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와 거상 임상옥

 

 

조선말엽 정조대왕때인 을묘년 3월 열이렛날,평안도 의주땅에 사는 거상 임상옥의 저택에서는 고관대작이 모여 성대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임상옥의 회갑연이었다.귀빈들만 해도 평안감사,병사,군수들이 초대 되었고 서울을 비롯하여 경상도,충청도,전라도에서 귀빈들이 모여 들었다.

 

정조 3년 (1779) 12월 10일 평안도 의주에서 출생한 임상옥, 그는 18세때 부터 상업에 나서서 온갖 고생을 한 끝에 국제 무역상으로 대성한다.

 

그가 어느정도 거부였는가 알수있는 좋은 자료가 있다. 그의 문집인 가포집에 의하면 그가 38세 되던 해에 백마산성 서쪽 삼봉산 밑에 선영을 모시고 그 이듬해 선영 밑에다 수백간의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의주부윤등 일행 700명이 찿아 갔을때 한꺼번에 음식과 요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관원을 대접하는 주부식이며 그 주부식을 담은 그릇들의 어마어마함은 족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역시 청나라를 상대로 국제무역을 하던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임상옥의 효성은 지극했다. 임상옥은 그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어린애 돌때 입는 색동옷을 입고 복건을 쓰고는 어머니 앞에 잔을 올렸다. 그 옆에는 아리따운 기생들이 헌수하는 노래가 곁들여 졌다.

 

"어머님, 소년 과수의 외로운 몸으로 이 불초자식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여년을 만수무강 즐겁게 사십시요" 

 

이윽고 사랑으로 나간 임상옥은 집사를 불러 한양에서 가져온 물건을 대령하라고 명했다. 곧 집사가 오동나무 상자를 임상옥 앞에 대령했다. 임상옥이 상자에서 꺼낸 것은 아주 작은 술잔이었다.

 

임상옥은 술잔을 평안감사에게 올렸다.

"명기(名器)라 하여 한양에서 가져온 술잔입니다. 한잔 드시지요."

기생들의 권주가가 울려 나오고 임상옥은 그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안감사는 놀랍다는듯이 그 술잔을 바라 보며 말했다.

"보시요, 임곽산 영감.. 영감이 따른 술이 다 없어졌소."

54세때 곽산현감을 역임했고 55세때 구성부사를 역임했기 때문에 빈객들은 임상옥은 영감이라고 불렀다.

"아니,, 술이 다 없어지다니오?"

과연 술잔에는 술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변이었다.하지만 임상옥은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술을 잘못 따른것 같습니다."

임상옥이 재차 술을 따랐다.

"어허,, 술이 또 없어졌구려.."

 

그랫다 분명히 술잔 가득히 따랐는데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대여섯번을 되풀이 했는데 번번히 술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하는수없이 다른 술잔을 가져오게 해서 술을 따르니 술이 가득 넘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날의 잔치는 무사히 넘어갔다.

 

며칠이 지난 후 임상옥은 문득 생각이 나서 그 술잔을 가져와서 실험을 해 보았다.

한잔 가득 부었다, 역시 술은 없어졌다.

 

"고 술잔 못쓰겠다, 무슨 요기가 뻤친게야,,,"

 

임상옥은 옆에 있는 목침을 들고 그 술잔을 내리쳤다,쨍그렁 두동강이 났다. 그런데 깨어진 술잔에 촛불이 어리더니 무슨 글자 같은 것이 보였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차게 따라 먹지 말고, 너와 같이 죽기를 원한다)

 

임상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술을 가득 따르지 말라,, 그럼 내가 잘못했구나,,조금씩 따라 마실걸,,

다음순간 깨진 술잔을 집어서 들여다 보았다. 다음과 같은 글자가 깨알같이 씌여져 있었다.

 

을묘 4월 8일 분원(汾院) 우명옥(愚明玉)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 8일  이 잔을 만든자는 이 잔이 오늘 깨질걸 알고 있었어..

희안한 일이었다.

 

이튿날 아침 임상옥은 하인과 길을 떠났다. 우명옥이란 사람을 만나면 술잔에 대한 내막을 알수가 있을것 같아서 였다.

여러날 만에 임상옥 일행은 광주분원에 도착하였다.우명옥의 집은 분원 근처의 다 무너져가는 초가집이엇다. 그때 나이 70이 다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며 오랫동안 아는사람인양 반갑게 맞았다.

 

"어휴,,의주 임곽산 영감께서 오셨습니다그려,,,"

노인의 집으로 간 임상옥은 수인사를 마쳣다.

"나는 보신대로 임상옥입니다만, 영감은 우명옥어른이시오?"

"아니오 나는 성이 지가올씨다.명옥이는 내 제자지요.10여일전 바로 4월 8일 술시쯤 한많은 이세상을 떠났지요.그때 명옥이가 유언을 남겼는데 임영감께서 오시리라는것과 초종범절을 일러 주실것이라 하여 시체를 감장도 않고 영감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잇었습니다"

 

임상옥은 지노인의 말을 듣고 즉시 우명옥의 시체를 후하게 장사지낸뒤 지노인의 집에서 2~3일을 거하며 우명옥과 술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술잔이라면 아,, 그거 계영배 올씨다.하지만 임영감께서 깨버리셨다니 그 계영배를 다시 볼 수 없어 한이올씨다."

이로부터 지노인은 계영배에 얽힌 얘기를 늘어놓앗다.

 

우 명 옥

우삼돌(禹三乭) 우명옥의 본명이다.그는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 질그릇을 구워내며 살고 있었다.어느듯 나이 스물셋,하루는 사기로 유명한 분원으로가서 깨끗한 사기를 만들 생각으로 집을 떠나 광주분원 외장으로 있는 지영감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삼돌이는 여러 동료들의 구박과 학대를 받으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흙반죽에 그릇모양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그러는 사이 기량도 일취월장하여 보는사람마다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둘렀다.

이해 봄, 삼돌은 나라에 진상바칠 반상을 전담해 만들게 되엇다.스승 지외장은 옷한벌을 해 입히고 관례를 시키면서 이름을 명옥으로 고쳐주었다.

 

그러나 우명옥에 대한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는 나날이 심해져 갔다.

지성이면 감천. 우명옥이 만든 반상은 임금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많은 상금을 하사하셨다. 지외장도 기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명옥을 칭찬하는 동료들으 어떻게 하면 명옥을 곤경에 빠뜨릴까 노심초사 하고 있었다.

 

마침내 동료들의 음모가 무르익었다.어느 날 동료들은 명옥에게 뱃놀이를 가자고 꼬득였다. 몇번을 거절하던 명옥은 하는수없이 따라나서 기생들의 수발에 즐겁게 놀았다. 한번 맛들인 기생의 풍류,그 후로 명옥은 기생집에 파묻혀 시간가는줄 몰랐다.날이 갈수록 수중의 돈은 줄어들고 이젠 술집에 갖다줄 돈이 없어지자 상사발, 상대접같은 그릇을 만들어 돈을 만들어 기생집에 갖다 바쳤다.

 

더 큰돈이 필요해진 명옥은 나쁜동료들과 전라도 지방으로 행상을 나갓다.과욕이었다.태풍을 만나고 해적을 만났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왓다.

간신히 돌아온 분원도 폭풍우에 떠내려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을 격려해가며 마을 복구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명옥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했고 스승인 지외장도 걱정이 심했다.

그로부터 몇달이 흐르고 명옥이 뚜레박으로 물을 길러 자신의 몸에 들이 붓고 있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세상사람들을 망치는 술을 조금만 마시게 하는 술잔을 만들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이놈은 그 술잔과 함께 목숨을 내놓겠습니다.이놈의 소원을 한가지만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외장은 비로소 우명옥의 비장한 결심을 목격하고 안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명옥은 지외장 앞에 조그만 술잔 하나를 내어 놓았다.

"선생님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조그만 술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앙증맞은 술잔이엇다. 명옥은 그 술잔에 물을 가득 부었다.

"선생님 물을 가득 부으니 물이 없어졌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지외장도 놀랐다.

"하지만 술잔에 술을 부었는데 술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지만 보십시요"

명옥은 술잔에 7,8부쯤 물을 부었다.

"이제는 물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술잔에 제가 계영배(戒盈杯)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외장은 계영배를 만든 명옥의 기술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 계영배는 우명옥의 손에 의해 중앙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진상 되었고 그 계영배는 임상옥의 육순잔치의 선물로 전해지게 된 것이었다.

 

"참 아까운 사람을 잃어 버렸소이다.선생되시는 지외장의 마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소이다만 계영배의 참뜻을 진즉 알았더라면 계영배를 깨뜨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우리나라의 명인 한 사람을 내가 죽였소이다. 자 이것으로 약소하나마 우선생의 대소상이나 섭섭지 않게 지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근처의 지내기 어려운 양반들에게 조금이나마 성의를 베풀고 가겠소이다."

 

당대의 거상 임상옥은 철종 6년(1855) 5월 29일 77세의 나이로 의주 본제(本第)에서 장서(長逝)하였다.

 

 

임상옥의 문집인 가포집에 다음과 같은 만시(輓詩)가 있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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