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상편)
작성자 buddhabook

저는 오래전부터 대장염을 앓아 왔습니다.

처음에는 빈혈이 심해 병원에 갔다가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도 몇 년간 꾸준히 다녔지만, 증세는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간 치료하면 곧 낫는다고 하는데 저는 완치가 되지 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식이요법은 물론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빈혈로 밖을 다니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모든 약을 중단하고 음식물로써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몸이 그 음식을 받아 주지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유산을 권했습니다. 산모까지 위험해 질 수도 있다면서…….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가끔씩 나가던 한국불교대학에서 신문을 가지고 왔더군요. 집에서 끙끙거리는 제가 안쓰러워 뭐든지 읽을거리를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그 신문을 보다가 신행 수기를 써 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도로써 가피 입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기도로서 넘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곧 남편을 졸라 大관음사를 찾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습니다. 또 지금 낳지 않으면 언제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몸이 더 건강해지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이상하게도 大관음사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노천법당에 서 계시는 대원력 관세음보살님을 뵙는 순간 저절로 고개 숙여 절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大관음사가 남구청 앞에 있을 때 청년회 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제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습니다. 남편 역시 청년회할 때가 무척 그리운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같이 불교 공부하러 오자고 제의했습니다. 남편은 좋아하면서도 제 건강이 걱정되는지 좀처럼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 1, 2, 3층 법당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스님도 뵈었습니다. 아주 엄격해 보이셨는데 남편과 이야기 하다가 한순간 웃는 모습이 마치 아이처럼 천진스러웠습니다. 마음속으로 꼭 스님의 법문을 들어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오래 서 있었더니 금방 어지럼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저의 안색이 변하자 남편이 곧 알아차리고 저를 노천법당 마루에 앉혔습니다. 앞이 캄캄해지더니 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습니다. 남편을 의지한 채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남편이 제 몸을 주무르는 것이 느꼈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정신력의 한계를 넘은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저는 언뜻 관세음보살님을 보았습니다.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제 옆에 서 계셨습니다. 저는 절하려고 손을 합장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아기를 낳고 싶어요. 살려주세요. 보살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이마에 손을 짚어 보시고는 들고 있던 감로수병을 쏟아 부으시는데 갑자기 제 온 몸에 향기로운 감로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곧 그 감로수 물에 머리까지 다 잠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제목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하편)
작성자 buddhabook

감로수의 물결은 연푸른 빛깔로 찰랑거리며 무지개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으며 햇빛처럼 반짝였습니다. 감로수 물속에서는 숨 쉬는 것도 너무나 쉬웠으며 온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처음으로 마음껏 숨을 들이쉬면서 물결 속에 몸을 눕혔습니다.

 

잠시 후 관세음보살님이 다가 오시더니 다시 이마에 손을 짚으셨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이 많은 감로수를 저 혼자 다 써버려서 어떡하죠?”

 

병이 나은 것은 둘째 치고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의 마음을 아시는지 관세음보살님께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스님이 웃으셨을 때처럼 너무나도 천진난만하고 깨끗한 웃음이었습니다.

 

“감로수는 곧 저의 마음이니 한량없습니다. 이 온 우주, 온 법계를 적시고도 수억 겁 동안 흐릅니다. 그 마음 고이 간직하소서.”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아름다운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감격하여 그 감로수 물결 속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 절하면서도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마치 날아갈 듯 했습니다.

 

“여보!”

남편의 절박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스님께서 제 이마에 손을 얹고 계셨습니다.

“보살님! 괜찮으십니까? 지금 구급차를 불러 두었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저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릎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스님.”

“여보?”

남편이 울먹이며 저를 불렀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관세음보살님의 감로수를 마시고 완전히 몸을 담그기까지 했어요!”

 

남편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괜찮은지 의심스러워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보았습니다. 정말 멀쩡했습니다. 어지럽거나 구토증세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 지 저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뛰어도 보았습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었습니다.

 

그래도 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아보고서야 남편은 그 사실을 믿었습니다. 대장염은 물론이고, 빈혈과 그 합병증도 증세가 완화되어 있었습니다. 생활하는데 조금의 불편도 없었고 약을 먹지 않고도 빈혈이 차츰차츰 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2주쯤 뒤에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먹는 것도 아주 소화가 잘 되고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산달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관세음보살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무런 선업도 지어보지 못한 제가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남편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인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순간 지은 부처님과의 인연이 저와 아기를 살린 것입니다. 이 인연들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바로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대구시 동구 덕곡동 이법수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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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약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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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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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약찬게


*개경게 (경의말씀 여는 글귀)

무상심심미묘법 (위없이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여)

백천만겁난조우 (백천만겁 긴 세월도 만나기 어려웠네.)

아금문견득수지 (제가 이제 보고 듣고 수지하오니)

원해여래진실의 (원하오니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게 하소서.)

*개법장진언 (진리의 창고를 여는 참된 말씀)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귀의하오니, 깊은 경지 도달하게 하옵소서.)


화엄경약찬게는 80권본 화엄경을 간략하게 엮어 놓은 노래다.

화엄경 약찬게의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이며, 부처님 열반 후 600년쯤 지나서 태어났고, 제 2의 석가라고 칭해지는 용수보살이 화엄경을 찬탄하는 내용을 담은 경전입니다. 80권 39품 10만 게송이라는 방대한 양의 화엄경을 한자 770자 110구절의 게송으로 줄인 것이고, 여기 실은 해설은 간단 해설입니다.


1. 제 목

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


-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해인삼매에 들어 광명으로 설하신 바 전체를 나타내는 법의 체(대불)와, 전체 속에 제각기 나타내는 법의 상(방불)과 깨달음의 무한계를 나타내는 법의 용(광불)을 모든 보살들이 다시 언설을 통해 만가지 공덕의 꽃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해 가는 경.

용수보찰약찬게 龍樹菩薩略纂偈

- 용수보살(남인도 바라문 출신인 불교혁명가)이 간략하게 편찬, 증명한 노래.


2. 삼신불께 귀의합니다.


나무화장세계해 南無華藏世界海


- 가장 이상적인 청정의 경계.

-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이 함께 하는 세계이며, 늘 설법하는 노사나불의 세계이며, 화신불이 상주하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이며

시공을 초월한 모든 성인들이 함께 하는 세계.

비로자나진법신 毘盧遮那眞法身

- 우주 전체의 본체이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연기의 주체이다.

- 창조의 주인공이자 원동력이며, 모든 것과 하나가 되며, 하나가 곧 전체를 이룬다.

- 자성신이며, 법성이며, 진여이다.


현재설법노사나 現在說法盧舍那


- 보신을 인격화해서 부를 때 노사나불이라 한다.

- 법신을 인으로 삼아 그 과보를 나타낸 몸이므로 보신이라 한다.

- 보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여 당체인 법신이 형태를 취하여 나타난 몸이다.

보신불 : 법장비구가 48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아미타불이 되었는데, 이 아미타불이 보신이다.

화신불 : 법신을 본질로 하고, 방편의 몸을 나타내는 부처님을 말한다. 대표적인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석가모니제여래 釋迦牟尼諸如來


과거현재미래세 過去現在未來世

시방일체제대성 十方一切諸大聖


근본화엄전법륜 根本華嚴轉法輪

해인삼매세력고 海印三昧勢力故


- 해인이란 부처님의 궁극의 깨달음이 중생들을 다 비추는 것을 바다가 일체 중생의 모습을 다 비추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 삼매세력은 부처님이 일체 모든 중생에 시현하는 활동으로서 나타나는 세력을 의미한다. 이 해인삼매의 대해 가운데에 무량한 일체 중생의 색상이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남을 뜻한다. 즉 무상보리해에는 시방세계 모든 중생들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3. 화엄회상의 여러 대중들


보현보살제대중 普賢菩薩諸大衆


집금강신신중신 執金剛神身衆神

집금강신 : 금강역사라고 하며 '금강저를 손에 든 자'의 의미를 지닌다. 불법의 수호신으로 가끔 큰 절 입구에 모셔져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온갖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신중신 : 법인을 성취하며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찬탄한다. 화엄경에서 화계장엄 신중신 등 10분 등장한다.


족행신중도량신 足行神衆道場神


족행신 : 많은 세월을 두고 법성진여를 체로 삼아 정진하여 결국 운신에 자유자재를 얻었다.

도량신 : 삼보가 거처하는 도량을 지키는 신이다.

주성신중주지신 主城神衆主地神

주성신 : 성을 지키는 신. 바른 마음에 안주하도록 수호한다.

주지신 : 땅을 지키는 대지의 신. 토지신이다.


주산신중주림신 主山神衆主林神


주산신 : 산을 지키는 신이다.

주림신 : 숲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이다.

주약신중주가신 主藥神衆主稼神


주약신 : 약을 주재하는 신이다.

주가신 : 곡식을 주재하는 신이다.


주하신중주해신 主河神衆主海神

주하신 : 강물을 주재하고 물에 들어 있는 신이다.

주해신 : 바다를 주재하고 바다에 들어 있는 신이다.

주수신중주화신 主水神衆主火神


주수신 : 물을 주재하고 물에 있는 신이다.

주화신 : 불을 주재하고 불에 있는 신이다.


주풍신중주공신 主風神衆主空神

주풍신 : 바람을 주재하고 바람에 있는 신이다.

주공신 : 허공을 주재하며 허공 속에 있는 신이다.

주방신중주야신 主方神衆主夜神

주방신 : 방향을 주재하며 방향을 수호하는 신이다.

주야신 : 밤을 지키고 밤을 이루는 신이다.


주주신중아수라 主晝神衆阿修羅

주주신 : 낮을 지키고 낮을 이루는 신이다.

아수라왕 : 아수라 세계의 우두머리다. 8부 중의 하나이며 불법을 수호한다. 원래 악신의 성격이 강하나 부처님을 호위하는 신장으로 등장한다.


가루라왕긴나라 迦樓羅王緊那羅


가루라왕 : 새 중의 왕이며 봉황같이 아름답고 금시조라 불리고 호법성중이다.

긴나라왕 : 일체중생을 감동시키는 음악신이다.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은 아니고, 인비인 이라고도 한다.


마후라가야차왕 羅伽夜叉王

마후라가왕 : 음악신이며 제석천을 따르고 사람몸의 형상에 뱀머리 형상에 어느곳이고 맘대로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야차왕 : 원래 포악한 귀신이었으나 나찰 등과 함께 북방비사문천의 권속이 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이 되었다.


제대용왕구반다 諸大龍王鳩槃茶


용왕 : 비와 바람을 주재하는 신이다. 용은 불전에 자주 등장하는 호법신장이다.

구반다왕 : 사람의 정기를 빨아 먹는 귀신이었으나, 후일 호법신장이 되었다.


건달바왕월천자 乾達婆王月天子


건달바왕 : 고기나 술은 먹지 않으나 늘 놀기를 좋아하며 음악을 맡은 신.

월천자 : 달을 담당하고 주재하는 천자이다.

일천자중도리천 日天子衆兜利天


일천자 : 해를 담당하고 주재하는 천자이다.

도리천 : 제석천. 33천이 있다. 제석천은 인간 세상을 주재하는 신이다.

불법의 수호신으로 신중탱화의 중심으로 모셔지며 우리나라에서는 환인 또는 하느님이라 부른다.

야마천왕도솔천 夜摩天王兜率天

야마천 : 야마천 사람들은 키가 2유순이며 수명은 2천세이다.

도솔천 : 만족함을 안다하여 지족천이라 한다. 보살로서는 최후신을 얻는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도솔천에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지구에 오셨다.


화락천왕타화천 化樂天王他化天

화락천 : 이 하늘나라는 감로미로써 음식을 삼으며 자기의 즐거움을 누릴 뿐 그 즐거움을 버리지 못한다.

타화자재천 : 남의 즐거움도 자기 즐거움으로 만들어 갖는 하늘나라.


대범천왕광음천 大梵天王光音天

대범천 : 제석천과 함께 불법수호의 역할을 하고 있어 신중탱화에서 주로 함께 모셔지며 정병을 들고 있는 경우가 범천에 해당한다.

무량광음천 : 입으로 광명을 내어 의사를 교환한다.


변정천왕광과천 遍淨天王廣果天

변정천 : 근심과 걱정이 없고 오직 선열만 있다.

광과천 : 작은 일을 해도 선근이 무르익어 결과가 크고 넓게 나타난다.


대자재왕불가설 大自在王不可說

대자재천 : 가장 자재한 하늘이다. 화엄경에 묘엄해대자재천왕 등 열 분의 천왕이 등장한다.


보현문수대보살 普賢文殊大菩薩


보현보살 : 문수사리보살과 함께 석가여래의 협시인 보살. 지혜와 법을 실행하는 대원을 세운 보살.

문수보살 : 문수사리의 준말. 보현보살과 함께 석가모니의 보처로서 왼쪽에 있어 지혜를 맡은 보살.


법혜공덕금강당 法慧功德金剛幢

공덕림보살 : 선근공덕을 많이 쌓아서 그 공덕이 수풀이 무성함과 같다고 하여 일컫는 보살.

금강당보살 : 금강계 37존 중 16대 보살의 한 분. 남방 보생여래의 좌측에 거하는 보살.


금강장급금강혜 金剛藏及金剛慧

금강장보살 : 금강계 현겁 16존 가운데 한 분. 이 보살명왕은 분노신을 드러내고 혹은 금강저를 가지고 악마를 조복하므로 금강장왕이라 함.

금강혜보살 : 실상의 이치에 통달하여 모든 상을 깨뜨리는 지혜를 구족한 보살.


광염당급수미당 光焰幢及修彌幢

광염당보살 : 광명이 자재하여 이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는 뜻에서 일컫는 보살.


대덕성문사리자 大德聲聞舍利子

대덕성문사리자 : 큰 덕을 지닌 성문의 제자인 지혜 제일의 사리불 존자.

사리자 : 석가모니 부처님 십대제자 중 한 분.


급여비구해각등 及與比丘海覺等


급여비구해각등 : 및 비구인 해각등과

비구 : 남자스님

우바새장우바이 優婆塞長優婆夷

우바새 : 남자신도

우바새장 : 우바새 어른

우바이 : 여자신도


선재동자동남녀 善財童子童男女

선재동자 : 화엄경 입법계품의 주인공.

동남녀 : 동남동녀.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기수무량불가설 其數無量不可說


- 그 수가 무량하여 가히 말할 수 없다.


4. 53선지식

선재동자선지식 善財童子善知識


선재동자 : 지난 세상에 보살도를 닦아 착한 일을 많이 하였고,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여러 가지 보배가 하늘에서 내려와 여러광에 가득 찼으므로 붙여진 이름.

53선지식(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 : 선재라는 소년이 보살을 비롯하여 비구, 비구니, 소녀, 소년, 의사, 장자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보리심을 일으키고 있다.

문수사리최제일 文殊舍利最第一

선재동자 찾아간 선지식들 중 문수사리 보살님이 으뜸이시니

문수사리 : 십신위. 선재동자에게 당부한다.

"네가 이미 깨달으려는 마음을 내었으니 이제부터 선지식을 찾아 다니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모시고 공경하라.

선지식을 만나면 어떻게 닦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물어라."

덕운해운선주승 德雲海運善住僧

덕운비구 : 발심주.

"그대가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말하였고, 보살행을 물으니 이것은 어려운 일 중 어려운 일이다."

해운비구 : 치지주.

"중생들이 선근을 깊게 심지 않고는 도를 구하려는 마음을 낼 수 없다."

선주비구 : 수행주.

"보살은 자기 마음으로 불법을 믿고 보살행을 닦으며 자기의 마음으로 큰 원력을 일으켜 중생을 교화하는 것."


미가해탈여해당 彌伽解脫與海幢

미가장자 : 생귀주.

"위없는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두 부처의 씨앗을 끊어지지 않게 하며 모든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한다."

해탈장자 : 구족방편주.

"착한 법으로 자기 마음을 붙들고 법의 물로 자기 마음을 적셔라."

해당비구 : 정심주.

"모든 중생들에게 가난한 고통을 여의게 하고 복과 지혜의 행을 늘게 한다."


휴사비목구사선 休舍毘目瞿沙仙

휴사우바이 : 불퇴주.

"나는 과거 무량겁에 한량없는 생을 두고 항하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서 공경, 공양 법을 듣고 받아 지녔다."

비목구사선인 : 동진주.

"기필코 모든 중생을 구호하고 기필코 지옥의 고통을 없애리다."


승열바라자행녀 勝熱婆羅慈行女

승열바라문 : 법왕자주.

"어떤 보살이거나 선지식의 가르침에 순종하면 모든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편안하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

자행동녀 : 관정주.

"세상의 법을 행하여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되 세상을 훼손하지 않고 모든 세상의 의지처가 되며, 어느 때나 항상 자유자재한다."


선견자재주동자 善見自在主童子

선견비구 : 환희행.

"본래 세운 서원과 삼매의 원력으로 모든 불국토를 깨끗이 장엄하며 온갖 행을 닦아 6바라밀을 가득 채웠다."

자재주동자 : 요익행.

"문수사리동자에게 글씨, 산수와 결인등의 법을 배워 온갖 공교한 신통과 지혜의 법문에 들어갔다."


구족우바명지사 具足優婆明智士

구족우바이 : 무위역행(무진한행)

"백만 아승지권속들이 모두 나와 함께 원, 선근, 생각, 마음이 같다."

명지거사 : 무굴요행(무진행)

"세간의 종자를 여의고 여래의 종자에 머물며 바른 법륜을 굴리며 삼악도를 없애고 보살들과 같이 모든 중생을 구한다."


법보계장여보안 法寶髻長與普眼

법보계장자 : 이치란행.

"오랜 세월전에 부처님이 성에 오실 때 음악을 연주하며 향 공양한 이후 가난과 괴로움 사라지고 바른 법을 배웠다."

보안장자 : 선현행.

"중생의 모든 병 방편으로 치료하고 그런 다음 부정관, 자비관을 가르친다."


무염족왕대광왕 無厭足王大光王

무염족왕 : 무착행.

"교묘한 방편으로 열가지 나쁜 업을 버리게 하였다."

대광왕 : 난득행(존중행)

"오탁악세에 나쁜 짓을 많이 지었으므로 연민히 여겨 그들을 구하여 삼매에 들게 하였다."


부동우바변행외 不動優婆遍行外


부동 우바이 : 선법행.

"나는 보살이 모든 법을 구하여도 싫음이 없는 장엄문을 얻었다."

변행외도 : 진실행.

"외도들이 제각기 고집을 세우거든 그 가운데서 방편으로 조복시켜 모든 잘못된 소견을 버리게 한다."


우바라화장자인 優婆羅華長者人

우바라화장자 : 구호일체중생 이중생상 회향 선지식.

"향모양과 생기는 일과 출현성취와 위덕작용을 모두 통달하였다."


바시라선무상승 婆施羅船無上勝

바시라선사 : 불괴회향 선지식.

"이웃을 이롭게 하려고 온갖 고행을 닦는다. 바닷가에 있으면서 대비의 행을 닦았다."

무상승장자 : 등일체불회향 선지식.

"모든 착한 법을 순종하며 모든 기술을 익히여 세간에서 이익되게 한다."


사자빈신바수밀 獅子嚬伸婆修密

사자빈신 비구니 : 지일체처 회향 선지식.

"한 생각 동안에 온갖 법계에 가득 차지만 법계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아니한다."

바수밀다녀: 무진공덕장회향 선지식.

"욕망따라 나를 보게 하고 그에게 법을 말한면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집착없는 경계의 삼매를 얻느니라."


비실지라거사인 毘瑟祗羅居士人

비실지라거사 : 수순 견고일체(입일체평등) 선근 회향 선지식.

"여래가 열반에 든다거나, 들었다거나, 들리라는 생각을 내지 아니한다."

관자재존여정취 觀自在尊與正趣

관자재보살 : 등수순 일체중생 회향 선지식.

"여래의 처소에 항상 있으며,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서 이익되게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한다."

정취보살 : 진여상 회향 선지식.

"지혜의 눈이 있는 이라야 능히 듣고, 능히 지니고, 능히 얻고, 능히 말하느니라."


대천안주주지신 大天安住主地神


대천신 : 무박무착해탈 회향 선지식.

"갖가지 방편으로써 불선행을 버리고 착한 법을 닦게 하며 바라밀의 장애를 버리고 위없는 보리심을 내게 한다."

안주신 : 등법계(입법계) 무량회향 선지식.

"부처님의 수기를 받았으며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굴리며 큰 법의 광명으로 널리 비추어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

바산바연주야신 婆珊婆演主夜神

- 십지위의 선지식 중 제1 환희지 선지식.

"나는 여러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구제한다. 해신이 되기도 하고, 해와 달 등의 광명이 되기도 하고, 과일나무도 되고, 다리가 되기도 한다."


보덕정광주야신 普德淨光主夜神


- 이구지. 깊은 마음으로 십선도를 증장시키고 정계를 지켜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여읜다.

"부처님이 미묘한 음성내어 넓고 큰 법을 두루 내려 보리심을 발하도록 하신다."


희목관찰중생신 喜目觀察衆生神


- 발광지. 청정심을 더욱 일으켜 모든 유위법이 무상하고 괴로운 실상을 관찰한다. 여러가지 신통을 얻어 일체 중생의 업을 분명히 본다.

"어진 이여, 어서 일어나라. 너희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다. 오랜 세월에 만나기 어려우니 뵙기만 하여도 청정해지리라."


보구중생묘덕신 普救衆生妙德神

- 염혜지. 모든 욕망과 정욕을 태워 버리게 된다.

"나는 일체지의 광명에 의지했으므로 순간순간 한량없는 부처님을 볼 수 있고, 예전에 얻지 못하고 보지 못한 보현의 모든 행을 만족하게 이룬다.

그 까닭은 일체지 광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적정음해주야신 寂靜音海主夜神

- 난승지. 세속의 분별지와 초월적인 무분별지를 하나로 묶으며 그들 둘을 아무 걸림없이 동시에 일으킨다.

"나는 청정하고 평등한 마음을 내었느니라. 그리고 머무는 곳 없는 마음을 내었느니라. 나는 모든 중생이 근심과 괴로움을 여의게 하려는 마음을 내었느니라."


수호일체주야신 守護一切主夜神


- 현전지. 12연기를 순역으로 관하여 세간 출세간의 지혜가 다 현전한다. 걸림없는 지혜의 빛이 숨김없이 나타난다.

"나는 생사의 무명 장야에 있는 중생들 가운데서 홀로 깨어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의 성을 수호, 삼계의 성을 버리게 하였으며 일체지의 무상법성에 머물게 하였다.


개부수화주야신 開敷樹華主夜神

- 원행지. 방편행을 하여 지혜로써 무량 중생계에 들어 중생의 행과 같이 한없는 중생을 제도함에 든다.

"부처님 경계는 헤어릴 수 없는 겁동안 말하여도 다할 수 없나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교만과 의혹에 가리어진 이런 중생들이 알 수 있는 법이 아니니라."


대원정진력구호 大願精進力救護


- 부동지. 보리를 구하고 이타행을 하되 지혜가 자재하여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림이 없다.

"세간을 여의었어도 모든 법의 모양이 차별함을 알고 또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것의 성품이 실답지 아니하여 차별이 없는 것도 분명히 통달하였느니라."


묘덕원만구바녀 妙德圓滿瞿婆女

묘덕원만신 : 선혜지. 보살이 중생심을 여실히 알아 대법사가 된다.

"법듣기 싫어 않고 관찰 좋아해 세상에 두루하여 걸림없으며, 몸과 마음 깨끗하기 허공같나니 이는 소문난 이들의 태어난 장이로다."

석녀구바 : 법운지. 모든 지혜를 통달하였으므로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큰 광명과 큰 법비를 잠깐 동안에 두루 능히 섭수한다.

"모든 부처님들의 가피를 입어 그지없는 오랜 세월 끝날 때까지 간 데마다 보현의 도 닦아 행하니 이것은 보살들의 몸 나투는 행."


마야부인천주광 摩耶夫人天主光

마야부인

"마음성을 맑게 닦으면 모든 착한 법을 잘 모을 수 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장애되는 일을 없애기 때문이다."

천주광녀

"여래께서 처음 출가한 때부터 내가 받들어 섬기고 절을 짓고 도구들을 마련했습니다."


변우동자중예각 遍友童子衆藝覺

변우동자사

"여기 한 동자 이름이 선지중예라 보살의 글자 지혜 배웠으니 그대는 가서 물어라."

선지중예동자

"여러 재능을 잘 알며 항상 자모라 부른다. 자모를 부를 때 무량·무수 반야바라밀 문에 들어간다."


현승견고해탈장 賢勝堅固解脫長

현승우바이

"다함없는 삼매를 얻었으니 능히 온갖 지혜 성품 다함 없으리."

견고해탈장자

"이 해탈 얻고부터 시방의 부처님 계신 데 와서 바른 법 구하기에 쉬지 않았느니라."


묘월장자무승군 妙月長者無勝軍


묘월장자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은 '깨끗한 지혜·광명'이니라."

무승군장자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다함없는 형상'이니라. 그러므로 한량없는 부처님 뵙고 무진장을 얻었느니라."


최적정바라문자 最寂靜婆羅門者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은 '진실하게 원하는 말'이니라. 진실하게 원하는 말에 머물렀으므로 만족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덕생동자유덕녀 德生童子有德女

"모든 중생이 모두 환술처럼 머무나리 업과 번뇌로 일어난 탓이니라.

모든 세간이 모두 환술처럼 머무는 것이니, 무명과 존재와 욕망 따위가 서로 인연되어 생기는 탓이니라."


미륵보살문수등 彌勒菩薩文殊等


미륵보살

"원만한 사람이여! 수행에 게으름이 없구나. 선지식 섬기기 좋아하고 부처님께 부지런히 공양하며 일심으로 법을 들어 항상 행하고 게으르지 말라.

그대는 부처님의 공덕에 닿으니 큰 지혜있는 문수사리에게 가라."

문수보살

"장하다! 만약 믿음이 약했더라면 고행을 참지 못하고 조그만 공덕에 만족하고 보살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여래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보현보살미진중 普賢菩薩微塵衆

보현보살

"나는 과거의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티끌 수겁에 보살행을 하며 온갖 지혜 구하였느니라. 보리심을 청정케 하고 말할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을 받들어 섬겼느니라."

"가는 곳마다 부처님 계시지만 죄많은 중생들은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말하는 법문 귀있는 사람들도 듣지 못한다."


어차법회운집래 於此法會雲集來

- 보현보살 등의 수많은 대중들이 이 법회에 구름처럼 모여 들었는데.


상수비로자나불 常隨毘盧遮那佛

- 항상 비로자나 부처님을 따랐다.

법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의 행원에 의하여 이룩된 불국토의 세계는 바로 화엄의 세계이다. 화엄이란 연화장 세계를 장엄한다는 뜻이다.


어련화장세계해 於蓮華藏世界海

- 화엄법회에서 대법륜을.

향수해라는 끝없이 넓은 바다가 있어서 그 바다에는 무진한 세계의 그림자가 남김없이 소소하게 나타난다.


조화장엄대법륜 造化莊嚴大法輪

- 장엄하여 조화로운데.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해탈의 과덕과 모든 보살의 부사의한 행원의 바다와 우주만유의 실상을 그대로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5. 7처 9회 39품

시방허공제세계 十方虛空諸世界

- 모든 세계에서도.

화엄경의 그 광활한 진리의 세계를 함축하면 7처 39품이 있다. 마지막 39품인 입법계품이 우리나라에서 소설과 영화로 나온 『 화엄경 』이다.


역부여시상설법 亦復如是常說法

- 또한 역시 이와 같이 항상 설법하였도다.

육육육사급여삼 六六六四及與三

- 아홉차례에 걸쳐 39품을.

일십일일역부일 一十一一亦復一

- 7곳에서 설법하시니 아래와 같다.

80화엄경은 7처 9회의 법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지상에서 3곳, 천상에서 4곳을 옮겨 다니며 법문이 설해지는데, 보광명전에서 3번 설해지므로 회수는 전부 9회가 된다.

7처 ( ①보리도량 ②보광명전 ③도리천궁 ④야마천궁 ⑤도솔천궁 ⑥타화자재천궁 ⑦급고독원 )


세주묘엄여래상 世主妙嚴如來相


세주묘엄품 : 화엄경 전체의 서품에 해당.

부처님이 마가다국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광채를 발해 부처님의 신통력이 도량을 장엄하사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대중과 집금강신 등 신장들이 자기의 권속을 거느리고 부처님 회상에 모였다. 대중들이 차례로 일어나 부처님의 덕을 찬양·찬탄한다. 이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한 것으로 화엄설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화엄회상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이때 부처님은 이 경의 교주인 비로자나 부처님과 일체가 된다.


보현삼매세계성 普賢三昧世界成

화장세계노사나 華藏世界盧舍那

화장세계품 : 보현보살이 화장세계의 장엄을 말하였다.

"이 화장세계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미진수겁 동안 보살행을 닦을 때 미진수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미진수의 큰 서원을 청정하게 닦아서 장엄한 것이다.

장엄세계의 온갖 경계는 낱낱이 세계해 티끌수의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한 까닭이다."

노사나(비로자나)품 : 옛 승음세계에 일체 공덕산 수미승운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큰 광명을 놓아 중생을 조복받았따. 그 가운데 비로자나 전신인 대위광태자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예전에 닦은 선근의 힘으로 법문을 증득하고 여래로부터 법해광명을 얻었다. 그 후 대위광태자는 여러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고 법문 듣고 '장차 성불하리라'라는 수기를 받았다.

여래명호사성제 如來名號四聖諦

사성제품 : 불교의 가장 기본교리인 사성제를 예로 들어 사성제의 고집멸도는 온 법계 허공계에 있는 낱낱의 세계에 숱한 이름으로 불리어짐을 많은 예로 들면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모든 중생마음의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그로 하여금 조복케 하시기 때문이다.

광명각품문명품 光明覺品問明品

광명각품 : 세존께서 두 발바닥으로 백억 광명을 놓으사 삼천·대천세계에 모든 보살 행각이 환하게 나타났다.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게송을 읊자 부처님의 광명은 더 넓은 세계로 비추고 찬탄과 광명의 환희스러움이 반복해갔다. 무량한 부처님, 말씀, 광명, 이 모든 불가사의한 일들이 바로 부처님의 가피이며 화엄의 세계이다.


정행현수수미정 淨行賢首須彌頂

정행품 : 문수보살이 신·구·의 삼법에 대한 지수보살의 질문에 답변하신다.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 온갖 승묘한 공덕을 얻어 부처님의 도에 머물며 제2도사가 될 것이다."


수미정상게찬품 須彌頂上偈讚品

보살십주범행품 菩薩十住梵行品

보살문명품 : 문수보살과 각수·재수·보수·덕수·목수·근수·법수·지수·현수 등 9수 보살이 문답을 통해 열가지 깊고 깊은 이치를 열어보여 여래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십주품 : 법혜보살이 제불의 가피를 입어 무량방편 삼매에 든 다음 이윽고 거기서 나와 보살이 머무는 열가지 주처 즉, 10주의 법문을 설하신다.

발심공덕명법품 發心功德明法品


초발심공덕품 : 제석천왕이 법혜보살에게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그 공덕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법혜보살이 이르되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오직 부처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답하였다.

명법품 : 정진혜보살이 법혜보살에게 청정한 수행을 닦는 방법을 물었다. 이에 대해 보살이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10바라밀을 가르치고 있다.

( 10바라밀 : 보시·인욕·지계·정진·선정·반야·방편·원·력·지 )


불승야마천궁품 佛昇夜摩天宮品

야마천궁게찬품 夜摩天宮偈讚品

- 공덕림보살을 위시하여 시방불세계의 수많은 보살이 부처님 계신 곳에 운집하자 부처님은 두발에서 광명을 내셨다.

그러자 야마천궁의 일체 대중들이 나타났다. 열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찬탄하였다.

십행품여무진장 十行品與無盡藏

십행품 : 공덕림보살이 삼매에 들었다가 깨어나 보살의 열가지 행, 즉 환희행, 요익행, 무위역행 등 십행법문을 설하였다.

무진장품 : 공덕림보살이 다시 열가지 무진장을 설하다.

열가지 무진장은 신장, 계장, 참장 등이 있다. 열가지 무진장은 보살들도 하여금 필경에 위없는 보리를 성취케 한다.

불승도솔천궁품 佛昇兜率天宮品

도솔천궁품 : 세존께서 위신력으로 보리수 아래와 수미산 꼭대기와 야마천궁을 떠나지 않고 도솔타천으로 행하셨다. 도솔타천왕은 무수한 도솔타 천자들과 함께 여래를 맞아 공양올렸다. 그때 세존께서 사자좌에서 결가부좌하시어 시방의 도솔타천에서도 모두 이와 같았다.


도솔천궁게찬품 兜率天宮偈讚品

십회향급십지품 十回向及十地品

십지품 : 보살이 밟는 십지의 체계를 밟는 것으로 대승의 보살이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과정이다.

제1지-환희지(보시) 제2지-이구지(지계) 제3지-발광지(인욕) 제4지-염혜지(정진) 제5지-난승지(선정) 제6지-현전지(반야) 제7지-원행지(방편) 제8지-부동지(원) 제9지-선혜지(력) 제10지-법운지(지)

십정십통십인품 十定十通十忍品

십정품 : 세존께서 보현보살에서 "여기 모인 보살들을 위해 열가지 삼매를 말하며 보현의 온갖 행과 원에 들어가 원만히 이루게 하라" 하시니 이때 보현보살께서 부처님 뜻을 받들어 열가지 삼매를 말하였다.

①보광명 삼매 ②묘광명 삼매 ③체제변왕제불국토신토 삼매 ④청정심심행 삼매 ⑤지과거장엄장 삼매 ⑥지광명장 삼매 ⑦요지일체 세계불장엄 삼매 ⑧일체중생차별신 삼매 ⑨법계자재 삼매 ⑩무애륜 삼매

십통품 : 보현보살이 다시 열가지 신통을 말하였다.

①선지타심지신통 ②무애천안지신통 ③지과거제겁숙주지신통 ④지진미래제겁지신통 ⑤무애청정천이지신통 ⑥무체성무동작왕일체불찰지신통 ⑦선불별일체체언사지신통 ⑧무수색지신통 ⑨일체법지신통 ⑩입일체법멸진삼매지신통

십인품 : 보현보살이 신통의 의지처인 지체를 밝힌다.

1.음성인 2.순인 3.무생법인 4.여환인 5.여염인 6.여몽인 7.여향인 8.여영인 9.여화인 10.여공인


아승지품여수량 阿僧祗品與壽量

보살주처불불사 菩薩住處佛不思

불부사의품 : 부처님의 과덕, 그 체용의 불가사의함을 설하다.

즉, 부처님의 국토, 소원, 나타나심, 몸, 음성, 지혜, 자유자재하심, 걸림없음, 해탈 등이 어찌하여 헤어릴 수 없는가에 대한 보살들의 궁금증에 청련화보살로 하여금 답변하게 하였다.

여래십신상해품 如來十身相海品

 

- 부처님의 수승한 덕의 모습을 아흔 일곱가지로 나타낸다.


여래수호공덕품 如來隨好功德品

- 세존께서 보수보살에게 여래, 응공, 정등각에게 갖추어져 있는 좋은 모습을 설하시고 전륜왕의 깊은 삼매와 복덕과 착한 뿌리로 이루어진 것임을 설하셨다.

또 수많은 광명을 법계에 두루해서 지옥의 고통도 덜어내 천상에 나게하고 이윽고 십지를 증득하는데 그 공덕이 무진광대함을 드러낸다.


보현행급여래출 普賢行及如來出

보현행품 : 보현보살이 말한 열가지 인행.

①마음에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음 ②여러 보살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게 함 ③불법을 영원히 비방하지 않음 ④모든 국토가 다하지 아니함을 아는 일 ⑤보살의 행에 믿고 좋아함을 내는 일 ⑥평등한 허공법계 같은 보리심을 버리지 않음 ⑦보리를 관찰하여 여래의 힘에 들어감 ⑧걸림없는 변재를 부지런히 익힘 ⑨중생교화에 고달픔이 없음 ⑩일체 세간에 머무르되 마음에 집착이 없음(응무소주이생기심)

여래출현품 : 세존께서 미간의 백호상으로부터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여래출현'이요, 온 허공법계와 모든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도량에 있는 일체 대중의 몸과 마음이 기뻐하는 가피를 입었다. 이 광경은 바로 '본래 갖추고 있는 성품을 발현시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세간품입법계 離世間品入法界

입법계품 : 선재동자가 대승불교의 수련의 단계인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를 거쳐 보현의 행, 즉 그 대원해를 구경으로 닦았으니, 머지않아 '부처와 동등하게 되리라'는 말을 듣고 법계에 드는 과정을 그림.


시위십만게송경 是爲十萬偈頌經

- 화엄경은 10만의 게송으로 된 경이며


삼십구품원만교 三十九品圓滿敎

- 삼십구품으로 원만히 갖추어진 가르침이다.

6. 화엄경의 공덕

 

풍송차경신수지 諷誦此經信受持

- 이 경을 외우면서 믿고 수지하면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 처음 마음 발할 때가 문득 깨달음이다.


안좌여시국토해 安坐如是國土海

- 세상에 이와 같이 편안히 머무르니


시명비로자나불 是名毘盧遮那佛


- 이를 일러 비로자나불이라 한다.

 

 

 

마취 대신 최면 수술이 가능하다?! 최면, 그 원리는 무엇인가? | 기묘한 그알

 

 

보이지 않는 힘! 염력은 존재할까? | 기묘한 그알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초능력! 투시는 가능할까? | 기묘한 그알

탄허스님 만난 사람들이 증언한 '한반도 대예견'

"기미년인 올해 큰일 난다" 박정희 암살 예언…"66·77에 해방되고, 33·44에 통일"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8/08/30 [16:42]

탄허스님 만난 사람들이 증언한 '한반도 대예견'

"기미년인 올해 큰일 난다" 박정희 암살 예언…"66·77에 해방되고, 33·44에 통일"

박정대 기자 | 입력 : 2018/08/30 [16:42]

▲ 장화수 박사는 장 박사는 생전의 탄허스님과 나눈 대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를 가볍게 넘겨 단순한 예언이나 참설 따위로 폄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건의내막

 

탄허스님과 장화수 박사의 대담(對談)은 큰스님이 열반하기 전 ‘한반도의 미래관, 세계관 및 우주관’에 관해서 단둘이 숱하게 논의되었던 사실들을 장 교수가 그대로 사장시키기 아까운 비밀 사료들이라 아까운 대로 최소한만을 추려서 엮어 세상에 공개했다. 큰스님의 감춰 둔 크나큰 포부들을―무릇 3차원의 초능력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로 집대성해서 이를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최대공약수를 재구성하여 엮은 것.

 

장 박사는 이 대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를 가볍게 넘겨 단순한 예언이나 참설 따위로 폄훼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궁금증을 일으켜 고래로 고금동서를 통해서 수많은 참설(讒說)이나 비결(秘訣)이 횡행해 왔다. 예컨대 서양에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에 관한 5백년 전의 예언(豫言)이나, 우리나라에서 고려 때부터 전래되는 정감록 비결(秘訣)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탄허 큰스님(대선사, 대종사)께서 3차원의 차원에서 부차적으로 표명하신 ‘예언과 사상’은 마치 송나라 때 유명한 학승, 소강절(邵康節)에 비견할 만한 대학승의 성현으로 받들어서 손색이 없다"고 덧붙였다.

 

생전의 탄허스님을 만난 사람들이 증언한 '한반도를 내다본 스님의 대예견(豫見)'을 소개한다.


▲증언1: 최옥화 스님; 대원암에서 출가. 2011년 7월29일. 장소, 대전대덕 네이커피숍
“저는 스님이 예언자로 인식되는 것이 아쉽고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스님은 미래와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것은 스님이 처음에 유학부터 공부를 하신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유학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직전에 스님께서 그런 대화(예언)를 하시는 것을 제가 잠시 들은 적은 있습니다.”


▲증언2: 원행 스님 ; 월정사 부주지. 자광사·삼화사·구룡사 주지 역임. 2012년 11월5일. 장소 월정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탄허 스님은 불교만을 위해서 고민한 분이 아니고, 한반도만을 내다본 분이 아닙니다.…우주와 세계를 통섭하시면서 새로운 방향, 세계를 제시한 어른이십니다. 이런 것으로 볼 때 스님은 철인, 도인, 대학승으로 말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이 시대를 내다보는 예지로서 젊은이를 키워야 한다고 주력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 세계를 내다보시면서 추후, 40∼50년 후에는 계룡산이 이 땅의 중심이 된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청남대, 육해공군의 3본부가 들어간 신도안, 지금의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 등이 다 계룡산 근처입니다.


이야기를 바꾸어서 하겠습니다.…나는 20대에 세상이 싫어서 세상 종교를 방황하다가 탄허 스님을 대원암으로 가서 찾아뵈었습니다. 제 관상을 흘깃 보시더니 ‘멍청이’라고 소리쳤어요. 제 법명(法名)을 너는 떠돌아다녀야 되니 ‘원행(遠行)이라 불러라. 그런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해, 기미(己未)년이지요. 봄부터 기미가 있다, 기미가 보인다. 즉 금년 기미년에 큰일 난다고 예언을 하셨어요. 그런 일(박정희 시해)이 났네요.”  


▲증언3 진관 스님: 진관사 회주. 전국비구니회 수석부회장.  2011년 6월6일, 장소 진관사
“탄허 스님은, 우리나라는 평화통일은 안 된다고 그러셨어요. 북한의 변동을 말씀하시면서, 애들이 성냥갑 갖고 놀면서 불장난을 하다가 성냥갑 안에 불이 번져서 확 타버리는 듯한 그런 증세는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또 이북에 나이 젊은 사람이 무슨 장(長-김정은)이 돼서 변화는 있을 것이라고 그러셨어요. 그리고 천안까지는 조금 위험하고, 천안 아래로는 괜찮다는 말도 하셨어요.”

 

“박정희 총 맞는다” 미리 예언

▲증언4
“탄허 스님은 장화수 박사가 객원교수로 일본국 명치대학으로, 그 뒤 미국 버클리 대학으로 떠나기 직전 인사차 찾아뵈었더니, 단둘이 있는 좌석에서 손을 살짝 붙잡고 “박정희 암살예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1978년 2월).


☞“이보게 며칠 전 늙은 남자무당 하나가 찾아와서 큰절을 4배 하고는 다음과 같은 귀신들린 방언(放言)을 하지 않았겠나. 보기에 큰 귀신이 들린 신통한 남자무당(90%는 여자무당임)이기에 이런 때는 할(갈=喝, 스님들이 귀신 잡는 방법)을 일갈했지. ‘너 66·77에 해방되고, 33·44에 통일 되는 것 알아!’ 그랬더니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듯 미쳐버리더니 ‘큰스님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맞습니다. 김(金)가예요. 보입니다. 태극기 속에서 권총을 꺼내 쏩니다. 박 대통령이 죽습니다’라고 모골이 송연한 말을 내뱄지 않았겠나. 그런데 그해 10월26일 똑같은 시해사건이 서울 궁정동에서 일어났네. 이런 일을 체험해 보면 이 세상은 상식으로나 학술로만 통하지는 않는 일도 있구나 라고 여러 가지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네.”  


▲증언5
“큰스님은 마의(태자)관상법에 능통하셨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상(1978년)을 보시면서 ‘금(金)왕지절에 총 맞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눈 밑이 푹 패어서 허약하기 때문’이래요. (해설: 얼굴이 관상인데 코가 중앙토로 중심이고, 눈이 운세의 절반을 점한다고 하시면서, 예컨대 이마=목, 턱=화, 코=토(인중-人中), 왼쪽 눈밑=금, 우측 눈밑=수라고 함). 결국 눈밑이 푹 파였기 때문에 ‘금왕지절=음력8월(양력10월26일)에 총(금) 맞을 기미(증조)가 보인다’라고 귓소리로 말했어요. 아마 극비니까 나 혼자 들었겠지요. 불행하게도 적중했습니다.” 


그때 장화수 박사는 1978년 2월 야밤에 그런 예언을 듣고, 즉시 미국 버클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요. 그런데 뜬금없이 1979년 10월25일(미국시간) 그 암살 소식은 그날 정오에 NBC TV 뉴스를 통해서 확인되면서 큰스님의 영험에 탄복했습니다. 뉴스는 한국 서울 궁정 레스토랑에서 새벽에 프레지던트 박이 암살(어세시네이트-Assassinate)된 것 같다는 충격적 뉴스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격변을 초래했습니다.


▲증언6
“큰스님을 공양하던 대원암에 신통하기 이름난 서석보살(여자 고급무당-당시 군 고급장교들은 많이 알고 있었음)이 큰스님께 속삭이기를, 1974년 8·15 해방 기념일에 대통령께 위험이 닥친다고 암시를 주었어요. 그것도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지하철을 뚫기 때문에 땅기운(地氣)이 경련을 일으켜서 청와대에 해(害)가 온다는 문제였어요. 그런 다음 직언은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겨우 신도로 늘 찾아오는 서울지구 보안사령관에게 뱅이를 해보라고 했지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일개 대령 지위로 국란을 막을 도리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제일 쉬운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보살 왈 ‘굵은 미국 소금 한 댓박을 준비해서 서울역 앞에서 청량리역 앞까지 조금씩 뿌리라’ 하니까 지프차를 타고 그리 했습니다. 청량리역 지하철 개통(開通)하던 그날, 청량리역 지하철 개통하고 자리를 옮겨서 국립극장에 가서 대통령 연설 도중 문세광의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습니다. 하늘에는 보라색 노을이 졌어요. 이건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런 일화도 있었습니다." 

 

“한반도가 세계중심 된다”
 ▲증언7
“이건 또 풍수(風水)에 얽힌 야담 같은 미신이지만 대통령을 놓고 그럴 듯한 풍설이 돌았어요. 큰스님께서 몇 번 하신 말씀인데, 한양(서울)의 땅기운(地氣)이 대변화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었어요. 무엇보다도 땅굴(터널)이 서울의 안산(案山)인 남산(南山-목멱산)을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으니 균형을 잃고 안정을 해친다는 말씀이었어요. 거기에 지하철이 땅속을 뒤집고, 또한 청계천이 서쪽 인왕산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압구정동에 가서 한강과 합류하고 있지요. 그런데 엄청난 한강은 멀리 동쪽에서 서쪽으로 황해를 향해 흐릅니다.


지금 현재 강북 문제는 협소하고 장풍득수가 서울의 지기(地氣)를 해칠 바도 전혀 없을 뿐더러 한강 남쪽 중심으로 남산 이남의 거대한 면적에 수도권까지 형성되어 자연결정론적인 풍수(掌風得水)는 힘을 잃고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크고 작은 환란이 많았지요. 남산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사의 서거나, 청와대 옆 궁정동에서 있은 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해서 강북 중심의 풍수가 참설로 유비통신으로 횡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증언8
“큰스님은 늘상 한반도가 세계 중심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때 되면 국제적인 권능(權能)의 지도자(指導者)가 이 땅에서 출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말로 요순(堯舜) 시대에나 나왔던 ‘요임금이나 순임금’이 한반도에 나타나고, 한국은 그때 만주(滿洲)까지 우리 땅이 되어 영토가 늘어나며 만주 계룡산[흥안령산맥=봉천(奉天)]이 중심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반도는 보통 극동(極東)=원동(遠東)이라고 중국 사람들이 부르지만 실은 ‘극동(極東)=동극(東極)’, 즉 북극과 같은 동극(東極)이 되고 해는 동방에서 한국을 향해 뜬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청(淸)나라 황제가 되었던 누루하치가 너의 조상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백두산(장백산)을 가리키며 ‘바로 이곳이다’라고 소리치면서 ‘봉천(奉天, 하늘을 받든다는 뜻, 지금의 심양)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사실 조선족과 여진(만주)족은 가장 가까운 사촌관계 종족이라는 뜻이래요. 실제로 청나라와 조선은 백두산(白頭山)을 양국이 공유했고, 지금도 북한과 중국이 국경선(國境線)을 백두산 천지 한가운데로 경계 짓고 있지요.


큰스님은 일찍이 한국에는 ‘권능(權能)의 지도자’가 나와서 앞으로 남북통일을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지금 때는 임박했는데 천시와 지리와 인화가 미처 합치되지 않아서 무극(無極)과 같은 안개 속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피력하셨어요.


지난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에 기미·경신년에 12·12 사태가 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라고 큰 변란의 신군부(전두환·노태우)가 출몰했지만, 큰스님은 전혀 ‘권능의 지도자는 아니 나온다, 참된 인물은 이 땅에 통일(統一)이 되면서 출현한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신군부 이것은 통일을 위한 진통(鎭痛)에 불과한 허상(虛想)일 뿐이라고 간단히 설명했지요.”


▲증언9
“탄허 큰스님은 한반도 중심의 통일이 올 때, 전지전능할 만한 권능의 지도자가 나온다고 일갈을 하셨습니다. 항상 말씀하시길 ‘엉뚱한 지도자가 나온다’라고 표현 했습니다. ‘엉뚱한’이라는 표현이 오해를 살 만큼 해석이 구구한 갖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우리가 예상 밖의 일을 저지른다는 뜻은 결코 아니고, 가장 이상적이고 초능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人物)이라고 생각하면 합당하지 않을까 사료될 뿐입니다. 가장 좋은 의미에서 우리가 열망하는 구세주나 메시아에 비견하는 인물이 되겠지요.


필자가 직접 체험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979년 한국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변란이 혹심한 그 한 해 동안 필자는 미국 버클리대학에 연구(남북한 경제교류, 박사논문) 중에 있었습니다. 강연을 두 번 담당했는데, 봄철은 교양강좌로 ‘탄허 스님의 사상과 미래한국’이란 제목으로 사상과 예언을 강의하면서 색다른 관심과 크로스 문화에 젖어 있는 300여 학생 청중들이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겨울철이 오면서 12·12 사태가 난 직후에 유명한 스칼라피노 교수와 같이 두 번째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통역 놓고 한국말로 현 사태를 분석하면서 당면한 정치상황이 본국에서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해서 평가를 부탁 받았습니다. 나는 그때 탄허 큰스님의 평소 예언을 떠올리면서 즉석에서 “지금 한국에는 엉뚱한 인물이 누군지는 몰라도 새 지도자로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설파했습니다, 순간 장내는 큰 소리로 술렁이고 그게 누구냐고 소란했습니다. 사실 나도 모르는 소리를 지른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엉뚱한 지도자는 탄허 스님 말씀하시던 권능의 지도자였을 뿐, 과연 그런 것이 나올까 믿기지 않고 막연한 말이었지요.


그때 장내에는 비지팅 스칼라(방문교수)로 와 있던 서울대학 여러 교수들을 비롯해서 유학생들, 현지 정치인들, 미국 망명 중인 정치인들 및 미국 학계 관계자들이 있었지요. 군부정권의 결과는 후에 보니까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급전직하로 빠졌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권위’가 부여되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한국정치가 아이덴티티(주체성), 레지티머시(정당성), 콘센서스(합의성)를 최소한이라도 갖추기를 바랐으나, 겉만 좋은 사회정의만 나왔을 뿐 혼돈의 도가니로 빠지고 딕테이터십(권위주의 독재)으로 횡행했을 뿐이었지요.


그때 필자 강연의 본뜻을 파악했는지는 모르지만, 스칼라피노 교수는 호의적인 칭찬을 해주었고, 비지팅 스칼라들도 좋은 반응을 보였어요. 사실(결과) 큰스님 말과는 정반대 현실로 나타났을 뿐이었지만요. 5공화국으로 나타난 군부(軍府) 인물들은 권능의 지도자는 커녕 정상적인 보통 지도자도 아니고 국가의 주체성이나 정치의 정당성이나 국민의 합의성이나 그 어느 것도 없었지요.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이상향)는 그렇게 쉽사리 오지 않는다는 체험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지요.”

 

월악산의 통일 예언
▲증언10: 조선일보 조용헌 칼럼 탄허 큰스님 예언 인용
“월악산(月岳山)의 통일 예언<조용헌 살롱〔971〕>: 월악산 영봉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물에 비치고 나면 30년쯤 후에 여자 임금이 나타난다. 여자 임금이 나타나고 3∼4년 있다가 통일이 된다. 월악산(月岳山)이라 하면 충북의 제천과 충주에 걸쳐 있는 산이다. 월악산 일대 장년 식자층 사이에서는 통일을 예언하는 이 풍수도참(風水圖讒)이 진작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이 예언의 출처를 추적해보니 불교계 고승이었던 탄허(呑虛·1913∼1983)가 그 발원지였다.


탄허 스님이 1975년 무렵 월악산 자락인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덕주사(德周寺)에 들렀다고 한다. 덕주사는 신라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딸인 덕주(德周)공주가 머물렀던 절이다. 마애불을 덕주공주가 세운 것이라고 전해질 만큼, 덕주사는 망국공주의 한(恨)이 서려 있는 절이다. 탄허가 왔을 때 덕주사 주지를 맡고 있었던 월남(月南)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풍수도참에 기반을 둔 예언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황당한 이야기로 여겼음은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천시한다. 197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월악산 봉우리 위에 뜬 달이 물에 비친다는 이야기는 납득이 안 됐다. 주변에 큰 호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 임금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70년대 후반 댐 공사가 시작돼 1983년경 충주댐이 완성되는 게 아닌가!! 충주댐에 물이 차기 시작하니까, 월악산 달(月)이 드디어 물에 비치게 되는 것 아닌가.”

108만배·대작불사 신화 이룬 ‘신심·원력 존자’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6.06.24 12:35
  • 댓글 1

[행장] 은해사 조실 포산당 혜인 대종사…27일 영결·다비식

‘신심존자’ ‘원력존자’로 불린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조실이자 제주 약천사와 단양 광덕사 회주인 포산당 혜인 대종사가 23일 오후 9시20분 주석처인 은해사 기기암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4세 법납 60세.

[관련기사:은해사 조실 포산당 혜인 대종사 원적]

 

 

▲ 포산당 혜인 대종사

 

혜인 대종사는 1943년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에서 출생, 13세인 1956년 출가했다. 1957년 7월 팔공산 동화사에서 은사인 일타 스님을 계사로 동화사에서 사미계를, 1962년 10월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 선원에서 수행했다.

 

혜인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율사로 추앙 받는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평생을 은사처럼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20대 후반인 1971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하루 5,000배 씩 200여 일 만에 108만배 수행을 마쳐 화제였다. 혜인 스님은 108만배 수행 당시 무릎에서 고름이 나오고 코피를 쏟으면서도 절을 멈추지 않았다. 출가장부의 큰 뜻을 세운 혜인 스님은 108만배로 자신의 원력을 시험했다.

당시 해인사 강원에서 참선하며 먹지도 자지도 않는 스님에게 성철 스님은 “절을 하다 죽은 사람이 없으니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라”며 100만 배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8만배를 성취한 혜인 스님은 절이 신심과 원력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보았다. 제불보살을 예경하고, 스스로 뉘우치고, 우주 만물에 감사하고, 세상 대중의 행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몸직이 절이라고 스님은 강조했다.

 

스님은 “절을 하다 보면 이 세상에 존귀하지 않은 자가 없고, 버릴 것도 없고, 고마워 아니할 대상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혜인 스님은 당대의 큰 기도승이자, 국내외 여러 사찰의 초청을 받아 법문을 다니면서 비행기를 탄 횟수만 2,000번이 넘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님은 제방에서 수행하다가 1981년 고향인 제주도의 서귀포 중문단지 인근 11만여㎡ 부지에 동양최대불사로 꼽힌 약천사를 창건했다. 충북 단양에는 200만여㎡ 규모의 광덕사를 일궜다. 이 불사를 할 때 은사인 일타 스님이 ‘원만불사도중생(圓滿佛事渡衆生)’이라는 글귀를 내려줬다. 혜인 스님은 척박한 제주에 웅장한 도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귀포 최대의 감귤밭을 동양최대 불사의 현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바람이 심하고 비도 수시로 내린다. 야외에서 법회 등 행사를 치르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큰스님은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법당을 바라셨다”고 한다.

약천사 대웅전은 3,380㎡의 대지에 높이 29.5m 3층 규모(겉으로는 3층이지만 내부는 단층이다)로 동양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골격은 콘크리트 골조지만 팔작의 기와지붕, 다포식 공포 등 전통양식대로 지었다. 화엄사 각황전의 웅장함과 김제 금산사의 미륵전의 3층 기와지붕의 아름다움을 제주도에 실현시켰다. 15년만에 회향할 정도로 불사는 거대했다. 낙성된 약천사는 제주도의 랜드마크가 됐다. 뭍 신도는 물론 일본과 중국의 신도까지 찾는 국제적인 사찰이 됐다.

 

단양 광덕사는 중국의 낙산대불보다 더 거대하다. 혜인 스님은 2003년 10월부터 단양 도락산자락에 머물며 60여만 평의 광활한 부지에 광적사 백만불전을 조성했다. 혜인 스님은 이곳에 세계 108개국 불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국제신행도량을 가꾸기 위해 대작불사를 멈추지 않았다. 세계일화(世界一花)의 터전을 도락산 자락에 마련한 것이다.

 

 

 

포산당 혜안 대종사. 불교닷컴 자료사진

 

혜인 스님은 평소 “돈이 아니라 심심과 원력만으로 불사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혜인 스님은 친절한 스님으로도 통했다. 스님은 자신의 책 <신심>과 <원력>을 통해 “달라이라마는 불교를 친절한 마음이라고 했다.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을 곱게 해야 제대로 수양이 된 사람이다.”며 “잡초 씨를 뿌리면 잡초가 나고 꽃씨를 뿌리면 꽃나무가 나온다. 부처님의 가피력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고 염불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혜인 스님은 “누구에게나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는 것, 인과를 믿는 것이 ‘신심’이다”고 했다. 또 기도를 통해 얻어지는 ‘원력’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항상 작아지고 또 작아지고, 남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는 생활 속에 성취된다”고 말했다.

 

혜인 스님에게 절(寺)은 절(拜)이다. 혜인 스님은 “불교, 나아가 종교 전체의 핵심은 단 한마디로 압축하는 말, 바로 절이다. 절을 하는 그 속에는 상대에 대한 존경과 약속, 맹세 등이 오롯이 담겨있다.”며 “절(寺)은 그런 절(拜)을 하면서 마음수행하는 곳이다.”고 했다.

포산당 혜인 대종사의 분향소는 은해사 템플스테이수련관 육화원에 마련됐고 영결식과 다비식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은해사에서 봉행한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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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銀海寺 祖室 혜인 스님

“장가들라는 유혹도 있었지. 하지만 중 생활이 그것보다 더 좋았어”

글 : 김성동  

사진 : 서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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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가 교회나 사찰 밖으로 나와서 시위하는 모습은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
⊙ 200일 동안 하루 5000배씩 100만 배 올려
⊙ “승려는 경제권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자신이 세운 약천사 주지 내려놔
⊙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김수환 추기경

혜인
⊙ 71세. 만 13세에 출가.
⊙ 해인사 승가대 졸업.
⊙ 제주 약천사·충북 단양 광덕사 창건. 약천사·광덕사 회주.
⊙ 저서: 《신심》 《원력》 등.
  겨울 준비가 끝난 은해사(銀海寺)는 고요했다. 물기마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미처 제 본체와의 인연을 떨치지 못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그렇게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千年古刹) 은해사의 겨울은 바람조차 고독했다.
 
  사찰 종무소 직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흰 운동화가 있는 법당의 문을 두드리니 스님 한 분이 합장하며 우리를 맞았다. 그 스님은 우리가 찾는 세속 나이 만 71세 스님의 얼굴과 거리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혜인 큰스님 계세요?” 하고 물었다.
 
  어림잡아 오십 남짓의 나이로 보이는 그 스님은 “제가 혜인입니다” 하고 답했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의 얼굴 같기도 하고, 깊은 산자락의 밤을 당장이라도 깨울 만큼의 포효를 내지를 것 같은 호랑이의 얼굴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이에 비해 젊은 외모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여러 인상이 겹쳐 보이는 그가 은해사 조실(祖室·사찰에서 최고 어른을 이르는 말) 혜인 스님이었다.
 
  80개가 넘는 말사(末寺·큰절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를 거느린 큰절의 최고 어른이면서도 별다른 격식도 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그 모습 때문에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와 마주앉았다. 은해사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려니 그는 까다롭게 굴기 시작했다. 동행한 사진기자에게 “사진을 내 얼굴이 잘 보이지 않게 어렴풋하게 찍어 주었으면 좋겠다”느니, “차라리 뒷모습을 찍는 것은 어떻겠냐”는 등 잔소리로 느낄 수도 있는 주문을 먼저 했다. 물론 나중에 그의 그런 주문이 자신을 너무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평소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지만 말이다. 사진기자에 대한 주문에 이어 이번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적은 노트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인터뷰랄 것도 없이 그가 예상 질문과 답을 적어 놓은 노트만 들고 나오면 될 판이었다.
 
  혜인 스님이 직접 노트에 적어 놓은 첫 번째 예상 질문은 이랬다.
 
  ‘한국 불교계 중진이신 혜인 스님께 한마디 들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출가입산하여 일생(一生)을….’
 
  말줄임표(…)로 끝난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1956년 3월 제주 대정중학 1학년 때 마음씨 고운 누나가 먼저 출가하고 나서 항상 그리움…. 그후 1년 뒤 누더기를 입은 혜철 스님의 훌륭하신 법문을 들으면서 발심출가.’
 
  그가 첫 번째 예상 질문과 답변을 읽고 났을 때 기자가 “스님! 많이 바쁘신가 보죠?” 하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테고 해서 내 딴에는 미리 준비해 놓으면 시간도 절약하고 효율적일 것 같아서, 허허….”
 
  그의 웃음과 함께 우리는 기자가 묻고 그가 답하는 인터뷰 형식을 따르기로 했다.
 
 
  성철 스님, “절하다 죽은 놈 없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신라 헌덕왕 1년인 809년에 혜철 국사가 창건했다. 대웅전인 극락보전이 보인다.
  “큰스님!” 하고 질문을 시작하려는데 그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제가 1956년에 출가했으니까 2014년이면 중 생활 58년째요. 그래서 ‘중진 스님’이라고 하는 호칭에는 별 이의가 없지만 ‘큰스님’이라는 호칭은 아휴…! 그렇게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요?
 
  “제 자신이 쌓은 덕은 얇고 적은데 높은 호칭으로 불리면 뭐 합니까.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기에 결국은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언제나 남이 알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복과 덕과 지혜를 넉넉하게 쌓아야 합니다. 출가하여 지금까지 지내 온 제 자신을 돌아보면 아직 드러낼 만한 것을 쌓아 놓지 못한, 산중에 노구를 의탁하고 살아가는 그저 그런 중에 지나지 않습니다.”
 
  혜인 스님 본인의 말대로 그는 속세(俗世)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처럼 ‘산중의 그저 그런 중’에 지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이다.
 
  혜인 스님은 선(禪), 교(敎), 율(律) 삼장(三藏)을 겸통한 큰스님으로 존경받았던 일타(日陀) 스님의 제자다. 2013년 11월 24일 은해사에서 열린 ‘일타 대종사 제14주기 추모 다례재’에서도 혜인 스님이 문도 대표로 추도사를 했다. 한국의 대표적 고승(高僧) 일타 스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가 대단한 스님이라는 뜻은 아니다. 스승 일타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애쓰면서 스승이 걸었던 구도(求道)의 길을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100만 배(拜) 기도다. 1971년 3월부터 혜인 스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200일 동안 100만 배의 절을 올렸다. 하루 5000배씩 절을 올린 것이다. 100만 배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성철 스님에게 말했을 때 성철 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중간에 그만둘 요량이면 시작도 하지 말고 끝장낼 각오라면 한 번 해 봐라.”
 
  혜인 스님이 “하겠다”고 하자 성철 스님은 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절하다 죽은 놈 없고, 절하다 죽어 지옥 안 간다.”
 
  100만 배, 5000배, 200일…. 단순한 수치만 나열해 놓고 보면 100만 배가 안겨다 주는 육체적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간단히 108배만 해 보면 그 고통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하루 5000배씩 며칠을 하다 보니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왔다. 그때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성철 스님의 “절하다 죽은 놈 없다”는 말을 떠올렸다.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며 절을 했다. 어느 순간 자신이 이를 악물었는지, 무릎이 아픈 것인지조차 느낌이 오지 않았다. 무념무상(無念無想). 그렇게 200일이 흘렀고 100만 배를 성취할 수 있었다.
 
 
  약천사와 광덕사 佛事 일으키다
 
  불교계가 혜인 스님의 업적으로, 아니 혜인 스님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로 꼽는 일이 있다. 제주도 최대 규모 사찰인 약천사를 건립하고 충북 단양 도락산에 광덕사를 중창한 일이다. 고향이 제주인 혜인 스님은 3만5000평 규모의 약천사 불사(佛事)를 시작한 지 8년6개월 만인 1996년 9월에 완공했다. 종단의 지원을 받지 않고 그가 주변 신도들의 힘을 모아서 완공한 절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불사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는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을 만큼 유명한 사찰이 됐다. 약천사 완공 후 그는 “승려는 경제권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주지직을 내놓았다. 광덕사는 장차 국제총림으로의 발전을 목표로 불사가 진행되고 있고, 일부 완공된 시설만으로도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정도의 성취만 놓고 봐도 그를 ‘큰스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의 나이 71세다.
 
  —적어 놓은 답변을 보면 누이가 먼저 출가했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누나가 몸이 약했어요. 출가하면 몸이 좋아진다 해서 출가했던 거죠. 항상 누나가 그리웠습니다. 제일 착한 누나였거든요. 스님 생활이 뭐가 그렇게 좋은가 하고 생각하던 차에 혜철 스님이라는 분을 만나게 된 거죠.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왔는데 처음에는 거지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누더기 옷을 입은 스님에게서 굉장히 좋은 법문이 나오는 겁니다. 학교에서 듣는 것보다 더 좋은 말씀이 쏟아지는데… 나도 저런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누나가 출가한 지 1년이 지나서였어요.”
 
  —58년 스님 생활을 하면서 후회한 일은 없었습니까.
 
  “열여섯 살 때 강원도 연곡면 백운사에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출가를 했기 때문에 생전 지게질이라는 걸 해 보지 않았는데 거기서는 지게질을 많이 했어요. 그때는 감자하고 옥수수밖에 없어서 하루 밥 세 그릇을 못 먹었어요. 늘 배고프고 힘들었죠. 하루는 지게에 감자를 지고 옮기는데 코피가 주루룩 흐르는 거예요. 그때 출가를 말리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너 잘 생각을 해라. 너 지금 그 나이에 가면 고생 죽도록 한다. 더 있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거라. 어린 나이에 지금 가면 정말 너는 내버린 자식 취급을 받는다. 한 번 다시 생각해 봐라.’ 하지만 제가 그때는 걱정 말라고 큰소리 뻥뻥 쳤어요. 그런데 코피가 나니까 그 당시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내가 코피 쏟는 모습을 어머니가 보시면 울겠네’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하지만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갈 돈도 없고 지금 떠나면 집에서 다시는 받아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어머니 생각에 눈물만 흘렸죠. 58년 중 생활 동안 울어 본 것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하지만 고향이 그리웠던 거지 출가한 것에 대해 후회한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스승을 바꾸다
 
혜인 스님의 스승인 일타 스님이 생전에 노트에 빼곡히 적어 놓은 법문. 일타 스님은 손가락 4개를 불태워 바치는 연비공양 후 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해 글을 썼다. 일타 스님이 열반한 후 혜인 스님은 이 노트를 유품으로 받았다.
  혜인 스님은 스스로 “인복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처음 출가했을 때 혜인 스님에게 계(戒)를 준 스님은 제주에 관광을 온 스님이었다. 그 스님이 떠나 버린 후 그는 스승도 없는 중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제주에 다니러 온 어느 스님이 혜인 스님을 보고는 “얘는 누구 상좌냐” 하고 물었다. 다른 스님이 “얘는 임자도 없는 애니까 스님이 필요하면 데려가세요” 해서 그 스님을 따라서 간 곳이 강원도 백운사였던 것이다. 백운사에 가서 새로 계를 받았는데 그때 혜인 스님이 받은 법명은 청진이었다. 하지만 그 스승과의 인연도 오래가지 않았다. 일타 스님을 만나 혜인이라는 법명을 받고 나서야 그는 진짜 스승을 모시게 됐던 것이다.
 
  혜인 스님은 일타 스님을 만나기 전까지 출가한 지 15년이 다 되어도 양말 한 켤레 사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할 당시 다른 스님들은 불자들이나 도반(道伴)이 책을 사 주기도 하는데 자신한테는 책 한 권 사 주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먼저 출가한 누나를 찾아가 다른 비구니 스님들이 쓰던 책을 얻어서 공부해야만 했다.
 
  혜인 스님은 스물한 살 때 부산 묘관음사 선원에 입방(入榜)하게 됐는데 마침 하안거 해제 기간이라 그 절에 머무르지 못하고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오라는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혜인 스님은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은 200원뿐.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신발점’을 치기로 했다. 신고 있는 고무신을 벗어던진 후 그 신발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보자는 것이었다. 신발이 강원도 방향을 가리켰다. 생각해 보니 옛날에 있던 백운사가 떠올랐다. 혜인 스님은 그 길로 15일 동안 걸식을 하면서 부산에서 강원도 백운사까지 걸어갔다. 하루 평균 100리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까까중’이라고 놀려대고 사람 많은 곳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5~6일 지나고 나니까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민가에서 밥을 얻어먹을 때는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경도 외우고 염불도 외웠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까 신심(信心)도 깊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일타 스님을 어떻게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겁니까.
 
  “제가 군에 복무하고 있을 때 스승님을 바꾸게 됐어요. 여기서 구체적으로 말할 것은 못 되지만 청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신 스승은 제가 스승으로서의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스승과 헤어지고 나서 일타 큰스님을 합천 해인사로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이전 스승과의 일을 설명하고 ‘스님을 제 스승으로 해야겠습니다’ 했죠(웃음).”
 
  —흔쾌히 받아 주시던가요.
 
  “그 자리에 일타 큰스님 말고 다른 스님도 있었는데 그분이 ‘청진이면 진실한 사람이니까 거짓말은 아닐 거다’ 하시면서 거들었죠. 그랬더니 일타 스님이 ‘스승까지 할 건 없고 내가 모르는 것 있으면 가르쳐 주고 우리 형제처럼 같이 지내면 된다, 그리 하자’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스님은 형제처럼 지내세요. 저는 오늘 여기 방문을 나서면서부터 나는 일타 스님 상좌요 하고 소문 내고 다닐 겁니다’ 했죠. 나중에 위에서 제가 일타 스님의 상좌인지를 확인하러 와서 ‘상좌로 승낙했느냐’고 물으니까 일타 스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셨죠. 그렇게 저는 혜인이 된 거죠.”
 
  일타 스님 이야기를 하던 혜인 스님은 갑자기 “내가 정말 아무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는 거 보여줄게” 하면서 일어섰다. 잠시 후 그는 노트 한 권을 들고 와 펼쳤다. 일타 스님은 오른쪽 손 12마디를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연비공양으로도 유명하다.
 
  “이게 우리 일타 큰스님 글씨예요. 일타 큰스님은 손가락 4개를 불태웠기 때문에 이게 손가락 하나로 쓴 글씨예요. 손가락 하나로 썼는데 이 펜글씨 좀 봐요. 이게 예술이에요. 다섯 손가락이 멀쩡한 저보다도 더 잘 쓰셨잖아요. 나중에 제가 전시장에 전시하려고 합니다. 법문 같은 내용들이죠. 초서로 써 놔서 보통 사람들은 읽기 힘들어요. 저는 일타 스님 유품 아무것도 안 받고 이것만 받았어요.”
 
 
  코피가 쏟아지고 무릎에 고름이 고이던 100만 배
 
혜인 스님이 자신의 법문을 적어 놓은 노트 사이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이 끼여 있었다. 혜인 스님은 종교는 다르지만 김수환 추기경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100만 배를 결심하게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제가 군대에 가기 전에 부처님이 너무 고마워서 20일 동안 5000배씩 10만 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 후에 ‘100만 배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부처님과 약속을 했죠. 코피도 쏟아지고 무릎에 고름이 고이기도 했지만 참고 또 참으며, 그 참는다는 것조차 잊어 가며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켰죠.”
 
  —100만 배를 하고 난 후 뭐가 달라졌습니까.
 
  “100만 배를 하기 전에는 제가 말을 잘 못했어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제가 있던 절에 낙성식을 할 때 큰스님도 오시고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게 돼 있었어요. 인사말은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원근각처(遠近各處)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낙성식에서 인사말을 하는데 하도 떨려서 ‘에, 뭐냐 하면, 원근각처에서 많이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원근각처에서, 에 그리고 원근각처…’ 말이 안 나오니까 자꾸 원근각처만 한 거죠. 제가 생각해도 원근각처 외에 다른 말은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제가 두 번 다시는 말을 안 할 작정을 하기도 했어요. 남이 강의하는 걸 보면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떨지도 않고 잘하나. 사람 많은 데서 저렇게 말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나는 사람만 있으면 얼굴 벌게지고 덜덜 떨고. 절대로 인사말도 안 할 거다’ 하고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내가 말을 못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100만 배 후에 말문이 열렸다는 거죠?
 
  “그렇죠. 법문이 열린 거죠. 그 후로 육군사관학교나 논산훈련소 같은 수백, 수천 명을 모아 놓고 강의를 하는 데에서도 하나도 떨리지 않는 거였어요. 게다가 문장력도 늘었어요. 상량문도 제가 짓고 비문도 제가 짓고 있어요.”
 
  인터뷰 도중 혜인 스님의 노트에서 사진 한 장이 빠져 나왔다.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을 좋아하시나 보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존경하죠. 종교는 비록 다르지만 마음으로 존경하고 흠모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분 글 가운데 ‘나는 바보다’ 하는 말씀이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있어요. ‘야, 이 바보야.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나 걸렸다는 말이냐, 이 바보야!’ 하는 말씀이 참 좋은 말씀인 것 같아요. 누구든지 ‘사랑해야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가슴에까지 와서 그 사랑을 건네줄 수 있는 그때가 돼야 진짜 사랑을 느끼고 줄 수가 있는 건데 생각만 하면 뭐 합니까. 그 말씀이 참 좋아요.”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만 존경하는 겁니까.
 
  “아니에요. 저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육영수(陸英修) 여사 내외도 참 존경합니다. 제가 살아온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넘어 이렇게 천지개벽되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분이 박정희 대통령 아닙니까. 국정을 부정 없이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컨트롤한 분이 육 여사일 뿐만 아니라 한 여성으로 태어나서 자기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대통령이 맞아야 할 총알을 자기가 대신 맞고 돌아가셨으니까 자기 남편과 국가를 위해서 자기 몸까지 희생한 여성이기 때문에 그분이 대통령 못지않게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현 대통령인 그분들의 따님에 대해서는요.
 
  “제가 볼 때는 90점은 넘는 대통령이에요.”
 
  —그 90점이 넘는 대통령을 퇴진하라는 종교인들도 있는데요.
 
  “대통령 퇴진 운운은 종교인이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야당 정치인이라도 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하물며 종교인이 그런 말을 해야 합니까. 아마 하느님이 계신다면 통곡하며 한탄하실 발언이지요. 저는 천주교 신부들과 수녀들까지 모여서 이런 행동을 하며, 곳곳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중요한 정책을 정해 놓고 공사를 진행 중인 곳에 들어가 방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또한 일부 몰지각한 스님들까지 여기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면서 승복을 입고 다니기가 점점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이제 그만했으면 합니다. 물고기는 물 밖에 나오면 생기가 사라지는 법입니다. 종교가 교회나 사찰 밖으로 나와서 시위하는 모습은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임이 분명합니다.”
 
  —제주 출신인데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제가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해군기지는 잘 알아요. 독도를 지키고 이어도를 지키려고 하면 해군이 분명히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스님 생각이 그렇다면 실천불교승가회 소속 스님들 야단 좀 치시죠.
 
  “제가 야단쳐서 들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직 남아 있는 미움
 
대적광전으로 명명된 큰법당은 약천사의 중앙에 위치해 약천사를 대표하는 전각이다. 서귀포 앞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단일 법당으로는 동양에서 제일 크다. 약천사는 혜인 스님이 8년 6개월에 걸쳐 완공한 사찰이다.
  —스님에게도 미움 같은 것이 남아 있습니까.
 
  “아직까지 수행이 잘 안 돼서인지 정치인이든 파렴치한 인생들을 보면 아직까지도 미운 사람이 깨끗하게 정리가 안 됐어요. 그것까지 정리가 돼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까지도 소화를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죠.”
 
  —“스님은 경제권을 가지면 안 된다”면서 약천사 주지도 내려놓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건 신념이죠. 땅을 파고 건물을 지을 때 저는 포크레인 같은 존재예요. 포크레인은 땅을 파고 제 할 일을 다 했으면 다른 데 가서 일을 해야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흉물이 될 뿐이죠. 저는 자가용도 없어요.”
 
  —큰스님으로서 덕담 한 번 해 주시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말씀하신 팔만대장경 중에 아주 간단한 생활법문이 있습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이지요. 사랑하되 네 편 내 편 나누지 말고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참사랑이죠. 모든 사람을 내 친부모 형제 자식으로 여겨 눈물을 닦아 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비요, 불공입니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면서 만나는 중생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고맙고 감사하고 편안한 느낌을 심을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하고요. 저 바닷물이 모두 술이요, 저 낙엽들이 모두 돈이고, 지구가 전부 내 땅이라고 해도 사람의 욕망을 채울 수는 없는 법이죠. 이만하면 만족하다는 생각으로 욕심의 불을 끄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보람은 돈과 명예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혜인 스님의 덕담은 아주 길게 이어졌는데 덕담을 주는 그의 얼굴은 세상을 초월한 듯 평온해 보였다. 초탈한 듯한 그의 생각을 이전투구의 세상으로 다시 끌어내리는 질문을 던졌다.
 
  —스님! 혹시 장가들고 싶진 않았어요.
 
  “장가를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장가들라는 유혹은 두어 번 있었지요. 어린 나이에 출가를 했기 때문에 여자도 세상도 저는 잘 몰랐어요.”
 
  —알았다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불교에 대한 신심이 아주 대단했어요. 지금 정도 같으면 그렇게 했을 거요. 늙어서 부질없다는 걸 아니까 이런 말도 하지. 저는팔자가 스님이었나 봐요, 허 허 허.”
 
  스님의 방을 울리던 “허 허 허” 웃음소리. 그것은 공허한 웃음이 아니라 세속의 욕망을 이미 아주 멀리 넘고 넘어선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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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배원력보살 혜인대종사 [BBS 다큐]

 

 

 

 

 

 

 

 

 

 

 

 

 

 

 

 

 

 

 

 

 

 

 

 

 

 

 

 

 

 

 

[임사체험 실화/영화] Saved by the Light

유튜브 소개글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평생 동안 주먹질을 일삼고 약자를 괴롭히기만 하며 깡패로 살다가 어느 날 벼락을 맞고 임사체험(NDE: Near Death Experience)을 하게 된 대니언 브링클리(Dannion Brinkley)씨의 자서전, ‘Saved By The Light (번역서 – ‘죽음 저편에서 나는 보았다’, 정신세계사)’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 16번 카드, ‘The Tower’에 등장하는 이미지처럼, 말 그대로 번개를 맞은 후 죽다 살아나는 경험을 하며 정신을 차리게 되는 한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일시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사후세계를 본 브링클리는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온갖 만행을 파노라마처럼 지켜보면서 “미안해ㅠㅠ”를 연발합니다. 여러 임사체험자들이 증언하는, ‘지난 삶 점검하기’ 과정을 거쳤던 것입니다. 그 곳에서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받고 다시 삶으로 돌아온 그는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예전 같았으면 주먹부터 나갔을 상황이 찾아와도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랑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아는 것’은 ‘믿음’이나 ‘신념’보다 훨씬 강하고, ‘알게 된 후’에는 무지 상태였던 과거로 돌아가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빨간 약을 선택한 후 매트릭스의 진실을 알게 된 네오처럼 말입니다.

 

‘사후세계’, ‘임사체험’, ‘전생/환생’ 등은 무척 민감하고 종종 논란이 되기도 하는 주제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브링클리에 대한 비난과 논쟁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도 그의 ‘사기극’을 까발리고 있더군요. 어느 쪽이 맞는지는 각자 판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 브링클리처럼 직접적인 체험을 해 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쩌면 죽은 후에나 확실한 진실을 알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브링클리씨가 비록 흠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 놀라운 체험을 한 후 40년 가까이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탄압을 많이 받는 사상일수록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격언을 염두에 두시고, 열린 마음으로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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