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장일현 기자의 딱 한 수] 지방빵집 성심당·이성당, 자신만의 필살기로 무장… 전국적 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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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6.22 03:18

이성당, 군산의 대한민국 最古빵집 - 광복 직후에 빵집 열어… 단팥 꽉찬 빵으로 이름 날려… 그뒤 100% 쌀가루로 빵껍질
성심당, 1956년 대전 찐빵집이 시초 - 튀김 소보로로 명문 빵집 도약… 2005년엔 '대전 부르스떡' 히트
훈훈한 스토리, SNS로 입소문 - 두 곳 모두 남은 빵 복지시설에… 올해 초 서울 롯데百 초대전엔 수만명이 줄서가며 빵 사가

지난 18일 오전 전북 군산시 중앙로.

막 시작된 장마로 비가 내렸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김현주 사장은 "가장 인기 있는 1200원짜리 앙금빵은 주중에 매일 1만개, 주말엔 1만3000~1만5000개를 굽는다"고 말했다. 빵 공장은 하루 24시간 계속 불을 때는데, 밤새 작업을 해서 4000~5000개를 만들어 아침에 내놓고, 낮에는 2시간 간격으로 수백~1000개 정도를 만든다고 했다.

대전 중구 은행동에 있는 성심당 본점에서 손님들이‘튀김 소보로’를 사기 위해 가게 밖으로 길게 줄을 서 있다. / 성심당 제공
대전 중구 은행동에 있는 성심당 본점에서 손님들이‘튀김 소보로’를 사기 위해 가게 밖으로 길게 줄을 서 있다. / 성심당 제공
같은 날 오후 대전 중구 은행동 '성심당' 본점. 2011년 국내 제과점 최초로 미슐랭가이드 한국판에 등재된 곳이다. 매장 한쪽 구석에 따로 마련된 '튀김 소보로(1500원)' 코너에선 직원 3~4명이 계속 빵을 튀겨냈다. 한 직원은 "본점에서 하루 8000개, 나머지 2개의 직영점에서 1만4000여개를 만든다"고 말했다.

두 빵집은 올 들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깥나들이를 했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1월에 성심당, 4월엔 이성당이 특별 초대전을 열었다. 1주일씩 열린 행사는 두 빵집 직원들은 물론, 백화점 관계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루 수천 명이 몰려들었고, 길게 늘어선 줄이 100m를 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두 행사에 각각 1만7000명과 2만명이 몰렸는데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제과·제빵업은 외국계,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까지 가세해 어느 업종보다 경쟁이 치열한 전쟁터가 됐다. 그런 와중에도 이성당과 성심당처럼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며 탄탄하게 성장을 일구는 곳도 있다. 매장이 하나밖에 없는 이성당의 지난해 매출은 80억원, 매장이 3개인 성심당의 매출은 135억원에 달했다. 대자본의 '골리앗'과 싸우면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막강 브랜드 파워를 발휘하는 그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4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이성당 초대전’에는 수 많은 사람이 몰려 100m가 넘게 줄을 서기도 했다. / 롯데백화점 제공
지난 4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린‘이성당 초대전’에는 수 많은 사람이 몰려 100m가 넘게 줄을 서기도 했다. / 롯데백화점 제공
①품질에 대해선 타협하지 않는다

김현주 이성당 사장은 지난 4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성당 특별 초대전 첫날 행사를 앞두고 새벽에 구운 앙금빵 500개를 맛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빵이 제맛이 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빵을 손님에게 내놓을 수 없다"며 전량 폐기를 지시했다. 김 사장은 "나는 소문이 두렵다"면서 "소문만 듣고 맛있다고 생각했다가 직접 먹어 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다른 빵도 맛있는데 이 빵 하나로 우리를 평가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성당의 또 다른 히트 상품 '야채빵'은 야채를 김치 담글 때처럼 절이고 물을 짜서 마요네즈로 버무리는 작업을 직접 손으로 한다. 다른 빵 3개 만들 때 이 빵은 1개밖에 못 만들 정도로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고유의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번거로운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심당은 2005년에 출시한 찹쌀떡 '대전 부르스떡'에 '아낌없이' 호두를 넣는 바람에 원가가 크게 올라갔지만, 가격은 원래 수준에서 고정시켰다.

이들 전통 빵집엔 "내 빵이 맛있다"는 자신감과 "내 빵은 맛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함께 존재했다. 이성당 김 사장은 "고객들이 1200원을 냈으면 그 이상 만족해야 되는 것"이라며 "가격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성심당 김미진 이사는 "재료 값, 원가 같은 것보다 우선 맛있는 빵을 만드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고 말했다.

②끊임없이 변신한다

군산 이성당은 1920년대 일본인이 세운 일본 과자점 '이즈모야'를 광복 직후 현 김 사장의 시아버지 일가가 인수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전 성심당은 6·25 전쟁 직후인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시작한 작은 찐빵집이 시초다. 오래됐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마케팅 위력이 엄청나다. "그땐 그랬지"를 연상시킬 수 있어 추억의 대상이 되고, 소비자 믿음도 비례해서 커진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전통만이 '성공 방정식'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성당은 예로부터 속이 단팥으로 꽉 찬 앙금빵으로 군산 일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지금도 총 무게 130g 중 팥이 90g이나 된다. 이성당은 속이 꽉 찬 단팥빵의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부단하게 차원 높은 입맛에 도전했다. 2000년대 들어선 밀가루 대신 100% 쌀가루로 빵 껍질을 만들었다. 당시 일본에서 쌀을 국수와 빵 등에 다양하게 적용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처음엔 쌀이 주는 느낌이 거칠고 빨리 굳는 바람에 몇년간 고생했지만 결국 부드러운 느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김 사장은 "쌀과 팥의 맛이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지면서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창적인' 맛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성심당은 1980년 첫선을 보인 '튀김 소보로'로 일약 대전 지역 명문 빵집 반열에 올랐다. 단팥빵에 소보로를 입혀 기름에 튀긴 이 특별한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번호표를 받으며 기다렸다. 성심당은 맛은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색다른 경험을 주는 방식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작년 초 본점 매장 안에 별도 코너를 만들어 고객 눈앞에서 직원들이 직접 빵을 튀겨서 바로 포장해 주기 시작했다. "호박전도 바로 부쳐서 먹으면 더 맛있다"는 논리다. 성심당은 전에도'포장 빙수'와 '판타롱 부추빵(부추를 속으로 넣은 긴 빵)'을 내놓아 지역 명물의 바람을 일으켰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네 빵집도 돈 없고 사람 없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집념과 끈기를 갖고 자신만의 '필살기' 상품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③스토리를 만들라

성심당은 매일 가게를 닫은 뒤 그날 남은 모든 빵을 박스에 담아 포장, 다음 날 고아원·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에 보낸다. 이 빵을 받는 곳이 150여곳에 이른다. 이 전통은 가게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57년간 지켜지고 있다. 임영진 대표는 "6·25 전쟁 때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온 아버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셨던 일"이라며 "성심당이 문을 열고 있는 한 이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당 김 사장은 지난해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아름다운 납세자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세금 잘 내고, 사회복지시설에 따끈한 빵을 나눠주고, 청소·김장 등 봉사 활동도 잘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시어머니도 평소 빵을 주변 어려운 분들에게 참 많이 나눠주셨다"면서 "그런 시절이 지금의 이성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주변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베푸는 철학'은 결국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나갔고, 이 가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누구나 인정하는 퀄리티가 있고, 여기에 느낌이 좋은 스토리가 곁들여질 경우 그 제품은 자연스럽게 명품이 된다"고 말했다.

④SNS는 전국구 진출의 호기

두 빵집이 '지역 스타'에서 '전국구'가 된 건 비교적 최근 몇 년 새 일이다. 이성당 김 사장은 "2000년대 초 빵집 운영을 맡았을 땐 앙금빵을 하루에 1000개 정도 팔았는데, 지금은 그 10배가 넘게 팔고 있다"고 말했다. 성심당의 경우도 지난해 매출이 5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이런 급속한 성장의 배경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국민의 특성과 폭발적으로 확산된 블로그·페이스북 등 SNS의 영향이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양유업 사태처럼 나쁜 소식도 급속하게 퍼지지만, 좋은 스토리도 빠르게 퍼져 강한 충격파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조광수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예전엔 일부 지방에서만 알려진 스토리가 이젠 삽시간에 전국에 퍼지면서 깜짝 스타 기업, 히트 상품이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Article in brief

성심당·이성당에서 얻는 경영 시사점

① '이 제품은 내가 최고'라고 자부할 핵심 상품 하나를 만들라.

사람·돈 없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의지·끈기 갖고 비장의 무기 만들어라.

② 오랜 역사가 전부는 아니다. 끊임없이 변신하라.

핵심은 지키되 구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변신하고 업그레이드하라.

③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라.

스토리가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시대. 진정성이 필수다.

④지방에서도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는 무대가 열렸다.

SNS 시대엔 누구나 순식간에 전국, 혹은 세계 소비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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