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무더위가 지구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는가 했더니 어느새 전 세계가 물난리를 겪고 있다. 습기 하나 없을 것 같던 하늘이었건만 장마철에 쏟아지는 장대비는 차라리 양동이로 퍼 붓는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하다. 나는 비가 올 때마다 공중의 물과 지상의 물, 그리고 땅속에서 흐르는 지하수가 상호 교류하고 있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떠올리곤 한다. “저 빗물 중에 일부가 수맥파장으로 갈라진 틈새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형성하게 되겠지” 그러다보니 수맥에 묻혀있는 조상은 더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조상의 感應을 받는 자손들은 아픈 부위가 더욱 욱신거리기도 하고 통증도 커지리라는 생각도 그때마다 느껴 보는 현상 중에 하나이다.
장마철이나 찌는 더위에 이장하는 분들의 답답한 심정이란 겪어 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들다. 충북 음성의 이장 현장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한 세 사람이 있었다. 16위의 선대 조상을 납골 묘에 안치하기에 앞서 자문을 얻고자 했다. 작업개시 3일을 남겨 둔 시점에서 화장의 문제점을 들추기가 곤란스러웠다. 화장을 한 후에 호전되는 집안을 별로 보지 못한 것도 내가 머뭇거린 이유 중에 하나였다.
조상님들과 직접 대화를 통해 물어 보는 게 가장 정확하리라는 판단 하에 다음 날 영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은사를 지닌 S집사님과 함께 J씨의 선영을 찾았다. 제일 윗대 조상의 묘에 오르니 十 자 수맥 속에 묻혀있던 영가는 “나 뿐만 아니라 내 자손들이 전부 수맥에 묻혀 있으니 빨리 물속에서 꺼내 달라”고 했다. “화장(火葬)을 하여 납골로 잘 모셔드릴 터이니 그리 아세요.” 하고 자손들의 의사를 전달하자 놀란 영가는 ‘지금까지 이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고통을 참아왔는데 화장이라니, 화장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물속에 그냥 있겠다.’ 며 노발대발했다.
16위 조상의 묘를 거치며 수맥을 탐사하며 대화를 시도해 본 결과 제일 윗대 할아버지 영가의 말씀대로 수맥을 피한 묘가 단 한기도 없었고, 영가들마다 '제발 화장만은 하지 말라' 며 애원을 했다.’ 한 영가는 ‘땅속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 같고 수맥이 너무 무섭다’ 는 표현을 했다. 가장 윗대 조상 할아버지는 ‘내가 나쁜 곳에 묻혀있다 보니 너희들에게 복을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떠나지를 못하고 있다. 나와 내 자손들을 이장해 주면 너희에게 내린 저주를 거두어 떠나겠다.' 했다.
뜻하지 않은 조상님들의 반란에 급작스레 화장(火葬)에서 매장(埋葬)으로 계획을 변경한 J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조상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르게 되었음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 이장하던 날 가장 먼저 대화를 시도했던 맨 윗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합장묘에는 영가의 말씀대로 물이 차 있는 광중에는 한 조각의 뼈도 볼 수가 없었다. 비록 뼈 한 조각 없는 물속이었건만 영가들은 우직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자신의 묘지가 나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 기거하면 될 것을 왜 그 자리를 피해가지 못하는 것일까! 자손들에게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 가공할 힘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금번의 이장을 통한 연구에서 얻은 게 있다면, 우리나라의 영가들은 화장(火葬)이란 장묘 법을 아직까지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수맥이 흐르는 무덤 속 영가들의 일치된 호소로 보아 그분들이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는 존재는 수맥이라는 것. 추가로 영가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묘지가 나쁠 경우, 영가들 스스로가 좋은 곳을 찾아 옮겨가면 될 것을 무슨 미련이 남아 있다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애궂은 자손들만 괴롭히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도대체 유골이 무엇이기에.....
-이번 주 음성신문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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