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시절 사장처럼 생각하면 진짜 사장이 된다”

2015년 08월호
증권업계 최장수 CEO… 8차례 연임 성공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
  증권업계는 타 업종에 비해 단기실적에 민감한 편이다. 그런 탓에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뀐다. 하지만 이런 살벌한 전장에서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CEO가 있다. 최근 여덟 번째 연임에 성공한 유상호(56) 한국투자증권 대표이다.
  지난 3월 말 한국투자증권은 여의도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유 대표의 재선임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유 대표는 ‘증권업계 최장수 CEO’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경영진 책임을 강화할 목적으로 이사와 감사위원의 임기를 1년으로 정했다.
  유 대표는 한국투자증권을 업계 최대 이익을 내는 증권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2011년부터 3년 연속으로 순이익 1위를 지켰다. 작년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지만 그래도 전년에 비해 300% 가까이 순이익을 늘렸다.
  비결은 다각화된 수익구조이다. 보통 증권사들은 주식거래 수수료(브로커리지)가 이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유 대표는 브로커리지 비중을 40% 정도로 낮추고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AM)에서도 각각 30%가량의 수익을 내게끔 체질을 뜯어고쳤다. 그 덕분에 시황의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작년 말 한투증권 자카르타 대표사무소 개소식. 왼쪽부터 임경종 주 인도네시아 한국금융단 회장, 수지 메일리나 인도네시아 증권업협회장, 유상호 한투증권 사장, 조태영 주 인도네시아 한국 대사, 남경훈 한투증권 자카르타 사무소장. 한투증권 제공

증권업계 최장수 CEO가 됐는데 소감은
신뢰와 사랑을 보내주신 주주와 임직원, 그리고 고객들에게 감사드린다. 회사 발전과 고객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이 기여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한국투자증권은 우리나라 최고의 증권회사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고객을 최고로 모시면서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하겠다.
얼마나 경영실적이 좋았기에 8차례나 연임됐나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순이익 1위를 지켰다. 작년엔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놓쳤지만 전년 대비 300%가량 증가한 2천262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임기가 1년으로 짧지만 ‘내가 이 자리의 적임자가 아니거나 열정이 식었다고 판단되면 당장이라도 그만 두겠다’고 다짐했다. 단기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회사의 수십 년 미래를 위해 초석을 쌓는 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론 마음을 비웠던 것이 연임의 비결이 됐다고 생각한다.
 
긴 불황에도 좋은 실적을 낸 비결은
수익원을 구조적으로 다변화시켰다. 보통 증권사는 주요 수익원이 대여섯 개다. 경쟁사들은 어떤 분야는 일등을 해도 다른 분야는 10등을 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대여섯 개의 수익원에서 1등 아니면 2~3등이다. 골고루 잘하기에 시황이 안 좋을 때에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직원들의 ‘헝그리 정신’도 큰 힘이 됐다. 우리 회사는 재벌이나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가 아닌 독립 계열사라서 비빌 언덕이 없다. 그래서 직원 각자가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고 정신무장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력감축을 안하고 신입사원도 매년 뽑는다던데
경쟁사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 회사는 군살 없는 조직체계를 구축했다. 2005년 동원증권과 합병 이후 지속적으로 조직 효율성을 제고한 결과다. 분산된 전력은 집중하고 문제점이 노출된 곳은 대안을 찾는 조직체계를 구축함으로 영업력 강화와 수익성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중장기적인 사업 목표를 설정하고 무리한 외형성장을 자제했다. 아울러 효율적으로 비용을 통제한 것도 주효했다. 금융업의 자산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황의 부침에 휘둘리지 않고 역량 있는 인재를 보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성과에 기반한 확실한 보상체계를 구축해 직원들의 업무의욕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40대에 ‘증권업계 최연소 CEO’로 취임했다던데
젊은 시절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들어가 사장 한 번 해보자’는 꿈을 가졌다. 유학 후 대우증권에 들어가 내가 사장이 될 때까지 몇 년 걸릴까 따져 봤더니 직급체계상 딱 30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날로 30년 계획을 짰다. 30년 후에 사장이 되려면 1년 뒤, 10년 뒤, 20년 뒤엔 뭘 해야 될지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대리나 과장 자리에서도 임원 수준으로 생각하자고도 다짐했다. ‘그릇이 큰 사람이다’ ‘재목이다’는 평가를 받고 실적까지 더해지면 그게 바로 내 평판이 된다. 미생(未生) 시절에도 사장처럼 생각하면 진짜 사장이 될 수 있다.
신년사에서 ‘소매영업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한 이유는
고객의 자산을 늘림으로써 회사의 수익도 살찌우는 정도(正道) 영업을 정착시켜야만 회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이 적시에 공급될 수 있도록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또한 영업직원들이 고객 이익을 최우선시 하도록 내부평가 및 보상기준도 새롭게 변경했다. 이제껏 본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자산관리 영업이 조만간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역점사업이 있다면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에 힘쓰고 있다. 초저금리 금융환경을 감안할 때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금융당국의 정책이 지속되리라 본다. 완화된 자본규제를 감안해 리스크관리 최적화를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금융과 투자은행(IB)부문에서의 영업력 향상과 수익 극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전경. 연합DB

해외 진출 성과는 어떤가
현재 홍콩, 런던, 뉴욕, 싱가포르, 베트남, 북경 등 6곳에 현지법인을 냈다. 베트남 호치민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곳에는 대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 중요한 해외 거점이지만 특히 2010년 말 진출한 베트남 현지법인에 거는 기대가 크다. 현지화 및 영업기반 확대에 주력한 결과 작년에 자력으로 흑자를 달성했고, 올해 초엔 증자를 통해 성장동력을 확충했다. 공격적인 영업전략을 펼쳐 연내 현지 시장점유율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본다. 지난해 진출한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파트너 물색과 다각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할 작정이다.
초저금리 시대 투자전략을 추천한다면
초저금리 시대에다 급속한 고령화까지 겹친 상황이다. 따라서 투자자산을 은행과 보험권에만 묶어두지 말고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주목할 만한 상품으로는 해외펀드를 꼽을 수 있다. 아무래도 국내보다 해외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와 현금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월지급식 펀드 붐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일본에선 판매되는 펀드의 46% 정도가 월지급식 상품이다. 월지급식 해외펀드도 눈여겨 볼만하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어떻게 보나
미국의 금리인상이 악재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금리가 인상되면 그만큼 미국 경기가 좋아지기 때문에 반드시 금융시장에 악재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지난 몇 년간 구조개혁을 통해 금리인상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한 상황이다.
 
나름의 경영철학을 소개한다면
‘행복 경영’이다. 정말 좋은 회사는 출근할 때 설레고 퇴근할 때 마음이 가벼운 회사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상의 근무여건을 조성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고의 인재와 함께하고 싶다면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최고의 성과가 도출되지 않겠나? 이것이 바로 ‘선순환 경영’이 아닐까 싶다. 
 
한투를 어떤 회사로 키우고 싶은가
국내 1등은 확실히 다졌지만 세계적 IB들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신흥시장을 과감히 개척함으로써 30년 뒤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게 장기적 목표이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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