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꿈이라는 세상의 청춘들에게
[불혹 배낭여행기 17] 내가 만난 아일랜드 청년 데이비드는...
13.02.09 15:32
최종 업데이트 13.02.09 15:32▲ 2011년 떠난 마흔 살의 배낭여행. 세상과 인생에 관해 고민하는 세계 각국의 많은 청년들을 만났다. | |
ⓒ 홍성식 |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20~30년 전. 우리 세대는 이런 문장에 매혹됐다. '꿈을 꾸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리자.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젊은이를 격려했다. "청춘은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 이와 유사한 말을 한두 가지만 더 인용하자.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제 가슴 안에서 스스로 모반을 꿈꾸는 게 청춘이다." "젊음, 그것은 빛이 없어도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이다."
가장 빛나는 생의 한때,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절.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청춘을 예찬하는 문장은 고금과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가득하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 단어의 배후에 '꿈'이 있기 때문이다. 맞다. 꿈이다.
며칠 전.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접한 뉴스. '중고생의 장래희망(꿈) 1위가 공무원이 된 지는 이미 오래고, 최근엔 초등학생들도 자신의 장래희망으로 공무원을 말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
공무원을 폄훼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쏟아야 할 노력과 열정을 낮춰 보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을 꿈꾼다는 건 '편안하고 안락하게 실직의 걱정 없이 정년까지 안정적인 월급쟁이로 살고 싶다'는 감정이 이면에 깔려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일류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의 상당수도 고시를 포함한 공무원시험에 '올인'하고 있단다. 10대와 20대가 다르지 않다.
내가 본 세계 각국의 청춘들, 그들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다시, 청춘이 왜 아름다운가로 돌아가자. 도전과 모험, 새로운 시도와 시행착오가 결여된 청춘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안정적인 일상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의미하는 '안전한 주식'은 '언제나 모반을 꿈꾸는' 청춘과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이 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 이게 바로 '불안전한 주식'이고 젊은이는 그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
2011년. 눈보라가 인천공항 휘감아 치던 매서운 겨울 날. 스스로를 청춘이라 믿는 마흔 살 사내 하나가 10개월의 '나 홀로 배낭여행'에 나섰다. 매일매일 새로운 풍광과 친구들을 만났고, 그것들 속에서 인간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했다.
달랑 배낭 하나 등에 얹고 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좌충우돌 여행하는 기간 동안 세계 각국 청춘들의 웃음과 눈물, 희망과 절망을 봤다. 전유럽을 휩쓸고 있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의 이중고 탓일까? 다른 나라 청년들 역시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정과 안락을 지향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여줬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도 있었다. 또래 대부분이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이라는 '안전한 주식'을 사려할 때, 자신은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한 용기 있는 이들. 그들이 청춘을 걸어 투자한 주식의 다른 이름은 거침없는 모험과 때론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큰 꿈이었다.
아래는 내가 여행 중 만난 아일랜드와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청년의 이야기다. 그들은 남과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내 경험에 한정된 것이기에 이들의 꿈과 희망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없이 작아만지는 한국을 포함한 지구별 청년들에게 작은 용기와 고민의 시간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데이비드 컨던 "자전거를 타고 파타고니아로 갈 것"
▲ 스물여섯 아일랜드 청년 데이비드 컨던. 그의 자유로운 영혼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
ⓒ 데이비드 페이스북 |
마케도니아의 호수도시 오리드에서 만나 같은 숙소에서 2주를 함께 보낸 스물여섯 아일랜드 청년 데이비드 컨던. '문학의 나라'에서 온 젊은이답게 그는 대화 도중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윌리엄 블레이크의 문장과 시를 인용하는 재치를 보여줬다.
자신의 나라에서 한다하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는 안락한 사무실과 편안한 사무용 의자를 박차고 모험하는 삶에 자신을 던졌다. 아일랜드를 출발해 배를 타고 영국에 들어와 유럽과 아라비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것이라 했다.
그리고, 호주 체리농장에서 막노동으로 1년쯤 일을 해 여행경비를 모으면, 다시 남아메리카로 멕시코로 날아가 거기서부터 남미 대륙을 종단해 '지구의 땅 끝'이라 불리는 파타고니아까지 자전거여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계획을 들려주는 데이비드의 당당한 목소리. 놀랍고 부러웠다. 그의 '꿈속'에 내재된 에너지에 기가 질렸다.
컨던과 헤어진 지 1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페이스북과 2번에 걸쳐 내게 보내온 메일을 통해 그가 마케도니아에서 터키와 중앙아시아 등을 거쳐 호주의 체리농장에 도착했고, 남아메리카로 가는 일정을 짜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앞으로도 '꿈꾸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알리나 알베르티 "히피도 좋고, 봉사하는 사람도 좋아요"
▲ 마케도니아의 호수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청년들과 나. 홍일점이 알리나 알베트티다. | |
ⓒ 홍성식 |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알리나 알베르티는 182cm의 큰 키와는 관계없이 겨우 열아홉 살이라고 했다. 만약 내가 일찍 결혼했다면 딸아이가 비슷한 나이일 수도 있었을 터. 뭐든 챙겨주고 싶었다. 아이스크림과 맥도날드 햄버거를 좋아하는 꼬마로만 보였다.
알리나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된 건 수영 후 몸을 말리던 자갈밭 위에서였다. 파랗고 큰 눈동자를 빛내며 그녀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홍(여행 도중 만났던 10대와 20대 외국 아이들은 나를 곧잘 이렇게 불렀다), 내 꿈이 뭔 줄 알아?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가는 거야."
"왜?"
"이건 아무한테나 말하지 않는 건데…. 사실 내 엄마와 아빠는 히피였어. 청춘을 인도에서 보냈데."
"멋지네."
"그들이 왜 거기서 젊은 날을 보냈는지 알고 싶어. 그러면, 내가 뭘 해야 될지도 알게 되겠지."
"넌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뭘 하고 싶은데?"
"아직은 잘 몰라. 하지만, 내가 가진 작은 힘이라도 세상과 사람들에게 보탤 곳이 있지 않겠어? 그래서, 전공도 국제관계학을 택한 거고."
나 같은 40대, 더 나이 먹은 50대는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삶을 산다. 그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와 가족'이다. 나쁘지 않다. 그 지향에 욕을 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꿈꾸어야 마땅할 10대라면 자신과 가족, 그것들과 더불어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말할 줄 알아야한다. 왜냐? 10대와 20대란 꿈에서 가장 가까운 시절이기 때문이다. '열아홉'과 '현실주의'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결합인가. 40~50대와 이상주의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처럼.
영어와 독일어를 두루 구사하는 알리나는 지난해엔 그리스 대학에서 공부했다. 일종의 '교환 학생'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여러 언어를 배우는 이유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한 준비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보다 21살이 적은 알리나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한다. 그녀의 꿈은 내 꿈보다 훨씬 넓고 또 크다.
세바스찬 파치네티... "서른둘, 아직은 꿈꿀 나이잖아"
▲ 축구장에서의 세바스찬 파치네티. 정열적이라는 아르헨티나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준 쾌남아. | |
ⓒ 세바스찬 페이스북 |
190cm에 100kg을 넘나드는 거대한 몸피. 그 커다란 덩치로 게스트하우스 주방에서 손바닥만한 프라이팬을 놀려 내게 달걀 프라이를 해주던 세바스찬 파치네티를 잊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점잖은 사내.
제 나라 수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전기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는 동네 축구선수인 동시에, 휴가 때면 아시아와 유럽, 남미 일대를 휘젓고 다니는 여행광이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결혼과 그에 이어질 출산, 육아를 포기했다고 한다.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결혼적령기를 맞은 그의 선택이 쉬웠을 리 없다.
물었다. "너는 왜 제도가 아닌 자유를 선택했냐?" 돌아온 대답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이봐, 난 이제 겨우 서른 둘이야. 아직은 꿈꿀 나이잖아. 네 걱정이나 해." 그리고는 웃는다. 호탕하고 시원스럽게.
두 살이 적은 세바스찬의 동생 역시 '록그룹'의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물론, 결혼하지 않았다. 세바스찬은 그에 관해서도 명쾌한 해석을 내놓는다. "모두가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삶을 살 필요는 없잖아. 사람의 희망사항이 다 같으면 재미가 있겠어?" 이쯤 되면 전기기술자가 아니라, 한소식 한 스님의 어법이다.
청춘은 청춘에 어울리는 꿈을 가졌으면
▲ 젊음의 고민과 희망, 꿈과 절망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했다.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네덜란드 대학생 셋과 나눈 소박한 술자리. | |
ⓒ 홍성식 |
써놓고 보니 지나치게 '자유'와 남을 위한 '희생'만을 강요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없이 현실적으로 오그라든 한국 10~20대의 꿈과 희망에 실망한 기성세대의 자족적인 푸념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들의 선택이 옳을 수도 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안락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왜 나쁜가? 이렇게 물으면 내놓을 대답이 궁하다.
삶에 관한 정답을 내릴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발 먼저 생의 강과 산을 건너온 선배로서 이런 말은 꼭 해주고 싶다. '공무원이 장래희망이고 꿈'이라는 초등학생과 중고생들에게.
이미 42살이 됐지만, '안전한 주식'은 여전히 내 관심사가 아니다. 안정과 편안함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꿈꿀 수 있는 것. 지금은 이루어질 수 없더라도 큰 꿈을 가져야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릴 수 있는 당당한 배포와 배짱. 그게 바로 10대에게 어울리는 꿈이다.
세상은 꿈꾸는 자가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인류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나이'에 벌써 안정과 편안함을 장래희망으로 말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닌가.
비웃음을 살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 때 내 장래희망은 대통령이었고, 군대를 가기 전 20대 초반까지 내 꿈은 혁명가가 되는 것이었다. 꿈꾸는 모든 자는 청춘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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