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광희 디자이너의 이름 앞에는 ‘영부인’이라는 단어가 꼭 붙어 있었다. ‘영부인들이 사랑한 디자이너’, ‘영부인들을 단골로 둔 디자이너’ 등의 문구는 그녀의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잘 말해주는 수식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그녀의 이름 앞에는 ‘나눔’, ‘희망’, ‘기쁨’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2009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지역에 망고 묘목을 배분한 이후 줄곧 아프리카에 ‘희망의 망고나무’를 심는 등의 나눔 활동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 이광희 디자이너는 2009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지역에 망고 묘목을 배분한 이후 줄곧 아프리카에 ‘희망의 망고나무’를 심는 등의 나눔 활동을 거듭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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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정식으로 외교통상부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승인을 받아 사단법인 희망의 망고나무의 대표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아프리카 남수단 국제 비정부기구(NGO) 등록도 승인받았다. “시작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월드비전 친선 대사로 활동하던 탤런트 김혜자 씨를 따라 아프리카 톤즈를 방문하면서 비참한 아프리카의 실정을 알게 됐죠. 굶주림과 가난, 질병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뭔가 도울 일은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가진 것을 털어 적선하는 것만으로는 그 심각한 상황을 타개할 어떤 방법도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현지 시장에서 망고나무 몇 그루로 아이 셋을 키웠다는 어느 홀어미의 이야기를 듣고 ‘망고나무’가 희망의 열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망고나무는 한 번 심으면 5년이 지난 후부터 100년 동안 1년에 두 차례씩 열매를 맺어요. 망고 열매는 영양분도 풍부하고 또 그 열매를 시장에 내다 팔면 먹고살기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망고나무 한 그루면 한 아이가 먹고 자고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하고요.”
망고나무 한 그루를 심는데 드는 비용은 단돈 15달러. 결국 그녀는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100그루의 망고 묘목을 심고 돌아왔다. 2009년 3월의 일이다. 그해 8월 망고 묘목 3000그루를 배분했고 9월에는 ‘희망의 망고나무 심어주기’ 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를 개최했다. 이후 3년여 동안 그녀는 3만여 그루에 달하는 망고나무를 심으며 아프리카 땅에 희망의 씨앗을 퍼뜨려 왔다. “저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겠죠. 좋은 취지에 공감하고 기꺼이 동참해 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 “나눔은 자신의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에요. 자신의 것은 나누고 또 그에 따라 자신도 얻는 것이 많은 게 바로 나눔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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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가져다준 즐거운 변화들
인터뷰를 하는 도중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남산공원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인데요, 제 친구예요.(웃음)” 이광희 디자이너에게 남산공원은 아주 특별한 장소다. 그녀의 부티크 사옥 반대쪽에 있는 남산공원은 그녀에게 사색의 장소이자 건강을 위한 운동 장소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남산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일과이기 때문이다.
“희망의 망고나무, 즉 희망고 활동을 통해 제 삶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그 변화 중 하나가 바로 남산공원 산책이에요. 원래 저는 운동에는 영 취미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희망고 활동을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그때부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 1시간씩 남산공원을 걷기 시작했죠.”
아프리카에 한 번 가려면 예방 주사도 많이 맞아야 하고 또 디자이너로서의 활동과 희망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 위해서는 건강과 체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장 바쁜 건 희망고 관련 프로젝트들이지만 희망고를 잘해내기 위해서는 제 본업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희망고 프로젝트를 하기 전보다 더 열심히 일에 몰두하곤 해요.”
변화는 또 있다.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몰라보게 활동적으로 변한 것이다. “가족들도 많이 놀라곤 해요. 어쩜 사람이 그렇게 많이 변했느냐고. (웃음)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는 일을 했지만 실제 제 생활은 극히 단순했어요.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소셜 라이프라는 게 전혀 없었죠. 제 부티크에 와서 아무리 비싼 옷을 사 준 고객이라고 하더라도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단 몇 만 원을 후원한 이들에게도 꼭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때로는 먼저 지인들에게 연락해 후원 의사를 묻기도 한다. “생활이 변하니까 일에 대한 태도도 좀 더 열정적으로 바뀌고 또 디자인도 변하더군요. 긍정의 기운이 담겨서인지 유난히 밝아졌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생활이 변하자 주변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는 좋은 일이 소문이 나자 기꺼이 좋은 뜻에 동참해 주는 이들도 늘어났다. 남산공원을 산책하며 친분을 쌓게 된 남산공원 청소부들부터 대기업 회장, 유명 셀러브리티에서 아티스트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희망고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2009년부터 해왔던 자선 패션쇼나 기금 마련 패션쇼는 물론이고 매년 한 차례씩 연 희망고 관련 바자에는 많은 이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 미쳤다. “지난 4월 말에도 바자를 열었어요. 이번 바자는 희망고 빌리지 조성을 위한 기금 마련 바자였죠.” 단순히 망고나무 묘목 심어 주기 사업에서 일보 전진한 희망고 빌리지(Himango Village) 프로젝트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자립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복합 교육 문화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희망고 빌리지에는 여성들에게 전문적인 기술 등을 가르치는 여성 전문 트레이닝 센터, 엄마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탁아소, 남성들을 위한 기술 교육이 펼쳐지는 문화센터, 어린이를 위한 희망고 학교 및 망고 묘목장과 마트·우물·화장실 등이 갖춰질 예정이다.
청소부부터 톱스타까지 모두가 함께한 축제
이번 바자에서는 희망고 빌리지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마련하는 행사를 가졌는데, 7000만 원에 상당하는 차량인 랜드크루저 구매 금액을 선뜻 후원해 준 김영대 대성 회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희망고 빌리지에 희망의 손길을 더했다. ‘빛의 화가’로 유명한 우제길 화가, 천경우 사진작가 등의 아티스트들도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통해 그녀와 뜻을 함께했다.
“이번 바자의 이름은 ‘희망고 마을 축제’였어요. 그저 남에게 베푸는 자선의 의미만 강조되는 바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해 더욱 즐거운 축제라는 의미에서죠.”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시민에서부터 톱스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자에 찾아와 나누는 기쁨을 만끽하고 돌아갔다.
나눔을 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그녀 역시도 ‘나눔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나 뜻만 있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얼마든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눔은 자신의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게 아니에요. 자신의 것은 나누고 또 그에 따라 자신도 얻는 것이 많은 게 바로 나눔이죠.”
그래서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더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일해야죠. 희망고 빌리지를 통해 더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립자족하고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부지런히 뛸 예정입니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