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이 칼럼]

스마트폰 혁명과 정치권력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인간들의 필요와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급변하는 사회를 보면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이 이제는 우리의 삶과 사고를 규정하고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온다.

최근 진행되는 스마트폰 혁명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급속히 바꿔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하여 무한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연결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보력과 네트워크 파워를 가진 모바일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은 우리 정치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인을 설명하면서 많은 이들이 트위터의 영향력을 꼽는다. 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 선거에 발목을 잡힌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트위터 열풍에 당했다는 분석이다. 정확한 투표율은 아직 알 수 없으나 20대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과거와는 달랐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트위터가 있었다. '투표 인증샷' 놀이라는 새로운 선거문화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 확산되었고, 자연스레 이들의 선거관심도를 높였다. 트위터를 비롯한 페이스북, 유투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의 위력은 이미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중앙정치에서는 무명과 다름없었던 흑인 후보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과 맥케인과 같은 거물 정치인들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유권자와 소통하는 소셜 미디어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혁명의 핵심은 네트워크의 확산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에 있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권력 작동방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스마트폰의 모바일 인터넷 기능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범위가 무한정으로 확대되었다. 네트워크 내의 권력 작동방식은 정당이나 이익집단과 같은 기존 조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네트워크는 근본 원리상 행위자 자신이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도 행위자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네트워크는 중심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참여자 개개인이 연결되면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networked individuals)을 통치하고 관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수직적 권력관계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으며 정치인과 시민의 관계는 수평적이고 협력적 관계로 재설정되고 있다.


수평적 권력관계와 함께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하향식, 단방향에서 상향식, 쌍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 과거 대부분의 정치정보가 정부나 정치인에 의해 생산되었고, 그 중 필요한 만큼만 일방적으로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인해 정치정보의 독점생산과 선별적 유통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시민들이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인터넷 상에 수많은 괴담이 떠돌았다. 인터넷 괴담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는 블로그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의 과정을 알리고 광우병에 관련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러한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린 광우병 관련 정보가 포털 게시판과 개인 블로그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 반면 청와대 블로그는 정보유통의 네트워크 속으로 침투하지 못한 채 고립된 별개의 사이트로 머무르면서 전파력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갖는 속보성, 전파력, 개방성과 같은 특징이 시민의 정치권력을 강화시키지만, 폐쇄적 네트워크로 발전하면서 중우정치, 패거리 정치와 같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스마트한 기술이 반드시 현명한 정치인과 이성적 시민을 만들지는 않는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스마트 정치가 출현한 것은 분명하나 그 미래는 기술의 특성이 아닌 이용자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

윤성이 열린이용자위원회 위원

* 이 글은 Daum 열린이용자위원회 4기 위원으로 활동하시는윤성이님의 칼럼입니다.

* 이 글은 Daum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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