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구글 개발자회의, 열쇠는 ‘플랫폼’

| 2014.06.27

6월의 시작을 애플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와 함께했는데 6월의 마무리는 ‘구글I/O’로 하고 있습니다. 올해 두 회사가 키노트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궁극적인 부분은 거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통합’과 ‘연결’, 그리고 ’플랫폼’입니다. 심지어 핵심이 되는 운영체제를 발표하고 그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플랫폼을 넓히는 설명 순서까지 닮아 있습니다. 이건 우연이라기보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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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영역 넓혀가는 N스크린

구글은 전반적으로 안드로이드를 통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스마트폰, 태블릿, 시계, 자동차, TV가 통합됩니다. 심지어 웹까지 일관성을 갖도록 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이제 구글의 모든 기기는 서로가 서로를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시계로 태블릿을 제어하고, 스마트폰은 TV의 리모컨이 됩니다. 이런 건 모든 기기가 같은 SDK로 작동하고, API를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글은 모든 기기에 그동안 준비해 왔던 음성검색을 본격적으로 넣기로 한 모양입니다. 어떤 기기에서든 “오케이 구글”이라고 이야기한 뒤에 검색어나 명령을 내리면 원하는대로 움직입니다. 결국 이용자들은 구글이 관여한 기기라면 어디서든 UX의 일관성을 갖게 됩니다.

디자인적인 통일도 이뤄집니다. 한글로 옮기니까 좀 어색한데 소재 디자인(Material design)입니다. UI에 질감과 입체감을 살리겠다는 건데 이 역시 안드로이드 뿐 아니라 크롬, 그리고 구글 웹 서비스까지 모두 새로운 디자인으로 통합됩니다. 이용자는 어떤 환경에서든 이 디자인 분위기만 보면 구글의 서비스를 쓰고 있다고 인지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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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iOS와 OS X 두 가지 운영체제를 통한 이용자 경험을 합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지난해 iOS를 바꿨고, 올해는 OS X의 디자인을 바꿨습니다. 두 운영체제가 하나로 합쳐질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각 플랫폼의 특성은 명확히 살려두고, 그 안에서 이용자들이 쓰는 앱 환경들을 통합합니다. 알림센터와 위젯을 비롯해 아이라이프, 아이워크 등이 기기를 가리지 않고 어떤 스크린에서든 점점 더 비슷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결과물도 똑같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그 통합에 연결성을 더했습니다. iOS8과 OS X 10.10은 블루투스와 클라우드를 이용해 긴밀하게 붙습니다. 아이폰에 걸려온 전화를 맥에서 받는다거나, 맥에서 보던 웹페이지를 아이패드에서 받아보고, 아이폰에서 쓰던 e메일을 곧바로 맥에서 이어서 마무리지어 보낼 수 있습니다. 똑같은 OS를 쓰는 게 통합이 아니라 어떤 기기에서든 원하는 일들을 매끄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요즘의 통합인 셈입니다. N스크린에 가까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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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구글도 이미 탄탄하게 갖춰진 클라우드에 기기부터 웹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디자인의 일관성을 더해 경험의 통일을 이루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크롬의 수장이었던 선다 피차이가 안드로이드를 맡자 ‘안드로이드와 크롬이 통합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 적도 있지만 키노트로 애플과 비슷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안드로이드로, 크롬은 크롬으로, 웹은 웹으로 가되 경험과 디자인의 일관성으로 통합하자는 것이지요.

또한 구글 역시 기기간의 연속성을 신경쓰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로이드에서 걸려온 전화나 문자 메시지 등을 크롬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던가 하는 기능이 더해졌습니다. 더 이상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어야 할 필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애플이 제시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는데 애플도 실제 전화통화를 다른 기기로 넘기는 것을 구현하는 데에 꽤 애를 먹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넘어라, 플랫폼의 확장

또 하나, 두 회사는 이번에 하드웨어 하나 없이 개발자 회의 키노트를 마쳤습니다. 실망하신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대신 두 회사는 앞으로 더 많은 하드웨어들을 볼 수 있도록 플랫폼을 여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애플은 이미 올해 초 선보였던 자동차 플랫폼인 ‘카플레이’를 구체화했습니다. 제각각인 웨어러블 기기들의 정보를 통합할 ‘헬스’, 마찬가지로 가전을 제어하는 ‘홈’을 꺼내 놨습니다. 낭비되는 게임 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메탈’까지 애플이 직접 뭘 내놓기보다는 개발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창구를 열었습니다.

공교롭게 구글이 내놓은 것도 비슷합니다. 웨어러블 기기인 ‘안드로이드 웨어’ 안드로이드폰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안드로이드 오토’, TV 플랫폼인 ‘안드로이드TV’ 등입니다. 게임 역시 전용 플랫폼까지는 아니지만 테셀레이션과 지오메트리 연산을 GPU에 할 수 있도록 API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구글은 아예 발표의 중심에 각 기기들이 연결된다는 것을 뜻하는 그래픽을 올려놓고 각 플랫폼들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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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결국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위한 새로운 하드웨어나 새로운 기능이 아니라 성숙 단계에 이르른 이 기기들을 다른 환경에 옮기는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목표는 차량과 TV입니다. 자동차의 IT는 점점 외부 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는 10년 이상 쓰는 물건인데 그 사이에 IT 기술은 엄청난 변화를 겪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이걸 계속해서 지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신 스마트폰에게 핵심 역할을 열어주는 건 아마 대부분의 운전자가 하는 생각일 겁니다.

또한 가전과 웨어러블 기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센서 정보와 콘트롤러들이 접목이 될텐데, 이 정보들 역시 각각의 기기대로 흩어지게 된다면 제품 개발은 물론이고 관련 생태계에도 분명 혼란을 줄 겁니다. 이걸 하나로 묶어주는 안정적인 플랫폼 환경이 마련되면 소비자도, 제조사도 시장에 마음 놓고 뛰어들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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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애플이 다 해먹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구글과 애플이 꺼내 놓은 것들을 보면 직접 그 안에서 뭘 만들어내고 서비스를 독점하려는 것 보다도 스스로의 플랫폼을 만들고 그 위에서 생태계가 돌아가도록 하는 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게 장기적으로 운영체제와 플랫폼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는 길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개발자들에게 자리 깔아드립니다”

증거요? 그건 개발도구에 있습니다. 애플은 WWDC를 통해 스위프트라는 개발 언어를 내놓았습니다. 이 언어는 단순히 아이폰과 맥용 앱을 쉽게 만들게 해주는 역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플랫폼에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입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의 권정혁 이사도 인터뷰 자리에서 “올해 애플이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방향은 어떤 디스플레이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작은 시계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를 넘어 TV와 자동차까지 개발단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홈킷, 헬스킷, 클라우드킷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애플의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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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그럴싸하게 포장을 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개발툴과 디자인 가이드를 제공했고, 그 안에서는 구글의 플랫폼 위에서 어떻게 결과물을 만들어야 일관성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더 확대하고 클라우드 위에서 더 많은 것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꾸리고 있습니다. 새 기기나 운영체제의 등장은 이제 모바일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플랫폼들을 위한 개인용 허브장치 정도로 방향성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애플과 구글은 경험으로 그걸 알고 있었고, 기술적으로 시기를 짚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묘하게도 두 회사가 올 6월 세계 IT환경을 플랫폼 잔치로 만들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다른듯 닮아가고 있는 두 개발자 회의는 개발자들에게 엄청난 과제를 떠안기고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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