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암 이겨낸 허영재씨(간,폐전이)*

3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허영재씨. 담도를 시작으로 간, 폐까지 전이된 암으로 온몸은 만신창이, 수술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죽음 앞에 선 그녀를 살린 것은 식이요법과 남편의 사랑이었다 평생 설거지 한번 안해 본 남편은 이제 살림꾼이 다되었다. 오늘도 그는 이른 새벽에 녹즙을 짜고 잡곡밥을 짓는다

3개월 사는 것도 감지덕지하다던 아내가 3년 넘게 병원에 나타나자 병원 의사, 간호사의 반응이 참 묘했다. 의아하기도 하고 또 암 환자를 살릴 수도 있다는 뿌듯한 표정, 그 이상 야릇한 표정을 보면서 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내를 이미 환자로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됐다.

최대한 배려하되 가족의 한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하여 소외감이 없도록 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암 환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에 부지런히 추켜세우기도 하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몸 상태가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암 발병 후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할 때만큼 컨디션 회복이 가장 커다란 숙제였다.

담도암 환자 허영재. 나의 아내는 4년 전부터 그렇게 불리워졌다.

환자인 아내, 보호자인 나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말이다. 68세 느즈막한 나이에 담도암이 간, 폐에까지 전이되어 하루 아침에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2003년 가을볕이 좋던 어느 날,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아내가 데굴데굴 굴렀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서둘러 서울의 S병원으로 옮겼다. 전에 그런 적이 없어 도대체 근래 뭘 먹고 체했는지 한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복통의 원인은 급성대장염이라고 하였다. 일주일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니 복통도 어느 정도 사그러들었고 식사도 할 수 있게 돼 퇴원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기로 하였다.

아내는 시한부 삶을 시작하였다. 백일도 못 넘긴다는 시한부 삶을‥‥

건강 체질이었던 아내가 대장염 쯤으로 일주일이나 병원 신세를 지다니! 미심쩍은 마음에 병은 속에서 키우지 말고 밖으로 내놓으라고 하는 말이 기억나 이번 기회에 정기 검진을 제대로 받기로 하였다.

혈액검사, CT, MRI에 조직검사까지 대장 부위에 검사를 모두 마치고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내려앉았다.

"담도암에 간, 폐까지 전이된 말기암, 가망없음"

수술도 안된다고 하였다. 시한부 인생, 아내는 시한부 삶을 시작하였다. 그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백일도 못 넘기고 내곁을 떠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는 이별이었기에 더 막막했고, 고통받으면서 삶을 마감해야할 아내를 생각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속에 울분이 솟구쳤다.

내조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면서 착하게 살아온 내 아내의 몸 속이 어쩌다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암은 담도를 타고 이미 온 몸을 퍼져나가는 사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정말 한심하고 속상했다.

"급성대장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이유도 모르고 죽었겠지요?' 의사에게 따졌다"암이란 게 워낙 그렇습니다."

의사의 당당한 변명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인간복제 시대가 도래한다는데 의학의 수준은 답보 상태일 뿐, 참담한 기분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통증이 오면 다시 찾아오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한 채 나왔지만, 다시 그 무섭게 아내에게 통증이 밀려오면 어쩌나 몹시 걱정되었다.

다행히 퇴원한 아내는 며칠간 통증은 없었다. 그 사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인천에 암을 치료하는 한의사가 있다기에 찾아갔지만 환자도 보지 않고 증상만 듣고는 역시 가망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오히려 환자를 데려올까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황달, 흑달에 통증 ‥‥ 하지만 우리는 싸운다

이래저래 마음의 상처만 커져 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암을 고친 사람들'

무조건 집어들고 돈을 치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간암을 비롯하여 각종 암을 치료했다는 체험수기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아내와 증상이 비슷한 환자도 실려있었다. 무조건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박양호 실장! 아내에게 두 번째 삶을 준 그 이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상담을 하기 위해서 BRM 연구소를 찾았다.

"해봅시다." 박양호 실장의 답이었다. 혈액 검사서를 판독하고 내가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식단을 짜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갈 길은 오로지 하나, 식이요법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살릴 수 있다는 의지가 생겼다. 얼마 전 아내의 세운(歲運)을 보았다. 그랬더니 아내의 운세에 인수(印綬)가 들어있었다. 인수가 들어있으면 조상이 돕고 하늘이 도와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억지로라도 아내가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내 마음의 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박실장이라는 생명의 은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2001년 12월 초, 식이요법을 시작하였다. 아내는 암 선고를 받고 하루가 다르게 몸의 변화를 일으켰다. 어느새 피부 색깔이 거무튀튀해지더니 눈, 손, 발에 황달 기운이 돌았다 그런 변화가 생길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남자다 보니 요령이 부족하여 식단을 받아들고도 녹즙기에 저울, 약재를 손질할 작두, 약탕기까지 모두 준비하는데 열흘이나 걸렸다. 마음은 급하고 아내의 증상은 점점 악화되고 밤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남자의 거친 손으로 녹즙을 짜고 잡곡밥에 나물 무쳐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다. 평생 아내가 해주는 밥만 먹었지 상을 차린다는 게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일일 줄이야.

아침 먹고 뒤돌아서면 보조식품 챙겨야 하고 다시 녹즙, 점심 다람쥐 체바퀴 돌아가듯 하루종일 분주하였다. 열흘에 한번씩 경동시장에 나가 좋은 약재 골라 깨끗이 씻어 열흘 분 달인물 냉장고에 준비해두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달인물의 재료만 해도 15가지 고르는데도 차차 안목이 생겨갈 만큼 익숙해지고 있었다. 남자의 무딘 손이 제법 주부 티가 나고 있었다. 앉을 틈도 없이 바빴지만 오히려 아내가 평생 나를 위해 이렇게 살았구나 고마움과 함께 더 열심히 심지어 치열할 만큼 아내의 식이요법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먹는 양이 많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던 아내도 식사량을 줄이고 녹즙, 달인물의 비중을 늘려가니 어느 정도 적응을 해갔다. 먹는데 익숙해지는 것이 암을 이겨내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한 녹즙 재료를 구하기 위해 새벽 시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매일 녹즙 재료 손질하는데 쩔쩔매는걸 보고는 아내가 귀뜸을 하였다

"여보, 싱싱한 재료를 사다가 두서너 번 흐르는 물에 씻어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봐요. 그러면 매일매일 안 씻어도 될거야. 미안해"

"미안하긴, 그런 방법이 있었어. 진작 얘기를 해주지. 그러면 새벽에 30분은 벌었다. "내가 싱글벙글하자 아내는 차마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그쳤다. 그러지 말라고! 우리는 부부고 내가 아프면 당신은 더 헌신적이었을 것이라고!!

암의 흔적만 남았다. 아내를 위해 오늘도 나는 잡곡밥을 짓는다

이렇게 두 달쯤 지나도록 아내는 더 이상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통증이 사그러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두달 뒤 혈액검사와 CT검사 결과 간과 폐에 있던 암이 작아지고 숫자도 몇 개 줄어들었다는 소견이 나왔다.

진단서를 받자마자 다시 BRM 연구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증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말에 너무나 신이나 새 식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까지 절로 흥얼거리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기를 1년, 거무스름하던 얼굴빛이 발그스레 제 색깔을 찾았고 황달과 폐가 깨끗해졌다.

아내는 황달과 흑달 증세가 나타나자 거울을 아예 치워버렸었다.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몸 속에 암이 있다는 사실도 버거울텐데 낯빛마저 바뀌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 역시도 아내 몰래 집안에 있던 거울을 떼냈었다. 그런데 다시 우리 집에 거울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예전의 얼굴과 몸빛으로 돌아온 아내는 외출할 때면 립스틱을 바를 만큼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식이요법 4년이 지난 현재 아내의 몸에는 암의 흔적만 남아있다. 혈액 검사 소견상 어떠한 수치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CT를 통해 보면 담도와 간에 희미하게 암 모양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악성 종양이라기보다는 암이 있던 자리의 상처같은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이다.

하늘에서 내린 운을 나는 믿는다. 아내의 새 삶이 그렇고 또 박양호 실장과의 만남이 그렇다. 우리 부부는 아내의 암으로 인하여 얻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이다. 둘이 손잡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하고 또 서로를 어루만진다.

처음 암 진단 후 수술이라도 한번 받아봤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현대의학도 포기한 아내가 다시 살아났다. 나는 이제 잡곡밥도 잘 짓고 녹즙 짜는데는 도사가 되었다. 녹즙기 닦는데도 요령이 생겨 몇 분이나 반짝반짝 빛나도록 닦아낸다.

암도 병이다. 다만 무섭고 겁이 나는 병 일 뿐이지 치유할 수 있는 병이다. 아내에게 나는 말한다.

"당신 몸 속에 있는 암과 친해져야 해. 정말 친해지면 화도 안내고, 해도 안 끼치잖아"

"근데 여보, 진짜 요즘은 암이 말을 알아듣나봐. 아프게도 안하고 힘들게도 안하니까."

그렇다. 내 몸을 이해하고 사랑할 때 우리 몸 속의 병도 힘을 잃는다. 위세를 떨치던 아내의 암은 이제 힘을 잃고 맥이 풀려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결코 식이요법과 병원 검진을 게을리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우리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시간이 더 소중하므로‥‥오늘도 나는 새벽 밥을 짓는다.

?자료출처:「암세포 사라졌다」서적에서

http://brmhealth.com/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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