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티벳) 불교 만다라 액자 <1> - 칼라차크라 (Kalachakra Mandala) 1

명상/요가/영성/예술 2011.09.21 13:18



◆ 만다라 설명

칼라차크라 만다라는 티베트 불교 만다라들 중 가장 잘 알려진 도상의 유형이다.

칼라차크라(KalaChakra)는 수 많은 만다라들 중 가장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우주의 이치와 원리의 집약도이기도 하며, 티베트 불교 사상의 정수가 담겨 있기 때문에 대중성과 예술적 선호도가 가장 높다.
 
상서로운 기운이 많이 발산된다는 믿음으로 티베트인들은 생활 공간에 만다라를 비치할 때 칼라차크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행자들은 관상(觀相) 명상을 할 때 사용하는 관상물로 칼라차크라를 많이 선호한다.

* 만다라 크기 : 22 x 22cm
* 액자 크기 : 38 x 38cm
* 인쇄 용지 : 두꺼운 크라프트지에 출력한 고품질 인쇄로 디테일과 색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 용도 : 만다라는 요가센터, 찻집, 심리 상담실, 병원 진료실 등의 공간에 명상적 분위기와 인테리어 효과를 더할 수 있는 좋은 예술 요소이다.



◆ 액자 디자인 : 만다라가 매트 여백이 있는 액자에 세팅된 모습 (액자 속 만다라는 예시)


 


앤틱 월낫 색감의 액자 프레임.

◆ 티베트 만다라 액자 더 자세히 보기 :  탄트라

[감동]800번의 오디션을 탈락한 배우.jpg

작성자꽃길만을 걸어가다|작성시간15.10.06|조회수646,614 목록 댓글 126

주주 아닌 동업자시대 온다, 10년 뒤 ‘와우’하고 알게 될 것

주주 아닌 동업자시대 온다, 10년 뒤 ‘와우’하고 알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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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알리바바그룹 마윈(馬雲·51) 회장은 2009년 창업 10주년 기념식에서 특별한 목표를 공개했다. 그는 알리바바를 최소 2101년까지, 즉 102년 이상 살아남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세기(1999년 창업)부터 22세기까지 3 세기에 걸쳐 역사를 남기겠다는 야심이다. 이후 알리바바그룹은 ‘최소 102년’이란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1> 알리바바 마윈
마윈 102년 구상 … “1999 ~ 2101년까지 3세기 살아남는 기업 만들 것”
단기수익 좇는 주주들 위해 경영성과 끌어올리지 않을 것
파트너십이 글로벌 스탠더드, 알리바바가 증명하겠다

 지난 2일 중국 항저우 집무실에서 만난 마윈 회장에게서 알리바바의 102년 구상을 들었다. 그는 “우리가 해낸다면, 다른 사람들이라고 못할 게 뭐 있겠나. 이게 바로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알리바바의 유산(legacy)”이라고 말했다.
 
 - 알리바바는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가.

 “알리바바의 가치에 대해 질문한 것인가…. 한마디로 소기업(small business), 인터넷 세대, 중국이다. 나는 알리바바를 전 세계 소기업을 위한 엔진으로 만들고 싶다. 사실 과거 20년 동안의 세계화로 성공한 건 대기업들이었다. 자원 많고 돈 많은 대기업들이 모든 걸 다 했다. 글로벌 무역도 그랬다. 하지만 앞으로 20년은 세계화가 작은 기업들을 돕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인터넷이 그 역할을 할 거고, 알리바바가 도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 세대와 함께할 것이다. 1980년대에 태어난 인터넷 세대가 지금은 13억 명 남짓이다. 20~30년 후엔 이 세대가 30억~40억 명으로 불어난다. 우리는 이들과 인류를 다음 단계로 성장시킬 기술 혁명을 함께 해내겠다.”

 - 중국서도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인다.

 “앞으로 20~30년 안에 중국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업이 많이 나올 거다. 하지만 지금 10~20%씩 성장하는 기업은 난 (잠재력을) 안 믿는다. 오래갈 수 없다. 그래서 알리바바 같은 기업이 중국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주주들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경영성과를 끌어올리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건강하게 성장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야 한다. 가진 것 없던 18명이 이런 큰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게 스타트업이라고 우리가 (중국에) 본보기로 보여줬듯이, 앞으로는 오래 살아남는 기업이라는 본보기를 보여주겠다.”

 - 중국 스타트업(신생기업)이 많다.

 “맞다.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세우는 것, 5년 정도 버티는 것은 쉽다. 진짜 어려운 것은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수십 년간 계속 혁신하고 창의적이어야 살아남는다. 한 번 툭 튀어 오르는 것 말고, 장기전(long term fighting)을 고민하는 기업이 더 늘어야 한다.”

 - 샤오미는 위협적이다.

 “사람들이 샤오미와 삼성을 많이 비교하는데, 난 삼성이 존경스럽다. 수십 년 동안 한순간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노키아가 한때 쓰러졌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가. 삼성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은 눈앞에 문이 있으면 문을 부수든가 벽을 부수든가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들이다. 마음먹으면 포기 안 한다. 중국? 우린 좀 다르다. 우린 잘 변한다. 그래서 우린 바꾸길 잘하는데, 난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미래는 주주 아닌 파트너십

 마윈 회장은 기업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주주(shareholders)보다 파트너십(동업)이 기업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알리바바의 파트너십 시스템을 이번 세기의 시스템으로 만들고 싶다”며 “이것은 기업의 발전 철학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 파트너십 시스템이란 게 뭔가.

 “200여 년 전 영국 산업혁명 당시엔 기업이라 하면 으레 공장을 가진 오너를 뜻했다. 공장주가 곧 기업이었다. 20세기엔 미국이 주도한 주주 시스템이 나왔다. 여기선 기업가치는 곧 주주가치를 뜻했다. 하지만 21세기엔 파트너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내 말을 안 믿는다. ‘파트너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말도 있지만, 다 모르는 소리다. 알리바바의 파트너십은 지금 아주 작은 씨앗을 뿌린 정도지만 10년, 20년 후엔 사람들이 ‘와우’하고 놀랄 거다. 마치 100년 전 주주 시스템을 접하고 오너 중심 문화에서 (기업이) 엄청나게 진보했다고 좋아했듯이 말이다. 이젠 주주 문화에서 파트너 문화로 도약할 때다.”

 알리바바그룹은 2010년 파트너(동업자)위원회를 만들었다. 단기 수익을 좇는 주주자본주의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파트너 시스템에 담았다. 창업자나 주주가 아닌 동업자들이 이끄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마 회장과 핵심 경영진 30명이 파트너다. 이들은 이사회의 대다수 이사를 지명할 권한을 가진다. 대주주보다 파트너의 영향력이 더 세질 수 있다. ‘1주 1표’ 원칙의 주주 시스템과 충돌하고, 구글·페이스북 등이 택한 차등의결권과도 달라 논란이 있다. 알리바바는 ‘5년 이상 알리바바를 다닌 우수한 리더십을 가진 인재들 중 회사의 사명을 이어갈 사람’으로 정의하고 매년 멤버를 추가하고 있다.

항저우=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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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시절 사장처럼 생각하면 진짜 사장이 된다”

2015년 08월호
증권업계 최장수 CEO… 8차례 연임 성공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
  증권업계는 타 업종에 비해 단기실적에 민감한 편이다. 그런 탓에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뀐다. 하지만 이런 살벌한 전장에서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CEO가 있다. 최근 여덟 번째 연임에 성공한 유상호(56) 한국투자증권 대표이다.
  지난 3월 말 한국투자증권은 여의도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유 대표의 재선임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유 대표는 ‘증권업계 최장수 CEO’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경영진 책임을 강화할 목적으로 이사와 감사위원의 임기를 1년으로 정했다.
  유 대표는 한국투자증권을 업계 최대 이익을 내는 증권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3년 연속으로 순이익 1위를 지켰다. 작년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전년에 비해 300% 가까이 순이익을 늘렸다.
  비결은 다각화된 수익구조이다. 보통 증권사들은 주식거래 수수료(브로커리지)가 이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유 대표는 브로커리지 비중을 40% 정도로 낮추고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AM)에서도 각각 30%가량의 수익을 내게끔 체질을 뜯어고쳤다. 그 덕분에 시황의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작년 말 한투증권 자카르타 대표사무소 개소식. 왼쪽부터 임경종 주 인도네시아 한국금융단 회장, 수지 메일리나 인도네시아 증권업협회장, 유상호 한투증권 사장, 조태영 주 인도네시아 한국 대사, 남경훈 한투증권 자카르타 사무소장. 한투증권 제공

증권업계 최장수 CEO가 됐는데 소감은
신뢰와 사랑을 보내주신 주주와 임직원, 그리고 고객들에게 감사드린다. 회사 발전과 고객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이 기여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한국투자증권은 우리나라 최고의 증권회사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고객을 최고로 모시면서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하겠다.
얼마나 경영실적이 좋았기에 8차례나 연임됐나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순이익 1위를 지켰다. 작년엔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놓쳤지만 전년 대비 300%가량 증가한 2천262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임기가 1년으로 짧지만 ‘내가 이 자리의 적임자가 아니거나 열정이 식었다고 판단되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겠다’고 다짐했다. 단기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회사의 수십 년 미래를 위해 초석을 쌓는 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론 마음을 비웠던 것이 연임의 비결이 됐다고 생각한다.
 
긴 불황에도 좋은 실적을 낸 비결은
수익원을 구조적으로 다변화시켰다. 보통 증권사는 주요 수익원이 대여섯 개다. 경쟁사들은 어떤 분야는 일등을 해도 다른 분야는 10등을 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대여섯 개의 수익원에서 1등 아니면 2~3등이다. 골고루 잘하기에 시황이 안 좋을 때에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직원들의 ‘헝그리 정신’도 큰 힘이 됐다. 우리 회사는 재벌이나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가 아닌 독립 계열사라서 비빌 언덕이 없다. 그래서 직원 각자가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고 정신무장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력감축을 안하고 신입사원도 매년 뽑는다던데
경쟁사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 회사는 군살 없는 조직체계를 구축했다. 2005년 동원증권과 합병 이후 지속적으로 조직 효율성을 제고한 결과다. 분산된 전력은 집중하고 문제점이 노출된 곳은 대안을 찾는 조직체계를 구축함으로 영업력 강화와 수익성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중장기적인 사업 목표를 설정하고 무리한 외형성장을 자제했다. 아울러 효율적으로 비용을 통제한 것도 주효했다. 금융업의 자산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황의 부침에 휘둘리지 않고 역량 있는 인재를 보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성과에 기반한 확실한 보상체계를 구축해 직원들의 업무의욕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40대에 ‘증권업계 최연소 CEO’로 취임했다던데
젊은 시절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들어가 사장 한 번 해보자’는 꿈을 가졌다. 유학 후 대우증권에 들어가 내가 사장이 될 때까지 몇 년 걸릴까 따져 봤더니 직급체계상 딱 30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날로 30년 계획을 짰다. 30년 후에 사장이 되려면 1년 뒤, 10년 뒤, 20년 뒤엔 뭘 해야 될지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대리나 과장 자리에서도 임원 수준으로 생각하자고도 다짐했다. ‘그릇이 큰 사람이다’ ‘재목이다’는 평가를 받고 실적까지 더해지면 그게 바로 내 평판이 된다. 미생(未生) 시절에도 사장처럼 생각하면 진짜 사장이 될 수 있다.
신년사에서 ‘소매영업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한 이유는
고객의 자산을 늘림으로써 회사의 수익도 살찌우는 정도(正道) 영업을 정착시켜야만 회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이 적시에 공급될 수 있도록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영업직원들이 고객 이익을 최우선시 하도록 내부평가 및 보상기준도 새롭게 변경했다. 이제껏 본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자산관리 영업이 조만간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역점사업이 있다면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에 힘쓰고 있다. 초저금리 금융환경을 감안할 때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금융당국의 정책이 지속되리라 본다. 완화된 자본규제를 감안해 리스크관리 최적화를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금융과 투자은행(IB)부문에서의 영업력 향상과 수익 극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전경. 연합DB

해외 진출 성과는 어떤가
현재 홍콩, 런던, 뉴욕, 싱가포르, 베트남, 북경 등 6곳에 현지법인을 냈다. 베트남 호치민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곳에는 대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중요한 해외 거점이지만 특히 2010년 말 진출한 베트남 현지법인에 거는 기대가 크다. 현지화 및 영업기반 확대에 주력한 결과 작년에 자력으로 흑자를 달성했고, 올해 초엔 증자를 통해 성장동력을 확충했다.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쳐 연내 현지 시장점유율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본다. 지난해 진출한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파트너 물색과 다각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할 작정이다.
초저금리 시대 투자전략을 추천한다면
초저금리 시대에다 급속한 고령화까지 겹친 상황이다. 따라서 투자자산을 은행과 보험권에만 묶어두지 말고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주목할 만한 상품으로는 해외펀드를 꼽을 수 있다. 아무래도 국내보다 해외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와 현금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월지급식 펀드 붐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일본에선 판매되는 펀드의 46% 정도가 월지급식 상품이다. 월지급식 해외펀드도 눈여겨 볼만하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어떻게 보나
미국의 금리인상이 악재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금리가 인상되면 그만큼 미국 경기가 좋아지기 때문에 반드시 금융시장에 악재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지난 몇 년간 구조개혁을 통해 금리인상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한 상황이다.
 
나름의 경영철학을 소개한다면
‘행복 경영’이다. 정말 좋은 회사는 출근할 때 설레고 퇴근할 때 마음이 가벼운 회사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상의 근무여건을 조성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고의 인재와 함께하고 싶다면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최고의 성과가 도출되지 않겠나? 이것이 바로 ‘선순환 경영’이 아닐까 싶다. 
 
한투를 어떤 회사로 키우고 싶은가
국내 1등은 확실히 다졌지만 세계적 IB들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신흥시장을 과감히 개척함으로써 30년 뒤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게 장기적 목표이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

박원순, 차기대권 지지율 1위…김무성 '맹추격'<갤럽>

朴대통령 국정지지율 33%…새누리당 39%·새정치연합 21%

(서울=연합뉴스) 류미나 기자 =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3개월 연속 선두자리를 지킨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지난 11~13일 전국의 성인 1천5명을 상대로 실시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박 시장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16%로, 가장 많았다. 

지난 6월과 7월 조사 당시의 17%보다는 1%포인트 하락했으나 3개월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킨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전달보다 2%포인트 오른 15%로, 박 시장에 근접하며 2위에 올랐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12%)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9%) ▲오세훈 전 서울시장(6%) ▲김문수 전 경기지사(4%) ▲이재명 성남시장(4%)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2%) 순으로 조사됐다. 

갤럽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주목받았던 박원순 시장이 선두를 지켰다"면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미국 방문 등으로 주목받았던 김무성 대표가 작년 8월 이후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며 박 시장에 바짝 다가섰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응답률은 전주와 같은 33%였으며, '잘못하고 있다'는 답변은 전체의 56%로 1%포인트 올랐다.

정당지지율은 새누리당이 39%로 전주보다 1%포인트 오른 반면 새정치연합은 21%로 1%포인트 하락해 격차가 다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은 4%를 기록했으며, 35%는 지지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human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5/08/14/0505000000AKR20150814042200001.HTML?template=2087

 

은퇴 걱정 말고 나만의 버킷 리스트 작성하라

입력 : 2015.07.24 08:00

LIFE & CULTURE ▒ 소셜미디어로 풀어보는 인생만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이코노미조선 공동기획 ⑩
뜻대로 살기, 감정에 솔직하기, 일 덜하기, 도전하기 등

내 인생의 버킷을 채우고 비우자, 영화 ‘버킷 리스트’


	영화 ‘버킷 리스트’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 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영화 ‘버킷 리스트’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 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골프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어제는 그렇게 잘 맞던 샷이 오늘은 엉망이고, 바로 전 홀까지 줄파를 잡더니 갑자기 트리플이라니. 에구, 이게 바로 인생이로구나. 오르락내리락 몇 번 하다 보면 18홀이 끝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어~어~ 하다 보면 마흔을 넘어 쉰 줄, 예순 줄로 접어든다.

그 사이 시대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공자님은 2500년 전 ‘사십이불혹, 오십이 어쩌고~ 저쩌고~(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나이 마흔은 그야말로 유혹의 시대이고, 나이 쉰을 넘어도 하늘을 알기는커녕 나 자신도 모른다. 더욱이 예순 줄에 들어서니 남의 말이 귀에 더 거슬리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이런 말이 유행이다. “당신은 60세에 어떤 모습이고 싶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까?” 나이 마흔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한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100세 시대로 접어든 이제는 나이 육십의 내 모습을 묻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 남은 세월, 그러니까 ‘은퇴 후 30~4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평생을 자동차 밑에서 수리공으로 살아온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와 재벌 사업가인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은 우연히 중환자실에서 만난다. 카터의 어릴 적 꿈은 역사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가장(家長)으로서의 책임감과 흑인이란 이유로 포기하고 TV쇼를 보면서 위안을 삼으며 살았다. 반면 에드워드는 자수성가해 전용 비행기까지 갖게 됐지만 세 번의 결혼 실패로 딸에게조차 잊혀진 사람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른바 성공한 만큼 외로움의 빈자리도 큰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우연히 만나 친구가 돼 의기투합해서 적은 버킷 리스트를 들고 병원을 뛰쳐나간다.

그러고는 3개월 동안 스카이다이빙하기, 문신하기,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과 키스하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을 하면서 흥미진진한 나날을 보낸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해서, 혹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미리 하지 않은 사실에 후회하고 그것들이 너무나 쉽고 간단한 일이라는 데 또 한 번 절망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살면서 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내 뜻대로 살 걸, 내 감정에 더 솔직할 걸, 친구들 좀 챙길 걸, 일 좀 덜 할 걸, 도전하며 살 걸” 이 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본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를 골라낸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친구들도 챙기지 못하고 일만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더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비슷한 말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후배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다. 큰 회사의 임원으로 50대 초반인 그는 해외출장을 다녀와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뇌졸중을 일으켰다. 운전기사가 빨리 발견, 병원으로 가서 처치를 받았지만 두 달 이상 혼수상태였다. 천만다행으로 깨어나서 재활치료를 받아 지금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후배가 어느 정도 병세가 호전돼 처음으로 가진 통화에서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죽었다가 깨어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를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가족, 건강, 일’이었다. 가족과 건강은 알겠는데 이 마당에 일이 왜 중요하냐고 물었더니 왈, “지금까지 너무 일, 일 하며 살았다”는 역설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애플 CFO 430억원 포기, ‘자유인’ 선택

영화 제목으로 더 유명세를 탄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는 원래 죽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숙어 ‘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됐다. 중세 때 교수형에 처하거나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걸어 놓고 발밑에 놓인 양동이(bucket)를 걷어찬 데서 나온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유대인수용소장 아민 괴트를 교수형에 처할 때 발밑의 나무로 된 받침대를 걷어차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날 것이다. 지금은 버킷(양동이) 하면 알루미늄으로 만든 들통이 떠오르지만 예전에는 버킷하면 우리네 우물의 두레박처럼 나무로 된 들통이었을 것이다.

버킷의 재질이야 어쨌든 이 대목에서 필자의 의문은 다음과 같다. 왜 이처럼 끔찍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단어를 사람들이 챙기려 하고 또 좋아하는 것일까? 아마도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2014년 3월 애플의 재무최고책임자(CFO) 피터 오펜하이머는 무려 430억원 규모의 주식을 포기하고 그 해 9월에 은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들 놀라워했지만 정작 피터가 내놓은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1996년에 애플에 입사해 2004년부터 만 10년째 CFO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51세로 아직 한창이지만 회사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고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앞으로는 회사와 일이 아닌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국 430억원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즉 버킷 리스트와 맞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이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미친 짓 같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값어치가 충분히 있는 결심이었을 것이다. 일을 벗어나 그간 따지 못했던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딴 다음 자가용 비행기 하나 사서 가족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을 피터가 보고 싶다. 사실 이 정도면 피터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피터 팬’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구글의 CFO 파트리크 피셰트(52세) 역시 ‘아내와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라면서 2015년 3월 회사를 미련 없이 떠났다. 짐 로저스와 피터 린치 등 펀드매니저 중에도 억만장자가 된 다음 유유자적하며 지내겠다고 40~50대에 은퇴한 피터 팬들이 수두룩하다. 그럼 이렇게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만 자신의 원에 따라 직장이나 직업을 물러나면서 그간 못했던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아니다. 평범한 사람 누구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해 6월 EBS의 ‘장수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권식씨(당시 86세). 경기도 평택에 사는 평범한 농부인 그는 몇 년 전에는 50년 이상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 온 일기가 언론에 보도되고 책으로 발간되기도 한 분이다. 더 특이한 점은 환갑이 되던 해에 농사를 접고 땅도 거의 다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평생 일만 하다가 77세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실행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배운 서예가 늘어 이제 가르칠 정도가 됐고 동네 향교(鄕校)에서 하는 행사에는 제관(祭官)으로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집안 한 칸에 마련된 서재에는 온 벽이 책으로 가득하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땅을 파는 것을 반대했던 부인이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마음을 내려놓은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 여든이 넘은 두 분 다 건강하다. 조용한 시골에서, 그것도 평생 농사지은 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데 부러울 게 뭐 있으며 스트레스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신권식씨를 한국의 피터 팬이라고 불러도 이의(異議)가 없을 것 같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보자.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보자.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3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한다. 이들 3가지 금이 모두 다 중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닐까? 늦었다 싶은 지금, 부족하다 싶은 바로 지금 버킷 리스트를 적어보자.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면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보자.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의 버킷, 나의 양동이 속으로 하나씩 던져 넣자.

이 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팁 하나. 어려운 것은 가급적 뒤로 미루고 바로 할 수 있는 손쉽고 가벼운 것으로, 그것도 대여섯 개 정도만 고르자. 그래야 쉬운 것, 가까운 것부터 하나씩 비워가는 재미와 성취감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 나이에 어쩌겠냐는 체념은 버리자.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은 꺼내지도 말자. 영화 속 이야기이기는 해도 6개월 시한부 인생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는가?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 중 하나인 요기 베라는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니까!(It’s not over till it’s over!)” 그의 말처럼 설사 은퇴했다고 하더라도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retire)’란, 말 그대로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우는 것(re-tire)일 뿐이다. 9회 말을 지나 잠시 배트를 놓고 글러브를 벗었지만 다음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정식 리그가 아니라 동네 야구일 수도 있지만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골프에서의 성패 역시 18홀을 끝내고 장갑을 벗을 때까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살아 있고 거기다 뭔가를 적어 넣을 여백과 그 리스트를 실행할 용기 또한 충분할 것이다. 그래야 버리고 갈 것만 남은 홀가분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소설가 박경리 선생(1926~2008년)을 떠올려보자. 선생은 한국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아들을 먼저 보내는 큰 슬픔을 당했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누구보다도 불행했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 뒤에 숨지 않았다. 불행에 이은 고독과 병마를 <토지>와 같은 불후(不朽)의 작품들로 바꾸어 우리에게 남겼다. 말년에는 원주로 내려가 소박한 농부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돌아가기 얼마 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은퇴 걱정 말고 나만의 버킷 리스트 작성하라
최성환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 겸
은퇴연구소장
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이코노미 조선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전기료 적게 내는 맞춤형 첨단주택 주택시장에 ‘메이드 바이 재팬’ 열풍

입력 : 2014.07.03 06:00

일본주택이 몰려온다

일본은 서구식 단독주택 시공 역사가 우리보다 길다. 우리보다 도시화와 베이비붐 세대 출현을 먼저 경험한 일본은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걱정해 고층아파트보다는 소형 맨션(저층 공동주택)이나 단독주택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했다. 여기에 지난 2011년 도호쿠(東北) 지방을 강타한 동일본대지진 이후 전기료가 오르면서 열효율이 높은 친환경주택 개발에 관련 기업들이 전력을 기울인 것도 기술력 확보에 도움이 됐다. 국내에 들어서고 있는 일본 주택들을 살펴봤다. 

올 초 국내 모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대형주택건설사 미사와홈 측 관계자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지난해 미사와홈이 개발한 솔라맥스(Solar Max) 시리즈를 한국에 들여오는 것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솔라맥스는 태양광으로 집안 내 전력을 100% 조달하는 친환경 주택이다. 미사와홈은 현재 목조주택용 솔라맥스 히라야(Hiraya)와 철골조주택용 솔라맥스 하이브리드(Hybrid) 두 가지를 판매 중이다. 기존 태양광 주택들이 시공업체와 발전설비업체 간 기술제휴가 원활하지 않아 에너지 효율이 높지 않았던 것과 달리, 미사와홈의 솔라맥스는 태양광 설비로 모은 전력이 집안 구석구석에 전달되도록 설계돼 있어 비싼 전기료에 부담을 느끼는 일본인들 사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미사와홈은 이 주택을 현재 자사 인터넷 사이트 ‘미사와 웹 다이렉트(MISAWA Web Direct)’에서 판매 중이다. 미사와홈은 솔라맥스를 통해 확보한 전기를 관할지역 전력회사에 되팔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용인 동백지구에 들어선 미사와홈 주택.
용인 동백지구에 들어선 미사와홈 주택.

일본 대형 주택업체 한국시장 ‘노크’

국내에서는 최근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 시장이 수년째 냉각기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반대로 단독주택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과거 단독주택이 50~60대의 전유물이었다면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수요층은 40대다. 특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40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단독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주택업체들이 주목하는 시장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일본주택업체가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사례는 지난 1997년 경기도 용인시 동백지구 내 세키스이하우스가 한 채만 지은 단독주택이 꼽힌다. 3.3㎡당 시공비(땅값+건축비)가 1000만원인 이 주택은 건축주가 직접 세키스이하우스에 설계, 시공을 의뢰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키스이하우스는 일본 대형주택 메이커로, 화학 분야에서 발군의 기술력을 보유한 세키스이화학의 계열사다. 철골주택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세키스이하우스는 용인 동백지구 단독주택 외, 현재 성남시 판교신도시 내 단독주택 3채를 추가로 공급했다.

또 다른 주택업체 미사와홈도 국내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일본 목조주택 1위 기업인 미사와홈은 자동차 회사 도요타그룹이 대주주로 있다. 지난 2010년 국내 부동산 개발업체 미코하우스와의 제휴를 통해 한국에 진출한 미사와홈이 지금까지 펼친 전략은 ‘선주문 후시공’ 방식이었다. ‘주문 시공방식’이다보니 미사와홈 등 일본 주택 메이커들이 선보인 주택들은 하나같이 시공비가 3.3㎡당 1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가령 미사와홈이 지난 2010년 한 채만 선보인 용인 동백지구 단독주택은 3.3㎡당 시공비가 1200만원이 넘는다. 이 집은 지붕 위에 설치한 집광판에서 전기를 생산하며, 집안 내 작은 연못과 다다미방과 같은 일본풍 주거양식을 집안 곳곳 넣어 국내 주택과 차별화를 꾀했다. 이 밖에도 미사와홈은 경기도 안성시, 하남시 등지에 각각 198㎡(60평), 181㎡(55평) 규모의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을 공급했다.

그러나 최근 단독주택 열풍에 힘입어 미사와홈은 적극적인 물량 공세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국내 주택개발업체 사이와홈을 통해 국내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정 이도기획 대표는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우리나라 단독주택 시장에서 일본 주택건설사들이 공략할 신축 시장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지 않지만 고성능 주택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만 충족시킨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단독주택도 아파트처럼 브랜드 문화가 생길 경우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은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사와홈이 경기도 안성에 지은 단독주택.
미사와홈이 경기도 안성에 지은 단독주택.

	일본 주택업체는 주택 시공시 창문을 많이 설치해 자연채광과 열효율을 높이고 있다.
일본 주택업체는 주택 시공시 창문을 많이 설치해 자연채광과 열효율을 높이고 있다.

	스미토모임업이 경기도 판교신도시에 지은 단독주택.
스미토모임업이 경기도 판교신도시에 지은 단독주택.

초스피드로 모듈형 주택 시공

또 다른 시공업체 타카시마주택은 아예 주거단지 개발에 나선 상태다. 현재 타카시마주택은 국내 주택 시공업체 D&D그룹과 손잡고 인천 영종도에 전용면적 165~198㎡(50~60평) 규모 단독주택 27가구를 오는 8월 분양할 계획이다. 이 밖에 타카시마주택은 영종도 주택과는 별도로 제주도 내 전용면적 148㎡(45평) 규모로 단독주택 27가구를 지을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일본 주택의 강점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시공 기술에 있어서 일본이 우리보다 크게 앞서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친환경 에너지를 난방용도로 활용하는 데 있어 일본 업체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8년 홋카이도 도야코(洞爺湖)에서 열린 세계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에게 세키스이하우스가 개발한 ‘탄소제로주택’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당시 세키스이하우스는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 전량을 자체 조달한다는 점을 집중 부각해 확실한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 

또 시공기술도 다양하다. 시공기술이 다양하다는 점은 그만큼 보유 설계 기술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국내에 지어지는 주택들은 상당수가 공업화(工業化)주택으로 불리는 ‘모듈형(주택의 벽, 기둥을 자유롭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형태)’이다. 일본 공업화주택은 정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공장에서 거의 모든 자재를 생산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이를 짜맞추는 일만 진행한다. 경우에 따라 5일 만에 실내 인테리어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집을 짓는다고 해도 터파기부터 완공까지 2개월이 넘지 않는다.

시공기술도 회사별로 특화돼 있어 미사와홈은 벽체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에서는 강력본드로 붙이는 ‘패널라이징 목구조주택’ 분야에서 일본 최고 기술을 자랑한다. 이 밖에도 미사와홈은 지난 1957년 제정된 일본 최대 디자인제도 ‘굿디자인’에서 업계 유일하게 1990년 이후 24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디자인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일본의 남극과학기지 쇼와(昭和)기지의 상당수 건물을 지은 기업답게 난방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반면 타카시마주택은 같은 목조주택을 지으면서도 벽체와 기둥, 기둥과 기둥을 금속으로 이어 구조체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에 강점이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태풍, 해일 등 기상이변이 주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구조체 내구성이 주택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 두 회사와 달리 세키스이하우스는 철골조로 집을 짓는 데 주력하고 있다.

내진(耐震)설계에 있어서도 일본 주택기술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다. 가령 타카시마주택의 주택 브랜드 ‘MJ우드’는 시공 전 토지 내력을 파악한 후 최적의 기초와 지반 공사를 하고난 후에야 비로소 구조 공사에 들어간다. 기초 부분과 토대 사이에 환기 통로를 만들어 그 사이 습기가 차는 것을 막는 것도 특징이다.

또 구조체마다 고강도 고무 내진 댐퍼(진동에너지를 흡수하는 장치)를 달아 땅이 흔들릴 때 집이 자연스럽게 좌우로 움직이도록 설계한다. 이 때문에 웬만한 충격의 지진이 강타해도 집이 송두리째 무너질 가능성이 낮다.

	1. 스미토모임업 쓰쿠바 연구소에 설치된 친환경주택 료온보하우스.  
2. 미사와홈의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 단독주택 2층 모습.
1. 스미토모임업 쓰쿠바 연구소에 설치된 친환경주택 료온보하우스. 2. 미사와홈의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 단독주택 2층 모습.

하자 부문 이견 보여 철수하기도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를 주택 설계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점도 최근 주거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진다. 현재 신축 주택의 에너지 절감률에 있어 일본은 평균 90%에 육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키스이하우스는 거의 모든 신축주택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관련 시스템 분야에서 일본 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사와홈도 캐치프레이즈 ‘나무를 심듯 집을 짓는다’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탄소제로주택을 짓고 있다. 김학서 D&D 대표는 “일본주택업체들은 시공에 쓰인 자재를 일일이 기록한 스펙북(Spec-book)을 입주 후 건축주에게 전달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설계 단계에서는 건축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되 일단 공사에 들어가면 건축주의 현장 방문을 최소화시켜 건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일본식 주택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최첨단 정보기술(IT)이 가미되면서 일본 주택 기술은 한층 진화하고 있다. 가령, 용인 동백지구 내 지어진 세키스이하우스는 대문, 외벽, 울타리 곳곳에 센서를 장착해 외부인 침입 시 주요 출입구와 창문에 자동으로 방범 셔터가 설치된다.

하지만 일본 주택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분야에 국내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자보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주택자재 업체 관계자는 “50평(165㎡) 이상 대형으로 집을 지으면서 관련 자재를 전량 일본에서 들여올 경우 규모만 컨테이너 20개 분량이며, 물류비용도 1억원 정도나 들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인테리어 자재의 경우 한국산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판교신도시 등지에 단독주택을 지은 일본주택 메이커 S사는 최근 합작 파트너인 한국 기업과 하자보수 부분에 이견을 보여 국내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임대 관리사업 진출하는 일본기업

레오팔레스21·다이와리빙 합작법인 설립

수익형 임대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1~2년 사이 일본 주택 관리업체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KT의 부동산 관련 자회사 KT에스테이트는 지난 2012년 말 임대주택 관리 규모 기준 5위에 해당하는 다이와리빙과 손잡고 임대주택 관리 전문회사 KD리빙을 설립했다. 지난 2012년 계열사인 프로퍼티매니지먼트(PM)회사 다이와리빙매니지먼트와 다이와리빙, 다이와리빙에스테이트가 통합돼 설립된 다이와리빙은 대형 주택건설사 다이와하우스 계열사다. KD리빙은 현재 분당선 한티역 부근에 들어선 도시형생활주택 50가구를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이 회사 서정욱 과장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역할을 정확하게 규정하는 등 건물 관리에서 일본 업체들이 가진 노하우가 상당하다”면서 “KT가 보유한 부동산을 도시형생활주택, 소형 오피스텔 등 임대주택 상품으로 개발하는 데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전문 관리회사인 우리관리도 지난 2012년 11월 일본 최대 임대주택 관리회사 레오팔레스21과 함께 합작회사 ‘우리레오PMC’를 세워 다수의 중소형 임대주택을 관리하고 있다.


	일본 단독주택 전문가 사와이홈 이창헌 본부장

일본 단독주택 전문가 사와이홈 이창헌 본부장

“태양광 전기로 집에서 전기차 충전해요”

“1996년 친구들과 일본으로 여행을 갔는데 숙소 부근에서 한창 집짓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숙소를 나선 오전에는 분명 벽체를 세우고 있었는데 시내를 둘러보고 돌아오니 새집이 눈 깜짝할 사이 들어서, 어느새 지붕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일본 공업화주택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창현 사이와홈 본부장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일본 주택 전문가다. 미코하우스 재직 시절 미사와홈의 용인 동백지구 단독주택을 국내에 선보인 것도 이 본부장이었다. 또 지난 2011년 코엑스에서 열린 건축박람회에서 전용면적 181㎡(55평)짜리 단독주택을 불과 이틀 만에 지어 업계 종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본부장은 일본 주택의 장점에 대해 높은 에너지 효율을 꼽았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앞선 기술이 적용됐다는 서울미래형주택의 열효율이 60%대에 불과한 반면, 일본 상위권 주택업체들이 지은 집은 평균 90%에 육박한다”면서 “설계 자체가 완벽하다보니 시공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자재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오는 8월 선보일 인천 영종도 ‘자연도가’는 일본 타카시마주택이 시공에 나서며, 설계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이 집 역시 최근 지어지는 일본 주택처럼 태양광에서 에너지를 조달한다. 쓰고 남은 전력은 전기차 충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설비도 갖출 예정이다. 아울러 다다미(일본 전통식 바닥재)방과 한국식 대청마루를 동시에 집어넣고, 일본 단독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닥저장고’도 설치할 계획이다.

/이코노미조선
 송창섭 기자

[다큐]수요기획_체인징 테크놀로지 '나를 바꿔라' (1) 치명적 딜레마, 작심삼일을 넘어라.

[Documentary後] 2008/05/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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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의 법칙, 황금률의 법칙, 업보의 법칙

법상 | 2014/07/13 16:41 | 삶과 명상 이야기 앱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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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의 법칙

얼마 전 <아바타>라는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했습니다. 저 또한 그 영화를 보았는데요, 제법 흥미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부분이 있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남자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가 에이와에게 기도합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주세요.”

여기서 에이와는 인디언들의 표현으로 한다면 어머니의 대지’, 혹은 근원적인 진리의 본성이고, 종교적으로는 신성이나 영성, 또 불교식으로 표현하다면 불성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기도를 듣고는 여주인공인 네이티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에이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오직 삶의 균형을 맞출 뿐이지.”

이 우주법계의 근원적인 진리의 에너지는 어느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주적인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고, 삶의 균형을 맞출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전쟁이 일어나거나 싸움이 일어났을 때, 혹은 사소한 축구경기를 놓고 보더라도, 과연 기도 잘하는 팀이 이길까요, 아니면 많이 연습한 팀이 이길까요? 당연히 연습 많이 한 팀이 이길 겁니다. 또 그게 맞지요. 기도 잘한다고 이기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시험을 보는 학생들 중에 시험에 붙게 해 달라고 기도 잘 하는 사람이 합격을 하겠어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합격을 하겠어요?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한 쪽일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나 하나님은 기도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를 보고 무조건 나를 도와주는 분들이 아닙니다. 내 편 네 편을 나눠서 무조건 내편을 도와주는 분들이 아닙니다. ‘진리진리의 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지도 않고 열심히 운동하지도 않았는데, 기도만 무조건 열심히 했더니 성공하고 월드컵에서 승리하게 해줬다고 한다면 이 신이야말로 얼마나 불공편한 신입니까?

이 우주의 본질적인 에너지는 누구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진리 또는 우주의 본성에는 편이 없습니다. 편은 커녕 진리는 그 어떤 것도 둘로 나누어 편들거나 차별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네 종교와 내 종교, 네 나라와 내 나라, 선과 악을 나누지 않습니다. 편을 나눠놓고 내 편을, 선의 편을, 혹은 우리나라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예로부터 본래부터 선악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 바탕에서는 서로 나뉘거나 구분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우주법계의 근원 에너지는 선과 악으로 나눠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불교만이 무조건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진리가 아니라거나 혹은 우리나라만이 옳고 다른 나라는 다 틀리다거나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우주법계는 항상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흐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또 돈을 빌려갔는데 의도적으로 안 갚고, 승진 리스트에서도 누락을 시킵니다. 그러면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이 둘 사이의 에너지가 어떻습니까? 평등하거나 균형을 이루고 있나요? 이 둘 사이의 에너지 균형은 이미 깨진 것입니다. 상사는 괴롭히면서 힘을 쏟아내어 속이 좀 후련해지겠지만, 욕설과 괴롭힘을 당한 부하직원은 아주 억울하고 답답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둘의 에너지 균형을 깨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에너지 불균형의 상태에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거나 그 두 사람이 헤어졌다고 칩시다. 헤어지고 이번 생에 만나지 못했어요. 그럼 어떨까요? 둘 사이는 이미 에너지 균형이 깨졌습니다. 그럼 다음 생에 만날까요, 안 만날까요? 당연히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만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우주법계는 이 둘 사이의 에너지 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다시 만나게 해줍니다. 그 만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로 이 우주법계 진리의 법칙성입니다.

그럼, 다음번에 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어떻게 만나겠어요? 반대 입장에서 만납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이 되고, 부하직원이 상사가 되어 거꾸로 똑같은 괴롭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이 둘 사이의 에너지 균형이 이루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단순히 이 우주법계는 항상 에너지 균형을 맞출 뿐입니다.

 

복수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우리가 ()’이라고 하는 것, ‘업보(業報)’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업을 지으면 그 악업에 대한 과보를 받습니다. 그 과보를 받아야지만 에너지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했다, 그 사람이 내 돈을 훔쳐갔다, 나를 괴롭혔다고 하면 내가 직접 가서 그 사람을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에너지 균형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원한을 갚아야지 후련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똑같은 방식으로 괴롭힘으로써 내가 굳이 에너지 균형을 맞추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몫입니다. 내가 마음을 어지럽혀 가며 균형을 맞추려 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우주법계에서, 진리의 세계에서 알아서 다 해 줄 것입니다.

내가 일부러 찾아가서 복수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요. 인과응보를 주관하고, 균형의 법칙을 주관하는 쪽은 언제나 우주법계입니다. 그것을 우주법계에서 하도록 우리는 그저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면 화와 증오, 미움과 원망을 가지고 복수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말 뿐입니다. 그 원망과 미움의 에너지는 정당한 균형을 맞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또 다른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법계에서, 진리의 세계에 내맡기게 되면, 우주는 아무런 분별심이나 복수심, 증오와 원망이 없는 텅 빈 자리에서 다만 자연스럽게 모든 삶의 균형을 맞출 뿐입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불균형이 붙지도 않고, 모든 존재에게 완전히 평등하며 동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균형의 법칙, 즉 인과응보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주법계에 그 모든 것을 내맡긴 채,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움과 증오로 오염된 나의 마음을 청정히 정화시키고 동시에 상대방을 용서 해 주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참회하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 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수행자가 균형이 깨진 상황을 다루는 방식이며, 오염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누군가가 미워 마음에 원망과 증오가 생겼다면 그 원망과 증오의 마음은 누구의 것일까요? 그것은 증오하는 대상의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내 마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을 미워하면 다치는 것은 상대방 쪽이 아니라 내 마음인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증오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증오로 인한 상처를 받게 될 뿐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사실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미워할 때 사실 미워하는 그 마음은 내 안에서 싹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상대방에게 원한을 품는 것은 나 자신에게 원한을 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이 우주법계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은 곧 결국 내가 나 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복수하려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그것은 우주법계의 몫으로 넘겨버리고, 나는 오직 용서하고 참회하면 그뿐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하게 되었을 때 사실은 상대방이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참회를 통해 내 마음이 맑게 정화되고 비워져야지만 앞으로의 내 삶도 평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된 원수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쏜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부모는 복수를 결심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을 죽인 원수를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보니 그 아이는 소년소녀 가장이였어요. 부모도 없고, 동생을 돌보면서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집이 가난해 먹을 것도 없이 굶고 있고 그나마 조금 있는 먹을 것도 자신은 안 먹고 동생에게 먹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불쌍하더랍니다. 그래서 누구라는 얘기도 없이 오히려 먹을 것을 사다 주고, 돈도 몇 푼을 쥐어주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다시 찾아갔는데, 가서 보니 또 불쌍해서 또 한 번 도움을 주고 왔습니다. 그 일이 반복되자 정이 들고 인연이 되어 점점 더 친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식을 죽인 원수 같은 놈인데, 그 아이에게 오히려 나도 어차피 자식이 없으니까, 네가 내 자식이 되어줄 수 있겠니?”라고 했답니다. 그 아이들를 양자로 삼아 돌보면서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은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원한을 계속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망쳤을 겁니다. 그 아이들도 괴로웠겠지만, 결국 자기 자신 또한 평생토록 그 원한과 증오의 마음을 안고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렸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다큐를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였고, 그 살인범을 향한 무시무시한 증오심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병을 앓고 쓰려졌습니다. 마음에 증오심과 복수심이 불타고 있다보니 그 마음의 증오심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뒤덮어 자신의 몸이 아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 병들이 합병증으로 한꺼번에 오면서 더 이상 회생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처럼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면 그 복수심을 갚기도 전에 내가 먼저 병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병으로 쓰러져 가던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신창원이라는 저 사람도 얼마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과연 저렇게 되었을까? 지금껏 얼마나 끔찍한 환경 속에서 자라고 생활했을까? 이런 짓을 저지를 정도로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

오히려 저럴 수밖에 없던 연쇄살인범 또한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 아내와 딸을 죽인 살인범을 마음에서 완전히 용서해 주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함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분이 가지고 있던 몸의 온갖 질병들이 다 녹아내리고 회복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개운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나쁜 원수라고 할지라도 그를 미워하고 원한심을 일으키면 그 마음은 내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 마음과 몸이 먼저 다치고 병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증오를 품고 있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내 안에서 어떤 어둡고 탁한 에너지의 형태로 작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단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원수라고 할지라도 내 손으로 단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주법계의 몫입니다. 내가 나서서 행하지 않더라도 우주가 알아서 조화롭게 균형을 맞춰줄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원한심을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보냄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주법계는 항상 모든 존재 사이의 균형을 맞춰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 사이에는 항상 균형이 맞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괴롭히고 헐뜯는 마음을 내보내면, 이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괴롭히고 헐뜯을 일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의식의 상태를 이 세상은 언제나 고스란히 내 삶으로 투영시키는 것입니다. 미워하면 미움 받을 일이 생겨나고, 증오하면 나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감싸주고 고마워한다면, 주변에서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고마워하며 나를 감싸주는 따뜻한 인연들을 자꾸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이 우주의 법칙은 언제나 내보낸 것이 곧 끌어당겨 진다는 균형의 법칙에 의해 운행됩니다.

언제나 우주는 내가 내보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가 내보내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고 바로 그것을 균형에 맞게 다시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내보낸 것이 곧 끌어당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에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 물질과 정신세계에 아울러 적용이 됩니다. 내가 어떤 말, 어떤 생각, 어떤 행동을 내보냈느냐에 따라 인생을 살면서 타인으로부터 어떤 말을 많이 듣고,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며, 타인이 내게 와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입니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 어떤 말을 하느냐,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창조되어지고 있습니다. 신구의 삼업이야말로 나의 삶을 창조하는 세 가지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신구의 삼업 가운데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매일매일 내보내고 있는가? 긍정적인 말을 주로 많이 하는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부정적인 말이 나오니, 얼마 전 TV다큐 <>이라고 방영되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요즘 학생들이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욕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여중생 4명이 대화하는 것을 몰래 CCTV20여분 동안 촬영을 했는데, 거의 모든 말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날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요즘은 특별히 악의를 품고 있지 않더라도 습관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세상에 욕을 내보내고 있단 말이죠. 그럼 뭐가 들어오겠습니까? 막 욕을 내보내고 있는데, 아주 거친 말을 내보내고 있는데, 사랑스런 말이 들어오겠어요? 내가 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내가 타인에게 행한 말이, 곧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누군가로부터 듣게 될 말이란 사실을 분명히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우주법계에 있는 모든 것은 에너지 파동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 한 마디에 독특한 에너지 파동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강력한 힘을 지닌 파동입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1cm³ 속에 담겨 있는 파동의 힘이 1094erg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우주의 모든 물질에너지의 총합보다 억만의 억만의 억만의 억만의 억만 배 보다 많다고 합니다. 생각도 파동이고, 말 한마디도 파동이며, 물질적 정신적인 일체 모든 것이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 하나, 말 한마디가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에너지 파동으로 우주 끝까지 퍼져나갔다가 다시 내게로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내보낸 것이 끌어당겨 진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끌어당겨 질 때는 엄청난 힘을 동반한 채 내 앞의 현실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욕을 하는 것이겠지요. 욕을 하면 그 욕에 담긴 어둡고 탁한 파장이 머지않아 나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내보내는 것이 곧 나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 이 두 가지는 결코 다른 말이 아닙니다.

 

주는 것 = 받는 것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보내는 것엔 관심이 없고 들어오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돈 좀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남들에게 사랑받을까, 어떻게 하면 아내가 나한테 좀 더 잘할까, 우리 자식이 성적을 더 잘 받아올까, 어떻게 하면 남들이 나에게 잘할까 하는 나에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만 관심이 있단 말입니다.

내가 내보내는 것이 곧 들어오는 것이라는 그 이치를 모르다 보니 이처럼 내보내는 것이 아닌 들어오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이유가 내보내는 것은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남들에게 보시하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단 말입니다. 사실은 주는 것은 것은 곧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내가 남들에게 물질적으로 나누어 준다라는 것은 내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다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닙니다. 동일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보내는 것, 자비를 나누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 이웃에게 기부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손해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어오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앞서 말씀 드린 이 우주법계의 인과응보의 법칙, 평등의 법칙, 내보낸 대로 받는다는 법칙, 뿌린 대로 거둔다는 법칙, 우주법계의 에너지 균형의 법칙을 바탕으로 어떤 업을 지을 것이냐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뭐가 들어오는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입니다. ()에 따라 보()가 뒤따르는데 업은 짓지 않고 과보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유행한 것이 바로 시크릿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서는 항상 끌어당김의 법칙을 얘기합니다. 이는 우주법계의 평등성의 일면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그것 또한 진리의 일부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내보내는 것이 곧 끌어당겨진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내보내는 것에 중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것에 중심을 둔 표현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에 사람들이 더 혹한단 말입니다. 내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들어오는 것에 관심이 있으니까,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부와 명예와 권력과 건강과 그 밖의 모든 것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끌어당길 수 있을까요? 내보내야만 끌어당겨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보내느냐에 따라서 끌어당겨지는 것이 결정됩니다. 핵심은 끌어당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내보낼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런데 시크릿에서는 내보내는 것보다 끌어당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구미에 더 와 닿는 것입니다. 내보내고 나누고 베풀고 보시하라는 말 보다는, 그 결과인 부자가 될 수 있다는데 초점을 맞춰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끌어당기는 데에만 중점을 두었을 때와 내보내는 것에만 중점을 두었을 때 어떤 차이가 생길까요?

끌어당기는 데에만 중점을 두었을 때를 가정해 봅시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고 싶단 말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마음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고 만족하면서 남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베풀어야 끌어당겨지니까요. 그런데 끌어당겨 지는데만 관심이 있게 되면, 이것을 알고 마음속에서는 내가 먼저 베풀어야 끌어당겨지는 것이구나하면서 계산적인 마음으로 베풀게 됩니다. 끌어당겨질 것을 염두에 두고 내보낸다 말이에요. ‘, 내가 부자가 되려면 베풀어야지하는 계산이 깔린 순수하지 않는 마음으로 베풀게 된단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어떻습니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라. 상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하라고 말합니다.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순수하게 보시하라고 합니다. 내보낼 때는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고 내보내면 안 됩니다. 마음에 계산이 깔리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주법계의 근원적인 에너지, 근원적이 힘이 붙지가 않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에는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아니라 내보냄의 법칙을 말합니다. 무엇을 내가 세상에 내보낼 것이냐, 무엇을 베풀 것이냐, 어떤 업을 지을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가 이것을 내보내면 저것이 끌어당겨지겠지 하는 계산이 깔린, 결과 지향적인 베풂이 아닌 그저 순수한 내보냄, 순수한 보시와 나눔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끌어당김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목적과 결과를 중시하는 말이며, 미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무엇을 내보낼지를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내보냄의 법칙은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이지만, 끌어당김은 그 결과 미래에 받게 될 미래의 문제인 것입니다. 미래와 결과에 치중하게 되면 그 순수성의 의심받게 되고, 그런 마음에는 우주법계의 무한한 지혜와 자비의 힘이 붙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주를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일체유심조와 업보의 법칙

이상에서 설명한 끌어당김의 법칙과 앞서 아바타에서 얘기했던 삶의 균형이라는 것은 모두 불교의 업() 사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 업인과보의 법칙 즉, 업보라는 사상입니다.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표현합니다. 일체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경전에서는 우리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능숙한 화가와도 같아서 이 세상이라는 도화지위에 마음먹은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의 사상인데, 이 바탕이 바로 인과응보의 법칙, 업보의 법칙인 것입니다.

업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인간이 세상으로 내보내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우리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라는 세 가지 형태로 행위를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하였습니다.

몸으로 남을 도와주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업(身業)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말로써 욕을 할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말이라는 구업(口業)으로써 내보내는 것입니다. 또 의업(意業)은 생각을 내보낸다는 말입니다. 보통 선업을 지어라, 선업을 쌓아라 하는 것이 무엇을 내보낼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업보(業報)의 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얘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업을 지을 것이냐’, 즉 무엇을 내보낼 것인가는 내 문제입니다. 내 자유 의지의 문제입니다. 반면 업에 따른 결과는 우주법계가 관할하고 관장하는 문제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 즉 무엇으로 받을 것이냐에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행동을 할 것이냐, 무슨 업을 지을 것이냐, 무엇을 내보낼 것이냐가 지혜를 공부하는 수행자들이 중점으로 실천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불교는 항상 나를 중심으로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이 순간, 현실에서 우주법계의 법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돼 있는 게 바로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불교에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는 여섯 가지 감각을 육근(六根)이라고 합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해서 눈귀코혀몸뜻이라는 감각기관으로 세상과 접촉하는 겁니다. 그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각각 대상으로 여기는 바깥에 있는 경계는 육경(六境)이라고 하며, 색성향미촉법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업보(業報)라는 것은 바로 육근과 육경에 대한 법칙을 의미합니다.

, 업보에서 업()이라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짓는 것이고, ()라는 것은 세상이 내가 어떤 업을 짓느냐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업보의 법칙에 따른다면 결과인 보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장할 부분이 아닙니다. ()는 이 세상이, 이 우주법계가 나에게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죽음도 행복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아무리 선업을 지금 당장 쌓는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너무나도 큰 악업을 많이 지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악업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선업을 짓고 착하게 살고 다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쁜 일이 생길 수는 있습니다. 과거에 내가 지어왔던 과보를 받는 건 받는 문제이고, 내가 새롭게 짓는 건 별도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수행을 잘하는 참 존경할만한 수행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정말 열심히 수행하는데,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깁니다.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수행을 하면 뭐해? 저렇게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기는데…….”

이것은 우주법계의 이치를 모르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한 생만 산 것이 아니라 수억 겁을 이어오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업을 지었습니다. 그것을 받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일 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행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쁜 일이 생기는 이유는 과거의 업을 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또한 크게 본다면 좋은 소식입니다.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생애를 나고 죽고 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삽니다. 그 중 어느 생은 30생을 살다 죽었고, 또 어느 생은 90세까지 살았으며, 또 어느 생은 1살도 안 되어 죽은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살도 안 되어 죽은 사람이 그 다음 생에는 90세까지 살 수도 있습니다. , 몇 살을 사느냐를 가지고 과연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생사가 둘이 아닌 자리에서 본다면 빨리 죽든 늦게 죽든 그것은 별 차이가 되지 못합니다. 천상세계에서는 인간계의 1,600년이 그곳의 하루라고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100년을 살다왔든, 10년을 살다왔든 천상세계에서 본다면 그저 잠깐 다녀온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말 그대로 오십보 백보일 뿐이지요.

전생에 누군가를 죽인 죄로 어느 한 생은 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업을 받아야 할 업보가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사람은 40, 50세 되어 결혼해 자식 낳고 성공하며 잘 살다가 갑자기 죽는 것 보다 차라리 너댓 살까지 살고, 혹은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 빨리 죽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한 생 과보를 받고 나면 어차피 다음 생에 새롭게 태어나 80년이고 100년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렇게 빨리 죽은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부모님 또한 자식을 빨리 보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업보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빨리 죽었다는 그 사실 하나가 결정론적인 괴로움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생사의 관점에 얽매여 사는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것이 전부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생사를 넘어선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한 생 빨리 업보를 받고 온 것일 뿐이지요.

그래서 천상의 신들의 대화는 이런 식입니다.

지난 생 누구를 죽인 업보 받으러 다음 생에는 지구에 잠시 다녀오는게 낫지 않겠어?’

맞아, 어차피 한 번 받을건데, 이번 생에 빨리 다녀오는것이 좋겠어. 어디로 갈까? 어차피 잠깐 다녀올건데, 아프리카에 다녀오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하는 조건이면 금상첨화일텐데. 그래야 부모님 마음 고생도 안 시켜드리지. 아니야, 어차피 한 번 내려갈거 한국에 가서 철수와 영희 두 분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태어났다가 오는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그 두 분은 나에게 진 빚도 있고, 그 두 분은 각각 지난 생에 영국과 미국에서 차로 아이를 치여 죽게 했잖아. 그 아이의 부모님들이 무척이나 괴로워했지. 어차피 그 분들도 그 과보 받으셔야 할텐데 한 번 여쭈어 봐야겠다. 인연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니 좋아하실거야

이처럼 천상의 존재들은 가볍게 대화를 나눕니다. 생사를 관조해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상태에서는 생사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살생이라는 업 또한 그다지 심각할 것은 없습니다. 죄의식과 두려움에서 놓여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다시 환생을 해 인간계로 내려온다면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심각해지고, 괴로워하겠지만 말입니다.

이와 같이 근원에서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도 좋다거나 나쁘다고 해석하거나 판단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다만 나에게 주어진 정확한 인과응보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지, 또한 내가 깨달아가고, 내가 업장소멸을 해 나가기 위한 정확히 필요한 자기다운 삶을 살고 있을 뿐이지, 좋거나 나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은 언제나 중립입니다. 삶에 대해 이리저리 시비를 붙이고 따지려 드는 것은 언제나 삶 쪽이 아니라 우리 쪽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시비만 붙이지 않는다면 중립적인 삶은 언제나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를 돕고 있는 바로 그 고맙고 감사한 순간에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짜증내고 화내며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며 살고 있을 수는 있지요. 그것도 내가 선택한 것일 뿐, 그렇게 원망하며 삶을 비관하는 그 순간에조차 사실 이 우주법계는 우리를 한결같이 자비로써 돕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이 우주법계는 우리가 정확히 그 업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도록 업보를 보내줍니다. 우주법계는 항상 자비와 사랑의 관점에서 우리를 돕는 방향으로 과보를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말을 우주법계가 어떤 전지전능한 신이거나, 의도를 가진 존재라서 작위적으로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것을 잘못 해석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우주법계의 이치는 자연스럽게 의도 한 바도 없고, 의도할 주체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흐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수행을 열심히 하고 뭔가 정진을 열심히 할 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이는 우주법계에서 이 사람이 지금은 수행력이 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구나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 업보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보내주는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이 훗날 수행도 안 하고,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겪게 될 때 그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더욱 이겨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법계에서는 수행력이 있고, 주변에 지지해 줄 사람도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좋은 상황에 정확히 과보를 받게 해 줌으로써 도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더 깊은 차원의 일깨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여지는 것처럼, ‘수행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꾸 나쁜 일만 일어날 수가 있지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데바닷다라고 하는 반역자가 있었고, 부처님 당시에 아라한과를 증득한 비구니 스님은 먼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었고, 큰스님들의 일화를 보더라도 역경에 처하거나, 심지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거나, 살생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최악처럼 보이는 순간 조차 더 깊은 차원에서 본다면 무한한 자비의 순간일 수 있습니다.

 

업을 지음과 동시에 받는다

이상에서처럼 업을 짓게 되면 그것을 언젠가는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좀 특수한 경우에는, 아니 본질적인 경우에는 우리가 내보냄과 동시에 받게 됩니다. 즉 업을 지음과 동시에 보를 받게 됩니다. 시간이라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망한 생각만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그 시간이라는 허상에 걸리지 않음으로써 업보의 동시성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큰스님이나 수행력이 깊은 수행자라면 마음을 일으킴과 동시에 곧바로 현실이 되곤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이 오랜 세월 후에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도반스님이 군에 군승(軍僧)으로 왔는데, 장병들 먹을 것을 사주고 싶어도 초코파이 조차 사 줄 돈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월급을 받아서 조금씩 사주곤 했는데, 어느 날 옛 도반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선방은 가난해서 대중공양 오는 곳이 없으니 우리 선방에 대중공양 좀 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스님이 없는 돈 쪼개가며 선방의 스님들께 대중공양으로 맛있게 올려 드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그나마 남은 월급으로 스님들께 대중공양을 해 드리고 올라오는데, 올라오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전에 알게 된 신도님인데, 문득 스님 생각이 났다면서 스님이 장병들한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주시고 하는데, 제가 뭐 좀 도와드릴게 없을까요?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좀 보내드리고 싶어요하더랍니다.

무언가를 베푼다고 했을 때 빠를 경우는 이렇습니다. 베풂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다시 들어올 것이 결정됩니다. 이 우주법계와 일치를 이루고 있는 사람일수록, 집착과 번뇌와 욕망과 아상이 적은 사람일수록 베풂과 동시에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처럼 사실은 마음을 냄과 동시에 현실은 이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왜 시간이 걸릴까요? 사실 이 우주법계의 근원에는 시간이라는 게 없어요. 그런데 왜 시간이 걸리는가 하면, 우리 스스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뭔가 마음을 내고 나서 ,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과 판단이, 시간이라는 허망한 관념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양자물리학에서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간은 없다. 원인 즉 결과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원인을, 씨앗을 뿌리고 나면 나중에 결과를 가져온다고 알고 있잖아요?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차원에서는 원인 속에 결과가 100% 담겨 있습니다. 법계와 일치를 이루는 상황에서는 씨앗을 심음과 동시에 열매가 맺힌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아직 법계와 일치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시간의 관념 속에 묶여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주법계는 내가 믿는 대로 보내주는 겁니다. 시간이 걸린다고 믿으니까 시간이 걸리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우주법계의 원칙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믿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와 같이 내보내는 것이 곧바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시간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일수록, 즉 깨달음을 얻은 사람일수록 내보냄과 동시에 받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됩니까? 무엇을 고민해야 합니까? 무엇을 받을 것이냐, 내가 얼마만큼 부자가 될 것이냐, 내가 얼마만큼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냐, 내가 얼마만큼 행복해질 것이냐 등에는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받을 것이냐가 아니고, 무엇을 끌어당길 것이냐가 아닙니다. 무엇을 내보낼 것인가, 이 세상에 내가 무엇을 내보낼 것인가, 죽을 때까지 이 세상을 얼마만큼 내가 밝히고 떠날 수 있는가, 내가 내보내는 것으로 인해서 세상이 얼마만큼 밝아졌는가, 내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내보냄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해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사실 어두운 파장을 내보내면, 그 사람만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를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주법계는 너와 나라는 경계가 없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A라는 사람이 나한테 도움도 안 될 것 같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무시하고 욕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것은 우주법계를 무시하고 법계를 욕하는 겁니다. 부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결국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심지어 바보 천치라고 하더라도 부처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단 사원이 사장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주법계에서는 내보내는 것이 들어올 뿐이지, 높다 낮다라는 차별이 없습니다. 다만 내보내는 것이 바로 들어올 뿐입니다.

 

부자를 원했는데 가난이 오는 이유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내보냈는가 하고 사유해 보십시오. 지난 일주일동안 무엇을 내보내고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보통 사람들은 자식에게 성적 좀 잘 받아오지, 성적이 이게 뭐냐?”라고 합니다. 좋은 성적 좀 받아오라고 막 닦달을 합니다. 이것은 바로 내가 자식을 향해서 나쁜 성적에 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돌아오겠어요? 당연히 나쁜 성적에 대한 에너지가 더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쁜 성적 받아 온 자식을 보면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그렇게 좋은 성적에 집착할수록 사실은 부모님의 마음은 나쁜 성적에 더욱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나쁜 성적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다는 것 자체가 바로 나쁜 성적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만약 좋은 성적에 마음을 모았다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식에게 좋은 성적을 주문하면 할수록, 나쁜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 받을수록 사실은 마음 속에서 나쁜 성적을 내보내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나쁜 성적을 내보내니 당연히 내보낸 것이 끌어당겨진다는 이치에 따라 또 다시 나쁜 성적을 받아 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식에게 좋은 성적을 집착해서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부모일수록 자식은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공부를 더욱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그 마음이 자식의 마음에 단번에 가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마음을 내보내니, 곧바로 자식은 부모님에게 받은 것을 고스란히 공부 안 하고 나쁜 성적 받는 것으로 되돌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다이어트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 생각이 크면 클수록 살은 더 안 빠집니다. ‘몸무게를 빼야 된다는 집착이 크면 클수록 몸무게는 절대 못 뺍니다.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곧 나는 뚱뚱하다라는 마음의 집착과 에너지를 더욱 부풀리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뚱뚱하다는 마음을 내보내니 들어오는 것도 뚱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부자가 되고 싶지만, 마음속에 나는 너무 가난하다, 내 연봉은 너무 적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하다라는 에너지를 내보내니까, 가난을 보내주는 겁니다.

똑같이 연봉 3,000만 원을 받아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이고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은 같지만 ,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풍요로운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하면서 만족하고 나누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에게는 우주법계가 알아서 더 많은 경제적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게 될 것입니다. 반면 내 연봉은 적다, 가난하다, 더 벌고 싶다라는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은 어떨까요? ‘적다는 에너지를 계속 내뿜으니까 그만큼 밖에 보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식 자체가 그 수준까지 가 있질 못하니까 큰돈을 보내줄래야 보내줄 수가 없습니다. 모두 한 생각입니다. 한 생각!

말 그대로 부자가 되는 것, 가난하게 되는 것 모두가 사실은 한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이, 생각이, 내면이 가난하니까 가난한 현실이 나타나는 것이고, 마음이 풍요롭고, 내면이 부유하면 현실세계도 머지않아 풍요와 부유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한생각을 어떻게 다스릴 것이냐 하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인 것입니다. 그러니 부자나, 풍요로움 또한 마음공부를 잘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공부를 정말 잘 한다면, 애써 부자를 원하지도 않겠지요. 부자가 되건, 가난해지건, 외부적인 경제적 상황과는 상관 없이 마음이 온통 풍요로와져서 언제 어디서나 풍요로와 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써 부자를 원할 것도 없이 그저 존재 자체로써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자도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도 1차원적인 차원에서는 좋겠지만, 보다 깊은 차원으로 들어간다면 애써서 작위적으로 인위적으로 애써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쥐고 하는 것을 통해서 명예로와지고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만들지 않더라도, 내보내고 끌어당기고 하지 않더라도 그저 지금 있는 그대로 여여하고 평화롭고 그저 충분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부자가 되기 위한 마음상태

그 말은 조금 더 뒤로 미루고, 일단 시작했으니 하던 돈 얘기, 부자 얘기를 조금 더 진행시켜 보도록 하지요.

예를 들어 쉽게 돈으로 얘기해 본다면, ‘10억을 번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대단한 얘기죠? ‘100억을 끌어들인다는 것, 이것은 더욱 대단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인생에서 100억을 벌 수 있을까?’, ‘100억은 내 인생에서 꿈같은 돈이야. 나는 안 돼!’ 하는 한 생각에 묶여 있습니다. 한계선을 만들고, 스스로 딱 닫아놓는 것입니다. 우주법계는 내가 정해놓은 그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스스로 정해놨으나, 과거 전생에 복 지은 것이 워낙 많다면 생각 에너지를 복 에너지가 넘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만든 울타리를 우주법계가 직접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떤 기준에 두느냐에 따라 우주법계는 항상 그것을 보내줄 뿐입니다. 따라서 받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을 내보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합니다. 친구가 좀 더 나한테 잘해주길 바라고, 배우자가 좀 더 나에게 잘 해주길 바랍니다.

남들 집에 가니까 아내는 내조를 잘하고, 남편은 돈을 많이 벌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보고 배우자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랍니다. 자꾸만 배우자의 부족한 면만 보는 겁니다. 그 말은 곧, 자신이 배우자를 향해 당신은 부족하다는 에너지를 자꾸 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한테 좀 더 잘해줄 수 없어?’ 하고 마음속으로든 말로든 부족한 걸 자꾸 내보내니까, 상대방이 나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내보내는 것이 부족한 거니까, 상대가 부족한 부분을 자꾸 나에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상대가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칙입니다.

부모님, 배우자, 자식은 모두 정확히 여러분의 인연과 딱 이치를 이루기 때문에 만난 것입니다. 정확한 진리를 만난 거예요. 나에게 필요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이 바뀌지 않고는 결코 내 인연이 바뀔 수 없습니다. 내 의식이 성숙해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성숙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먼저 아내를 왕비처럼 모시고, 남편을 왕처럼 모시고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야 지금 당신 또한 왕처럼 왕비처럼 변모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남편을, 아내를 바라보는 만큼, 대우하는 만큼, 배려하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바로 딱 그 만큼만 배우자에게 돌려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대로, 중생세계에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루 이틀, 일이주일 정도 잘 해 놓고서 아무리 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그동안 서운하게 대한 만큼, 배우자가 나에게 질려서 마음을 닫은 만큼 아마도 시간은 사람에 따라 더 많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3주 이상은 걸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무엇이든 3주라는 시간은 무조건 엎드리고, 잘 해주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인내하면서 무한한 자비로움을 실천해야 변할 수 있습니다. 절에서도 ‘3.7(3) 기도수행을 하지 않습니까?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3주 정도도 노력 안 하고 해도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내가 먼저 내보내야만 들어오지, 내보내지도 않았는데 들어올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더 잘난 사람을 만나면, 더 잘나게 되면 그때 더 좋아질 것이다가 아니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행복하고 감사한다고 했을 때 내가 내보내는 것이 완전 만족이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일들만 계속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하는 겁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우주법계는 변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대로일지라도 마음공부를 하기 전과 후의 마음가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연봉도 똑같고, 배우자도 똑같고, 자식도 똑같고, 조건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했을 때와 안 했을 때는 천차만별로 달라져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동일한 조건 속에서 어마어마한 행복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큰 좌절과 불행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내보내느냐, 어떤 마음을 내보내며 사느냐 그것을 살펴야 됩니다. 사랑을 내보내고, 감사를 내보내고, 만족을 내보내고, 풍요를 내보내려면 어떻게 돼야 합니까?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고, 풍요로워져야 됩니다. 먼저 사랑을 느끼고, 감사를 느끼며, 진정으로 만족하며, 풍요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원금의 수백 수천 배를 받는다

그러나 그러고 싶어도 그게 안 됩니다. 풍요로움을 느끼고 싶지만 풍요로운 마음을 내보낼 수가 없어요. 왜 그럴까요? 마음속에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남들에게 베풀고 보시하면 내 것이 자꾸 줄어들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내 돈과 마음은 한정이 되어 있어 있는데, 이 한정된 것을 자꾸 베풀면 내 것이 나가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정말 그럴까요? 이해하기 쉽게 돈을 예로 든다면 통장 잔고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베풂의 잔고는 통장잔고와는 전혀 다릅니다. 베풂과 나눔을 이웃에게, 우주법계에 저축하면 그 이자가 무한대로 늘어나 복리를 뛰어넘게 되고, 원금을 훨씬 뛰어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어떻게 베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베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단지 100만 원을 베풀었을 뿐인데도 수백 수천 수억이 들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의식 자체가 베푸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 우주법계는 무한정 가져다줍니다. 이 사실을 저는 직접적으로 느껴요. 인색하게 굴 때와 베풀 때,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의 핵심은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이 자체로서 완성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완벽합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내 생각과 판단만 있을 뿐이지, 완벽하지 못한 존재는 없습니다. 완전하지 못한 삶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하고 완벽해요. 완전히 풍요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부족한 겁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완성되어 있고 완전히 완벽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내가 무한정 넘칠 수가 있으니까 끊임없이 베풀어주고 나눠줍니다. 따뜻한 말도, 사랑도, 물질도, 부처님 가르침도, 진리도 다 내보내 줍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만족하고, 내보내 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가 풍요롭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알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이고 훨씬 더 깊은 존재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깊고 풍요로운 존재입니다.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완전히 내보내는 작용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동시에 내보내는 것이 곧 들어오는 것과 직결돼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죽기 직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일주일 후에 죽게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계속 끌어당기며 살겠어요? 아닙니다. 내보내며 삽니다. 죽기 직전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더 쌓고 모르려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기 직전에는 누구나 사랑을 내보내고, 물질도 내보내고, 못했던 따뜻한 말과 마음을 베풀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죽기 직전이 되면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저절로 깨달아 실천합니다.

그런데 왜 죽을 때까지 가서야 비로소 그렇게 합니까? 죽을 때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금 그것을 해야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왜 죽기 직전으로 미루고 살아야 합니까? 평생토록 그것을 미루고 또 미루며 비본질적인 것들만 하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정말 해야 할 것을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어쩌죠? 죽음은 예고해 주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기 직전에라도 죽을 거란 것을 알면 그 때라도 뒤늦게 깨닫고 본질적인 것들을 할지 모르겠지만, 삶은 우리에게 죽을 때를 미리 알려주지 않습니다. 바로 내일이 될 지, 몇 시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것을 가장 먼저 하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이나 내일은 오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기 직전에 가서야 비로소 조금 더 나누고 살껄’ ‘조금 더 베풀고 살껄하고 후회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내보낼 것을 결정짓고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을 끌어당겨 모을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내보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아닌 내보내는 법칙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내보내는 것이 곧 당겨지는 것이니까요.

나는 오늘 배우자에게, 가족에게, 직장동료에게 무엇을 내보내고 있느냐를 항상 살피고 살 수 있어야 됩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내가 내보내는 것으로 인해서 세상이 얼마큼 더 어두워졌는가, 내가 내보내는 것으로 인해서 세상이 얼마큼 더 밝아졌는가?’하는 것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삶을 지켜보고, 내 것을 많이 내보내고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까, 더 가져볼까, 더 소유할까, 더 끌어당겨 볼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베풀어 볼까, 더 나눠볼까, 내 것을 내보내 볼까에 대해 생각해 좀 더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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