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영의 신 “이윤만 좇다간 위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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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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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라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83·사진) 명예회장은 ‘일본 경영의 3대 신(神)’으로 불린다. 마쓰시타 전기를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와 혼다자동차를 만든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가 세상을 떠나 이나모리는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이나모리 교세라 명예회장, 미국식 성과주의 한계 지적
“주식회사는 주주 소유지만 인간중심 배려·나눔 경영을”

 이나모리 회장을 지난 18일 일본 서부 교토(京都)의 본사에서 만났다.

 먼저 그는 “10년, 30년 뒤 교세라를 비롯한 기업의 성패는 ‘이타적(利他的) 가치’에 기반한 ‘철학 경영’에 달려 있다”고 예견했다. ‘단기 성적’에 치중하는 미국식 경영으로는 머잖아 한계에 직면한다는 경고와 반성이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영 테크닉’을 가진 기업가들은 ‘이윤’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윤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이타의 생태계’를 만들라는 주문이다. 그의 성찰은 반복적인 ‘세계 경제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대표적인 게 2008년 미 월가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앞서 1997년엔 ‘아시아 외환위기’가 휩쓸고 갔다. 핫머니·첨단금융공학의 확산 아래 위기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상황이 고착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의 공존은 무시하고 절대 수익만을 좇는 극단적 자본 이기주의가 주범인 셈이다.

  또 그는 “경영은 노하우나 기술로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타심·직원 행복 같은 가치를 담은 인간 중심의 ‘경영 원칙’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 주식회사는 주주의 소유”라며 “하지만 진정한 경영 목적이란 사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언젠가 이런 의식이 약해지면 그때가 바로 우리의 위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거장의 시계는 ‘100년 뒤’ 삶의 변화에까지 맞춰져 있었다. 그는 “장차 100억 명으로 불어날지 모를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부족한 자원·에너지를 나눠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도래할 것”이라며 ‘배려·나눔’ 등을 키워드로 하는 경영법에서 답을 찾았다.

교토(일본)=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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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일본 동부 요코하마(橫濱)시의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83) 교세라그룹 명예회장이 행사장에 들어섰다. 그가 젊은 기업인에게 경영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만든 ‘세이와주쿠(盛和塾)’ 모임의 세계 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벤처 기업을 세운 뒤 재치와 능력이 있고 기지를 발휘하면 10년이나 20년은 회사를 발전시키고 존속시킬 수 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원초적 경영철학이 몸에 배지 않으면 결코 번영을 지속할 수 없다”며 그의 ‘필로소피(philosophy·철학) 경영’을 설파했다.

 미국식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첨단 경영학 지식과 신기술만으로는 수십~수백 년 가는 ‘일류 장수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미래 사장학(社長學)’을 역설한 것이다. 이날 대회엔 미국·중국·브라질 등에서 4600명의 경영인이 모여 들었다.

 이틀 뒤인 18일 서부 간사이(關西) 지방의 교토(京都) 본사 19층에서 이나모리 회장을 따로 만났다. 그는 “요즘 가장 열성을 다하는 일이 바로 세이와주쿠 모임에서 중소기업 경영인들에게 경영 방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짊어질 더 많은 ‘필로소피 경영인 군단’을 배출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단지 경영 공부뿐 아니라 회식 자리까지 마련해 4600명이 함께 치열하게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교세라 필로소피는 ▶개별 직원의 경영자화(化) ▶직원의 기(氣)를 북돋는 7개 열쇠 ▶노력·반성·감성 등 인생과 일에서 추구할 6개의 정진(精進) 대상 ▶목표의식·투혼을 포함한 경영 12개 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경영 테크닉’을 지닌 경영자들이 ‘어떻게 하면 회사가 이윤을 얻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모든 일을 생각해 나간다”며 “이런 배경 속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술을 이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나모리 회장이 ‘필로소피 경영’에 천착한 결정적 계기는 반세기 전 깨달음 때문이었다. 기술 하나만 믿고 교토세라믹을 창업한 지 3년째인 1961년 봄. 당시 29세의 이나모리에게 고졸 사원 11명이 정기 승진, 보너스를 요구하며 단체협상을 제의했다. 당시 이나모리 사장은 “회사가 성장하면 열매를 나누자”고 달랬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사흘 밤낮을 대화한 끝에 “약속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내가 속인다면 자네들 손에 죽겠다”고 말해 설득에 성공했다.

 이때 그는 기술력만으론 좋은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직원과 함께 번영해야 회사도 존재한다”는 철학을 가슴에 새긴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기자에게 “이런 신조는 수십 년 뒤에도 통용되는 경영 원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물론 경영에는 전술·전략 같은 기술적 노하우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올바른 것이 뭔지 철학적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경영 기술’을 남용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젊은 경영인은 현재 9000명에 이른다. 모두 세이와주쿠 모임 회원이다.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인 손정의(58) 소프트뱅크 회장도 그에게 한 수 배우려 했을 정도다. 손 회장은 83년 모임이 설립된 뒤 초기 멤버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필로소피 경영을 실천하려면 ‘혈육화(血肉化)’하라”는 주문도 했다. 그는 “지식으로 외우는 게 아니라 육체에 스며들게 만들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식 ‘이윤 중심’ 경영을 비판하고 ‘필로소피 경영’의 시대가 온다고 예견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나모리 회장은 “사원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에 공헌하려고 해도 실적과 이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고매한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교세라 필로소피’엔 구체적인 경영 지침도 많다. ‘경영은 매출을 키우고, 경비를 줄이는 것”이라는 지침을 포함한 ‘이나모리의 7대 회계학’ 원칙이 그렇다. 전표·입금 처리는 두 명 이상이 점검해 투명성을 높이고, 필요 없는 자산(군살)을 없애는 근육질 경영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한 원칙 중에 “벡터(vector·힘의 방향)를 맞추라”는 것도 있다. 벡터가 나뉘면 회사 전체의 힘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이 같은 방향으로 결집하면 ‘1+1=10’을 만든다”고 했다. 경영진·종업원이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59년 창업 직후 TV·라디오 제품을 본 뒤 ‘전자시대(電子時代)’가 올 것으로 예견하고 교토세라믹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미리 예측해 거둔 성과가 아니다. 엄청난 천재가 아니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자벌레’이론을 꺼냈다. 그는 “자벌레처럼 지금 일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충실히 나아갈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앞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미래든 현재든 결국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나는 가고시마 시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부유하지도 않았다. 일류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나는 사회에 나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여기까지 왔다.”

교토(일본)=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조직 잘게 쪼개 쾌속 의사결정 … 직원이 주인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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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직접 써준 교세라 사훈 경천애인(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한국 기업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에게 “한국 기업들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달라”고 묻자 “많이 알지 못해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경우 ‘재벌 기업’이 국가를 이끌고 나간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교세라도 세라믹·태양광·전자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 촉수를 뻗고 있다. 한국식 그룹 시스템이다.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2> 이나모리 교세라 명예회장
이나모리의 100년 기업 조언
아메바처럼 소조직화해 권한 분배
현장 직원까지 사업계획에 참여
일본 600여 개 기업서 도입 실천

 하지만 ‘이나모리 경영법’엔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아메바(Amoeba) 경영’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조직을 단세포 동물인 아메바처럼 작은 소집단으로 나눈다”며 “각 아메바 지도자가 중심이 돼 업무 계획을 세우고 조직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목표를 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 직원이 주인이 되는 ‘전원 참가 경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분화(分化)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특성처럼 ‘아메바 체제’는 ‘미래형 조직’이다. 갈수록 권한이 분산되고 업무가 전문화되는 조류에 맞춰 쾌속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600여 개 기업이 도입해 실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난해 5월 이와 유사한 ‘셀(Cell) 조직’을 도입했다. 6개월 넘게 걸리던 신규 서비스 출시를 한 달 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봤다. 금융업을 하는 메리츠화재도 조직을 쪼개 채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7월엔 이나모리 회장이 빚더미 일본항공(JAL)의 구조조정을 맡아 회생시킨 과정을 담은 『1155일간의 투쟁』이란 책을 임직원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이나모리 회장의 ‘아메바 경영’과 직원 중심의 ‘필로소피 경영’은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다른 국내 기업에도 시사점이 크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천성현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은 조직 규모의 적정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막연히 일이 많아지면 사람·부서를 늘린다”며 “독립 채산이 가능해지면 개별 직원이 자신의 수익성을 파악할 수 있어 관료주의 병폐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인간 위주 경영법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직원 훈련·교육 등은 비용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부 구성원 성장을 이끌면서 미래에도 살아남는 기업을 만드는 비결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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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찬(가톨릭대 경영학 교수) 세계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은 “직원을 도구화하면 실패한다는 깨달음이 최근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라며 “사람(직원)을 통해 사람(소비자)을 만족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야 창의성이 담긴 제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근는 "특히 미국식 경영학은 수익이 회사 외부의 산업구조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기에 내부 직원은 원가 절감의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직행동론·리더십’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69) 교수는 “무능한 종업원도 춤추게 하라”며 구성원 존중의 경영법을 강조했다. 페퍼 교수는 저서 『지혜 경영』에서 이나모리 회장의 ‘필로소피 경영’과 비슷한 직원·공동체 중심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현기 연구위원은 “낙오자·갈등을 부르는 ‘개인 차등’의 성과주의 대신 팀워크·협업을 이끄는 방식으로 경영이 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식 필로소피 경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산엔 동신유압이란 사출성형기 업체가 있다. 이 회사 김병구(48) 대표는 ‘거리 경영’을 모토로 내걸었다. 직원들에게 ‘웃을거리·즐길거리·희망거리’를 주려 노력했더니 매출이 4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김기찬 회장은 “한국인 특유의 ‘흥’과 ‘꿈’을 접목해 미래 100년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특유의 가치에 직원 중심, 협업 정신을 살린 ‘K 경영학’(코리아 경영학) 개척에 미래 먹거리가 달려 있다.

김준술·임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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