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3. 12:54 |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3.6~1564.2.18] 이탈리아의 조각가·건축가. 메디치가나 교황에의 봉사와 강요에서 비롯되기는 하였지만 조각과 건축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피에타》,《다비드》,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 등이 대표작이다.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출생지 : 이탈리아 카프레세 주요작품 : 《다비드》(1504)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1541) |
<자료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67328>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
- 로맹 롤랑 -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주도한 불세출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피에타>는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일종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그는 거의 일 세기에 달하는 생애를 통해 여러 점의 <피에타>를 제작했으며 그에게 최초로 로마에서의 세속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나,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삶을 마감하기 며칠 전까지도 정과 끌을 놓지 못하고 매달렸던 최후의 작품 역시 <피에타>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미켈란젤로는 어지러운 시대를 살며 감내해야만 했던 한 천재의 인간적인 고독과 회한, 그리고 영광의 상념들을 이 주제를 빌어 호소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한 작업 앞에서 우리는 경탄하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조각가라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화가가 되어 붓을 들고 고개를 위로 쳐들고 천장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불멸의 걸작이 되었다. 바로 로마 바티칸시국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가로 41m, 세로 13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벽화 <천지창조>
평평한 천장이 마치 조각을 한 듯 입체감이 느껴지고 그림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성서 속 글자로만 있던 천지창조가 화면으로 구성되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천재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저 바라보고 놀랄 뿐이었다. 그 거장의 내적인 자신감과 남성다움 및 위대함은 어떤 표현으로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 괴테 -
그는 약간의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면 일에 파묻혀 잠도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볼로냐에서 율리우스 2세의 동상을 만들 때, 그와 세 사람의 조수를 위하여 마련된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이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잤기 때문에 한 때 다리가 부어 장화를 칼로 찢어야만 했다. 무리하게 장화를 빼면 다리의 살점까지 함께 묻어나올 지경이었다.
화가가 아닌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다른 무수한 화가들도 이건 불가능하다며 포기한 천장화 작업을 보란 듯이 해낸 것은 그가 세기의 천재여서가 아니다. 무려 4년이란 기간 동안 하루 18시간 이상 천장만을 바라보며 목 디스크에 허리가 굽고 눈이 사시가 되는 육체적 고통, 그리고 홀로 짓눌렀던 그 이상의 심리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의 친구가 그에게 “여보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까지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나? 천장 위 작은 그림 하나가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아닌지를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하고 물었을 때 그는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안다네.”
인간의 한계를 정의한 미켈란젤로. 그의 열정과 집념 앞에서 우리의 삶은 당당할 수 있을까?
- 로맹 롤랑 -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주도한 불세출의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피에타>는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일종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그는 거의 일 세기에 달하는 생애를 통해 여러 점의 <피에타>를 제작했으며 그에게 최초로 로마에서의 세속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던 작품이나, 파란과 곡절로 점철된 삶을 마감하기 며칠 전까지도 정과 끌을 놓지 못하고 매달렸던 최후의 작품 역시 <피에타>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미켈란젤로는 어지러운 시대를 살며 감내해야만 했던 한 천재의 인간적인 고독과 회한, 그리고 영광의 상념들을 이 주제를 빌어 호소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위대한 작업 앞에서 우리는 경탄하기도 하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조각가라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가 화가가 되어 붓을 들고 고개를 위로 쳐들고 천장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불멸의 걸작이 되었다. 바로 로마 바티칸시국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가로 41m, 세로 13m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벽화 <천지창조>
평평한 천장이 마치 조각을 한 듯 입체감이 느껴지고 그림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성서 속 글자로만 있던 천지창조가 화면으로 구성되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천재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단 말인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저 바라보고 놀랄 뿐이었다. 그 거장의 내적인 자신감과 남성다움 및 위대함은 어떤 표현으로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 괴테 -
그는 약간의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나면 일에 파묻혀 잠도 몇 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볼로냐에서 율리우스 2세의 동상을 만들 때, 그와 세 사람의 조수를 위하여 마련된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이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장화를 신은 채 잤기 때문에 한 때 다리가 부어 장화를 칼로 찢어야만 했다. 무리하게 장화를 빼면 다리의 살점까지 함께 묻어나올 지경이었다.
화가가 아닌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다른 무수한 화가들도 이건 불가능하다며 포기한 천장화 작업을 보란 듯이 해낸 것은 그가 세기의 천재여서가 아니다. 무려 4년이란 기간 동안 하루 18시간 이상 천장만을 바라보며 목 디스크에 허리가 굽고 눈이 사시가 되는 육체적 고통, 그리고 홀로 짓눌렀던 그 이상의 심리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미켈란젤로의 친구가 그에게 “여보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까지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나? 천장 위 작은 그림 하나가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아닌지를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하고 물었을 때 그는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안다네.”
인간의 한계를 정의한 미켈란젤로. 그의 열정과 집념 앞에서 우리의 삶은 당당할 수 있을까?
'CEO& 리더십 > 독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최고의 경영인들을 매혹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 (0) | 2016.05.06 |
---|---|
전 세계 0.1% 부자들이 사랑한 인문고전 (0) | 2016.05.06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0) | 2016.05.06 |
아들아, 너는 이런 책을 읽어라 (0) | 2016.05.06 |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 (0) | 2016.05.06 |
희망의인문학 (0) | 2016.05.06 |
최초의 철학자는최고의 투자가였다 [출처] 최초의 철학자는최고의 투자가였다|작성자 루시 (0) | 2016.05.06 |
히딩크의 언어정복 (0) | 2016.05.06 |
백만불짜리 열정 (0) | 2016.05.06 |
회사가 붙잡는사람들의1%비밀 [출처] 회사가 붙잡는사람들의1%비밀|작성자 루시 (0) | 2016.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