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 뇌에 좋은 이유, 명상효과

장래혁의 두뇌과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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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도시마다 산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토록 많은 산마다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이라고 한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동양 명상의 과학적, 의학적 연구는 심혈관계 기능과 호르몬 작용 등 생리현상의 변화에서부터 2000년대 들어서는 뇌의 기능적, 구조적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생활 속에서 명상의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원리가 바로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인 등산 속에 있다면 어떨까?

국립공원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기에 접어든 18일 휴일을 맞아 남설악 오색지구 주전골을 찾은 등산객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국립공원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기에 접어든 18일 휴일을 맞아 남설악 오색지구 주전골을 찾은 등산객들이 산행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신체는 이완되고 잡념은 줄어든다

먼저 산을 오를 때를 생각해보자. 대부분 경사가 있는 길을 걷는 만큼 몸의 중심이 앞으로 살짝 숙여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산길을 걷다 만나게 되는 돌과 나무부리 속에서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뇌를 가진 척수동물의 핵심기능이라는 균형감각을 지속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뇌는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 정보를 입력받고, 처리해서 출력하는 정보처리기관이라 볼 수 있는데, 오르막길을 걷는 움직임을 통해 뇌로 들어오고 나가는 정보의 대다수가 신체감각정보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머릿속 생각과 잡념이 줄어드는 간접효과도 생겨난다. 산길을 오르다 자연스럽게 잡념과 감정의 출렁거림이 줄어드는 느낌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체의 이완과 생각, 감정동요가 줄어드는 현상, 바로 명상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뇌의 준비모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셈이다. 결국 자신의 뇌 상태를 좋게 바꾸고자 하면 신체 상태를 먼저 바꾸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가 주는 사운드테라피 효과

산길을 걷다보면 뇌상태의 증진 효과를 주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사람은 보통 가청주파수라고 하는 20~2만 헤르츠를 들을 수 있는데, 특정 대역의 자극적인 소리를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심리적으로도 편향적인 상태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도심에서 들리는 소리 대부분이 편향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많아, 특정 대역을 자극하는 소리가 아닌 전체 대역에 폭넓게 걸쳐 있는 이른바 ‘백색사운드(white sound)’를 많이 듣는 것이 좋은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연의 소리다.

이런 소리는 자주 들을수록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뇌파(EEG)가 가라앉으면서 심신이 편안해지는 효과를 가져 온다. 바닷가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잠이 잘 오는 것도, 산을 오르며 들리는 산새소리와 나뭇가지에 바람이 스치는 자연의 소리들은 별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소리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뇌파가 거기에 맞춰지면서 동조현상이 일어나고 심신의 평온함을 가져온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는 외부로 나가는 의식을 멈추고, 자기 내면을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 좋다. 도심 속에서 잘 가져보지 못하는 자신과의 대화를 갖기에 좋은 환경이 뇌에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등산이 가져다주는 명상의 효과

어느덧 정상에 이르러 탁 트인 자연을 바라보면 성취감과 편안한 감정이 일어나고 때론 담대함, 평화로움의 감정도 생겨난다. 정상에 이르고 나면 ‘야호’ 소리만 내고 바로 내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주변 어디 조용한 자리에 앉아 단 5분이라도 조용히 눈을 감아 보는 것이 좋다. 뇌는 이미 명상(meditation)을 위한 준비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올라오는 동안 신체근육 곳곳이 자극되고 이완되면서 몸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점차 없어지면서 뇌파가 떨어지는 이른바 ‘이완된 집중상태’의 초기모드로 접어든 상태이다. 명상을 평소에 배우지 않았더라도 뇌가 그렇게 반응하도록 변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눈을 감고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명상의 효과를 맛볼 수 있다.

실제 명상 효과로 인한 뇌파상태의 변화에 대한 연구결과는 적지 않은데, 2004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저명 신경과학자 리처드 데이비슨 교수의 연구결과는 특히 주목을 받았다.

장기간 명상을 수행한 티벳고승 8명과 하루 한 시간씩 명상을 시작한 실험 대조군의 뇌파를 측정 결과 감마파의 크기와 뇌 영역 간 감마파의 동기화가 함께 증가하며 오랜 수련을 한 고승일수록 더 높은 크기의 감마파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한 티베트 승려들은 일반인과 비교하여 명상 전에도 이미 높은 감마파 활동을 보였기 때문에 명상이 뇌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결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뇌파를 조절하고 활용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등산을 하는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뇌파는 결국 나의 몸과 뇌가 만들어내는 활동이며, 그 움직임과 의식을 내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라는 명상은 자신과의 대화라고 했다. ‘멘붕’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시대, 항상 외부로 향하는 의식을 잠시 거두고 주말에 산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 소개

장래혁은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자 뇌교육잡지 ‘브레인’ 편집장이다. 이번 칼럼을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진 두뇌 활용 노하우를 정리해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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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자 2015.10.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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