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는 날씨.. 자전거족의 피난처를 찾다

글자크기
광고

두바퀴 찬가 겨울 피난처 '로라방'

두바퀴 찬가<13> 겨울 피난처 ‘로라방’

한강이 텅 비었다. 강변도로를 가득 채웠던 자전거 물결이 흔적도 없다. 이따금 기모 타이즈 따위자전거용 방한용품으로 중무장한 동호인 무리가 말라붙은 시냇물처럼 가는 띠를 그릴 뿐이다. 밤에는 그마저 씨가 마른다. 예년보다 날씨가 온화하다지만 겨울은 겨울, 방한용품을 겹겹이 둘러도 영하의 한기가 무릎을 파고든다. 바야흐로 ‘시즌오프’의 계절이 온 것이다.

누구보다 서글픈 사람은 초보 자전거족. 페달 밟기에 재미를 붙이자마자 찾아온 추위가 야속하다. 자전거 열풍이 봄여름 로드바이크와 하이브리드, 픽시의 유행에서 시작된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겨울은 찬바람을 맞으며 도로를 달리기엔 너무 춥고, 눈이나 빙판길은 주행을 위험한 묘기로 만든다. 여름철 단련했던 몸이 ‘초기화’됐다며 울상을 짓는 사람이 흔하다.

●뼈와 살을 불태우는 ‘로라방’

그래서 로라방이 태어났다. 로라방은 자전거용 트레드밀(런닝머신)의 일종인 ‘롤러’를 설치해 실내에서 로드바이크를 타는 곳이다. 로드바이크 동호인에게는 봄날이 올 때까지 몸을 단련하는 실내 훈련장이자 겨울 피난처인 셈. 롤러가 놓인 자전거가게가 드물지 않았지만, 자전거 인구가 늘면서 요즘엔 헬스장처럼 롤러만 전문적으로 타는 로라방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일보

▲송파구에 위치한 자전거가게 스테이지원에서 동호인들이 롤러를 이용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롤러는 해외에선 ‘터보 트레이너’라고도 불리는데, 이름처럼 회전하는 원형막대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앞바퀴를 바닥에 고정하고 뒷바퀴만 롤러에 올리는 고정롤러와 모든 바퀴를 롤러에 올리는 평롤러가 있다. 평롤러는 실외에서 자전거를 타듯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다. 제품에 따라 뒷바퀴에 걸리는 저항의 강도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어 급경사를 오르는 훈련도 가능하다.

사실 롤러는 집에서도 탈 수 있다. 설치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고, 공간도 자전거 한대 만큼이면 충분하다. 로라방 회원비는 매달 5만~15만원 정도인데 롤러는 저렴한 제품의 경우 10만원 후반에도 구할 수 있으니, 롤러가 구르며 내는 진동과 소음, 타이어 가루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집에서 타는 편이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그럼에도 동호인들이 로라방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롤러는 혼자 타다 보면 흥미를 잃기 쉽기 때문. 예능 프로그램이나 자전거경주 영상을 틀어놓고 롤러를 타기도 하지만 전문 선수가 아닌 이상 금새 정신이 흩어진다. 지루함을 못 이겨 롤러를 중고로 내놓는 사람이 흔하다. 롤러 타기가 생각보다 힘든 점도 흥미를 떨어트린다. 실외에선 속도를 내는 만큼 맞바람이 불어 땀을 식히지만 롤러 위에선 그런 것이 없다. 몇 분만 타도 땀이 비처럼 흘러 바닥을 적신다. 2년째 집에서 롤러를 이용해온 동호인 최준엽(28)씨는 “페달 돌리기가 쉬운 만큼 몸이 빠르게 뜨거워진다”며 “달리기보다도 체력소모가 크다고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자전거 동호인 김미소씨가 롤러를 타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로라방에선 여럿이 함께 롤러를 타면서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진다. 혼자 타기도 하지만 보통 가게마다 단체 훈련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이용자끼리 자연스레 소모임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에어로빅 강습처럼 여럿이 페이스를 맞춰 훈련하는 곳도 있다. 올해 겨울부터 로라방에 다니기 시작한 김미소씨 역시 함께 실력을 높이는 점을 로라방의 매력으로 꼽았다. 김씨는 “아무래도 함께 타면 경쟁심이 생겨서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려고 로라방을 이용하기도 한다. 트레이너가 있는 가게에선 자전거 타는 자세부터 페달을 안정적으로 밟는 법, 페이스에 따라 기어비를 조절하는 법까지 다양한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심박계부터 페달 밟는 힘을 측정하는 파워미터, 세계의 동호인과 함께 가상현실 속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즈위프트’ 전용 롤러까지 개인이 구하기엔 비싼 장비를 갖춘 곳도 있다.

▲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즈위프트 동영상.

그렇다고 선수급 동호인만 로라방을 찾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 경력 3년차인 김경민(28)씨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로라방을 다녔다”면서도 “초보 이용자도 많아서 딱히 어떤 타입만 로라방을 이용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자전거 전용 슈즈인 클릿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겨우내 로라방에서 안전하게 적응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김미소씨 역시 올해 화천DMZ와 백두대간 그란폰도 대회에서 여자부 1위를 기록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재미로 타는 사람’이었고 한다. 아직도 두 달이나 남은 겨울, 자전거가 타고 싶어 못 참겠다면 로라방을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민호기자 Kimon87@hankookilbo.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