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술은 통곡한다!
<민족의술은 통곡한다!>

- 의사, 한의사들과 의료정책 책임자들에게 고하노니, 눈 있는 자
보고, 귀 있는 자 듣고, 생각 있는 자 깨달을 지어다 -

풍토와의 합일은 의술의 근본

의술이 그 나라 그 민족의 생활조건인 국토, 기후, 체질, 습성, 성격 등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 발전되는 것은 자연적 진리이다. 소위 풍토합일이나 신토불이가 의술에서 만큼 정확하게 적용되는 영역은 없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그것이 탄생하여 자란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과 분리될 수 없고, 치료의 방법도 그에 맞추어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고로 병이 있는 곳에 치료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든지 자국의 전통의술이 치료술의 근본이 되고,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에 외국의 의술을 도입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제 민족의술을 철저히 멸시하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

한국도 의료법상으로는 치료자격에 의사와 한의사를 두어 전통의술을 제도 속에 포섭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흉내일 뿐이다. 우리나라 국공립대학에는 한의과대학이 한군데도 없다. 민족의학을 국가와 공공단체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국공립대학이 양의학을 가르치는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두고 있음에 비추어보면 이는 전통 민족의학을 철저히, 공공연히 멸시하는 처사이다. 민간에서 알아서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라는 것이다. 그 결과 겨우 11개의 사립대학에만 한의과대학이 있다. 그나마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에는 한군데도 없다. 민간에서도 천대받고 있는 셈이다. 의료 시설과 운용의 실제에 있어서도 철저한 양의학 중심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제 민족의술을 이렇게 스스로 멸시, 천대하는 나라가 전 세계에 또 있을까?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의술의 근본이 풍토합일이라는 근본적인 이치를 이해한다면 이 나라 의료제도는 정말 어리석고 줏대 없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오래 전에 질병의 70% 이상이 각국의 토착의술로 치료될 수 있음을 밝히고 토착의술을 제1차 의료수단으로 활용하라고 세계 각국에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인식을 이 나라는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의료정책 책임자들은 의료제도를 이렇게 만든 합당한 이유를 국민 앞에 명백히 설명해야 한다.

왜 한의사들은 이런 잘못된 제도에 항의하지 않는가?

민족의술의 시술권은 제도적으로 한의사들에게 독점되어 있다. 권한에는 책임이 동반된다. 그런데 민족의술을 책임진 한의사들은 왜 이렇게 잘못된 의료제도에 항의하지 않는가? 민족의술의 자존심이 위와 같이 형편없이 짓밟히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사리에 전혀 맞지 않는데도 한의사들은 왜 50년이 넘도록 왜곡된 의료제도를 시정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국민 앞에 그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보라! (근년에 서울대학교가 의과대학 안에 한의학연구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자 한의과대학과 한의사 단체가 반대하여 무산된 일이 있는데, 그 반대의 명분은 무엇인가? 국민의 건강을 염려해서인가?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서인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한의과대학의 엉터리 교육방식

민족의술의 시술권을 독점하고 있는 한의과대학은 어떤 방식으로 민족의학을 가르치고 있는가? 거의 전적으로 서양식 교육을 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 서양식 교육방법으로 한의학의 본령이 제대로 교육된다고 보는가? 그렇게 해서 민족의술의 생명력이 잘 계승 발전된다고 보는가?
우리 민족의학이 자연과 생명의 이치를 고도로 깨친 현자들의 지혜에 의한 통찰에서 비롯된 의학임을 인정하는가? 그렇다면 민족의학의 본령에 이르려면 지혜를 갈고 닦는 것이 필수적임을 인정하는가? 그 지혜의 계발은 지속적인 심신수련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그것을 우리 선현들이 성취한 방법이 신선도 수련법이었음을 인정하는가? 한의과대학에서 이런 심신수련법을 가르치는가?
한의학의 본질이자 특질이 심신(心神)의학이고 기미학(氣味學)임을 인정하는가? 심신(心神)을 닦지 않고 기감(氣感)을 기르지 않으면 어떻게 환자의 마음을 통찰하고 기미(氣味)를 알겠는가?
심신수련을(하다못해 기수련이라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한의학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인가? 서양식 교육방식으로 그것이 가능하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이는 마치 모체의 양수 속에서 열 달 동안 길러진 적이 없는 아이가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그래서 이미 ‘절반의 한의학’ ‘절름발이 한의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음을 아는가?
환자의 심신(心神) 상태를 통찰하지도 못하고, 기감이 없어서 맥진도 제대로 못하고, 기미(氣味)를 파악하는 능력이 계발되지 않다보니 양의학의 진단방법이나 기계를 통한 진단에 의존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것이 정통 민족의술의 계승 발전이라 할 수 있는가?

민족의술의 영역 위축을 자초한 한의학

또 묻는다. 한의과대학에서 그나마 제대로 가르치는 흉내라도 내는 것이 한약 외에 또 있는가?
민족의술의 영역은 실로 광범위하다. 전통 한약 외에도 민약, 단방약초, 침, 뜸, 찜질, 벌침, 부항, 사혈, 약손, 수기법, 음식법, 단식법, 풍욕 등, 대별하기만 해도 수십 가지이고, 그 속에서 또 여러 방식으로 나누어진다. 병을 미리 예방하는 양생술(養生術)까지 포함하면 그 영역은 양의학이 발뒤꿈치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이 모든 것이 한의학의 본래 영역이었다.그런데 이 중에서 한의과대학과 한의사가 자신 있게 전문가라고 자처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는가? 겨우 전통한약밖에 더 있는가? 한의과대학과 한의사들이 수 십 년간 민족의학의 시술권을 독점하면서 가르치고 배운 것이라고 해야 겨우 한약 정도 아닌가? (그나마 이론으로만 배우고 실제로는 약재 감별도 제대로 못하는 한의대교수와 한의사들이 있다고 하니, 이 부분 조차도 한의학이 나을는지 민중의술이 나을는지 검증해 보아야 알 일이다.)
한의과대학에 침술을 제대로 가르치는 전문교수가 있는가? 언제부터 있는가? 한의과대학과 한의사들이 ‘돈이 안 되는 의술’도 제대로 가르치고 임상에서 활용하는가?
한의과대학과 한의사들이 민족의술의 시술권을 독점하면서 한약을 제외한 민족의술의 다양한 영역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도 않고 임상에서 활용하지도 않은 결과, 민족의술의 방대한 영역은 극도로 위축되고 말았다. 틀린 말인가?

민족의술의 시술능력을 시합으로 검증하자

한의사들과 한의과대학에 다시 묻는다. 침술을 재야의 무면허 침쟁이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는가? 쑥뜸을 잘 해내는가? 벌침으로 만병을 고칠 수 있는가? 수기요법으로 환자를 고쳐낼 자신이 있는가? 한약을 처방하지 않고 의식주를 조절하는 방법만으로 병을 고쳐줄 자신이 있는가? 단식을 제대로 지도할 자신이 있는가? 환자의 심신(心神)을 바로 잡아줄 자신이 있는가? 물론 한의과대학에서 배우고 스스로 공부한 실력만으로 말이다.
여기에 이의가 있다면 민족의술의 모든 영역별로 한의사들의 대표자들과 민중의술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누가 더 병을 잘 고치는지 공개시합을 해보자.
우리 민족의술은 치료 효능이 즉석에서 바로 확인되거나 단기간에 확인되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그런 시합은 유용할 것이다.

민족의술의 명맥을 잇는 민중의술

제도 한의학이 이와 같이 민족의술의 시술권을 독점한 이후 부적절한 교육방식으로 한의학의 치료능력 위축과 영역 축소를 자초한 결과, 민족의학은 수 십 년간 크게 퇴보하여 왔다. 많은 민족의술이 명맥이 거의 끊어지거나 지리멸렬해져 버렸다. 중국, 북한, 일본 등 동양의학을 적극적으로 살려온다른 나라들보다 뒤떨어져 버렸다.
그나마 그 맥을 겨우겨우 이어 오고 있는 것은 무면허 돌팔이로 매도당하면서 처벌받아온 재야 민중의술인들이다.
이 분들은 천성적으로 의술의 자질을 타고나서 이를 버리지 못하고 병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의술을 이어오거나, 자신의 지병을 고치기 위해 애쓰다보니 의술을 터득하게 된 사람들이거나, 수양을 통하여 의통이 열리는 등 운명적으로 의료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이 분들은 민족의술에 매료되어 처벌을 각오하면서도 이를 버리지 못하고, 법률보다도 생명이 훨씬 더 소중한 가치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온갖 핍박에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분들의 의술마저 50여년의 악독한 고소고발과 처벌 앞에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다. 생계수단도 안 되고 항상 신변의 위협을 받는 이런 의술을 배워서 계승하려는 사람이 적어 전승되지 않고 사라져 간다. 많은 명의들이 그들의 탁월한 의술을 제 가슴에만 묻은 채 세상을 떠난다. 제 정신을 잃고 서구문명에 엎어진 자들의 얼빠진 편견도 민중의술의 기를 위축시킨다. 이대로 두면 이마저 절멸해버릴 것이다.

한의사들이 민중의술을 고발할 자격이 있는가? 양심에 묻는다.

이와 같이 민족의술을 왜곡, 위축시키면서 독점해온 한의사들이 민족의술에 대하여 한 짓이라고는 뛰어난 민중의술인들을 고발하여 처벌받게 하는 일 뿐이었다. 이는 법률을 빙자한 악랄한 만행일뿐더러, 한의사들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양심에 손을 얻고 반성할 일이다.
우선 의사, 한의사 아니면 누구도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의료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그것이 악법임은 “의사, 한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쩌란 말인가?”하는 질문 하나로 자명해져 버린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책임이 있는 국가가 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면서 이런 법을 유지한다는 것은 차라리 희극이다. 국민은 왜 자신의 생명을 살릴 치료방법을 선택할 자유를 박탈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역사적, 문화적으로 보더라도 이런 법률은 근거가 없다. 우리 민족은 뛰어난 지혜로 동양의술의 체계를 형성하여 이를 중국 대륙을 비롯한 동양 여러 나라에 전수해 주었으면서도 수 천 년간 시술자격에 제한을 두어 본 적이 없다. 민족의술 자체가 철저한 자연의술이어서 간단하고 부작용이나 위험성이 없어 시술자격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술은 누구나 배워서 활용해 왔고, 그것이 우리의 문화가 되고 관습이 되었다. 허준 선생이나 이제마 선생이나 사암도인이나, 우리 의술의 빛나는 선조들 그 누구도 제도의료권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린 사람들이 아니다.
민족의술의 시술권이 제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이 나라를 지배하기 시작한 후인 1914년부터인데, 일제조차도 침사, 뜸사, 지압사, 접골사 등의 전문영역을 두어 누구든지 시험에 합격하면 시술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지 한의사에게 모든 의술을 독점시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방 후 일제의 법을 그대로 계수하였으면서도 시험을 치지 않았고, 마침내 1962년 의료법으로 개정되면서 한의사 독점제로 바꾸었다.
이런 악법을 누가 만들어 주었는가? 바로 양의사들이다. 양의사들은 민족의술을 아예 없애버리려고 획책하다가 뿌리 깊은 저항에 부딪치자 타협책을 내놓은 것이 양의학처럼 6년제 한의과대학을 만들고 그곳을 나온 한의사만 민족의술을 독점할 수 있도록 제한해버린 것이다. 이는 명백히 민족의술을 죽이려고 한 짓임에도 한의사들은 양의사들이 던져준 독점권이라는 달콤한 꿀에 젖어 저항을 포기해버렸다.
양의사들이 왜 이런 짓을 했는가? 19세기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에 섰던 선교사들과 양의사들은 침, 뜸 등의 민족 토착의술에 무지했던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의 문화지배를 위해서는 토착문화를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구 제국주의의 물질문명에 열등감을 느낀 후진국의 지배층과 백성들이 그들의 정책에 세뇌될 수밖에 없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고, 2차 대전 후에 전 세계의 모든 후진국들이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고 자국의 전통문화를 되찾게 되었는데, 어째서 해방 후 18년이나 지나 의료제도를 정비하면서 새삼스럽게 민족의술을 더욱 죽이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어졌는가? 그것도 당시의 저명한 양의사들이 돈보따리를 싸들고 5.16.쿠데타 주역들에게 찾아다니며 로비를 한 결과라고 하는데,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민족의술을 옥죄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현행 의료제도는 이렇게 해서 엉터리로 만들어진 것인즉, 한의사들의 민족의술 독점권은 민족의술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죽이기 위해 만든 것임에도, 한의사들이 이에 도취되어 비뚤어진 의료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마치 강도가 던져준 소 뼈다귀에 취한 개가 짖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할 것인데, 더 나아가 자신들은 민족의술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병도 고치지 못하면서 그나마 민족의술을 지켜온 민중의술의 명의들을 고발하는 것은 그 개가 오히려 주인을 무는 격이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 한의사들은 왜 환자들이 면허도 없는 민중의술인을 찾아가는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못 고치는 환자들이 어떻게 할 수 밖에 없는지도 헤아려야 한다. 민중의술이 얼마나 유용한지, 그들의 의술과 어떻게 다른지도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한다. 면허와 상관없이 병을 잘 고치는 것이 정녕 필요한 의술인지대, 그것이 의자(醫子)의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자세를 가지기는커녕, 의사 한의사에게 못 고치고 고통당하는 환자들을 치료해 준 민중의술인도 가차 없이 고발한다. 아니, 고발당하여법 앞에 서는 대부분의 무면허의료인들은 소위 말하는 ‘돌팔이’(치료능력도 없으면서 속임수로 치료하는 자)가 아니라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나고, 그래서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고발당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고발하는 것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청탁수사, 함정수사도 서슴치 않는다. 한의사들은 심지어 그들이 수업료를 내고 배운 재야의 스승들조차도 때로 고발을 한다. 어처구니없는 비양심의 극치다. 그것이 사람으로서 할 짓거리인가?

민족의술을 이렇게 천대, 방치해도 좋은가

우리 민족의술은 이렇게 천대받고 방치되어도 마땅한 것인가? 그렇게 가치가 없는 것인가? 1970년대부터 동양의학은 서양으로 건너가기 시작하여 대체의학, 보완의학이란 이름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침술, 약초, 수기요법 등이다. 이제는 그 의술들이 서구 의사들의 임상처방에서 절반이상을 차지하여 대체나 보완의 차원을 넘어서 오히려 주류의학이 되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벌써 대체의학이라는 개념보다는 통합의학이란 용어를 쓴다.
이와 같이 서구 선진국에서 각광받는 것이 제 본토에서는 천대 멸시 받는다. 제정신이 아니다. 그 의술들이 이제 서양의학의 탈을 쓰고 이 나라에 역수입되어 올 것이다. 그 꼴을 어떻게 당할 것인가? 그럼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민족의술을 천대하고 있는 이 얼빠진 짓은 대원군의 쇄국정책보다도 더 악독하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세계에 퍼지지 아니한 탁월한 토종의술들이 많이 있다. 쑥뜸이 대표적인 것이고, 죽염, 생소금 등도 그러하다. 그것들을 빨리 살려서 세계로 수출해야 한다.

현행제도 타당한지, 한의사들 스스로 대답해야

제도적으로 민족의술을 독점하고 있고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의사들이 스스로 나서서 현행 제도가 타당하고 바람직한지 말해야 한다. 세계에 유례가 없고, 동양 4국의 어느 나라에도 없는 폐쇄적이고 소극적이며 역사와 문화 전통에도 전혀 맞지 않는, 의술의 국제경쟁 시대에 경쟁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민족의 의료자질을 완전히 죽이고 있는, 헌법의 이념과 정신에도 어긋나는, 경제나 산업 정책적으로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런 제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민족의술의 생명력을 소생시키는 자유롭고 유연한 제도로 적극적인 개혁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민족의술의 양심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의자의 본질로 돌아오는 길이다. 뒤늦었지만 민족과 역사 앞에 의료 지식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길이다.

합리적으로 고칠 길 얼마든지 있어

민족의술에 대한 국가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우선 객관적으로 보아도 위험성이 별로 없는 간명한 의술들은 국민 일반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 그것이 민족의술의 역사적 전통과 문화 및 기본권의 최대보장, 최소제한을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정신에도 부합한다.
약간의 위험성은 있으나 단기간의 교육으로 보완할 수 있는 의술은 단기교육제도를 통하여 면허를 주는 길을 다양하게 열어야 한다. 위험성이 조금 더 높은 의술은 교육기간을 더 길게 하면 된다. 지금처럼 의술의 종류와 성질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6년제 한의과대학을 나와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독일이 전통의술에 대하여 스무 개가 넘는 자격을 단기교육을 통하여 수여하고 있는 것을 배울 일이다.
한의과대학은 지금처럼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간단한 의술까지 독점하여 국민 간에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유용한 의술들을 사장시켜 병도 잘 못 고치면서 권한만 독점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간단하고 별 것 아닌 의술을 가지고 일반 국민과 싸우는 꼴을 계속 보여서는 안 된다. 그 독점권은 본래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자유를 뺏어간 것이므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대신에 고급 민족의학의 연구, 교육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적어도 민중의술 몇 가지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한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민족의술을 더 깊고 높게 연구, 발전시켜 진정한 권위를 확보하여 존경 받는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민중의술은 일반 국민들이 자유롭게 하고, 그 다양하고 넓은 의술의 토양 위에서 한의과대학이 그것을 심화,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민족의술의 체계가 정비되어야 한다.

민중의술 명의제도 만들어야

오래된 돌담장도 문화재가 되고, 물건 잘 만들고 연주 잘해도 명장, 명인칭호 듣고 인간문화재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제 민족의 수 천 년 얼이 담긴 세계 최고의 민족의술은 잘하면 잘할수록 수갑 채워 감방에 집어넣는다.
조상들의 영령이 통곡하고 하늘이 통탄한다.
민중의술의 분야별 명의들은 의료제도와 관계없이 문화적 역사적 차원에서라도 ‘명의’로 지정하여 대접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국가 사회의 체면이다.

민족의 의료정신 회복해야

우리 민족의술은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정신에 뿌리박은 순리와 지혜의 의술이라는 점이 최고의 자랑이다. 그것은 간명하고 밑천이 들지 않는 것이어서 의술을 베풀고도 돈을 받지 않는 미덕을 지녔다. 오늘날의 상업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적 부담 없이 무상의료를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가히 전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다. 그 정신과 지혜와 미덕을 민족의술의 회복을 통해서 되살리자.

어처구니없는 얼빠진 의료제도 근 100년. 그 수난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술은 통곡해 왔고 지금도 통곡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통곡을 걷고 희망으로 나아가자고 민중의술은 제의한다. 의사, 한의사들에게, 정부에게, 국회의원들에게,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에게, 판검사들에게, 모든 국민들에게 -.

▶ 황종국(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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