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걱정 말고 나만의 버킷 리스트 작성하라

입력 : 2015.07.24 08:00

LIFE & CULTURE ▒ 소셜미디어로 풀어보는 인생만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이코노미조선 공동기획 ⑩
뜻대로 살기, 감정에 솔직하기, 일 덜하기, 도전하기 등

내 인생의 버킷을 채우고 비우자, 영화 ‘버킷 리스트’


	영화 ‘버킷 리스트’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 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영화 ‘버킷 리스트’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 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어제는 그렇게 잘 맞던 샷이 오늘은 엉망이고, 바로 전 홀까지 줄파를 잡더니 갑자기 트리플이라니. 에구, 이게 바로 인생이로구나. 오르락내리락 몇 번 하다 보면 18홀이 끝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어~어~ 하다 보면 마흔을 넘어 쉰 줄, 예순 줄로 접어든다.

그 사이 시대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공자님은 2500년 전 ‘사십이불혹, 오십이 어쩌고~ 저쩌고~(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나이 마흔은 그야말로 유혹의 시대이고, 나이 쉰을 넘어도 하늘을 알기는커녕 나 자신도 모른다. 더욱이 예순 줄에 들어서니 남의 말이 귀에 더 거슬리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이런 말이 유행이다. “당신은 60세에 어떤 모습이고 싶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까?”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한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100세 시대로 접어든 이제는 나이 육십의 내 모습을 묻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 남은 세월, 그러니까 ‘은퇴 후 30~4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평생을 자동차 밑에서 수리공으로 살아온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와 재벌 사업가인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은 우연히 중환자실에서 만난다. 카터의 어릴 적 꿈은 역사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가장(家長)으로서의 책임감과 흑인이란 이유로 포기하고 TV쇼를 보면서 위안을 삼으며 살았다. 반면 에드워드는 자수성가해 전용 비행기까지 갖게 됐지만 세 번의 결혼 실패로 딸에게조차 잊혀진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른바 성공한 만큼 외로움의 빈자리도 큰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돼 의기투합해서 적은 버킷 리스트를 들고 병원을 뛰쳐나간다.

그러고는 3개월 동안 스카이다이빙하기, 문신하기,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과 키스하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을 하면서 흥미진진한 나날을 보낸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해서, 혹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미리 하지 않은 사실에 후회하고 그것들이 너무나 쉽고 간단한 일이라는 데 또 한 번 절망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살면서 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내 뜻대로 살 걸, 내 감정에 더 솔직할 걸, 친구들 좀 챙길 걸, 일 좀 덜 할 걸, 도전하며 살 걸” 이 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본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를 골라낸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친구들도 챙기지 못하고 일만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더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후배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다. 큰 회사의 임원으로 50대 초반인 그는 해외출장을 다녀와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뇌졸중을 일으켰다. 운전기사가 빨리 발견, 병원으로 가서 처치를 받았지만 두 달 이상 혼수상태였다. 천만다행으로 깨어나서 재활치료를 받아 지금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후배가 어느 정도 병세가 호전돼 처음으로 가진 통화에서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죽었다가 깨어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를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가족, 건강, 일’이었다. 가족과 건강은 알겠는데 이 마당에 일이 왜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왈, “지금까지 너무 일, 일 하며 살았다”는 역설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애플 CFO 430억원 포기, ‘자유인’ 선택

영화 제목으로 더 유명세를 탄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는 원래 죽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숙어 ‘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됐다. 중세 때 교수형에 처하거나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걸어 놓고 발밑에 놓인 양동이(bucket)를 걷어찬 데서 나온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유대인수용소장 아민 괴트를 교수형에 처할 때 발밑의 나무로 된 받침대를 걷어차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날 것이다. 지금은 버킷(양동이) 하면 알루미늄으로 만든 들통이 떠오르지만 예전에는 버킷하면 우리네 우물의 두레박처럼 나무로 된 들통이었을 것이다.

버킷의 재질이야 어쨌든 이 대목에서 필자의 의문은 다음과 같다. 왜 이처럼 끔찍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단어를 사람들이 챙기려 하고 또 좋아하는 것일까? 아마도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2014년 3월 애플의 재무최고책임자(CFO) 피터 오펜하이머는 무려 430억원 규모의 주식을 포기하고 그 해 9월에 은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들 놀라워했지만 정작 피터가 내놓은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1996년에 애플에 입사해 2004년부터 만 10년째 CFO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51세로 아직 한창이지만 회사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고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앞으로는 회사와 일이 아닌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430억원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버킷 리스트와 맞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미친 짓 같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값어치가 충분히 있는 결심이었을 것이다. 일을 벗어나 그간 따지 못했던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딴 다음 자가용 비행기 하나 사서 가족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을 피터가 보고 싶다. 사실 이 정도면 피터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피터 팬’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구글의 CFO 파트리크 피셰트(52세) 역시 ‘아내와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라면서 2015년 3월 회사를 미련 없이 떠났다. 짐 로저스와 피터 린치 등 펀드매니저 중에도 억만장자가 된 다음 유유자적하며 지내겠다고 40~50대에 은퇴한 피터 팬들이 수두룩하다. 그럼 이렇게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만 자신의 원에 따라 직장이나 직업을 물러나면서 그간 못했던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아니다. 평범한 사람 누구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해 6월 EBS의 ‘장수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권식씨(당시 86세). 경기도 평택에 사는 평범한 농부인 그는 몇 년 전에는 50년 이상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 온 일기가 언론에 보도되고 책으로 발간되기도 한 분이다. 더 특이한 점은 환갑이 되던 해에 농사를 접고 땅도 거의 다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평생 일만 하다가 77세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실행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배운 서예가 늘어 이제 가르칠 정도가 됐고 동네 향교(鄕校)에서 하는 행사에는 제관(祭官)으로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집안 한 칸에 마련된 서재에는 온 벽이 책으로 가득하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땅을 파는 것을 반대했던 부인이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마음을 내려놓은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여든이 넘은 두 분 다 건강하다. 조용한 시골에서, 그것도 평생 농사지은 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데 부러울 게 뭐 있으며 스트레스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신권식씨를 한국의 피터 팬이라고 불러도 이의(異議)가 없을 것 같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보자.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보자.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3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한다. 이들 3가지 금이 모두 다 중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닐까? 늦었다 싶은 지금, 부족하다 싶은 바로 지금 버킷 리스트를 적어보자.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보자.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의 버킷, 나의 양동이 속으로 하나씩 던져 넣자.

이 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팁 하나. 어려운 것은 가급적 뒤로 미루고 바로 할 수 있는 손쉽고 가벼운 것으로, 그것도 대여섯 개 정도만 고르자. 그래야 쉬운 것, 가까운 것부터 하나씩 비워가는 재미와 성취감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 나이에 어쩌겠냐는 체념은 버리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은 꺼내지도 말자. 영화 속 이야기이기는 해도 6개월 시한부 인생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가?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 중 하나인 요기 베라는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니까!(It’s not over till it’s over!)” 그의 말처럼 설사 은퇴했다고 하더라도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retire)’란, 말 그대로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우는 것(re-tire)일 뿐이다. 9회 말을 지나 잠시 배트를 놓고 글러브를 벗었지만 다음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정식 리그가 아니라 동네 야구일 수도 있지만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골프에서의 성패 역시 18홀을 끝내고 장갑을 벗을 때까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살아 있고 거기다 뭔가를 적어 넣을 여백과 그 리스트를 실행할 용기 또한 충분할 것이다. 그래야 버리고 갈 것만 남은 홀가분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소설가 박경리 선생(1926~2008년)을 떠올려보자. 선생은 한국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아들을 먼저 보내는 큰 슬픔을 당했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누구보다도 불행했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 뒤에 숨지 않았다. 불행에 이은 고독과 병마를 <토지>와 같은 불후(不朽)의 작품들로 바꾸어 우리에게 남겼다. 말년에는 원주로 내려가 소박한 농부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돌아가기 얼마 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은퇴 걱정 말고 나만의 버킷 리스트 작성하라
최성환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 겸
은퇴연구소장
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이코노미 조선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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