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제품만 구매, 지금은 '스마트쇼퍼' 시대

 

"H&M이 프랑스 패션 브랜드 이자벨마랑과 협업해 선보인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에서 500만원대를 호가하는 이자벨마랑 코트를 30만원대에 내놓자 날개돋친 듯 팔렸어요."(H&M 관계자)

"소비가 원체 살아나질 않아서 업계에서 15년 만에 처음으로 10개월 무이자 할부 판매를 하고 있어요."(갤러리아백화점 직원)

"야생 블루베리는 일반 블루베리에 비해 두 배가량 비싸지만, 일반 블루베리보다 20%가량 많이 팔리고 있어요. 항산화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 관심이 많은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요."(신세계백화점 직원)

경기 침체 장기화로 소비가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소비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가격 민감도가 높아진 소비자들이 구매를 주저하면서도 꼭 사고 싶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할인행사에 구름떼처럼 몰려드는가 하면, 가격이 비싸도 만족도가 높은 상품은 주저 없이 구매한다. 이른바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스마트 쇼퍼'가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유행에 민감하고 브랜드 로열티가 높은 스마트 쇼퍼들은 '가치 있는 상품' 구입을 위해 인터넷,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멀티 채널을 통해 웬만한 백화점 구매 바이어 못지않게 다양한 상품 정보를 탐색하고 할인 기회를 공략한다.

심지어 '세일 헌터'로 불리는 이들은 글로벌 브랜드들의 세일 시기를 줄줄이 꿰고 해외직접구매ㆍ공동구매 등 계획을 세워 상품을 전략적으로 구매한다.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새벽에 줄 서는 것쯤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유통 업계도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해외 직매입을 통한 가격 할인 등 특정 아이템별로 초특가세일을 하거나 도깨비세일(스폿세일), 타임세일 등 다양한 불황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불황이 깊어지면 명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가격은 그보다 저렴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상품을 찾거나 새로운 유통 경로를 통해 동일 상품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불황 탓에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지는 한편,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려는 트렌드 역시 확산되고 있다. 이 역시 불황의 한 단면이지만 무조건 지출을 줄이려는 트렌드와도 대비되는 현상이다.

합리적인 가치소비를 하는 영민한 소비자를 지칭하는 이른바 스마트 쇼퍼는 무조건 소비를 줄이거나 무조건 싼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알뜰족과는 다르다. 이들은 브랜드 로열티가 높고,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하며, 유아ㆍ아동용품을 실속 있게 구입하려는 20대 젊은 층과 20~30대 중반 젊은 엄마들이 주류를 이룬다.
 

스마트쇼퍼 3계명
 
1. 잡아라 : 쿠폰할인, 공동구매, 오픈행사 노려

2. 깎아라 : 깜짝세일 줄줄이 꿰고 전략적 구매

3. 질러라 : 정보력 막강, 비싸도 좋으면 산다

스마트 쇼퍼는 상품에 대한 정보력으로 무장해 품질이 좋으면 조금 더 비싸도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유아용품 판매장에서도 스마트쇼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와 젊은 주부들은 다른 소비는 줄여도 아이에게 입힐 옷과 장난감만은 좋은 것을 구입하기 위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카페 등 SNS에서 정보를 얻어 할인행사를 탐색한다.

스마트 쇼퍼의 필요충분조건은 바로 정보력이다. 스마트 쇼퍼는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사기 위해 인터넷, SNS 등 멀티채널을 십분 활용해 할인기회를 잡는다. 인터넷 디지털기기로 무장한 이들의 쇼핑영역은 대한민국이 좁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쇼핑한다. 고가의 해외브랜드나 국내에는 유통되지 않는 제품을 비교적 싼값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29일 미국 최대 쇼핑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온라인을 통한 직접구매나 구매대행사이트를 이용해 동일상품을 80~90% 할인가에 구매한다. 배송비를 더하더라도 보통 반값 이상 저렴하게 구매하는 기회를 놓칠 리 없다.
 
회사원 김지은 씨(29)는 "상품구입목록을 만들어놓고 미리 온라인서치를 한 후 블랙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날)나, 복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날) 등 대박할인 쇼핑시즌에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다"고 말했다.
 
일부 세일헌터들 중에는 초특가 한정판매 상품을 구입해 온라인 중고사이트에 값을 올려 판매하기도 한다. 얼마 전 이자벨마랑 협업 컬렉션에서 한정판매로 20만~30만원에 구입한 상품을 중고쇼핑몰에 60만원에 판매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들 스마트 쇼퍼를 공략하기 위해 옥션과 G마켓 등 온라인 쇼핑몰들도 해외 쇼핑코너를 속속 확대하고 있다. 옥션 측은 "오픈 이후 매출이 매달 20~3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스마트 쇼퍼는 불황의 장기화와 정보채널의 대중화로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유통업계가 저가전략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세조 연세대 교수는 "고가브랜드 할인행사는 전형적인 불황마케팅인데 할인행사가 장기화하면 가격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약해지고 기업이 상품전략을 세우는 데도 어려움을 줄 수 있다"며 저가할인전략의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글 : 김주영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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