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찾았다’ 보고받은 김용판
대선 이틀전 “증거없다 밝혀라”

등록 : 2013.07.25 19:58수정 : 2013.07.25 22:40

지난해 12월 14~16일 경찰에 무슨일이…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해 12월11일 민주당 의원 및 당직자들은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가 거주하는 서울 서초동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선거관리위원회 선거감시단, 경찰과 함께였다. 김씨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2박3일을 버텼다.

다음날인 12일 민주당은 김씨와 민병주 국정원 심리전단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고발했다. 수서서는 김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 등에 대한 디지털 증거분석을 해달라고 12월13일 서울경찰청에 의뢰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분석관 10여명은 14일 저녁 7시20분부터 증거 분석을 시작했다. 8시간 만인 15일 새벽 4시2분께 분석관들은 김씨의 노트북에서 삭제된 문서를 복구해 30여개의 아이디와 닉네임 등을 찾았다. 분석관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분석관들은 이어 김씨가 박근혜 후보에 대해 긍정적인 글을 올리고, 댓글 찬반 클릭을 한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김용판(55)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거짓 보고서와 수사결과 발표를 지시했다. 그는 15일 오전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증거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고, 중간 수사 결과 보도자료 공개를 대선 이틀 전인 16일 밤으로 정했다. 16일은 대선 후보들의 마지막 방송 토론이 있는 날이었다. 김 청장은 증거 분석이 끝나기도 전인 15일 저녁부터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에 관여한 혐의는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12월16일 새벽 1시께 분석관들은 통합진보당의 ‘북한 로켓 발사 지지 입장’에 대한 비난 게시글까지 발견했다. 그러나 선거 관련 여부가 문제되자 한 분석관은 “언론 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몇몇 분석관들은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 등이 드러나면 경찰이 “한방에 훅 갈 것”을 염려하기도 했다.

12월16일 저녁, 대선 후보들의 마지막 방송 토론이 있었다. 박근혜 후보는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후보가 선거에 이겨보려고 연약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문 후보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같은 시간대, 분석관들은 조작된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보고서를 완성했다. 대선 후보 토론회가 끝나고 1시간 뒤, ‘국정원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발표’라는 속보가 떴다. 이날 밤 11시께, 경찰은 김씨의 컴퓨터에서 선거에 개입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대선을 55시간 앞둔 때였다. 분석 과정에서 확인한 선거·정치 관련 출력물이 100여쪽이나 됐지만 이날 밤 모두 폐기됐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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