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 틈타 뜨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집까지 거래

  • 윤예나 기자

    • 크게
    • 작게

    입력 : 2013.03.24 09:00

    “침실이 둘인 집을 팝니다. 눈앞에 산이 보이는 방갈로입니다. 가격은 40만5000캐나다달러(약 4억4000만원). 같은 가치의 ‘비트코인(Bitcoin)’으로 주시면 더 좋아요.”

    최근 캐나다의 20대 집 주인이 인터넷에 올린 부동산 매물 광고문이다. ‘비트코인’은 온라인 공간에서 비공식 통용되는 가상화폐. 자신의 번듯한 주택을 팔면서 현금이나 카드가 아닌 이 가상 화폐를 받아도 좋다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의 거래 영역이 넓어지고 실물 경제로까지 진출하면서 각국 통화 당국들도 긴장하고 있다.

    ◆ 현실로 나온 가상 화폐…피자부터 집까지 산다

    영국 BBC는 지난 20일 비트코인을 받고 집을 팔 수도 있다고 선언한 캐나다의 22살 젊은이 테일러 모어를 인터뷰했다. 모어는 BBC에 “비트코인을 한번에 많이 손에 넣기는 어렵다. 지금 몇 가지 사업을 구상 중인데 비트코인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에 처음 등장했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가 처음 만들었다는 얘기만 나돌 뿐, 정확한 유래는 베일에 가려있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점점 통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비트코인을 이용하려면 우선 ‘비트코인 마이너(Bitcoin miner)’라는 거래망에 가입해야 한다. 거래망의 프로그램이 내는 복잡한 문제를 풀어서 맞히면 상으로 비트코인을 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트코인을 취득하는 것을 ‘채굴(mine)’이라 부른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중개 사이트들도 생겨났다.

    비트코인은 이제 여러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제 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가상 화폐가 실물 화폐 역할도 하게 된 것. 이용자들은 실물 화폐에 비해 오히려 나은 점도 있다고 말한다. 은행 영업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익명성까지 보장받는 것을 최대 장점으로 꼽는다. 무어는 BBC에 “비트코인은 환전 수수료를 아낄 수 있는 빠른 거래 수단”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22일 현재 비트코인의 거래 가격은 1비트코인당 70달러, 우리 돈으로는 7만8000원선이다.

    비트코인의 사용 영역은 최근 들어 급격히 확장되는 추세다. 폭로 전문 사이트로 유명세를 떨친 위키리크스를 비롯한 몇몇 사이트들은 비트코인을 통한 기부 모금을 받기도 한다. 비트코인을 받는 온라인 쇼핑몰도 급증했다. BBC는 이제 일부 지역에서는 비트코인으로 피자도 주문할 수 있다고 전했다.

    ◆ 위기 틈타 인기 급등…각국 정부·중앙은행도 긴장

    금융 위기의 늪에 빠진 유럽에서도 비트코인의 인기가 높다. 블룸버그는 지난 20일 “최근 키프로스 사태 이후 키프로스 거래 앱(응용프로그램)의 다운로드 수가 급증했다”면서 “17일 이후 스페인에서는 비트코인 관련 앱 3개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전했다.

    비트코인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따라붙는다. 블룸버그는 “가격 변동폭이 크고 해킹에 취약한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온라인 약물거래 등 불법 거래의 ‘실크로드’로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비트코인의 인기가 높아지자 각국 정부도 긴장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비트코인 거래 감독에 대한 설명 문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문서를 낸 금융정보분석기구(FINCEN)는 “비트코인으로 직거래가 이뤄질 경우엔 규제 대상이 아니지만, 중개인이 낄 경우엔 이 중개인에 대해 실물 화폐 거래 중개와 같은 규제를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미국의 경우 통상 은행·증권사·금융회사가 1만달러 이상 거래를 할 때엔 이를 FINCEN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거래에서 중개인이 끼게 되면, 이 중개인은 금융기관과 같은 규제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FINCEN의 스테판 허덕 대변인은 “그동안 미국 정부 기관 사이에서 디지털 화폐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실제 적용 규준으로 거래 현황을 살펴본 건 첫 사례”라고 말했다고 미 주간지 내셔널 저널은 21일 전했다.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실물 화폐의 사령탑인 각국 중앙은행은 힘을 잃게 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10월 유럽중앙은행(ECB)은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 각국 중앙은행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앞으로 각국 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비트코인이 주류로 떠오르면, 좀 더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