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업 비결? "일단 시작을 해야 뭐라도 된다"

2017.05.2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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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시의 중심 상권 신제코우(新街口). 유이광창(友谊广场)이라는 대형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 있다. 9층짜리 건물로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비슷한 규모다. 그런데 이 쇼핑몰의 1~4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 업체가 있다. 바로 지난 2013년 말 한국인 이승진 대표가 중국에서 창업한 종합 패션 기업 '가로수'다.

난징 신제코우에 위치한 유이광창(왼쪽), 가로수 매장들(오른쪽) [출처: 가로수]

가로수는 이 4500㎡ 규모의 매장 대부분을 한국 제품으로 채웠다. 1~2층에는 한국의 커피, 빵집, 프랜차이즈 식당을, 3~4층에는 한국 의류, 잡화, 라이프 스타일 매장을 입점시켰다. 이들 대부분이 가로수가 직접 투자했거나, 직영 매장으로 운영하는 브랜드들이다.

2016년 말 기준 가로수의 연 매출은 약 200억원에 달한다. 중국 20여 개 도시에 60개가 넘는 리테일 매장과 쇼룸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국내 패션 기업들의 중국 사업과 맞먹는 규모다. 맨손으로 창업, 4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거둬들인 성과라 더 눈에 띈다.

지난 5월 19일 서울 서소문로에서 열린 차이나랩 중국 공부 사랑방에서, 이승진 가로수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일단 시작을 해라, 그래야 뭐든 된다

지난 2014년. 이승진 대표는 18년 동안 다녔던 SK를 나왔다. 4년여간의 중국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후였다.

그는 퇴직과 동시에 상하이 치푸루(七浦路)에 위치한 한국 쇼핑몰에 7평 남짓한 의류 매장을 냈다. 이름은 서울 가로수길에서 따온 가로수. 홈쇼핑하는 선배가 팔고 남은 옷 200벌을 가져와서 매대에 걸어 놓는 게 전부였다. 주재원 기간 중국 의류 시장을 담당했던 차라 패션을 택하긴 했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한 때 잘나가던 SK맨 이승진이 망해서 조그만 옷 장사 시작했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지난 2013년말 문을 연 가로수 1호 매장 [출처: 가로수]

첫날 300 위안(약 4만 9000원)어치를 팔았다. 다음날에는 100위안(1만 7000원)으로 줄었다. '역시 안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귀국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갑자기 손님이 몰리더니 제품이 완판됐다. 4일째 되던 날이었다. 즉시 한국 마이너스 통장에서 3000만원을 빼와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SK 시절 알았던 동대문 매장들에서 신상품들을 공수 받았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2달 후 같은 층에 매장 하나를 더 냈다. 6개월 후에는 매장이 4개로 늘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매장 한 곳에서만 6만 위안(1000만원)의 매출이 났다. 창업 당시 유령의 집처럼 스산했던 치푸루 한국 쇼핑몰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로수가 잘 되니 너도 나도 같은 스타일의 옷집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이 대표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일단 시작하고 이리저리 깨지다 보면 결국 길이 보일 것이라는 다소 무모한 전략이었다. 

옷 매장을 열기까지 이 대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일이 포털사이트 검색이었다. 하루 종일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며 잘 되는 매장들의 이미지를 모았다. 이 중에 좋은 부분만 추려 가능한 것부터 실제 매장에 그대로 적용했다. 그리고 반응이 안 좋으면 즉각 내렸다. 패션 시장에 대한 '감'은 있었으나, 디자인이나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승진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는 차이나랩 중국 공부 사랑방 참가자들. 지난 19일 오후 6시 덕수궁 옆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출처: 차이나랩]

대표적인 사례가 170cm 높이의 옷걸이다. 당시 치푸루 옷집들의 옷걸이 높이는 예외 없이 160cm였다. 다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히 관행이 됐다. 그런데 이 대표가 이 높이를 시험 삼아 10cm 높여 봤다. 어떻게 하면 다른 매장들과 인테리어를 차별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였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작은 변화였지만 매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주변 매장들보다 세련됐다는 고객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사람의 눈높이와 빛의 각도, 옷의 형태 등이 절묘하게 어울리며 고객에게 편안함을 준 것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현재 치푸루 한국관의 거의 모든 옷집들이 가로수를 따라 170cm의 높이의 매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시도가 조금씩 쌓이면서 가로수는 제대로 된 의류 브랜드의 구색을 갖춰갈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엄청난 전략이나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는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조금씩 해보고, 아니면 바꿔나가면 된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4년 말 기회가 찾아왔다. 한 업체가 중국에 매장 22개짜리 규모의 패션몰을 만들려고 하는데 일에 차질이 생기면서 15개의 매장이 비게 된 것이다. 이 대표가 나섰다. 그는 15개의 브랜드를 모두 채워 넣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1년 임대료만 5억원에 달하는 큰 계약이었다.

중국 20개 도시에 위치한 가로수 매장들 [출처: 가로수]

시간이 부족했던 그는 직접 브랜드들을 만들어야 했다. 서울 가로수길을 돌아다니며 괜찮은 매장들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그대로 따왔다. 그리고 매장을 홍대와 동대문에서 공수한 옷들로 채워 넣었다. 남들의 결과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미투 전략이었다.

동시에 가로수 의류 업체들을 만나 "매년 얼마어치의 옷을 팔 테니, 중국에서 브랜드들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단기간만 약속한 15개의 브랜드를 모두 채울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잠도 못 자면서 인터넷을 검색하고, 잡지를 보고 베끼면서 만들었다. 그때부터 쌓여 온 가로수 브랜드들의 인테리어, 간판 제작 경험이 지금은 큰 자산이 됐다

물론 매장들이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다. 급조한 탓인지 허접한 부분이 더러 있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버텨나갔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한국의 인기 브랜드들을 공부하며 조금씩 매장을 업그레이드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매장이 잘되면 그 성공 요인을 다른 매장에도 이식해 나갔다. 일단 시작을 하고 그다음에 길을 찾는 이 대표의 전략이 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만 하다가 안 하는 게 문제지 실패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중간중간 실패는 할 수 있겠지만, 남들을 따라 하고 공부하다 보면 결국 또 길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대표의 설명이다.

위기를 이기려 하지 말고 적응하라

2015년 3월. 이 대표는 또 한번 사고를 쳤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규모 패션 박람회인 상하이 시크쇼에 참여하면서, 부스 20칸을 통째로 임대해 버린 것이었다. 당시 한 업체가 일반적으로 임대하는 부스는 2칸 정도였다. 당연히 국내 최대 규모였다. 해외 바이어들은 물론 국내 기업들까지 갑자기 등장한 가로수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박람회를 계기로 가로수의 직영 매장이 중국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베이징(北京), 쑤저우(苏州), 하얼빈(哈尔滨), 우시(无锡) 등 도시에 300~500평 규모의 대규모 가로수 직영 매장이 들어섰다. 현재 가로수는 중국 20여 개 도시에 6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 매장을 통해 가로수는 매주 200개, 매달 1000여 개의 새로운 한국, 중국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 제품들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상하이 본사의 가로수 쇼룸 겸 매장 [출처: 차이나랩]

지난 2016년 기준 가로수의 매출은 200억원 수준이다. 매년 원가 기준으로 25~30억 원 정도의 한국 의류를 수입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존 브랜드 제품을 소싱 해오는 비중이 컸으나, 이제는 가로수 브랜드(GAROSU, SAEMMOOL, HA:NUL, e·SUL 등)가 90%를 차지한다. 주문 생산해 수입하는 형식이다.

2015년 6월에는 아예 자체적인 쇼룸도 구축했다. 쇼룸이란 다양한 제품을 전시, 바이어들이 물건을 쉽게 확인하고 직접 계약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한국 중소 브랜드들의 옷을 중국 업체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다. 현재 가로수는 이 같은 의류 리테일과 도매 사업 외에도 복합몰, F&B, 패션 아카데미, 교복, 한국 대학 창업 지원, O2O(Online to Offline) 사업 등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모든 게 창업한지 불과 4년여 만에 만들어 낸 결과물들이다.

가로수 모바일 샵 서비스 화면 [출처: 가로수]

이 대표가 시작만큼 강조하는 게 바로 위기에 대한 '적응 능력'이다. 극복할 수 없는 위기라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적응하는 게 낫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중국처럼 변수가 많은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가로수는 사업을 6개의 법인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관리가 불편하더라도 몸집을 작게 유지해 잡음이 생기는 일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이득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현지 직원들과의 분쟁이 생기면 절대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냥 "조금 덜 지자"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면 오히려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오랜 기간 중국에 머물며 체득한 노하우들이다.

도매 사업의 규모가 커져도 생산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반적인 의류 도배 업체들은 몸집이 커지면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직접 생산에 뛰어든다. 반면 가로수는 불확실성이 큰 중국 시장에서 최대한 재고를 안 남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 이윤이 적더라도 구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 대신 고객 데이터와 물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 적재적소에 물량을 공급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사드가 촉발한 통관 이슈를 피해가기 위해 질 좋은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 발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대표가 사업 초창기에 구상을 그려놓은 스케치북. 꿈은 현실이 됐다 [출처: 가로수]

사실 이 대표는 SK 시절 직접 최태원 회장에게 SK 패션 사업 클러스터 안을 제안할 만큼 패션 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그러나 그가 7평 남짓한 의류 매장을 시작하면서 할 수 있었던 건 인터넷을 검색하며 조금씩 남들을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된 '가로수'는 빠르게 성장, 어느새 한인 창업 사례 중 가장 성공한 모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대기업에 다닐 때는 전략, 기획, 마케팅, 뭐든게 멋있고 대단했다. 그러나 막상 창업을 하고보니 오로지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한다' 딱 하나만 남더라. 스타트 스몰(작게 시작하라). 결국 이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차이나랩 이승환

차이나랩은 '네이버 중국판' 독자들을 위해 함께 중국 비즈니스를 공부하고 인사이트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오프라인 모임 '차이나랩 중국 공부 사랑방'을 매월 1회 열고 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각 방면의 비즈니스 맨들이 참여, 생생한 현장 얘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차이나랩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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