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뜨겁게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를 넘어 퇴진을 요구하는 등 ‘국정원 게이트’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손에는 ‘국정원 대선개입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 ‘대선 개입 민주주의 파괴 원세훈 구속’ 등의 피켓이 들려있었고, 해가 저물며 밝혀진 촛불은 저녁 늦게 까지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염원과 함께 활활 타올랐다.
청년 이그나이트, 부정선거 진상규명 시민모임,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등은 22일 오후 4시부터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500여명의 시민이 함께 참여해 자유롭게 발언했다. 시민들은 앞쪽으로 나와 ‘국정원 게이트’에 대한 생각을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공유했다. 저마다 각각 다른 관점이었지만 민주주의가 훼손된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시민들은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강하게 규탄하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한 70대 할아버지는 “5.16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눈으로 봤다. 지금 젊은이들은 절대 모른다”며 “그렇게 얻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도 그러더니 딸도 (부정을 저지르는) 그런 짓을 했다”고 외치며 강하게 박 대통령을 비난했다.
‘86년도에 입학한 선배’라는 한 40대 여성은 “당시 입학식에 전투경찰과 같이 서서 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아주 단순한 것”이라며 “민주주의란 깨어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많은 고통을 겪고 선배들이 죽고 겨우 여러분에게 넘겼는데 학생들이 그 요구를 다시 하게끔 해서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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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규탄 촛불집회에 참가한 참가자들 ⓒ'go발뉴스' |
시민들 뿐만 아니라 정청래, 최민희 민주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과 박주민 민변 변호사, 나꼼수를 진행했던 김용민 교수 등도 참석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석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입을 열어야 한다. 전모가 밝혀진지 3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며 “이 정부 책임도 아니고 내 책임도 아닌데 왜 사과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통령, 권력이 무엇인가. 국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갖는 자가 아닌가”라며 박 대통령의 침묵을 맹비난했다.
정청래 의원도 “대선 전 12월 16일 밤 11시 댓글 사건은 아무 혐의가 없다는 경찰의 발표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며 “바로 그 순간 불법적으로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경찰은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꾸는 발표를 한 것”이라며 질타했다.
종교계에서도 시민들과 뜻을 함께 했다. 김영택 신부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할 약인 정의와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며 “나는 사제이니 박근혜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악행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언해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와 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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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불집회를 벌이는 어버이연합과 애국주의연대 ⓒ'go발뉴스' |
이날 집회 현장 맞은편에는 보수단체 어버이연합과 애국주의연대가 촛불집회의 반대와 NLL 대화록 즉각 공개를 요구하는 맞불 집회를 벌이며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욕설을 하는 등 몇 차례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 경력 30개 중대 1400여명을 배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집회 장소를 둘러싸고 이동과 접촉을 막았다.
촛불집회는 저녁 9시까지 헌법 제1조와 아리랑, 촛불하나 등 다양한 노래와 시민들의 자유발언으로 채워졌다. 일부 시민들은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 집회에 참여하며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집회를 마친 후 한대련 학생들은 깃발을 들고 ‘평화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지켜내자 민주주의’, ‘평화행진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과 종로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종로 1가에서 경찰이 폴리스라인으로 막자 이들은 반대방향으로 가는 등 경찰과 대치를 30여분 벌이다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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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행진'을 벌이는 한대련 소속 학생들과 시민들 ⓒ'go발뉴스' |
경찰과 대치를 벌이던 정수연 통합진보당 학생위원장은 “국민의 주권은 어디서 나오나”라며 “우리는 정당하게 뽑힌 대통령을 원하지 국정원이 여론조사해서 뽑은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외쳐 지나가던 시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경찰과 대치중인 이들을 향해 ‘힘내라’, ‘지지하겠다’ 등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집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해 ‘국정원 게이트’를 맹비난했다. 20대 박씨는 ‘go발뉴스’에 “정말 옳지 않은 사건이다”라며 “나라를 지켜야 되는 국정원이 정작 부정부패에 휩싸여서 이게 무슨 짓인지 너무 통탄스럽다”고 개탄했다.
자원봉사를 온 단국대 학생은 ‘go발뉴스’에 “선거 즈음부터 논란이 많았던 불법 선거 개입이 사실로 밝혀지며 너무 화가 난다”며 “누가 봐도 심각하게 잘못된 것 아닌가. 엄청난 사안에 놀라울 따름이다”고 분개했다.
30대 회사원은 “언론에서 보도가 안 된다고 해서 잠잠해 지겠지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우리는 정보가 공유되는 최첨단 세대 아닌가”라며 “그러니 SNS로 여론 조작을 하지 않았을까.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영업을 하는 50대는 “무섭다. 또 역사가 이렇게 되풀이 되는 것 같아서 무섭고 두렵지만 이제는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해 집회에 나왔다”며 “민주주의 국가로 가기 위해 젊은이들이 좀 더 힘을 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대련에 따르면 촛불집회는 23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KT건물 앞에서 열릴 예정이고, 매주 주말 시민들과 함께 지속적인 규탄 집회를 열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