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거울에 비친 대한민국 정치] ‘욕망정치’ 가고 ‘감동정치’ 온다
2011-09-09 오후 1:26:04 게재

'낡은 리더십'과 '새로운 리더십' 교차
안철수 뒤에 숨겨진 민심의 경고 읽어야

"나도 정치를 시작하면서 기득권 다 버리고 머슴처럼 정치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느덧 기성정치인이 되어 버렸다. 오늘, 안철수를 통해 나를 되돌아본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

"그(안철수)가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직을 미련 없이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정치인으로서 욕망과 대의 사이에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저 개인의 성찰도 깊어지는 시간도 되었다."(민주당 이인영 최고위원)

'안철수 신드롬'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짧지만 강한 충격이다. 특히 정치권은 후폭풍이 거세다. 기존정당은 존재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은 자중지란의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대세론에 침묵하다 안풍(안철수 바람)이라는 초특급 '태풍'을 만났기 때문이다.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 한다.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MB정서에 기댄 채 감동 없는 통합논의만 거듭하다 싸늘해진 민심을 확인했다.

◆욕망과 버림의 미학 = 주민투표 무산과 서울시장의 사퇴 후 여야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구태의 전형이었다.

멀쩡한 지역구를 하루아침에 옮기고, 총선을 앞두고 몸값을 올리기 위해 도전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여기에 각 정파의 이해관계까지 얽히고 설켰다. 감동은 없고, 욕망이 넘쳐났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안철수 교수다. 출마를 고민하는 말 한 마디로 경쟁 후보들의 두 세 배가 넘는 지지도를 얻었다. 우후죽순처럼 보이던 후보군 중 상당수는 이때 갑자기 사라졌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 큰 충격은 후보 단일화 과정이다. 50%의 지지율(안철수)이 5%(박원순)에게 양보했다. 기성정치에선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기성정치권의 욕망과 안철수 교수의 버림의 미학이 선명하게 교차한 순간이다. 더구나 안 교수는 버리면서 더 큰 성취를 맛보았다.

박원순 변호사의 지지율은 수직상승했고, 안 교수는 단번에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난공불락으로 일컬어지던 박근혜 대세론도 꺾고 단숨에 지지도 1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되면서 '강남좌파의 정치쇼'라고 비난하던 한나라당은 심하게 체면을 구겼다.

민주당도 겉으론 반색하지만 '제1야당이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안 교수의 등장과 퇴장이 기존 정당정치의 근간을 뒤흔들어놓은 셈이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 = '안철수 신드롬'에서 등장한 키워드는 기존 정치권과는 선명한 대조를 보였다.

'감성' '위로' '소통' '공감' 등이 안철수 신드롬을 표현하는 키워드다. 안 교수 스스로도 단일화 발표 과정에서 일부 핵심 키워드를 제시했다. "미래 세대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하며 격려를 전하고 싶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위로와 격려는 감성의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반해 기성 정치권에는 여전히 낡은 가치와 표현이 난무한다. 보수와 진보, 좌우의 이념충돌,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 줄 세우기 등이 횡행하고 있다.

보수는 합리적 가치보다는 수구적 행태를 보이기 일쑤다. 진보를 표방하는 야권은 진보논쟁과 통합을 둘러싼 기싸움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런 모습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새로운 감성과 감동을 주는 안철수에 열광한 이유다.

참여정부 시절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씨는 한 인터넷 기고문에서 "안철수 현상이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시원찮은 정당'에 대한 경고와 '막가는 보수'와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안 교수도 "제게 보여준 기대는 우리 사회의 리더십에 대한 변화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무대가 아닌 객석을 봐야 = 이제 정치권 관심은 안철수 쇼크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에 쏠려 있다.

당장 안 교수의 지원을 받은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어떤 성적표를 낼지 궁금해 하고 있다. 또 안 교수가 내년 총선과 대선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직접 대선주자로 나설 가능성은 없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철수 바람을 일으킨 '민심의 분노'라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무대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관객석을 봐야 한다"며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강남좌파의 쇼라고 매도하는 한 한나라당은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비슷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유권자들은 '안철수 쇼크'로 인해 스스로 변화에 대한 갈망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신 율 교수(명지대 정치외교)는 "많은 사람들이 일단 새로운 것을 맛보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낡은 정치는 극명하게 대비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유승민 최고위원은 "안철수 개인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안 교수를 지지하는 민심, 안 교수로 상징되는 새로운 변화, 이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나중 문제다. 그가 몰고 온 바람에 대한 평가와 해석도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안 교수는 기존 정치권(인)을 비추는 거울역할을 톡톡히 했다. 숨겨진 속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치권은 드러난 치부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의 이 같은 자성이 변화와 혁신의 과정을 거치면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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