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눈치 보여, 동남아로…사드 보복 속 '촤이모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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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마찰이 수그러들지 않으며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경영 애로가 누적되고 있다. 한·중 사드 갈등은 안보 문제라 정부가 나서야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 기업 스스로 자구책 마련의 일환으로 중국의 보복 조치에 항의하려 해도 이 또한 쉽지 않다. 보복의 근거를 아예 남기지 않는 중국의 노회하고도 독특한 관료문화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차이나 인사이트]
흔적 남기지 않는 중국의 보복
2000여 년 된 오랜 관습에 기초

중앙정부가 넌지시 뜻 알리면
지방정부는 알아서 보복에 나서

사드 갈등 푸는 최상의 방법은
한·중 정상이 만나 신뢰 과시해야

중국 공산당의 정책 하달과 관련한 관료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촤이모상이(揣摩上意)’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 ‘상부의 뜻을 깊이 헤아려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뜻이다. 아주 오랜 과거인 2000여 년 전의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중국 행정관료의 뿌리 깊은 관습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한국은 눈치 보여, 동남아로…사드 보복 속 '촤이모상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 공산당은 철통 보안을 요하는 정책이나 미묘한 안건을 다루는 지시를 하달할 때 흔히 두 가지 방식을 쓴다. 하나는 차관급 이상에 전달되는 공문서의 직접적 회람 방식이다. 문서를 인편으로 보내 확인시킨 뒤 다시 회수하는 방법이다. 과거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뜻을 다른 지도자들에게 전할 때 이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중요한 정책 문건은 이 같은 아날로그 방법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 하급기관에 상부의 뜻을 알리는 경우다. 유선으로 전화 통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국 공산당 선전부는 언론을 이용해 당의 뜻을 넌지시 전한다. 그러면 각 하부기관에서는 상부의 의중을 스스로 헤아려 자체적 행동 방침을 정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회의를 개최하거나 정치학습 교육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구성원 모두에게 상급 단위의 뜻이 스며들게 한다. 중국 국영기업과 대학에까지 당 정책과 관련된 정치학습이 전개되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중국 사회 전반에 지도자의 뜻을 반영한 여론이 형성된다. 중국 사드 보복의 대표적 사례인 한한령(限韓令·한류 규제령)은 바로 이런 경로를 통해 시행되고 있다.
 
이달 초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약 7억 명의 중국인이 자국 관광지에서 100조원 가까운 돈을 소비했다. 해외로 나간 중국인도 600만 명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중국인이 즐겨 찾는 나라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국내의 유커(游客·중국 관광객) 실종에도 촤이모상이가 한몫하고 있다. 중국 관료와 국영기업 간부의 여권은 상부가 보관하고 있어 한국행이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여행사들이 정부의 심기를 스스로 감안해 한국 관광 상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인 개인은 한국 공관을 통해 비자를 신청하고 올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관광 일정을 짜야 하고, 주위 여론 때문에 꺼리게 된다. 한국에 오려니 눈치가 보여 아예 속 편하게 동남아로 발길을 돌렸다는 이가 많았다.
 
중국에 진출한 롯데마트가 112개 점포 모두를 폐쇄하게 된 배경에도 촤이모상이가 작용했다. 중국 각 지방정부가 롯데마트를 괴롭힌 이유는 너무나 다양했다. 소방안전 점검을 빌미로, 전기를 많이 썼다는 구실로, 위생이 불량하다는 이유 등 지방마다 각기 다른 명분을 내세워 영업을 중단시켰던 것이다.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한 현대차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선 우리의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물론 한국차 불매운동과 같은 사드 보복 여파다. 두 번째는 현대차와의 합작에 피로감을 느끼는 베이징자동차의 태도다. 이젠 혼자서 이익을 독점하고픈 욕구가 베이징자동차에 있는 것이다.
 
주목할 건 세 번째 이유로 현대차의 기술경쟁력에 대한 중국의 평가절하다. 현재 중국의 자동차 정책은 전기자동차를 포함한 신에너지 자동차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50년까지는 모든 가솔린 차량은 생산하지 않겠다는 청사진 아래 2019년부터 전기차 등 신에너지 차량의 의무 할당 생산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2019년엔 생산 차량의 10%, 2020년에는 12%를 전기차 등으로 생산해야 한다. 한데 이 부문에서 현대차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중국은 보는 것이다. 중국은 지방정부별로 외국 자동차 회사와 협력해 경쟁력을 키우며 시장 창출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공기오염이 심한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베이징으로선 친환경차 생산과 시장 점유가 다른 도시보다 앞서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현대차가 약세로 지적되면서, 당초 현대차와의 합작을 승인한 베이징 시정부 관계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을 통해 중국의 민낯을 보긴 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앞으로 크고 작은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다. 촤이모상이로 대표되는 중국의 관료문화를 이해한다면 결론은 양국 정상 간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윗분의 뜻을 헤아리는 데 익숙한 중국이라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가장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중국이 대만과 일본에 가했던 관광 규제가 일정 기간 지나며 풀리고 있듯이 사드 보복은 결국 외교 환경이 좋아지면 풀리게 돼 있다. 한·중 정상이 환한 미소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중국 방송을 타면 하부기관은 알아서 보복 조치를 거둬들이게 돼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로선 한·중 정상회담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공식·비공식 채널을 모두 동원하는 총력전을 펴야 한다. 시진핑의 측근인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서기나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당서기 등은 우리가 관시(關係)를 다지고 또 다져야 할 시 주석의 중요한 인맥이다.
 
한편 민간기업들은 기술력과 경쟁력 구축에 안간힘을 써야 한다. 삼성의 폭발적인 반도체 수출 증가는 사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걸 중국 시장이 말해준다. 아울러 전략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중국인의 마음을 사는 노력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희문
한국동북아경제학회장과 중국시장포럼 회장(대한상의)을 역임했다. 대만 국립정치대와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중국 경제를 연구했고 중국 런민(人民)대와 베이징(北京)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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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문 한양대 중국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한국은 눈치 보여, 동남아로…사드 보복 속 '촤이모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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