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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없다. 세상엔 몰라서 뒤틀린 자, 모르는 자, 조금 아는 자, 정말로 아는 자가 있을 뿐이다
세상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는 사람과 바른 길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내가 갈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양자의학/강길전> 양자의학에서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서로 합쳐진 것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음은 몸과 별개로 존재하는 실체이며 그것은 반드시 뇌에 위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마음은 몸의 크기만 하고 그것은 몸의 공간과 중첩되면서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xml:namespace prefix = o />
양자의학에서는 사람의 육체는 장기로, 장기는 조직으로, 조직은 세포로, 세포는 분자로,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중성자, 양성자 및 전자 등과 같은 소립자로, 소립자는 에너지로(E=mc^2), 에너지는 파동으로, 파동은 다시 초양자장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의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표면의식, 개인무의식, 집합무의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음의 질료는 소립자, 에너지, 파동 및 초양자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의학에서는 몸의 내부 구조 속에는 소립자, 에너지, 파동 그리고 초양자장 등을 갖추고 있고, 마음의 구조 속에도 소립자, 에너지, 파동 그리고 초양자장 등을 갖추고 있어 육체와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의학에서는 마음의 구조 속에 내포되어 있는 에너지는 물리적인 에너지와 동일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에너지와 같은 성질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마음 = 여러 가지 의식 + 〔 소립자 + 에너지 + 파동 + 초양자장 〕 ↑ ↑
에너지적 성질 정보적 성질
(psychic energy) (active information)
양자의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몸과 마음은 서로 분리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의 공대 교수 얀(Robert G Jahn)과 심리학 교수 듄(Brenda Dunne) 등은 의식은 양자와 같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의식이 입자 상태에서 파동 상태로 전환되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심성의학에서는 마음은 에너지와 같은 성질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의 공대 교수 쟌(Robert G Jahn)은 말하기를 마음이 입자(particle)와 같은 성질을 가질 때는 정체되어 있으나 마음이 파동(wave)과 성질로 변할 때는 모든 파동현상과 마찬가지로 체외로 방사하여 원격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마음은 물리계의 파동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은 물질에 가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심성의학에서는 마음은 에너지와 같아 몸 밖으로 방사하여 전자(電子)에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서 몸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통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표면의식에서 마음을 일으키면
표면의식의 마음의 내용이 개인무의식에 전달된다
개인무의식의 마음의 내용은 집합무의식에 전달된다
집합무의식의 마음의 내용은 육체의 정보-에너지장에 전달된다
육체의 정보-에너지장의 내용은 육체에 전달된다
빅터 만스필드(Victor Mansfield)는 우주의 허공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장(field)에 의하여 충만 되어 있는 것이며 이 장(field)은 양자 물리학적으로는 바로"양자파동(quantum wave)이라고 하였고, 융 심리학적으로는 집단무의식과 동일한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주의 허공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집합 무의식으로 충만 되어 있고 사람의 마음속에도 집합 무의식이 존재하고 있어 한 개인의 집합 무의식의 내용은 인류 전체의 집합 무의식으로 전파될 수 있다고 하였다.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주장하기를 첫째, 우주의 허공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초양자장(superquantum field)으로 충만 되어 있다고 하였다. 둘째, 초양자장으로 충만 된 우주는 하나(oneness)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비국소성 원리라고 불렀다. 셋째,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초양자장으로부터 분화되어 생기며, 이렇게 하여 생긴 존재는 크게 3 가지 부류, 즉 정신계, 에너지계, 물질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데이비드 봄은 초양자장은 다른 말로 "능동성 정보"라고 표현함으로써 불교에서 말하는 심(心)과 매우 비슷하게 풀이하였다.
에너지 구조란 인체를 구성하는 장기는 장기장(場)이 있고, 장기를 구성하는 조직에는 조직장(場),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에는 세포장(場),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에는 분자장(場),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에는 원자장(場), 원자를 구성하는 전자, 양성자 및 중성자는 전자장(場), 양성자장(場) 및 중성자장(場), 양성자 및 중성자을 구성하는 쿼크에는 쿼크장(場) 등이 있다고 하였으며 이와 같이 장(場)이라는 이름이 붙는 구조를 에너지 구조라고 하였다.
심적 구조는 몸의 크기와 비슷한 공간에 몸과는 중첩되어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에너지(spiritual energy)로 구성된 존재라고 하였다.
일본에서 발표한 것인데 마음은 파동이기 때문에 마음의 종류에 따라 그 파동의 진동수가 다르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부정적 마음의 파동은 인체의 각 조직 및 장기 중에서 비슷한 주파수와 공명하여 그 조직 및 장기에 질병을 야기시킬 수 있다고 한다.
노여움(화) : 간 질환, 담도 질환, 눈 질환 걱정(한숨, 답답함) : 폐 질환, 대장 질환, 코 질환 지나친 기쁨(섹스, 식탐) : 심장 질환, 소장 질환, 혀 질환 공포(놀람, 두려움, 겁) : 혈액순환 장애, 신 질환, 방광 질환, 귀 질환
<만들어진 신 (God Delusion)/리처드 도킨스> 유신론 : 초자연적인 지성이 우주를 창조했고, 이 지성이 여전히 자신이 창조한 것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이신론(理神論) : 초자연적인 지성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만드는 일에만 관여할 뿐 인간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범신론(汎神論) : 신=우주나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
유대교는 원래 사막부족의 배타성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유독 사나운 신을 섬기는 한 부족의 신앙이었다. 바울은 이 보다는 덜 무자비하며 덜 배타적인 유대교의 한 종파로서 기독교를 창시하였다. 몇 세기 뒤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유대교 본연의 비타협적인 일신교로 회귀하여 이슬람을 창시하고, 유대교와 기독교 경전을 차용하여 코란을 만들고 군사 정복을 통해 신앙을 전파한다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덧붙였다.
호전적인 ‘전쟁의 신’을 섬기는 부족은 평화와 조화를 역설하는 신을 섬기거나 신을 섬기지 않는 부족과 전쟁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순교하면 곧장 낙원으로 간다고 굳게 믿는 전사들은 용감해지며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 때문이다. 결국 승리한 부족은 가축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첩으로 소유하게 된다. 결국에는 더 크고 많은 수의 부족이 같은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의 전능을 발휘하여 우주 역사의 경로에 미리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가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즉, 신은 역사에 개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원론자는 물질과 마음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반면에 一元論자는 마음이 물질의 한 표현이며 물질과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
다윈 주의 논리는 자연선택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한 단위가 이기적인 경향을 가지게 된다고 결론 짖는다. 생물은 이타적 행동을 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이기적 생존을 도모하는 상황들도 많이 있다.
종교는 분명히 분열을 조장하는 힘이며, 그것이 종교에 가해지는 주된 비난 중 하나이다. 인도가 분리될 당시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폭동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누가 누구를 살해할지를 정하는 꼬리표는 종교적인 것 밖에 없었다.
세네카는 “종교는 평민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들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들에게는 유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라고 했다. 온건한 종교의 가르침은 비록 그 자체로는 극단적이지 않아도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공개 초청장이 된다. 진정으로 유해한 것은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행위이다. 신앙은 그 어떠한 정당화도 요구하지 않고 어떤 논증도 거부하기 때문에 ‘악’이다. 의문을 가질 수 없는 신앙이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을 미래의 성전이나 십자군 전쟁을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자라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가능한 이들에겐 이 인식이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 내는 힘이 되지만, 이러한 인식조차 없는 사람들에겐 종교가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내는 힘이 된다. 따라서 길은 자명하다.) ------ <기와 과학/홍야>
* 식과 기 식(識) = ‘정보 그 자체’와 ‘정보를 교환(처리)하는 능력’à능동정보. 작용으로서의 ‘기’가 있으려면 그 근원인 ‘식識’이 있어야 한다. 소립자는 질량, 전하, 스핀 등의 알려진 물리적 성질 이외에 미소하나마 <식>을 가지고 있다. <식>은 `의지'를 가진다. <식>의 의지는 외부에 <기>로서 영향을 미친다. 즉 <기>라는 외부작용을 가진다. 생명체의 탄생은 근본적으로 소립자의 <식> 즉 `의지`가 작용 함으로서 가능하였다.
의지 : 주체적으로 내부에서 외부로 경향, 꼴림 이라는 형태로 '기`를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기 = `꼴림, 하고자 함'. 기는 의지에서 발휘되어 나오는 것'이지 의지 그 자체는 아니다. 기는 외부에 정보의 형태로 작용한다. 기도 일종의 파동과 유사하거나 같은 형태라고 보는 것이 가장 오차가 작을 것이다.
* 정보 엔트로피=무질서, 부의 엔트로피=정보=질서 엔트로피 + 정보 = 엔트로피의 최대 값(=상수) 이므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말은 곧 정보가 감소한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때 엔트로피는 절대로 감소할 수 없는(물리학에 의하면) 양이므로, 그렇다면 정보는 항상 감소하기만 하며 절대로 증가할 수 없는 양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닫힌 계>, 즉 한정된 부분에 국한할 경우에만 성립하는 법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풀린다. 우리가 머리 속의 정보의 양을 증가시킬 때에는 머리 바깥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이므로 머리 속에 보유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얼마든지 증가시킬 수 있다. 물론 우주 전체를 하나의 <닫힌 계>로 설정하면 우주 전체의 정보는 증가할 수 없다.
생물이 섭취하는 것은 부의 엔트로피(정보)다. -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정보의 특성은 한 마디로 무형의 영향력 이다. 그 자체로서는 힘이 아니지만 상대에게 영향을 가할 수 있다. 정보는 에너지도 물질도, 정신도 육체도 아닌 <제3의 존재>다. 양자이론에 의하면 사물은 우리에게 <관측되는 정보>로서 존재할 뿐이다.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파동이다. 존재의 정의는 ‘차이(差異)’이다. 주변 혹은 다른 존재와의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차이에 의해서 주변과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정의한다. 물론 ‘차이’와 ‘영향력’은 동일한 것이다. 파동은 순수하게 ‘차이’만으로 존재한다. 현대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으로서 모든 존재와 힘을 한꺼번에 해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도 소립자와 힘 모두를 극히 미세한 끈의 진동으로 해석하려는 이론이다.
염력은 의식으로부터 물질로 정보가 이동하는 현상이다.
* 마음 카오스 계의 예측불가능성이 우리에게 일종의 `의사(疑似)자유의지'를 부여한다. 이 예측불가능성은 카오스 계의 초기조건에 대한 고도의 민감성에서 나오는 것인데, `미래 - 자신의 다음 판단과 행동 -을 알 수 없으므로' 그것이 결정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라는 생각이다.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은 생각이다. 그러나 예측불능성이 비결정적인 것이라 오해하면 안 된다. 카오스 계가 아무리 예측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초기조건에 의존한다. 즉 초기조건이 결정되면 그 이후의 진행은 `기계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카오스 계 자체가 어떤 임의의 행동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소립자 모든 물질은 그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인 분자로, 분자는 다시 92종의 원자로, 원자는 전자와 양성자와 중성자로,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로 분해할 수 있으며, 그래서 모든 물질은 전자로 대표되는 여섯 종류의 경입자(렙톤)와 여섯 종류의 쿼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립자의 상호작용, 즉 ‘힘’은 힘을 전달하는 소립자들의 매개작용임을 밝혀 내어, 인간의 지식 범위를 자연의 궁극점 가까이 까지 도달하게 한 것은 환원주의 과학의 위대한 업적이다.
소립자는 관측되기 전에는 확정된 상태가 아니다. 이 상태에서 소립자는 입자도 파동도 아니며, 전하, 스핀 등의 기본물리량도 미정인 것이다. 소립자가 관측에 의해서 확정될 때에는 <정보>를 필요로 한다. 이 <정보>가 전하, 스핀 등 소립자가 하나의 ‘소립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다. 소립자는 항상 짝을 이루어 생성-확정-소멸하므로, 함께 생성된 두 개의 소립자 중 관측되는 하나는 관측자의 ‘의지’와 상호 작용하여 정보가 확정되며, 다른 하나는 관측된 소립자의 정보를 관측 순간에 즉시(초광속은 거리에 관계없이 순간적이다) 전달받아서 확정된다.
소립자가 관측에 의해서 확정되는 과정, 즉 파동함수의 수축(state vector reduction)은 확률적이다. 관측자의 입장에서 ‘확률적’이라는 것은 곧 소립자의 입장에서 ‘임의적’이라는 것과 동일하다. 소립자의 주체성, 즉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립자의 기본적 성질--질량, 전하, 스핀 등의 기본 물리량은 소립자의 <정보>이다. 파동-입자 상보성, `하나의 통합체'적 성질, 불확정성 원리가 말해주는 소립자의 자유 의지 등은 소립자의 <정보>가 수동적인 ‘상태’로서의 <정보>가 아니라 ‘정보 처리 능력’을 포함한 능동적인 기능임을 보여준다. ‘임의성’, ‘확률’ 등은 소립자의 ‘의지’, 즉 <기>이며, 소립자의 ‘식’은 이 모든 성질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 : △t(시간) x △E(에너지) ≥h(플랑크 상수), 플랑크의 상수는 극히 작은 양이다. 에너지가 작은 입자라면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에너지가 큰 입자라면 짧은 시간 동안 잠시 스스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인 `플랑크의 시간' 10의 마이너스 43승 초 동안이라면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우주)도 공간 속에서 혼자서 생겨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진공을 상상한다면 진공이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무수한 것'들이 순식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 아니, 이것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소립자는 관측되기 전까지는 일종의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므로 크고 작은 파동들이 물결치는 큰 바다와 같은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야 할 것이다.
입자의 `물질성'은 파동-입자의 상보성으로 이루어지며, 입자 전체는 물질-식(정보)의 상보성으로 이루어진다.?(Bell의 정리 및 그 실험결과에 대한 페이겔스 등의 해석으로부터).
소립자의 상호작용(힘)은 소립자의 `물질성'이 발휘하는 물리적인 힘이다. 소립자의 기는 물리적인 양으로서 측정이 불가능한 `식의 전달', 다른 말로 `정보의 전달 현상'으로서 나타난다. 관측자와의 교응, EPR paradox에서 두 입자의 초광속 정보전달 등이 그 보기이다.
소립자는 외부의 자극 -- 상호작용, 관측--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의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생각이나 행동--을 다만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꼭 같이 소립자의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 역시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소립자가 그 존재의 일부를 관측에 의해서 드러내더라도 그 시점에서 결정되는 소립자의 존재는 소립자의 `꼴리는 대로'이지, 관측자든 누구든 그것을 간섭하거나 강제할 수 없다. 또한 소립자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다. 소립자의 성질과 작용은 시간 대칭적이고 가역적이다. 이중 틈새 실험에서 보았듯이 소립자는 틈새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를 인식하고 구별할 수 있다. 소립자는 심지어 관측자와 교감하여 필요에 따라서는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과거를 변경하기도 한다.
* 소립자와 의식과의 관계 열역학 제 2 법칙,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닫힌 계>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열린 계>에 있어서는 질서의 창출효과를 발휘한다. 이 때 그 “계”는 외부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 즉 외부의 질서를 흐트러지게 함으로서 자신의 질서를 구축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계의 구조적 특성을 <소산(또는 산일)구조 dissipative structure>라고 표현한다. 열역학 제2법칙은 “비가역성”이 그 근원이다. “비가역성”은 “무작위성”을 낳고, “무작위성”은 “불안정성”을 초래하며, 이 “불안정성”이 “자기조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역성”은 (계의)단위입자들의 동역학적 고찰로서는 유도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비가역성”은 물리학의 기본 단위인 소립자와 또한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운동의 법칙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그래서 “비가역성”은 -- 그리고 열역학 제 2 법칙은 제 1 차적(기본적) 법칙이 아니라 제 2 차적 법칙이다. “비가역성”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시간 비대칭성”이다. 물리학의 모든 기초법칙들과 상호작용은 기본적으로 “시간 대칭적”이다. “시간”이란 것은 인간이 인과율에 의해서 인식할 수 있는 “개념” 또는 “현상”이지 소립자나 시공간의 기본적 성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간은 공간처럼 길게 펼쳐져 있는 사건들의 무대이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있는 현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추론이 나온다. 즉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미래의 정보를 얻을 수 없으므로 ’미래‘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자연 현상은 시간에 대해서 대칭적이다. 이 사실의 의미는 시간이 지금처럼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든, 그 역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흐르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 이론적으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는 <시간 대칭성>이라 한다. 이처럼 시간의 근거는 자연 현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다만, 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한다‘라는 현상으로부터 우리는 모든 사물의 변화의 배경에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모든 현상에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린다) <시간>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방향성‘이 있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소위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시간 비대칭”은 어디에서 유래되는 것일까? “시간 비대칭”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바로 <의지>다. <의지>란 <인과율>에 있어서 원하는 바대로의 <결과>를 창조하기 위해서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조정하려는 `꼴림'이다.
소립자의 식이 작용, 개입한 확률적인 인과율은 비가역성을 창출하여 “원인의 후에 오는 결과”로서 우주에 시간의 눈금을 새겨 나가는 것이다(열역학적 시간의 화살). “비가역성”은 프리고진과 과학자들이 고심할 필요가 없이 이미 물질의 식과 기 속에 새겨 넣어져 있는 것이다.
사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상한 법칙이다. 이것은 <비가역성>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법칙이 왜 성립하는가를 뒷받침 해주는 뚜렷한 이론적 근거는 없다. 천재 푸앙카레가 이미 `확률에는 시간의 방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의 기본인 소립자에서 비가역성을 찾지 못한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결국 소립자의 식과 기를 인정하지 않으면 카오스 이론도, 열역학 제2법칙도 그 뿌리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파동함수 상태의 소립자가 ‘자유’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파동함수 상태의, 즉 ‘미결정’ 상태의 소립자는 확률분포에 따라 다양한 위치에 나타날 수 있다. 즉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파동함수 수축 이후에는 물론 결정된 상태이다. 이것은 마치 처녀가 여러 배우자 후보들을 가지고 있다가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 이전의 선택권이 모두 일시에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다시 그 이전의 ‘자유로운 선택권’의 상태로 돌아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가역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감소>하는 것을, 그리고 그 법칙을 확장한 이론인 프리고진의 <산일구조 이론>과 카오스 이론은 <창발>, 즉 <덧 생겨난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그 <감소>와 <창발>의 합은 여전히 제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 엔트로피의 증가량 = 창출된 의식(정보의 총합) >인 것이다. 이것으로서 우리는`전체>부분의 합`이라는 환원주의와 전체주의 이론의 모순적인 부등식을 <전체 = 부분의 합>이라는 합리적인 등식으로 대체할 수 있으며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보존의 법칙과 모순 없이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의식의 형성과 작용에 대한 나의 가설을 정리해 보자. 소립자가 모여서 생명체를 만들 때, 소립자의 식은 그 생명체의 의식을, 소립자의 기는 생명현상을 만든다. 그 과정은 프리고진이 밝혔던 바, 복잡 계의 자기조직화 효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해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엔트로피의 증가는 정보의 감소를 나타내며, 이때 감소되는(것처럼 물리적으로 관찰되는) 정보는 소립자의 식이 다른 식과 가지는 <관계>, 즉 <정보>이다. 이것이 보존법칙에 의해서 물질과는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의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명과 의식은 상호보완적으로 <생명체>를 구성하고 유지한다. 생명현상은 죽음 즉 소립자가 다시 흩어질 때 사라지지만 의식은 보존법칙에 의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질 측면에서는 `from particle to particle'로 원 위치한 것이므로 생명현상은 사라져야 하지만, 의식은 이미 소산된 엔트로피가 보존되어야 하므로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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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지구상의 생명은 약 45 억 년 전 지구가 만들어진 이후 불과 7억 년 만인 38억 년 전 무렵에 생겨났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 바이러스 하나가 원시 지구의 유기물로 가득 찬 바다 속에서 1 억 년 내에 저절로 조립될 확률은 10의 200만 제곱 분의 1에 불과하다. 가장 간단한 바이러스의 DNA 조각 하나를 `우연히' 만들려 해도 150억 년의 우주 역사와 지름 300억 광년의 우주의 크기를 가지고서는 너무 작아서 도저히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탄생의 과정은 아직까지 과학의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창조신에 의한 <창조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가 그래서 이다.
바이러스와 세균 : 세균은 핵과 여러 가지 소 기관들을 갖추고 체세포 분열처럼 핵을 증식시키고 분리 시키며 그 수를 늘려가는데 비하여 바이러스는 유전자 정보, 즉 RNA 혹은 DNA만을 가지고 숙주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할 수 없는 단백질 형성을 대행시키면서 그 수를 확장시킨다. 자체적으로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공장을 가지고 새로운 개체를 생성하는 세균과 달리 바이러스는 틀만 가지고 남의 공장에 침입해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낸다. 세균은 사이즈가 커서 우리 체내의 세포 안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고 상처가 나거나 흠집이 나면 침입을 하는 것에 비하여 바이러스는 친화성이 있는 조직의 세포 속, 우리 체내 세포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수를 증식시키고, 그것에 의하여 세포가 파괴되며 질병을 유발시킨다.
DNA가 필요한 분자(영양소)들만 있으면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기계론>의 강력한 받침이 된다. 생명관련 3대 난제 : DNA라는 분자 수준의 극미세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의 전사, 복제가 어떻게 10 Cm 단위 크기의 태아 몸에 대하여 전체적인 조정을 할 수 있을까?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중추신경계의 작용(의식)이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의 경우라면 60조 개의 세포 하나 하나에 제 각기의 임무를 부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최초의 수정난자의 DNA에 들어 있으며,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의해서 성장이 완료된 후의 60 조 개의 체세포 하나 하나에도 모두 동일한 프로그램이 역시 그대로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모순이 아닌가? 분명히 모순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상황이다. 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장 흔한 생물현상에 관한 연구 결과, 세포는 그 핵(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부분)과 세포질 사이에 다이나믹한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핵 유전자의 형질발현을 위해서는 먼저 세포질로부터의 시그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는 DNA라는 설계도대로만 시공되는 것이 아니라, `공사 진행' 시의 주위 여건에 따라서 영향을 받아 시공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 형태 창조 장 형태 창조 장은 전자기장, 중력장처럼 `공간의 어떤 틀'로서 `장'내에 있는 물질(세포)에게 형체를 형성할 수 있는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의 태아를 위한 장, 물고기 알을 위한 장 등 모든 생물의 종류에는 각각 <형태 창조 장>이 준비되어 있어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작용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화에 의해서 종이 변경될 경우에는 그에 맞는 <장>이 새로 창조된다는 것이다. 얼핏 <삼신 할머니>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생각을 서양의 생물학자가 발상했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 정도로 이 문제는 중요하다.
셀드레이크의 가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형태창조장>은 일단 형성이 되면 다른 곳에서도 같은 <장>이 만들어지며, 그것에 의해서 다른 곳에서도 동일한 형태(생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형태적 공명 morphic resonance>이라 이름지었다. <형태창조장>을 입증할 수 있는 한 사례 : 일만년 정도의 문명 차이가 나는 아프리카 오지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문명인과 같이 교육시키면 그 학습진도는 동일à진화론에 위배. 글리세린의 결정화, 고구마 씼어 먹는 일본 원숭이, 셀드레이크의 쥐 미로시험à획득(후천)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라는 유전의 법칙에 위배
* 사후식의 세계 최근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뇌는 미소한 크기의 모듈 module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모듈 별로 담당 임무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그 얼굴 생김새를 기억하는 모듈, 목소리를 기억하는 모듈, 대화 내용을 기억하는 모듈 등에 나누어져서 기록 저장되며, 이 모듈들은 인터넷처럼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된다. 다음에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때에는 해당 모듈들의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하여 전체적인 기억을 살려 내는 것이다. 식(의식, 사후식)들은 홀로그래피 방식이 아니라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후식들이 네트워킹의 통로 또는 회로로서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기>다. 그러므로 <기>와 시냅스의 성능을 비교해보면 사후식의 네트워크 수준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냅스는 하나의 뉴런에서 수천 개가 나올 수 있다. 즉 하나의 뇌 세포는 수천 개의 다른 세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백 수십 억 개의 뇌 세포가 각각 수천개씩의 다른 세포들과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상상해 보라! 그래서 인터넷처럼 일부의 연결회로가 끊기더라도 다른 회로를 통해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인터넷이 생긴 동기가 전쟁 시에 컴퓨터의 네트워크 일부가 파괴당하더라도 전체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사후식은 에너지원이 없으므로 그냥은 자신을 향상시킬 수 없다. 에너지를 공급받는 길은 생명을 통하는 방법뿐이다. 따라서 사후식은 `인연이 될 때' 물질계로 윤회하게 되고, 살아 있는 동안 정보의 축적으로 스스로를 향상시킨(비유하자면 에너지를 공급받은) 다음 우주식으로 돌아가서 전체 네트워크에 자신이 향상된 만큼을 기여할 것이다(여기서 의식의 에너지는 소립자들로부터 나오는 식을 말한다. 물리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외부의 입력과 스스로의 판단, 그리고 의지에 의한 행동으로 자신을 키워 나간다. 이 과정에서는 물리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 즉 생명이다.
우리의 의식은 다른 의식과의 교감(정보 교환)을 원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러한 교감은 자신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자연계에서 <선>의 근본(素子)을 찾는다면 “관계의 욕구”라는 형태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식, 즉 사후식의 네트워크에도 당연히 동일한 추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 또는 적어도 협동이 네트워크에 필요한 선일 것이니까.
지금까지 말씀 드린 대로 소립자의 식이 모여서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통해서 의식을 형성하고, 의식들이 모여서 우주식을 만든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들이 `우연'뿐만이 아니라 <식>의 본질적 성질인 <의지--기>가 작용하여 생기는 목적적 결과다. 따라서 “우주의 목적”은 곧 “우주식의 형성과 발전”이며, 이것은 생명계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 <섹스의 진화/제러드 다이아몬드> 인간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나누며, 배란이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일어나며, 50세 무렵의 여성 대부분이 폐경기를 겪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여성이 거의 항상 섹스를 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며, 섹스가 쾌락의 원천이다.
배란이 감추어지게 된 것은 아직 우리의 조상들이 난교(상대를 가리지 아니하고 문란하게 성행위를 함.)나 하렘(한 마리의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 집단)과 같은 짝짓기 방식을 따를 무렵이었다. 당시 감추어진 배란은 우리의 조상이었던 여성(실은 원숭이의 암컷)으로 하여금 다수의 남성들에게 성적 즐거움을 나누어 줄 수 있게 만들었고, 남성들은 어쩌면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피를 받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추측으로 그 여자가 낳은 아기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게 되었다.
(배란이 감추어지게 된 이유 : 고등 포유동물 이상에서 대뇌 신피질이 발달해감에 따라 인식(생각) 능력이 신장되고, 생존활동 속에 수반되는 스트레스도 이 신장된 인식 능력에 비례하여 더 많이 더 강하게 대뇌 신피질에 저장되게 됨에 따라,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좀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진화적 장치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진화적 장치가 바로 언제든지 섹스를 할 수 있도록 배란을 감추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섹스의 진화 방향이 단순히 쾌락의 기능이 점점 강화되었다기 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의 기능이 점점 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부 일처제가 보편화된 이유 : 인간사회의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서 부족사회화하는 단계에서 무리사회를 지탱해 나감에 있어 난교나 하렘식 짝짓기 방식보다는 일부일처제가 좀 더 안정적인 시스템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원시공동체 사회의 공동생산 및 공동분배형 사고방식이 현대까지 남아있는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쾌락의 원천으로서의 섹스는 남성과 여성이 무기력한 상태의 아기를 함께 기르도록 함에 있어 그 둘 사이를 하나로 묶어 주는 접착제 혹은 보상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여성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아이의 수가 많아지게 되고, 그 아이들을 돌보아 온 시간은 더 길어지고 더 많은 투자를 한 셈이 되기 때문에 임신을 했을 때 감수해야 할 위험이 더 커지는 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여성 자신이 출산 중이나 출산 후에 죽게 될 위험과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죽거나 손상될 위험 역시 증가한다.
우리 인간은 수억 년의 척추동물의 진화 속에서 성적 습성의 깊은 곳에 아로새겨놓은 유산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종교, 예술, 언어, 문화 등은 그러한 유산 위에 덮인 얇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적 위기는 인간이 동물에 비해 자신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우월적 존재로 보는 시각에 그 뿌리가 있다. 진화의 흐름을 살펴보면 인간도 거대한 흐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위치를 인정함이 필요하다.)
(성(性)은 깨달음의 길로 감에 있어 대단히 불안정한 수단이다. 마치 핵폭탄처럼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이 본업이랄 수 있는 불교와 천주교의 성직자들에게서 조차 금단의 영역화 되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인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통해 성(性)행위를 드러내지 않도록 진화되어왔고, 성(性) 욕구가 이성적 통제가 가능한 신피질에서가 아닌 뇌간에서 제어되기 때문에 누가 잘 쓰고 못쓸지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성(性)을 깨달음의 길로 가는 수단에서 제외하고 과연 깨달음이 가능할까? 삶 전체를 들여다 보지 않고도 이 삶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뇌의 진화/한스-케오르크 호이젤> 인간의 뇌는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가장 깊숙한 곳에 뇌간(파충류의 뇌)이 있고, 그 뇌간을 대뇌 변연계가 둘러싸고 있고, 가장 바깥 쪽을 신피질이 둘러싸고 있다. 먼저 인류로의 진화 초기에 파충류와 같은 수준의 '파충류의 뇌'인 뇌간이 형성되었고, 그 위에 포유류 공통의 '대뇌변연계' 라는 더욱 성숙한 뇌가 형성되었고, 마지막으로 이성과 논리에 관여하는 다량의 신피질 뇌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다양한 포유동물 중에서도 인간의 뇌 속에 들어 있는 신피질이 가장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파충류의 뇌는 호흡, 소화작용, 심장박동, 신진대사(영양분의 섭취, 전환, 화학적 변환), 성기능, 반사작용 등 원초적 생명활동을, 대뇌 변연계는 감정활동(사랑, 기쁨, 분노 등) 및 모듈활동(결합, 유희, 싸움질, 성욕, 보살핌)을, 신피질은 인지적 사고활동(말하기, 쓰기, 계획, 추론 등)을 주로 맡고 있다.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변연계 프로그램의 세 가지 시스템 외에 여러 모듈(결합, 유희, 싸움질, 성욕, 보살핌)이 추가로 발전하였다. 추가로 발전한 모듈은 빅3(균형, 지배, 자극)의 내부나 3가지 시스템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모듈은 인간이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요컨대 가능한 한 많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뇌간(파충류의 뇌) 프로그램에는 공격, 방어, 릴렉스의 세 시스템이 존재한다. 뇌간 프로그램이 좀 더 고도화 된 변연계 프로그램은 균형(방어à안전에 대한 욕구, Love), 지배(공격à권력 및 우월함에 대한 욕구, Work), 자극(릴렉스à새로운 것 및 자극적인 것에 대한 욕구, Play) 시스템이 뇌를 강력하게 지배한다. 이 세 욕구영역은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서로 충돌, 타협, 결합하며 인간의 삶을 통제, 자극한다.
(조루의 원인 및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중추신경의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사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정에 관여하는 척수신경은 뇌간에 자리한 사정 중추인 거대세포성핵에서 배뇨신경으로 이어진다. 성관계 시 사정은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차단되며 이뤄지는데, 조루 환자에게선 성관계 시작 후 단시간에 세로토닌이 차단된다. 과도한 흥분을 느껴 세로토닌이 조기에 차단되는 것이다. 세로토닌은 성적 흥분 및 정서, 체온조절, 고통인식, 수면, 졸음 등에 관여하는 물질로, 의도적으로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키면 사정은 자연스럽게 지연된다. 또한 신경성 식욕부진, 이상식이와 탄수화물 갈구증 같은 인간의 섭식 진환과 관련이 있다.)
각종 정보가 신피질을 거치지 않고 이미 만들어져 있는 확실한 해법인 변연계 프로그램을 경유하여 행동으로 전환될 경우 정보에 대한 반응이 훨씬 더 빠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과연 뇌간에 생존과 번식의 본성 뿐만 아니라 하나됨의 본성도 존재하는가? 하나됨의 본성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사례-섹스의 이중성(황홀경/황망함), 그리움의 감정, 탄트라 신앙(가장 원초적인 본능의 만족을 통해 두려움과 욕망을 초월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봄). 끝없는 인간의 욕망(하나됨의 본성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 피 먹는 모기))
<마음의 진화(Kinds of mind)/데니얼 데닛> 데카르트-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내 마음이다.
무엇이 마음을 지니는가 하는 물음에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마음을 지닌 집단의 범위가 조금만 달라져도 윤리의 문제는 자못 심각해진다. 가령 세균에게도 마음이 있으므로 그것을 죽이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수많은 존재가 참다운 윤리적 의미를 얻지 못한 채 세균에게 희생당하고 말 것이다.
포유류, 조류 > 파충류 > 양서류 > 어류 > 해양 생물 > 다세포 생물 > 단세포 생물 > 자기 복제하는 거대 분자.
우리는 거대 분자 로봇의 후예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런 로봇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모글로빈 분자, 항체, 신경 세포, 시청각 반사 기제, 신체는 알고 보면 놀라우리 만큼 멋지게 설계된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한 분자는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구조가 훨씬 복잡해졌을 때에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또 자기가 하는 일이 왜 생존의 원동력이 되는지도 알 필요가 없었다. 수십 억년 동안 이유는 늘 있었지만 이유를 세우는 존재, 이유를 떠올리는 존재, 심지어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유를 헤아리는 존재도 없었다. 대자연, 곧 자연 선택의 과정은 최고의 얼개가 번성할 수 있도록 말없이 허용함으로써 어떤 것이 좋은 이유들인지 암묵적으로 보여 준다.
몸에 바탕을 둔 원시 마음은 수십 억년의 세월 동안 생명을 유지시키는 과업을 묵묵히 수행했지만 상대적으로 느리며 무디다. 지향성도 근시안적이고 쉽게 속아 넘어간다.
동물 안에서 상품과 폐품을 수송하는 혈액은 일찍부터 정보 고속도로의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동물에서 혁신적 설계가 등장했다. 정보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지만 아직은 주로 내부의 일에만 전념하는 간단한 신경계가 나타난 것이다. 자율신경계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식물의 ‘양육혼(자기 조절적, 자기 방어적 조직)’과 맥을 같이하면서 살아있는 체계를 기본적으로 보전하는 데 주력하는 제어계라 할 수 있다.
유기체는 수십 억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하면서 점점 복잡하게 분화하는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설계된 다재 다능한 기제를 모았다. 결국 사람이라는 종 안에서 언어가 생기고 그 언어가 허용하는 다양한 반성행위가 나타나면서 우리는 다른 존재의 마음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능력을 얻었다. à정령 신앙(모든 움직이는 사물은 마음 또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
자연계의 생명은 경제성이다. 에너지가 가장 적게 투입되는 시스템이 대자연에 의해 발견되면 그것은 불원간 선택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가장 경제적인 구조가 반드시 가장 효율적이지도, 가장 작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자연의 입장에서는 이렇다 할 기능이 없는 수많은 요소를 끌어안는 것이 더 경제적일 때가 많다. 그런 요소들은 복제와 발전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 없애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돌연변이는 어떤 유전자를 누락시키지 않고 그저 꺼버리는 암호를 삽입한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어렵게 만들어진 얼개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식물과 초식동물간의 진화는 우리 눈으로 보자면 속이 터질 만큼 느리게 이루어 진다. 이런 숨바꼭질 놀이에서 하나의 수가 나오고 다시 대응수가 나오는 데에는 수천 년의 세월, 수천 세대가 걸릴 수 있다. 만일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지만 생각하는 속도가 우리보다 몇 천 배에서 몇 백만 배 빠른 화성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화성인에게 우리는 나무처럼 아둔해 보일 것이며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가설에 화성인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식물은 우리의 편협한 시간 틀이 무시했지만 사실은 감지력이 있는 아주 느린 동물인 것일까?
동물은 정보를 먹는 정보 포식자이다. 동물이 정보에 굶주린 것은 역시 정보에 굶주린 수백만 개에 이르는 소 행위자가 수만에서 수십만의 하위계로 절묘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깨알 같은 행위자 하나하나를 우리는 작은 지향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행위자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던지는 질문은 오직 하나 ‘지금 나의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는가?’이다. 그렇다는 판단이 서면 행위자는 제한적이지만 적절한 행동에 나선다. 이런 인식욕이 없다면 지각도 불가능하며 이해도 불가능하다.
생각은 혼자만의 힘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이론가들이 고등지능의 진화를 일종의 군비 확장 경쟁으로 설명한다. 자기 의식의 발전은 남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가설을 개발하고 검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주장한다.
동물의 진화는 행동환경이 복잡하게 무르익은 다음에 비밀유지 능력, 말, 생각 순으로 좀 더 고등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여우가 자기를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산토끼는 뒷발로 일어서서 몸을 훤히 드러낸 채 여우를 빤히 바라본다. 여우한테 아예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경고하기 위해서다. 여우도 대개는 그런 결론을 내리고 산토끼를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먹이를 찾아 떠난다. 덕분에 산토끼는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다. 이러한 행동 원칙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산토끼가 스스로 고안한 전략도, 산토끼가 성찰할 수 있는 전략도 아니다.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만일 내가 다른 존재에 대해, 그 존재가 나에 대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예측을 더 잘 할 수 있다면 나는 결정적으로 유리해진다. 그러므로 행위자는 자신의 제어계를 늘 미지로 남겨두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뢰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진실성을 담으면서도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기만성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포커페이스
개의 세계에서 개념은 고양이처럼 대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간의 세계에서 개념은 대상이다.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초의식형 인간으로의 진화/스리오로빈도> 무의식형 인간(제1, 2형 신념, 뇌간 및 대뇌 변연계 중심형 인간, 일반 대중)-->의식(분별)형 인간(제 3형 신념, 대뇌 신피질형 인간, 지배계층)-->초의식형 인간(제 4형 신념, 다양한 개체성과 조화로운 일체성을 한 몸에 구현한 존재, 신인류를 꿈꾸는 사람들-간디, 링컨, 세종대왕, 스리오로빈도)
제4형 신념은 의도적으로 창조된 신념(나는 일이 항상 잘 풀린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이며, 이 믿음의 유일한 근거는 나 자신의 결정과 선택이다. 100%책임, 조건과 이유 없는 포용, 자유로운 선택. 이것이 4형 신념의 특징이다. (‘100% 책임’과 ‘조건과 이유 없는 포용’의 마음은 온 우주가 정보에너지적으로 하나의 생명체임을 앎에서 나오고, ‘자유로운 선택’은 ‘이기적인 유전자’로부터 자유로워 짐에서 나온다.)
에너지는 어떤 임계치에 이르기 전까지 물리적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잠재해 있다가 임계치에 이를 때 물질의 상태를 도약적으로 변화시키면서 현상화하는데, 이것을 양자도약이라고 한다. 100마리 원숭이의 사례에서처럼 지구인류도 일종의 텔레파시 체험을 통해 모두가 저절로 그런 상태에 이르러서, 지구의식에 무한에너지의 근원으로 이어진 포털(문)이 열릴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뉴 에이지, 혹은 후천개벽의 시나리오다.
스리 오로빈도에 의하면, 인간은 과도기적인 존재로서, 초인류로 진화해 가는 도상에 있다고 한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태어날 초인류는 다양한 개체성과 조화로운 일체성을 한 몸에 구현한 그런 존재라고 한다. 인간은 개체성의 극치인 자유의지를 진화시켜냈다. 그러나 진화의 산물인 그 자유의지는 목하 자기파멸의 기로에 서있다. 분리의식으로 갈등과 파괴만 빚어내고 있는 무기가 되어버린 자유의지를 창조계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물감으로 바꾸어놓기 위해서는 인간은 다시 조화력인 일체성을 진화시켜내야만 한다.
<감정, 생각, 의식, 나, 참나/연우> *‘감정’이란 무엇인가? - 감정은 생명을 보호하고 인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식과 신체의 통제를 통해 외부상황에 보다 신속하고 에너지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는 대뇌 변연계의 보편화된 ‘프로그램’의 판단이다. - 변연계 프로그램에 있는 균형(안전에 대한 욕구, love), 지배(권력, 우월함에 대한 욕구, work), 자극(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에 대한 욕구, play) 시스템이 뇌를 강력하게 지배한다. 이 세 욕구는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서로 충돌, 타협, 결합하며 인간의 삶을 통제, 자극한다. 감정=마음
*‘생각’이란 무엇인가? - 생각은 대뇌 신피질 속의 재잘거림이다. - 생각은, 입력되는 외부현상에 대해 변연계가 이에 반응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연계의 요청에 따라 신피질이 합리적 결론을 내리기 위해 수행하는 분석활동과 변연계의 결정에 의해 실행이 완료된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논리개발활동(뜨거운 솥뚜껑, 변명) 자체를 말한다. 변연계(=정부), 신피질(=국책연구소+대변인), 생각(=분석활동 및 논리개발활동) - 생각은 두뇌무의식계(뇌간) 및 변연계 프로그램이 느끼는 두려움과 욕망을 의식에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 ‘의식’이란 무엇인가? - 의식은 신피질이 뇌간, 변연계 및 정보에너지식(우주식, 순수의식, 집단무의식, 초양자장) 중 어느 하나의 에너지원과 연결되어 행하는 의식적 무의식적 인지(지각, 앎)활동이다. 의식=인지활동, 생각=분석활동+논리개발활동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뇌간(생명유지활동) 및 변연계(감정)의 지향성(=꼴림)에 의한 자동제어모드와 반성력에 바탕을 둔 신피질의 사고제어모드(생각)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제어하는 존재다.
'참나'는 누구인가? - '참나'는 생명활동(뇌간), 감정활동(변연계) 및 생각(신피질)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지켜보는 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의식, 즉 자각이다. - 대뇌 신피질의 사고활동이 나와 세상이 정보에너지 차원에서 온전히 하나임을 알고, 이 앎을 변연계 및 뇌간이 의심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게 만든 상태가 깨달음(구원, 현존, 자각)이고, 이 상태의 나가 ‘참나’이다. (오랜 시간 동안의 의도적인 노력이 있은 후에야 운전이나 자판으로 워드작업하기 같이 일이 비사고 활동이 될 수 있다) - ‘참나’는 의식이 뇌간, 변연계 및 신피질의 자리에서 벗어나 정보에너지식의 자리에서 지각(인지)하는 나이다.
<지구 진화의 흐름/연우> 에너지-->소립자à물질-->생물-->동식물-->인류-->부족유기체-->국가유기체-->지구유기체
인류의 각 단계로의 진화 여부는 각 유기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삶의 종속성 범주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 개별 인간과 그 개별 인간을 구성하는 수많은(약 60조개 ~ 100조개) 세포 중 한개의 세포와의 관계가 지구유기체와 개별 인간과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 지구 유기체적 진화의 완성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인류 사회의 진화는 알게 모르게 개별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구조를 좀 더 정확하게 모방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며, 앞으로의 진화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신경계)과 돈(혈액) 이 국가유기체에서 지구유기체로의 진화의 가장 강력한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 사회의 진화방향이 지구유기체화로의 방향으로 가고 있고, 이는 곧 개별 인간의 역할이 점점 더 부품화, 파편화, 세포화하고 있다는 얘기이며, 결국 개인들은 자신의 생존 및 번식과 직접성이 떨어지게 되는 현상과 더 많이 대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스리오로빈도가 말하는 인간의 일체성은 생물학 적으로 적이 존재할 때 쉽게 발현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현재까지의 지구의 역사적 흐름에서 인간이 지구를 완전히 지배하게 됨에 따라) 진화의 거대한 흐름이 일체성보다는 분별력을 필요로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방법은 ‘건간한 혈액’과 ‘자신과 세상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의식’이다. 돈은 욕망 덩어리인 지구인간체라는 생명체의 생존을 책임지는 혈액이다. 지금의 세상은 건강하지 못한 혈액이 너무 잘 순환되어 온 몸이 고통스러워하는 개인의 모습을 너무 닮아 있다.
개별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에너지(불교, 힌두교, 우파, 동양) 게임을 즐기는 사람 지구인간체로 진화하려는 에너지(기독교, 오로빌, 좌파, 서양), 게임을 만드는 사람
<유러피안드림/제러미 리프킨> 구교 세계관 : 현세의 행복의 희생을 통해 내세의 구원 획득
'아메리칸 드림'은 개신교의 종교적 열정과 현실적인 실용주의가 결합하여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여 오늘날의 미국을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느님에게 선택받았다는 종교적 선민의식과 불굴의 의지로 황무지를 개척하여 성공을 이루려는 현실주의가 결합한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이라는 대립항의 결합이 '아메리칸 드림'을 잉태한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안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인 발전보다는 환경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를, 재산권보다 보편적인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인 무력행사보다 다원적인 협력을 강조한다." -à 공존
시장과 정부의 두 가지 중심축으로 민족국가가 유지되어 왔다면, 유럽연합 통치 시스템에서는 시민사회라는 제3의 축이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리프킨은 진단한다. 개인은 유럽연합, 정부, 지역과 지자체, 시민사회에 속하게 됨으로써 정치적인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는 동시에, 다단계 통치체제의 구성원이 된다. 그리하여 보다 조밀하고 중복된 사회관계를 이룸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안정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의식의 확대/연우> 인간 무의식(부끄러움) -->동물 무의식(미지의 두려움, 집)-->생물무의식(생존과 번식의 본성)-->물질 식(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소립자식à정보에너지식(하나됨의 본성)
바로 지금도 당신은 분석하는 마음으로써 세상을 생각이라는 대상으로 낱낱이 쪼개고 있다. 당신은 뭔가가 통제되는 듯한 느낌(?)을 느껴보려고 이런 짓을 한다. 이것은 미지를 기지로 바꿔놓으려는 당신의 끊임없는 노력 속에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정말로 아는 사람이 되려는 자는 자신의 내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는 자는 자신의 외부를 열심히 들여다 본다.
* 부끄러움 배란이 감추어지게 된 것은 아직 우리의 조상들이 난교(상대를 가리지 아니하고 문란하게 성행위를 함.)나 하렘(한 마리의 수컷과 여러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 집단)과 같은 짝짓기 방식을 따를 무렵이었다. 당시 감추어진 배란은 우리의 조상이었던 여성(실은 원숭이의 암컷?)으로 하여금 다수의 남성들에게 성적 즐거움을 나누어 줄 수 있게 만들었고, 남성들은 어쩌면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피를 받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추측으로 그 여자가 낳은 아기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게 되었다.
배란이 감추어지게 된 이유 : 고등 포유동물 이상에서 대뇌 신피질이 발달해감에 따라 인식(생각) 능력이 신장되고, 생존활동 속에 수반되는 스트레스도 이 신장된 인식 능력에 비례하여 더 많이 더 강하게 대뇌 신피질에 저장되게 됨에 따라,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좀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진화적 장치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 진화적 장치가 바로 언제든지 섹스를 할 수 있도록 배란을 감추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섹스의 진화 방향이 단순히 쾌락의 기능이 점점 강화되었다기 보다는 스트레스 해소의 기능이 점점 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생존과 번식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본성(두려움)에 의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신의 열등함을 다른 개체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은 욕구' 및 '경쟁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여 자신의 번식행위가 손상 받지 않도록 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욕구는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뿌리에 이 욕구들이 존재한다.
동물의 진화는 행동환경이 복잡하게 무르익은 다음에 비밀유지 능력, 말하기, 생각하기 순으로 좀 더 고등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왜 욕망이 끝없이 충족되어도 만족할 수 없는가?à 내 안의 하나됨의 본성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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