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 완전 해부 6편] 일기당천(一騎當千), 게임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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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텐센트의 전체 수익 가운데 게임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5%!

유저 선호도 1위, 게임시장 점유율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데 이어, ‘2011 중국 최고 인기게임 TOP 10’에 텐센트가 개발하거나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이 4개나 이름을 올리면서 그야말로 2011년 한해는 텐센트가 게임으로 우뚝 선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혹자는 말한다. 그저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잘 활용해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게임왕국을 건설하기까지 텐센트가 흘린 땀과 눈물을 범인(凡人)들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이런 입장은 금방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텐센트 게임시장을 탐하다

2002년 봄, 텐센트 내부에서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게임개발을 할 것이냐? 다른 게임을 퍼블리싱 할 것 인가? 만약 게임을 개발한다면 대규모 온라인 게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보드게임을 개발할 것인가? 또 만약 퍼블리싱을 한다면 어떤 게임을 선택할 것인가? 등등 텐센트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당시 텐센트에는 우리가 흔히 ‘라인’이라 부르는 계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텐센트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장즈동(张志东) 라인과 다른 하나는 텐센트의 업무최고책임자(COO)인 정리칭(曾李青) 라인이었다. 장즈동은 텐센트의 CTO로서 기술적인 연구와 개발을 중시한 반면 정리칭은 COO로써 시장진출과 제품판매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 두 라인은 게임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의견 충돌을 보이며 여전히 대립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라인의 대립은 한 일화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마화텅과 장즈동, 정리칭이 미국에서 열리는 게임 박람회에 참여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게임 퍼블리싱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CTO 장즈동은 온갖 핑계를 대며 미국 게임 박람회에 참여를 보이콧했고, 결국 마화텅과 정리칭 두 사람만이 게임 박람회에 참가했다.

좌 장즈동(张志东), 우 정리칭(曾李青)

텐센트의 수뇌부는 게임시장 진출방식에 대해 수 차례의 회의를 거쳤지만 단기적인 수익과 장기적인 수익에 대한 견해 차를 보이며 의견을 어느 한쪽으로 의견을 수렴하기란 어려웠다. 또한 퍼블리싱과 게임개발이라는 두 가지 방향 앞에 두 라인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외부에 자문을 구하여도 의견이 천차만별이어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때 마화텅은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장즈동과 정리칭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화텅은 ‘선(先) 퍼블리싱 후(後) 개발’이라는 카드를 꺼낸 끝에 두 사람을 모두 설득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2003년 텐센트는 첫 게임을 중국에 퍼블리싱하게 되었다. 이들이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게임은 한국게임 개발업체인 이매직의 <세피로스>. 당시 30만 달러의 가격에 <세피로스>를 중국에 퍼블리싱 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 중문 게임명인 <카이쉬안(凯旋)>이라는 이름표를 바꾸어 달면서 텐센트는 게임시장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물론 그 첫 행보 역시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다. 이매직과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기 전, 텐센트 내에서는 당시로썬 보기 드문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3D 게임인 <카이쉬안>이 한국과 비교해 여전히 낙후된 중국 인터넷 환경에서 실행될 수 있을 지의 여부에 대한 여러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게임시장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텐센트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고, 계약 당시 ‘중국 현지에서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아도 무관하다’는 내용의 퍼블리싱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텐센트의 이 같은 불찰은 <카이쉬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게임이 출시된 뒤에야 텐센트의 관계자들은 중국 각지의 PC방을 다니며 <카이쉬안>에 대한 가동여부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아직 인터넷 및 PC사양이 좋지 않은 일부 지역에서는 게임이 끊어지거나 접속 오류가 나는 등의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기념비적인 게임, 카이쉬안(凯旋)

텐센의는 경험 부족과 중국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카이쉬안>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아예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텐센트는 첫 경험의 의미를 성공과 실패에 두지 않기로 했다. 그간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게임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실패의 원인을 하나씩 분석해 나갔다. 그리고 처음의 실패는 이후 텐센트가 중국 게임업계 1위로 발돋움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다마고치에서 MMORPG까지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데에 만족해야만 했던 <카이쉬안>을 퍼블리싱한 이후, 다음 행보를 고심하던 마화텅은 경쟁사였던 샨다(盛大, SNDA), 더나인(九城, The 9)이 게임제작으로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약속했던 대로 게임제작을 회사에 제안하였고 장즈동과 임직원들의 찬성으로 텐센트의 게임제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게임제작에 경험이 없던 텐센트는 개발하기 쉬우면서도 적은 개발비용과 실패 시 위험부담이 그나마 적은 웹보드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소수 정예의 개발팀을 따로 구축해 웹보드게임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다.

텐센트의 게임제작이 결정되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단연 텐센트의 장즈동 CTO였다. 그는 평소에도 웹보드게임에 대한 애정을 대외적으로 표출해왔고, 특히 바둑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장즈동은 자신이 평소에 느끼고 생각했던 점을 텐센트 게임에 접목하기 시작했고 화면 구성과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또한 QQ의 장점을 게임에도 접목시켜 게임 이용자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였다. 텐센트는 개발작업 2~3개월 이내에 본 게임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게임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유저 사용효과 극대화를 전제로 게임을 제작하면서 타사 게임과 차별화를 가능하게 했다. 2004년 12월, 텐센트는 중국판 봄버맨(Bomber Man)이라고 할 수 있는 <QQ탕(QQ堂)>을 완성한 후 베타 테스트를 시작하였고, 정식 출시한지 1년 후 동시 접속자 수 68만 명을 넘기며 중국 내 게임기록을 갈아 치웠다. 또한 당시 웹보드게임시장 1위 업체였던 Our Game(联众游戏)을 누르고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 후 개발된 <QQ펫(QQ宠物, QQ Pet)>은 텐센트가 이후 MMOG게임을 개발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캐릭터 육성 게임인 <다마고치>와 <포켓몬스터>가 많은 인기를 끌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반, 중국에서도 몇몇 게임업체가 캐릭터 육성을 컨셉으로 한 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텐센트는 중국 내 변변한 캐릭터 육성 게임이 없음에 게임 제작을 결정했다. 2005년 텐센트는 <다마고치>의 기본 컨셉인 캐릭터 육성을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했고, QQ 메신저와의 연동을 통해 사용자 유치에 성공했다. 또한 중국 게임의 최대 단점으로 지적되던 스토리 보드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작업에 열중했다. 공부, 일, 오락, 결혼, 여행 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사용자들에게 최대한의 선택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6년 7월 <QQ펫>은 동시 접속자 수 100만 명을 넘기는데 성공했고, 경험과 인지도가 낮았던 텐센트 게임은 <QQ펫>을 통해 게임시장에서 인정받는 업체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QQ환상(QQ幻想)

사업 다양화를 위해 선택한 게임산업에서 점점 자리를 잡을 무렵, 텐센트는 <QQ탕>부터 쌓인 게임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3월 첫 MMORPG 게임인 <QQ환상(QQ幻想)>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MMORPG에 대한 운영경험이 부족했던 탓일까, <QQ환상>은 동시 접속자 수 30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텐센트는 첫 MMORPG 게임인 <QQ환상>의 경험을 기반으로, 2007년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MMORGP게임 <QQ삼국(QQ三国)>, <QQ화샤(QQ华夏)>를 잇달아 출시하게 되었다. 텐센트는 QQ 메신저를 포함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마케팅 활동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QQ삼국>의 동시 접속자 수 60만명, <QQ화샤>의 동시 접속자 수 70만명을 기록하는 등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2007년 이전 텐센트 게임의 주요 수익은 보드게임이었지만, <QQ삼국>과 <QQ화샤>를 시작으로 MMORPG게임 수입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텐센트에서 MMORPG에 대한 입지가 달라지게 되었다.

 

 

중국 최대 게임 퍼블리셔, 텐센트

중국 주요 게임업체인 넷이즈(网易, Netease), 더나인은 2000년대 초부터 게임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2006년 이들 업체는 중국 최고의 게임 개발업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자체적인 게임개발은 많은 수익을 수렴할 수 있는 동시에 해외게임과의 직접대결이라는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또한 해외게임과의 완성도 차이 등 발전속도에서는 여전히 해외업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중국 내 다수의 게임업체는 해외게임 개발사와 자사 기술의 발전을 위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텐센트는 자체 개발한 게임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와 기대 이하의 성적 등의 근거를 들어 그 동안 해외 게임 퍼블리싱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게임시장 내 텐센트의 포지션은 넷이즈나 더나인에 비해 여전히 낮은 상태였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초대박 게임이 가지는 네임 벨류였다. 이러한 텐센트의 딜레마는 2007년 <QQ삼국>과 <QQ화샤>가 성공을 거두면서 단번에 해결되었고, 이후 텐센트는 해외게임 퍼블리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텐센트는 먼저 한국의 게임업체들과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크로스파이어>, <아바 온라인>, <던전앤파이터>를 중국에 런칭하기 시작하였다. 해외 게임과의 계약에 무모할 만큼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시장에 팽배했지만, 텐센트의 투자는 투자의 몇 십배나 되는 수익을 텐센트에 안겨주게 되었다. 그 중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업체인 네오플은 당시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게임업계이지만 2005년 8월 한국에서 <던전앤파이터>를 정식 출시한 후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으며, 실력을 인정 받아 일본에 진출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어 차세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리니지와 미르의 전설 등 그간 중국에서 퍼블리싱되던 게임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중국 게임업체들은 네오플과 퍼블리싱 계약을 위해 한국 행을서두르게 되었다. 네오플은 향후 업체 성장전망이 가장 밝고 활용 플랫폼이 많은 텐센트의 손을 잡았고, 중국 시장에 <지하성과 용사(地下城与勇士, DNF)>라는 이름으로 런칭되기에 이르렀다. <던전앤파이터>는 한국에서 넥슨과 함께 3년간 안정적인 서비스를 선보이고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만큼 중국 시장에서도 빠르게 적응하였으며, 동시접속자 수 210만 명을 기록하며 텐센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던전앤파이터>는 텐센트가 중국 게임업계 선두그룹에 올라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크로스 파이어(穿越火线)

<던전앤파이터>가 텐센트를 중국 내 최고의 퍼블리셔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크로스파이어>는 텐센트를 중국 내 최고의 게임업체로 우뚝 솟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크로스파이어>가 한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간편한 UI와 걸출한 타격감을 가지고 있어 중국 이용자와 잘 맞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2008년 네오위즈와 손을 잡고 <크로스파이어>에 <천월화선(穿越火线)>이라는 중문 네이밍을 입혀 런칭에 성공했다.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서비스 현지화와 오픈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는 동안 상당 수의 사용자를 흡수할 수 있었다. 서비스 오픈 초기 다양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각종 체험 위주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한편 게임 관련 행사에서 전략적으로 게임을 공개하는 등 중국 모든 지역에 <크로스파이어>를 알릴 수 있었다. 이후 <크로스파이어>는 동시 접속자 수 300만 명을 돌파했고, 중국 최고의 온라인 게임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이후 텐센트는 NHN Games의 <C9>를 퍼블리싱 하였고 최근 넥슨의 <프리스타일 풋볼>을 중국시장에 내놓는 한편, 지난 6월 출시된 NC소프트의 역작 <블레이드앤소울>을 중국에 퍼블리싱 할 예정이어서 중국 사용자들의 눈과 귀가 모두 텐센트를 향하고 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텐센트의 해외게임 퍼블리싱으로 2007년 3분기 중국 게임시장 점유율이 5.5%에 불과했던 텐센트는 2009년 16.5%를 기록하며 업계 2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2010년 2분기에는 점유율을 27.6%까지 확대하며 업계 1위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텐센트 DNA

많은 사람들은 텐센트의 게임을 이야기 할 때 퍼블리셔로 그저 컨텐츠를 잘 선택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텐센트의 게임을 고르는 안목과 퍼블리싱 능력은 지금의 텐센트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텐센트의 차별화 전략에 있다.

먼저 텐센트는 자사의 게임 구조를 피라미드 형태로 개편했다. 사람들이 널리 즐길 수 있는 웹보드 게임을 자사 게임 서비스의 근간으로 삼았고 <QQ탕>, <QQ삼국>, <QQ스피드(QQ飞车)> 등의 게임으로 텐센트만의 다작주의(多作主义)를 선보이며 유저 확보에 열중했다. 그리고 자사개발 게임과 퍼블리싱 게임을 적절하게 혼합하며 이를 피라미드 최상층에 위치시켰다. MMOG게임인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등 퍼블리싱 게임을 선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모든 사용자의 기호에 맞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텐센트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종합 게임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으며, 지금도 텐센트 게임을 이용하는 사용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게임개발이면 게임개발, 퍼블리셔면 퍼블리셔로 양분화 되어있던 시장을 통합하면서 가져간 텐센트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텐센트는 “QQ 아이디 하나면 전세계 모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제창하며 텐센트가 제공하는 모든 게임 아이디를 QQ아이디로 통합했다. 중국 내 모든 인기게임을 별도의 계정생성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퍽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에 따라 ‘텐센트가 곧 게임이요, 게임이 곧 텐센트인’ 새로운 인식을 사용자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또한 텐센트는 마케팅 방법에 있어서도 다른 게임업체들과 차별화를 두었다. 당시 게임 업체들의 게임을 직접 광고하는 방식을 많이 채택했지만, 텐센트는 출시할 게임과 연결되는 모든 산업군에 합동 프로모션, 마케팅을 제안하며 자신의 힘을 100% 쏟지 않고도 200%에 가까운 성과를 일궈낼 수 있었다.

 

텐센트 게임은 처음부터 업계 1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인터넷 업체들이 모두 자리를 잡은 후 2003년에서야 비로소 온라인 게임시장에 발을 들여 놓은 지각을 해도 한참이나 지각한 후발주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텐센트는 퍼블리싱과 게임제작의 비율을 적절히 조절해 나가면서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면 혹자는 바보라 칭할지도 모르고, 또 혹자는 미쳤다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았던 그것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를 존경해 마지 않는다. 텐센트 그리고 마화텅, 한계를 넘은 그들은 지금 중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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