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cope] 통신 대리점에서 스마트폰 주소·사진 옮겨달라 했더니…

  •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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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8.23 08:51

    삼성전자(005930) (1,247,000원▲ 12,000 0.97%)갤럭시S3를 쓰던 직장인 이상진씨(43)는 최근 SK텔레콤(017670) (271,000원▲ 1,000 0.37%)대리점에서 애플의 아이폰5S로 바꿨습니다. 이씨가 2년 넘게 사용한 예전 휴대폰에는 수백명 이상의 전화번호와 수많은 사진·동영상이 저장돼 있었고 이씨는 이를 새 단말기에 옮길 방법을 판매점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직원의 답이 흥미로웠습니다. 직원이 SK텔레콤이나 삼성전자가 개발한 프로그램 대신 ‘네이버 주소록’과 ‘네이버 엔드라이브’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추천해줬기 때문이죠. 이씨는 “이동통신 회사와 휴대폰 제조회사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정작 소비자가 꼭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와 앱은 제대로 개발하지 않아 네이버를 이용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네이버 주소록을 사용하면 갤럭시와 갤럭시, 갤럭시와 아이폰 등 스마트폰 종류에 상관없이 전화번호부를 간단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 /박성우 기자
    네이버 주소록을 사용하면 갤럭시와 갤럭시, 갤럭시와 아이폰 등 스마트폰 종류에 상관없이 전화번호부를 간단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 /박성우 기자
    유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민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교체시기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지만 소비자를 생각하는 휴대폰 제조회사나 이동통신사의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새 휴대폰을 구입할 때마다 데이터를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삼성전자 갤럭시S 시리즈 사용자가 전화번호를 옮기려면 키스(kies)라는 PC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스마트폰과 PC를 연결한 뒤 ‘동기화’를 시켜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LG전자 역시 ‘pc suite’라는 PC 프로그램을 통해 동일한 작업을 거쳐야 주소록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어렵고 번거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런 연결 없이 무선으로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사실 휴대폰 제조회사와 이동통신사들은 자체적으로 전화번호부를 별도로 저장해주는 앱을 이미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뒤늦은 출시시기와 홍보부족, 어려운 사용법으로, 이들 앱은 직원조차 모르는 처지가 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 갤럭시S5 출시를 이유로 ‘스마트 스위치 모바일’이라는 백업앱을 선보였습니다. 좋은 기능을 담고 있지만, 이 앱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LG전자(066570) (74,500원▼ 2,100 -2.74%)의 경우 고객센터에 문의하니 ‘네이버 주소록’을 추천하더군요.

    상황은 이동통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032640) (10,050원▲ 140 1.41%)는 각각 ‘T연락처’, ‘U+주소록Sync’라는 백업앱을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회원 로그인이 필요해 타사 가입자의 경우 사용하기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KT(030200) (33,800원▼ 850 -2.45%)의 경우 백업앱이 아예 없는 상태입니다.

    반면 네이버는 스마트폰을 교체할 때마다 전화번호부를 옮겨야 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2011년 ‘네이버 주소록’을 출시했습니다. 이 앱은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 iOS에서 모두 작동하기 때문에 갤럭시와 아이폰처럼 서로 다른 스마트폰간에 전화번호를 손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 주요 포털에서 ‘스마트폰 전화번호부 옮기기’라고 검색을 하면 네이버 주소록을 추천하는 게시글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앱을 내려받는 구글의 플레이스토어에서도 ‘전화번호’, ‘전화번호부’, ‘연락처’ 등을 검색하자 네이버 앱만 검색이 됐습니다.

    결국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비싼 휴대폰을 비싼 요금제로 판매하는 일에 매달리는 사이에 모바일 데이터 백업과 복구 시장을 네이버가 장악해 버린 셈입니다.

    네이버가 발 빠르게 주소록 앱을 출시한 이유에는 자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횟수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주소록, 캘린더, 일정관리, 가계부 등 비서 서비스를 통해 접속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자가 다른 서비스로 옮겨가지 못하게 붙들어두는 ‘락인(lock in)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죠.

    스마트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들이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시장을 내어준 사례는 더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보급되던 2010년 사용자들은 돈을 내면서도 40글자(한글) 밖에 쓸 수 없는 단문메시지서비스(SMS)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40글자를 단 한자만 초과해도 단문메시지(20원)보다 5배 비싼 장문메시지(MMS·100원) 요금을 청구하는 바람에 이용자들이 문자를 보낼 때마다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는 요금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눈이 어두워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스마트폰 제조회사도 이동통신사의 폭리 구조에 동조했죠. 그러는 사이 카카오(카카오톡)와 네이버(라인)가 이를 잠재울 모바일 메신저를 들고 나왔습니다. 현재 카카오톡과 라인의 사용자는 각각 1억5000만명, 4억90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1년 챗온을, 이동통신사도 2012년 ‘조이앤’이라는 모바일 메신저를 선보였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모바일메신저 시장이 이미 카톡과 라인에 넘어가 버린 뒤였습니다. 제조사와 이통사는 생산과 유통자라는 유리한 조건에서도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라인과 카카오톡에 넘겨 준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이동통신사가 조금만 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응했다면 휴대폰을 바꿀 때 주소와 사진을 옮기는 모바일 데이터 백업 시장을 네이버에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카카오톡이나 라인 대신 ‘삼성톡’, ‘SK텔레콤 톡’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소비자들은 여전히 전화기를 바꿀 때마다 주소와 사진을 옮기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통신회사나 스마트폰 제조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좋다면 그것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스마프폰 제조회사나 통신회사가 주소록 이전 같은 아주 기본적인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서, 1년 내내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복잡한 기능의 비싼 폰을 만들고, 느끼지도 못하는 속도경쟁을 벌이며, 값비싼 전화기와 요금제만 내놓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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