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하는 끈이 만물을 지배한다
1948년 아인슈타인은 68세의 나이에 일반화된 중력이론 이라는 책을 펴냈다. 힘과 물질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에 대한 책이었다. 당시 연구 조수였던 존 케메니(훗날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이 됨)는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모든 정열을 다 바쳐서 우주의 법칙을 찾으려 했다” 고 회고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상대성이론의 큰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도 있었다. 인생의 후반부를 바쳤던 통일장 이론에 결국 실패했던 점과 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론을 받아들이지 못한 점 등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양자론이라는 사악함을 보지 않기 위해 머리를 땅에 박고 있는 타조같이 보일 것” 이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양자론을 배척했다. 위대한 아인슈타인이 과연 능력 부족으로 양자론을 거부했을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의 성공모델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에 이와 논리적 모순이 있는 양자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은 매우 부드럽고 평온한 공간이다. 상대성이론은 일상 세계와 우주 등 거시 세계를 너무나 잘 설명했다. 그러나 양자론에 따르면 미시 세계 즉 원자나 전자의 세계는 용암이 부글부글 끓듯 급격하게 요동치는 거친 공간이다.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미시 세계와 잘 맞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양자역학의 세계를 상대성이론의 틀로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에 도전했다. 통일장 이론은 힘과 물질을 모두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힘은 장(field)으로 나타나고 물질은 강한 장이 몰려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의 도구였던 미분기하학을 이용해 30년 동안 통일장 이론 완성에 매달렸다. 통일장 이론은 특히 상대성이론의 중력을 양자역학의 세계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우리는 그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아인슈타인은 실패한 것일까? 오히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 그는 분명히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모순을 간파했다. 2가지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양자론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성공에 필요한 초끈이론의 개념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초끈이론 (Super String Theory)
1960년대에 허름한 모습으로 태어난 끈이론은 현재 최고의 통일 이론으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1960년대는 물질의 궁극을 찾고자 하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이론물리학이 실험물리학의 시녀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다. 매달 쏟아져 나오는 실험 결과를 설명할 이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양성자를 높은 에너지로 충돌시킨 실험 결과를 비교적 간단한 오일러의 수학공식을 통해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1968년 베네찌아노가 밝혔다. 그후 시카고대학의 교수 등 다른 과학자들이 이 공식을 끈의 진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증명했다. 즉 점 입자의 충돌을 점이 아닌 끈의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끈이론의 탄생이었다. 당시 끈이론에는 큰 결함이 있었다. 끈의 진동 중 하나에 타키온(tachyon)이라고 하는 질량의 제곱이 음이 되는 입자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나올 수 없는 입자였다. 이 문제는 ‘초대칭성’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해결했다. 입자에는 물질을 이루는 입자(페르미온)와 힘을 이루는 입자(보손) 2가지가 있다. 두 입자가 늘 짝을 이뤄 존재한다는 것이 초대칭성이다.
1971년 라몽, 느보, 슈바르츠는 기존 끈이론에 초대칭성을 가진 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77년 글리오찌 등이 이 원리를 이용해 타키온을 끈이론에서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초대칭성은 끈이론을 ‘초끈이론’ 으로 발전시켰고 결과적으로 초끈이론에 힘과 물질을 통합하는 개념을 제공했다. 이렇게 완성된 끈이론은 여전히 문제를 갖고 있었다. 아무리 실험을 해도 스핀이 2면서 질량이 없는 입자가 나오지 않는데 초끈이론에선 그러한 입자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1974년 대전환이 일어났다. 셔크와 슈바르츠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거의 버려야 할 이론을 완전히 새로운 이론으로 되살렸다. 초끈이론을 양성자 충돌을 설명하는 원리 대신 새로운 중력 이론으로 바꾼 것이다. 힌트는 바로 문제가 됐던 스핀이 2이고 질량이 없는 입자였다. 이 입자를 물질 대신 힘, 즉 중력을 일으키는 입자(중력자)로 본 것이다. 드디어 양자역학 세계에서 중력을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1984년 여름 끈이론은 마침내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대변신을 한다. 그린과 슈바르츠는 고집스럽게 수학 계산을 한 결과 물리역사상 처음으로 양자역학과 모순이 없는 양자중력이론을 찾아냈다. 1년 동안 모순이 없는 초끈 이론이 모두 5가지나 등장했다. ‘유형 I, 유형 IIA, 유형 IIB, 헤테로틱E, 헤테로틱O’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다섯 가지 끈이론이다. 이러한 1980년대 중반을 흔히 초끈이론의 제1혁명기라 일컫는다.
여기서 초끈이론을 다시 한번 정의해 보자.
20세기 물리학을 지배한 입자 이론은 모든 물질의 근원이 원자→원자핵→양성자와 중성자→쿼크(0차원의 점) 등 아주 작고 쪼갤 수 없는 입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초끈이론은 이런 입자를 끈으로 대체한다. 즉 초끈이론이란 모든 물질의 근원이 10-33cm 길이의 아주 짧은 1차원 끈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이 끈은 에너지의 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양성자의 크기가 10-13cm인 것을 감안하면 이 끈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물질이 입자로 돼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들을 도입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전자, 쿼크, 중성미자(뉴트리노), 광자, 중력자, 글루온 등 매우 다양한 입자들이 필요하다. 반면 초끈이론은 끈 하나만 있으면 된다. 여러 입자들은 한 가지 끈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다른 질량과 물리량을 가질 수 있다. 즉 전자와 중성미자는 같은 끈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진동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현악기를 생각해 보자. 현악기 줄 하나가 여러 가지 파장의 진동을 만들 수 있다. 진동은 파장에 반비례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E=mc2에 따라 에너지가 질량이 된다. 따라서 다양한 질량을 가진 입자들이 끈의 진동에서 나올 수 있다. 입자이론의 세계는 시간을 포함한 4차원이다. 그러나 초끈이론은 우리의 세계를 10차원 시공간으로 확장했다. 초끈이론은 10차원에서만 수학적 모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10차원 시공간은 90년대 들어 11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4차원 외에 나머지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초끈이론은 “나머지 6차원은 보이지 않도록 작게 말려 있다” 고 대답한다. 전기줄을 멀리서 보면 1차원 물체(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3차원 물체다. 이처럼 우리 우주의 모습도 커다란 4차원 시공간과 작게 말려버린 6차원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겨 있는 차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끈은 감긴 공간 쪽으로도 다양하게 진동한다. 이런 진동은 4차원 입장에서 보면 전하로 나타난다.
통일 이론의 가장 큰 과제는 중력과 다른 힘을 양자세계에서 통합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만 그림으로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고무밴드와 같은 ‘닫힌 끈’, 다른 힘과 모든 입자는 짧은 실과 같은 ‘열린 끈’이다. 막 위에서 열린 끈이 진동하는 모양에 따라 끈은 전자기력과 강력, 약력이 되기도 하고 쿼크와 같은 입자도 만든다. 이 열린 끈이 막 위에서 살짝 떨어진 뒤 닫힌 끈이 되면 중력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초끈이론은 끈 하나로 4가지 힘과 모든 입자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초끈이론가들은 초끈이론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찾고자 하던 통일이론의 참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11번째 차원의 문을 연 M이론
초끈이론이 1차혁명기를 거치면서 많은 발전을 했지만 통일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유일해야만 할 것 같은 통일 이론의 후보가 다섯이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근심은 이론이 너무 앞서가서 실험으로는 도저히 검증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초끈이론에 사용되는 수학이 너무 어려워졌고, 실험과의 괴리 때문에 열기도 많이 식었다. 진정한 발전은 가장 어려운 시련 속에서 나타난다고나 할까. 1995년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에드워드 위튼은 매우 적은 수의 학자들이 참가한 끈이론 학회에서 모두가 뒤로 나자빠질 정도의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초끈이론의 한 유형(IIA이론)에서 결합 상수가 커질 경우 새로운 11번째 차원이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1차원의 끈이 사실은 11차원에서 대롱처럼 말려 있는 2차원 막이었다는 것을 뜻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과학자들은 5가지 끈이론이 모두 다 연결돼 있으며 근본 이론의 특별한 예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근본 이론을 ‘M이론’ 이라 부른다. 이전까지의 물리학자들은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과도 같았다.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 코만 만져보고 코끼리라고 한 것이다.
M이론이란 이름은 위튼이 지은 것으로 M은 ‘Magic, Mystery, and Matrix’의 첫 자를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이론의 근원인 어머니(Mother)에서 왔다고도 한다. M이론은 11차원의 이론이며, 초끈과 막을 포함하는 진정한 통일이론의 후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다른 중대한 발전은 폴친스키에 의해 도입된 ‘D-브레인’ 이라 불리는 새 식구의 등장이다. 브레인이란 2차원의 막(membrane)을 다양한 차원으로 확장한 것이다. 즉 3차원 막, 4차원 막, 9차원 막이 브
레인이다. 이러한 브레인은 초끈이론에서 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열린 초끈은 D-브레인 위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끈이론은 1차원의 끈만 있는 독주곡에서 0차원(점)에서 9차원까지 모든 차원의 브레인들이 총 출연하는 교향곡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M이론과 브레인의 등장으로 끈이론은 제2의 혁명기를 거치게 됐다. 당시 최대 성과는 스트로민저와 바파가 끈이론으로부터 블랙홀의 엔트로피(자유도)를 정확히 계산한 것이었다.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에서 정보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내기에 졌다고 시인한 것도 초끈이론 때문이다. 또 ‘브레인 세계 시나리오’라는 중요한 이론도 나왔다. 이 아이디어는 빛으로 보는 세계 즉 우리가 보는 세계는 4차원에 불과하지만 중력으로 보면 11차원의 세계가 모두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4차원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눈이 빛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중력파를 볼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우리 주위에 감겨져 있는 다른 차원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중력파가 감겨진 차원으로 빠져나가면 에너지보존법칙이 깨질 수도 있다.
초끈이론으로 우주를 한번 바라보자. 흔히 우주의 탄생은 빅뱅 즉 한 점에 뭉쳐 있던 모든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현재의 우주를 만든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초끈이론에서는 다른 이론도 생각할 수 있다. 즉 우주 탄생을 점의 폭발이 아니라 막과 막의 충돌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빅뱅 이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직은 많은 아이디어들이 서로 공방을 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빅뱅 이전에 또 다른 우주가 있었다던가, 빅뱅 이전에도 시간이 존재했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초끈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도 뒤흔들고 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끈이론에서는 빛의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은 연속적이었지만 초끈이론의 시공간은 찢어질 수 있다. 따라서 먼 장래로 가로질러 가는 웜홀이 가능해진다. 우주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힐 수도 있다.
끈이론 외에도 다른 양자 중력이론이 몇몇 제안된 바 있다. 최근 이들도 다 M이론 속에 통합돼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초끈이론과 M이론의 실체가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M이론에 필요한 수학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끈이론을 21세기 물리학이 20세기에 성급하게 발견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끈이론은 물리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분명 도전을 해볼만한 분야이다. M이론이라는 미답지에 대한민국의 국기를 꽂기 위해 지금도 많은 한국의 끈이론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글 | 남순건 :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nam@khu.ac.kr
[출처] 우주의 통일이론을 찾아서|작성자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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