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노동자(고용 없는 성장).. 과연? - <한계비용 제로 사회>(6) 10점(명저) / 책추천

2014. 11. 2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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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노동자.. 과연?

 

 

“보다 정교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노동자 없는 문명의 세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할 것이다.”

 

저자 리프킨은 1995년 자신의 책 <노동의 종말>에서 이와 같은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세계 최고의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서평을 통해 과연 리프킨의 선견지명이 옳은지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2005년 <이코노미스트> 사설에 다음과 같이 썼다.

 

“리프킨은 우리 사회가 모든 소비재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점점 더 적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예언적으로 주장했다. 분명 이 과정은 시작되었다.”

 

최근 ‘고용 없는 성장’이 화두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대침체가 있었지만 전세계 경제는 잠깐 마이너스에 접어들었을 뿐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를 잘 극복하면 계속되는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에 비해 초라한 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용으로 인해 ‘경제성장=고용증가’라는 공식은 점점 무시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고용 없는 성장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프킨은 모든 것을 자동화시키는 로봇 공학,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고급 분석, 알고리즘 등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지식 및 엔터테인먼트 부문 전반에 걸쳐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제조업에의 일자리 상실은 이제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필립스의 새로운 공장은 완전 로봇화로 관리 노동자 소수만을 고용했음에도 기존보다 10배 가까운 생산성을 얻게 되었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의 폭스콘의 경우도 앞으로 수년 내에 100만 대의 로봇을 설치하고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없앨 계획이라고 한다. 웹휠프로덕츠(Webb Wheel Products)라는 트럭 브레이크 부품을 만드는 미국회사는 대형 로봇을 하나 둔 덕분에 추가 고용 없이 연간 30만개나 부품을 더 만들 수 있었다. 리프킨은 2003년 미국에서 1억 63000만 개 일자리를 제공하던 공장은 2040년이면 단지 몇 백년만 개의 일자리만 제공할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자동화, 로봇공학, 인공지능은 제조업만 아니라 사무직 종사자들과 서비스업의 노동력도 빠르게 제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5년간 비서, 문서 정리원, 전화 교환원, 여행사 직원, 은행 직원, 출납원, 그리고 수없이 많은 여타 사무직 및 서비스 직종이 사라져 왔다고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소매업체 월마트는 셀프 계산대 단말기를 도입해 노동력을 줄이고 있으며 다른 소매업체들도 월마트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기술의 행보는 가차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인력의 전문 노동자의 일자리마저 없애고 있다. 이디스커버리(eDiscovery)라는 소프트웨어는 수백만 건의 법률 문서를 샅샅이 조사해 법무 및 소송 관련 행동 유형과 사고방식, 개념 등을 찾아 준다. 이 소프트웨어는 10만 달러 비용으로 200만 달러가 넘는 변호사 고용 비용을 대체할 수 있으며 분석 정확도도 더 높다고 한다. 

 

더불어 빅데이터 발달로 인해 패턴 인식이나 미래 예측을 하는 전문가들 또한 대체하고 있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엄청난 성능의 컴퓨터들이 더 정확한 진단으로 의사들을 대체하고 있으며 히트할 음악을 예측하는 영역들도 빅데이터 분석으로 통해 관련 전문가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가 도저히 넘을 수 없다고 보았던 통역 분야에서도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어 수십년 후면 통역사들도 컴퓨터들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내 줘야 할 처지에 있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보면 암울해 보이지만 리프킨 말하는 것은 어두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새 세상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극단적 생산성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것이며 노동보다는 ‘놀이’나 '협력적 롤플레잉'에 더 집중하게 할 것이고 더 고차원적인 일에 우리가 매진하게 될 유토피아를 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반세기 후면 우리의 손자, 손녀들은 시장에서 대량고용이 이루어졌던 시대를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돌아 볼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옛날의 노예제도나 농노제도를 믿을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난 극단적 생산성을 달성하여 한계 비용 제로 사회가 온다면 인간이 어느 정도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최소한 리프킨이 주장한 기술 혁신이 고용 없는 성장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은 의문점이 있다. 최근 한국경제학회에서 발표한 <기술혁신은 고용없는 성장을 야기하는가?>에 의하면 기술혁신은 장기적으로 제조업 고용은 감소시키지만 서비스업 고용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게다가 경기변동 과정에서는 제조업 기술 발달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체의 고용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왔다.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기술혁신은 고용구조의 변화는 가져오지만 고용없는 성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에서 언급했듯이 빅데이터의 미래 예측 능력이 인간의 도움 없이는 좋아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빅데이터라는 것은 어떠한 자료를 넣고 초기설정을 어떻게 할 것이며 기술적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까운 분석을 해야지만 그 실효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불확실성 대응의 가장 좋은 성적을 낳는 것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와 <자신 있게 결정하라>의 저자 히스 형제가 말한 ‘줌 아웃, 줌 인’ 전략이다. 즉 통계적이고 이론적 배경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간의 눈으로 그 상황을 철저히 살펴보거나 내러티브 즉 사건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접목시켜야 더 현명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단순히 연산작업으로는 알 수 없는 인간의 직감적 요소가 필요한데 30년 안에 로봇이 실제로 인간처럼 움직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직감적 요소를 갖추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의 궁극적 주장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하겠지만 한계 비용 제로 사회가 초래하는 협력적 공유사회에서는 그 무엇이 노동이 아니라 놀이나 롤플레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노동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가 과연 올까? 균형을 위해 유토피아의 원래 뜻도 상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토피아 = 아무데도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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