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빛이 있으라 - 11세때 윌슨대학 수학과 조교가 된 인도의 천재 딘샤 가디알리
글 - 다리우스 딘샤
=?>=?>우리의 육감 眼耳鼻舌身意중 빛과 색채에 해당되는 眼.성경에서 하느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할 때‘빛이 있으라’라는 말로 시작했다는 것은 그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빛은 파동이며, 현대물리학에 의하면 만물의 근저에는 파동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100여년 전에 벌써 빛과 색채의 중요성을 알고 사용했던 딘샤에 대해 소개한다.
일찌기 광선이 인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간파한 딘샤 P. 가디알리(Dinshah P. Ghadiali)는 스팩트로 크롬요법(Spectro Chrome Therapy)을 창안,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었다. 그는 1873년 인도 봄베이에서 출생하여 3세 때 불리아 메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8세 때 이미 고등 학교를 들어갔고 11세 때 윌슨 단과 대학의 수학과 과학 조교가 될만큼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또한 영어와 페르시아어, 종교에도 능통하였다. 결국 그는 16개 국어를 배웠는데 몇 가지는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1896년 그는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및 그외 저명한 과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X선과 방사능에 대한 강연을 하자 뉴욕 타임즈와 그외 여러 신문들이 그에 대해 다루었다. 인도로 돌아온 1897년은 그의 의학적 사고에 전환기를 가져온 해였다. 약을 써도 아무 소용없이 그의 신지학회 친구의 조카가 대장염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딘샤는 어윈 D. 바비트 박사의“빛과 색채의 원리”라는 책과 세스 판 코스트 박사의“의약품으로서의 청색과 적색 빛, 또는 빛과 그 광선들”을 읽고 크롬 테러피의 이론에 대해 자각하고 있었다. 친구의 조카가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가망은 비정통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딘샤는 바비트 박사의 테크닉에 따라 치료를 했다. 등불에서 나오는 빛을 남색 유리병에 통과시켜 환자에게 쬐였다. 또 같은 남색 병에 우유를 넣고 태양광을 쬐인 후 그 우유를 마시게 했다. 그러자 급박한 긴장감은 물러갔다. 하루 동안 100여회를 그렇게 했고 이튿날부터는 10회로 줄였다. 3일이 지난 후 환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 처음 시작이므로 그가 이 치료법에 스팩트로 크롬 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후 23년이 지나서였다. 1900년에는 인도 아지머에 ‘전자-의학 홀’을 설립, 기존의 정통적 의료 체계와 더불어 색채와 자기 요법, 전기 요법, 암시 요법 등도 행했으며 1901년 인도 수라트에 또 하나 의학홀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딘샤는 서혜 임파선종을 잘 낫게 하고 소위 불치병을 잘 다루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1909년 런던에서 금주법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애주가들에게 대용물을 제공하기 위해‘알콜없는 와인’이란 이름으로 스위스산 과일 쥬스를 팔기 시작했다. 1911년 미국으로 이민하여‘자동차 엔진 결함 탐지 장치’와‘위조 지폐를 막는 전자펜’을 개발하여 이들 판매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18년 미국 첨단 의학 협회에 가입, 1920년에는 스팩트로 크롬 요법에 대한 연구가 끝나 그 해 4월 첫강연을 행한다. 그래서 뉴욕에 스팩트로 크롬 연구소를 설립하여 스팩트로 크롬에 대한 강연과 클래스를 갖고 책을 쓰며, 색채를 발하는 기구 디자인 및 여러 가지 관련 부가물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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