤지컬을 추천합니다). 극의 개연성, 캐릭터의 동기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설득력을 갖춘 게 없었다(거기에 역사 왜곡은 덤이었다). 하지만 <마리앙>의 회전무대와 더불어 수많은 넘버만큼은 명곡이었다.

차지연은 이 작품에서 윤공주와 함께 마그리드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바 있다. 후반부 들어 급격하게 캐릭터가 붕괴하지만, 어쨌든 마그리드는 <마리앙>을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쌍끌이하는 역이다. 그나마 차지연이라는 배우였기에 설득력이 모자람에도 캐릭터의 매력을 보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혁명을 선동하며 부르는 노래 '더는 참지 않아'는, 잘 부른 노래 한 곡만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불을 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셋]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잃어버린 얼굴'


역사적 인물 명성황후를 향한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나라를 좀먹은 악녀 '민비'라는 시선부터,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국모 '명성황후'까지. 서울예술단의 작품 <잃어버린 얼굴 1895>(아래 <잃얼>)는 주인공 명성황후를 억지로 미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민중사적 관점에서 돌만 던지지도 않는다(관련 기사 : '민비'와 '명성황후'의 간극, 잃어버린 야누스의 얼굴).

얼굴을 잃어버린 명성황후처럼, 그 양면을 모두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잃얼>의 주인공을 원 캐스트로 소화하며 흔들림 없는 연기와 노래를 보여줬다.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이 인물은,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처절하리만큼 광기에 휩싸인다. 야누스나 다름없는 두 얼굴을 차지연은 훌륭하게 소화한다. 특히 이 노래에서.

[넷] 뮤지컬 <레베카> '레베카'


옥주현의 댄버스가 귀환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 공백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차댄'이 잘 채워 넣었다.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호연 중인 뮤지컬 <레베카>에서 실질적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댄버스 부인을 맡았다.

댄버스 부인은 세상을 떠난 레베카 드 윈터를 추억하며 레베카가 남긴 것에 매달리는 여성이다. 뭇사람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댄버스의 집착과 광기를 차지연은 고유의 아우라로 무리없이 소화한다. 특히 이 작품의 킬링 넘버인 '레베카'는, 이 곡 한 곡을 라이브로 듣기 위해서라도 표 값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곡이다. 그녀가 부른 버전의 넘버가 공식 음원으로 공개되지 않아서 첨부할 수는 없지만, 대신 같은 작품의 다른 넘버 '영원한 생명'의 하이라이트 뮤직비디오를 보자. 그녀의 연기력은 이 짧은 영상에서도 빛을 발한다.

[다섯] 뮤지컬 <모차르트!> '황금별'


차지연이 소화했던 넘버 중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은, 뮤지컬 <모차르트!>의 황금별이다. 모차르트에게 이 노래를 부르며 용기를 심어주는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은 본래 이 작품에서 별 비중이 없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워낙 인기를 얻으면서 이후 시즌에서 비중이 조금 늘게 된다.

사실 황금별은 이전까지 배우 신영숙의 넘버였다. 신영숙이라는 배우에게 '황금별여사'라는 별명까지 붙여준 이 곡은 오래도록 신영숙을 대표하는 곡이었다. 그러나 2014 <모차르트!>에서 남작부인을 맡은 차지연은, 신영숙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무대에서 별처럼 빛났다. 역시 공식 음원이 공개되지 않아서, 콘서트에서 한 팬이 '직찍'한 유튜브 영상을 첨부한다.

차지연을 향한 악플에 대하여

이처럼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에서 증명되듯이, 뮤지컬 배우 차지연은 가왕의 자격이 충분한 보컬이다. 그러나 가왕 차지연을 향한 호불호는 엇갈리고 있다. 아니, 5:5로 엇갈렸다기보다는 압도적으로 비난하는 반응이 많다. 포털 사이트의 주요 댓글은 판정단과 청중평가단의 '귀의 수준'을 의심하며 '소리만 지른다', '지겹다', '퍼포먼스면 다냐' 등의 비난이 상위권에 있다.

스토리를 이끌어가야 하는 장르 특성상, 뮤지컬 배우들의 창법이나 곡 소화 방식에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고음 위주로 힘있게 노래하는 그녀가 소위 '장기 집권'을 하는 모습을 보며, 다양성이 무너지고 하이라이트에만 집중하게 된 <나는 가수다>의 과오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낼지는 <복면가왕> 제작진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배우 차지연이 이토록 대중에게 삿대질을 받을 이유는 없다. KCM(17일 <복면가왕>에서 차지연과 가왕 자리를 놓고 다퉜다가 떨어진 가수)도 차지연도 모두 훌륭한 보컬이었고, 최선을 다해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줬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대중의 취향은 다양하다. 리스너 100명이 있으면 100가지의 취향이 있을 수 있다. '여전사 캣츠걸'의 노래가 누구의 가슴은 울리겠지만, 누구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각자의 취향을 밝히며, 노래와 가수에 대해 평가하는 건 대중의 자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취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사람이, 캐러멜 마키아토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미각이 뛰어난 건 아닌 것처럼. 그저 취향의 차이를 수준의 차이로 매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 내려오기를... 아니 극복하기를...

지난 2015년 9월 1일,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 차지연이 명성황후 역을 맡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 2006년 <라이온킹>으로 데뷔한 이후, 그녀는 착실하게 자신의 실력을 쌓아 왔다. 그녀의 노래가 누군가의 취향에 맞지 않을지라도, 그녀가 뚝심 있게 걸어와 차지한 지금의 자리를 깎아내릴 수는 없다.ⓒ 곽우신


"하지만 뛰는 가슴 멈출 수는 없어. 왕자 성벽 넘어 세상 꿈꾸었네. 자 여길 떠나 저 성벽 넘어. 그 별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야 해. 험한 세상 너 사는 이유. 이 모든 걸 알고 싶다면, 너 혼자 여행 떠나 야만 해. 때로는 아픔도 감수해야 해. 사랑은 눈물 그것이 사랑. 황금별이 떨어질 때면, 세상을 향해서 여행을 떠나야 해. 저 높은 성벽을 넘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곳으로 저 세상을 향해서 날아봐. 날아올라." - 뮤지컬 <모차르트!> 제1막 No.18 '황금별' 중에서

배우 차지연이 그만 가왕에서 내려왔으면 하는 게 사적인 소망이다. 뮤지컬 <레베카>를 소화 중이고 다음 작품도 예정된 마당에, 여러 일을 병행하다가 건강에 무리가 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의미 있는 기록도 세웠는데, 좋아하는 배우가 굳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계속 나와서 누리꾼에게 비아냥을 듣는 건 가슴 아프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는, 별 중의 별인데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마음도 있다. 그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기를. 이 험한 대중의 비난을 뚫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뮤지컬 무대라는 성안에 있던 그녀는 아픔을 감수하고 성벽 넘어 세상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그녀는 프로이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가왕이라는 타이틀도, 연속 몇 회 우승이라는 기록도 그저 덤일 뿐이다. 그녀는 뮤지컬 팬들에게는 영원한 '차언니'로 계속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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