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분노, 40대의 선택이 좌우했다
정당정치 불신 속 ‘심판론’에 쏠려
경향신문|
안홍욱·조현철 기자|
입력 2011.10.26 23:16
|수정 2011.10.27 08:31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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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심판'을 택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국정 운영이 수도 서울에서 총체적으로 경고를 받았다. 강남 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20~40대에서 압도적으로 패한 숫자가 이를 대변한다. 출퇴근 시간대에 몰려나온 직장인들의 행렬도 지난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어 또 한번 정권 심판의 상징적 단면이 됐다.

민생 위기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양극화가 심화된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와 고가의 피부숍을 다닌 기득권층에 대한 질타였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 벽이 민심 속에 자리잡은 '불통' 국정을 향한 심판론이었다.

48.6%라는 높은 투표율과 박원순 후보(55) 완승의 저변에는 정당정치 불신과 새 정치를 향한 변화 욕구도 담겨 있다. 삶의 곤궁함을 표출하고, 경제적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뉴욕의 '월가 시위'가 한국에서는 표로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후보의 압승은 임기 말 여권에 국정운영의 틀과 방향을 바꾸라는 메시지다.

■ 40대도 박 후보에게 기울어

여권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두고 민심은 냉혹하게 평가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최근 이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을 둘러싼 의혹,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비롯한 측근 비리가 심판론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높은 물가와 민생 위기는 공분하는 지점이다. 투표 전날까지 여론조사상 박빙 승부였다가 실제 투표에서 격차가 벌어진 데에는 투표장에서 심판하겠다는 '숨은 표'가 있었다는 추론도 가능해 보인다.

세대 간 대결에서도 균형추는 박 후보에게 기울어졌다. KBS·MBC·SBS 등 방송3사 출구조사를 보면 박 후보는 20대에서 39.2%포인트, 30대 52.0%포인트 격차로 나경원 후보를 따돌렸다. 과거 선거에서 유동적 투표 성향을 보이며 '심판' 역할을 한 40대 표심도 박 후보(66.8%)가 나 후보(32.9%)보다 두 배가량 앞섰다.

40대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박 후보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예상됐다. 고액 대학 등록금, 취업난,전·월세난 등 민생 위기에 내몰린 20~40대가 박 후보 지지라는 '계급 투표' 양상을 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나 후보는 안정적인 지지 세대인 50대 이상에서도 기대만큼 우위를 보이진 못했다. 60대 이상에선 박 후보를 38.8%포인트 앞섰지만 50대에서 13.4%포인트 이기는 데 그쳤다.

■ 직장인 높은 투표율이 승부 갈라

'넥타이 부대' 투표율이 박 후보 승리의 동력이었다. 출퇴근 시간대 투표율이 다른 시간대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30~40대 직장인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하면서 투표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오전 7시 2.1%였던 투표율은 출근시간대인 오전 9시 10.9%로 올랐다. 낮 시간대 투표율은 시간당 2%대였다가 퇴근시간대인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39.9%에서 48.6%로 8.7%포인트 늘었다. 직장인 투표 때문에 투표율은 이른바 'W자 모형'을 그렸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박 후보가 나 후보와 팽팽히 대립하다 막판에 박 후보 쪽으로 승부추가 기운 것도 이들 넥타이 부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나 후보는 낮 12시까지 박 후보를 3~4%포인트 앞서다가 오후 5시쯤 박빙세를 보였고, 퇴근길 투표 행렬이 이어지면서 박 후보로 승기가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현상은 올 4·27 분당을 재선거와 비슷하다. '정권 심판론'과 '보수 가치'가 대립했던 분당을 선거에서도 직장인 투표가 승부를 갈랐다. 당시 선거에서는 오전 7시까지 1.8%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으나 출근시간대인 오전 9시에는 10.7%를 나타냈다. 오후 7시 42.8%를 보였던 투표율은 오후 8시 49.1%를 기록하면서 한 시간 동안 6.3%포인트의 투표 증가율을 나타냈다.

50%에 가까운 투표율에는 이른바 '안철수 효과'도 엿보인다. 정치 무관심층, 무당파 중도 성향층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의 등장과 함께 새 정치, 새 인물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투표율을 견인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비강남은 모두 박 후보에게

지역별 투표 성향도 확연한 차이가 났다. 나 후보는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권과 용산구에서만 이겼고 나머지 지역에선 박 후보가 우세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처럼 강남권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다만 두 후보 간 득표 차이에서는 변화가 생겼다. 지난번 지방선거와 달리 강남에서의 격차는 줄어들었고 나머지 지역에서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박 후보가 지역별로 골고루 지지를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박 후보는 대학가가 몰려 있는 서대문구와 동대문구, 관악구에서 나 후보를 눈에 띄게 앞섰다.

서초구(53.1%·1위), 송파구(50.2%·6위), 강남구(49.7%·8위)의 투표율은 전체 투표율(48.6%)을 웃돌았다. 특히 '강남 속의 강남'인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투표율은 63.9%로 집계됐다. 나 후보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중구도 49.9%(7위)로 높았다. 그러나 나 후보는 다른 지역에서의 열세를 만회할 수 없었다.

< 안홍욱·조현철 기자 ah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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