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소통보다 불통, 부부 SNS
내 전화 씹더니 댓글은 신속…다정하고 지적인 모습까지
첫사랑하고는 친구 맺어도 25%가 “배우자에 비밀 계정”
남편과 아내, 속에 쌓아둔 불만을 풀어보자고 ‘대화’란 걸 시작합니다. 한쪽에서 몇 번 쥐어박는 소리를 하니 다른 쪽이 꾹 입을 닫아버립니다. 이건 뭐, 대화가 불화를 부추깁니다. 한국건강가족진흥원의 고선주 원장은 “대화의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닌지 살펴보라”고 충고합니다. 일단 ‘잘 들어주기’부터 대화를 시작해보세요. 해결책 찾기에 집중하기보다, 상대방의 눈을 보며 얘기에 집중하고, 끄덕끄덕 공감해주세요. 대화의 질이 확 달라진다네요.
“먼저 자.”
또다 또.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시각, 남편은 아직도 거실에 있다. 보지 않아도 훤하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페이스북(페북)을 들여다보고 있을 게 뻔하다. 스스로를 ‘집순이’라고 부르는 전업주부 김지연(가명·39)씨는 마음속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꾹 찍어 누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남들도 다 하더라’며 몇 달 전 남편이 페이스북을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남편은 새로 산 카메라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다. ‘가정적인 아빠 놀이’가 살짝 가소롭긴 했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랬더니 이젠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내내 ‘페북 삼매경’이다. ‘슬쩍’ 들여다본 남편의 페북 친구 리스트엔 대학교 여자 동기부터 직장 여직원, 심지어 첫사랑 ‘그녀’까지, 여자가 절반을 헤아렸다. 다행히 첫사랑 그녀와는 ‘수상쩍은’ 기류가 감지되지 않는다. 일단 패스!
어랏, 그런데 페북 속의 이 남자는 내 남편이되 내 남편이 아니다. 프로필 사진과 이름은 분명 ‘네 남편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페북 속 이 남자는 무척 다정하다. 섬세하고, 심지어 지적이기까지 하다. 계속되는 야근 때문에 힘들다는 여자 후배의 글에 “아자아자 힘내자!”라고 댓글을 다는 이 남자가 어떻게 내 남편이란 말이냐. ‘내 남편은 집에 오면 피곤하다고 티브이만 보는 사람이라고요!’
예민한 촉수에 글 하나가 딱 걸린다. “팀장님, 안 계시니 재미없어요. 빨리 오세용~.” ‘얼짱 각도’로 생글생글 웃는 여직원이 회식 자리에 오지 않은 남편을 채근하고 있다. “오케이, 지금 간당!” 며칠 전 ‘언제 (집에) 오냐’는 문자를 잘근잘근 씹었던 이 남자, 댓글은 참 신속하게도 달았더라.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이 여직원, 예쁘다. ‘얼짱 각도 사진은 믿을 게 못 돼. 설마 이 예쁜 언니가 늙다리 남편에게 관심이나 있겠어?’라고 위안하지만, 기분이 영 찜찜하다.
심란하게 뒤져본 남편의 페북엔 출근길 버스 밖 풍경에 대한 묘사나 뉴스 이슈에 대한 촌평들이 이어졌다. 남편한테 들어본 적 없는 얘기들이다. 하기야 남편과 ‘대화’란 걸 해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새삼 ‘이 남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싶으니 쓸쓸하다. 낯설다, 남편의 이런 모습.
‘시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통’하고 혁명을 도모한다. 하지만 ‘부부’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서로의 ‘불통’을 확인한다. 에스엔에스를 부부간의 소통 도구로 적극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조사 결과는 불통의 기미를 엿보게 하는 창이다. 부부·가족 전문 상담교육 기관인 ‘듀오라이프컨설팅’이 최근 기혼 남녀 2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에스엔에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한 135명 가운데 주요 대화 대상으로 가족을 꼽은 비율은 5.5%에 불과했다. ‘에스엔에스 친구가 특별하다’고 느끼는 이유로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33.1%)하고 감성적인 교류를 할 수 있기 때문(15.9%)이라는 점을 1, 2위로 꼽은 이들이, 친구들(74.8%)과의 소통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물론 한집에서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가 굳이 ‘소셜’한 네트워크로 엮일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부부라도 사생활은 필요하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하지만 부부 2명 중 1명꼴로 ‘하루 평균 1시간 미만’ 대화를 한다는 조사 결과(2011년 6월 ‘대한민국 부부 소통 보고서’)를 생각하면, 부부의 가정 밖 사생활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심지어 에스엔에스상에선 부부끼리 친구 맺기를 꺼리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 ‘에스엔에스에 올린 다른 이성과의 친밀한 사진이나 대화 때문에 갈등을 겪어봤다’는 사람이 셋 중 하나(33.3%)인 까닭이다. 에스엔에스 사이트엔 “페북에 가족, 특히 여친과 와이프를 끌어들이는 것은 너희 스스로 지옥을 불러오는 지름길이니, (이를 금하는 것을) 너희의 계율로 만들어 만세에 지속되게 하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자는 취지인데, ‘오해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배우자와 에스엔에스 친구 맺기를 안 한다’(69%)거나 ‘배우자 모르는 에스엔에스 계정을 갖고 있다’(24.8%)는 식의 해법은 불통 그 자체다.
‘불통’의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 에스엔에스는 배우자의 ‘불륜’에 대한 의심을 싹틔우고 ‘불화’를 키우는 텃밭이 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박소현 법률구조2부장은 “자신에겐 평소 사용하지 않았던 친밀한 호칭이나 말을 에스엔에스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는 배우자를 보면서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아 부부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외도 관련 면접상담 10건을 하면 3~4건 정도가 에스엔에스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며, 외도 관련 이혼 소송에서 에스엔에스 메시지가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도 꽤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에스엔에스 자체가 외도나 부부 갈등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박 부장은 “평소 원활히 대화를 해왔던 부부라면 에스엔에스상의 메시지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나 갈등은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다”며 “에스엔에스로 인한 갈등은 부부 사이에 존재해왔던 불통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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