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고졸 최강희의 K-리그 정복기 "대학졸업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사입력 | 2011-12-05 09:07

4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2011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 2차전 전북현대와 울산현대의 경기가 열렸다. 전북이 울산에 2대1 승리를 거두며 최종우승을 확정했다. 우승을 차지한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이 우승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전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최강희박항서
국가대표팀에서 코치로 함께 일했던 최강희 감독(오른쪽)과 박항서 감독.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다. 스포츠조선DB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2011년 K-리그 최고 명장에 오른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52)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고졸(우신고) 출신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실업팀 한일은행과 군팀 충의에서 국가대표 수비수로 성장했다.

최강희는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다. 2006년 작고한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두 형은 학창시절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최강희는 그런 형들 밑에서 기죽어 지냈다. 성적 차이가 너무 커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대신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담배를 일찍 배웠고, 싸움을 자주 해 유치장에 끌려가기도 수차례 였다.

그랬던 최강희는 지금 축구로 형들 보다 더 이름을 날리고 있다. 28세에 국가대표가 됐다. 2005년 전북 사령탑에 오르면서 K-리그 감독이 됐다. 200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2009년 K-리그 첫 우승에 이어 올해 2년 만에 다시 전북에 두 번째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스포츠조선이 최근 최강희 감독을 전북 완주군 봉동읍 소재 구단 숙소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K-리그 우승하는데 대학졸업장이 필요없다

최 감독은 축구 명문 건국대 졸업장을 딸 수 있었다. 실업팀에서 뛰고 있을 당시 정종덕 건국대 감독으로부터 입학 제의를 받았다. 최 감독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축구 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에게 대학 간판은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만약 프로팀 감독이 되는데 대학졸업장이 필수요건이었다면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했다. 최 감독은 지금도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했다.

대신 그는 현재 최고 축구 지도자 과정에 해당하는 P급 코스를 밟고 있다. 울산과의 챔피언결정 2차전을 앞두고도 파주NFC까지 와서 시험을 치르고 돌아갔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문장을 찾기 위해 독서를 한다. 축구 전술서가 아닌 야구로 성공한 김성근 감독, 바둑으로 이름을 날린 이창호 얘기가 담긴 책을 최근 읽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좋은 글귀를 메모한다.

최 감독은 "나는 공부하는 지도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남들 모르게 공부한다"라고 했다. 경기장 벤치에서 메모하는 걸 싫어한다. 그는 다른 감독들 처럼 메모를 많이 하지만 공개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난 집에서 하숙생이었다

최 감독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건 가족이다. 그는 아내(이명성씨), 딸(최혜린씨)과 자주 떨어져 지냈다. 서울 목동 집에 하숙생 처럼 들락날락했다. 아내는 뒤늦게 학구열에 불타 있다. 대학에서 아동심리학, 노인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골프선수를 꿈꿨던 딸은 호주 유학 이후 현재 골프 레슨 일을 시작했다. 온 가족이라고 해봐야 달랑 3명이다. 1주일 정도 휴가를 받아서 집에 가도 온 가족이 함께 식탁 앞에 앉을 시간이 없다. 아내는 간만에 집에 온 남편을 위해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차려놓는다. 밤에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신 최 감독에게 아내는 쇠고기와 생선을 구워 한상을 올린다. 입맛이 없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의 표정을 보고 아내가 신이 날리가 없다. 그러면 최 감독은 다시 가방을 들고 전주로 내려온다.

최 감독은 "요즘 딸이 전북 현대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집 거실 달력에 전북 경기 일정을 체크하면서 아내도 축구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축구 감독들은 집안 일에 등한시할 때가 많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며 가족과 떨어져 있을 경우 이사한 새 집을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주소 찍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최 감독에게 가족은 항상 미안한 존재로 남아 있다.

▶중동 클럽의 러브콜과 벼락 맞은 사연

축구에만 매달린 최 감독은 최근 3년 사이에 K-리그 두 번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 한 번을 했다. 놀라운 성적이다. 특히 올해에는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내용과 성적 모두를 만족시켰다. 최강희 축구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다. 축구 에이전트들에 따르면 보기드물게 최근 중동 클럽에서 최강희 감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최 감독이 올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공격축구에 매료된 것이다. 최 감독의 몸값(연봉)이 10억원 이상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최 감독과 전북은 내년말까지 계약돼 있다. 최근 전북은 최 감독과 계약을 연장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 있다. 2015년말까지 3년 연장 계약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강희는 2005년 7월 전북 이철근 단장(당시 사무국장)의 전화를 받고 독일에서 귀국, 전북 감독 계약서에 사인했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이번 재계약에 사인할 경우 전북에서만 10년 이상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최 감독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좋은 일이 있기 전에 꼭 전조가 있었다. 전북 감독이 되기 전에는 독일에서 친한 박항서 전 전남 감독과 골프를 치다 홀인원보다 힘들다는 알바트로스(한홀에서 파보다 3타 적게 홀인하는 것)를 했다. 알바트로스를 하던 그날 이 단장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K-리그 우승했던 2009년에는 골프장에서 골프치다 벼락을 맞기도 했다. 벼락이 모자에 꽂아둔 마크를 타고 내려왔다. 잠깐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멀쩡했다.



'봉동이장' '재활공장장' '강희대제' '2대8 카리스마'. 이처럼 최 감독의 별명은 세련되지 않다. 구수하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다. 속에선 더 강해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남들이 모르게 강한 내공을 쌓아가는 중이다. 최강희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성실한 준비자세에 놀란다. 말수가 적고 느린 건 위장이다. 알면 알수록 지도자 최강희는 무서운 사람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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