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프로축구 챔피언 울산 현대가 국제축구연맹(FIFA)이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세계 최강 클럽을 가리는 무대로 향한다.
울산 구단은 7일 "우리 선수단이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오는 29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FIFA 전세기편을 이용해 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FIFA 클럽 월드컵은 해마다 6개 대륙 클럽대항전 챔피언과 개최국 리그 우승팀이 한데 모여 세계 최강 프로축구팀을 가리는 대회다.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인 이번 대회는 애초 지난해 12월 열려야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올해 2월 1∼11일로 미뤄졌다.
울산은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8년 만에 정상을 되찾으며 클럽 월드컵 출전 자격을 얻었다.
이번 클럽 월드컵은 울산이 홍명보 신임 감독 체제에서 치르는 첫 공식 대회이기도 하다.
FIFA는 일반적으로 항공료와 체재비 등 대회 출전팀의 경비를 부담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탓에 구단에 항공료를 지원하는 대신 직접 전세기를 띄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관계자는 "FIFA가 구단 자체적으로도 항공편을 찾아보라 해서 알아봤더니 비용이 만만찮더라"면서 "그러자 FIFA가 방역 문제 등까지 고려해 아예 직접 전세기를 보내주기로 한 것 같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울산은 선수 23명과 코치진, 의무·주치의·주무·홍보 등 스태프까지 총 35명으로 선수단을 꾸려 카타르로 떠날 계획이다.
울산을 포함해 총 7개 팀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는 남미 대표를 제외하고 6개 출전팀이 확정됐다.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비롯해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챔피언스리그 챔피언 알아흘리(이집트), 북중미카리브해연맹(CONCACAF)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티그레스 UANL(멕시코), 오세아니아 대표 오클랜드 시티(뉴질랜드)가 참가한다.
카타르 스타스리그 우승팀 알두하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남미 대표로 나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은 이달 말 가려진다.
울산은 클럽 월드컵에서 2라운드부터 나서며, 첫 경기에서 승리하면 4강에 오르고 패하면 5·6위 결정전을 치른다.
K리그 소속 팀이 클럽 월드컵에 출전한 것은 2016년 전북 현대(5위)가 마지막이었다.
K리그 팀의 역대 최고 성적은 세르지오 파리아스(브라질) 감독이 이끌던 포함 스틸러스가 2009년 달성한 3위다.
아시아 챔피언 울산, FIFA 전세기 타고 클럽월드컵 출전
입력 2021-01-07 10:15:23
연합뉴스
아시아 프로축구 챔피언 울산 현대가 국제축구연맹(FIFA)이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세계 최강 클럽을 가리는 무대로 향한다.
울산 구단은 7일 "우리 선수단이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오는 29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FIFA 전세기편을 이용해 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FIFA 클럽 월드컵은 해마다 6개 대륙 클럽대항전 챔피언과 개최국 리그 우승팀이 한데 모여 세계 최강 프로축구팀을 가리는 대회다.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인 이번 대회는 애초 지난해 12월 열려야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올해 2월 1∼11일로 미뤄졌다.
울산은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8년 만에 정상을 되찾으며 클럽 월드컵 출전 자격을 얻었다.
이번 클럽 월드컵은 울산이 홍명보 신임 감독 체제에서 치르는 첫 공식 대회이기도 하다.
FIFA는 일반적으로 항공료와 체재비 등 대회 출전팀의 경비를 부담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 탓에 구단에 항공료를 지원하는 대신 직접 전세기를 띄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관계자는 "FIFA가 구단 자체적으로도 항공편을 찾아보라 해서 알아봤더니 비용이 만만찮더라"면서 "그러자 FIFA가 방역 문제 등까지 고려해 아예 직접 전세기를 보내주기로 한 것 같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울산은 선수 23명과 코치진, 의무·주치의·주무·홍보 등 스태프까지 총 35명으로 선수단을 꾸려 카타르로 떠날 계획이다.
울산을 포함해 총 7개 팀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에는 남미 대표를 제외하고 6개 출전팀이 확정됐다.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비롯해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챔피언스리그 챔피언 알아흘리(이집트), 북중미카리브해연맹(CONCACAF)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티그레스 UANL(멕시코), 오세아니아 대표 오클랜드 시티(뉴질랜드)가 참가한다.
카타르 스타스리그 우승팀 알두하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남미 대표로 나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은 이달 말 가려진다.
울산은 클럽 월드컵에서 2라운드부터 나서며, 첫 경기에서 승리하면 4강에 오르고 패하면 5·6위 결정전을 치른다.
K리그 소속 팀이 클럽 월드컵에 출전한 것은 2016년 전북 현대(5위)가 마지막이었다.
K리그 팀의 역대 최고 성적은 세르지오 파리아스(브라질) 감독이 이끌던 포함 스틸러스가 2009년 달성한 3위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로 선두를 차지했다. 2위와 8%p 차이인데, 오차 밖 1위가 나온 건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전국 공동 조사를 시작한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리서치와 엠브레인, 케이스탯, 코리아리서치가 이달 4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9명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차기 대통령 적합도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 윤석열 검찰총장 16%,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 순으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와 비교해 이재명 지사는 3%p, 윤석열 총장은 1%p 각각 상승했지만, 이낙연 대표는 3%p 하락했다. 그다음으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 홍준표 의원 3%의 순이었다.
최근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 발언에 대해서는 58%의 응답자가 공감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혀 공감 안 된다'는 37%, '공감되지 않는 편'은 21%였다. 반면, '매우 공감' 13%, '공감하는 편' 25%로, '공감된다'는 응답은 38%였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43%로 직전 2주 전 조사보다 2%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 비율은 51%로 2%p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매우 잘했다'가 11%, '잘하는 편이다'가 32%, '못하는 편이다'가 25%, '매우 못했다'가 26%, '모름·무응답'은 7%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여론도 분야별로 조사했다. 일자리와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10명 가운데 6명꼴인 61%가 '못했다'고 답했다. '잘했다'는 응답은 32%였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 비율이 높았는데 응답자의 76%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지만 '긍정적'이라는 대답은 17%에 불과했다.
정부의 코로나 19 백신 대응에 대해서는 응답자 62%가 '신뢰한다'고, 35%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 국가시험(국시) 응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이달 중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한 조치에 대해서는 54%가 '적절한 조치'라고, 37%는 '사실상 특혜'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 4개사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다.
이번 조사 결과는 오늘 오후 6시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되는 <정치합시다. 라이브>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와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국리서치의 정한울 전문위원이 출연하며, 유튜브 'KBS News' 채널과 '정치합시다.'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정치합시다] 이재명, 차기 대통령 적합도 오차 밖 첫 1위
입력 2021-01-07 13:01:45
수정2021-01-07 13:40:34
정치합시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로 선두를 차지했다. 2위와 8%p 차이인데, 오차 밖 1위가 나온 건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전국 공동 조사를 시작한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리서치와 엠브레인, 케이스탯, 코리아리서치가 이달 4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9명을 상대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차기 대통령 적합도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 윤석열 검찰총장 16%,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 순으로 나타났다. 직전 조사와 비교해 이재명 지사는 3%p, 윤석열 총장은 1%p 각각 상승했지만, 이낙연 대표는 3%p 하락했다. 그다음으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 홍준표 의원 3%의 순이었다.
최근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 발언에 대해서는 58%의 응답자가 공감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혀 공감 안 된다'는 37%, '공감되지 않는 편'은 21%였다. 반면, '매우 공감' 13%, '공감하는 편' 25%로, '공감된다'는 응답은 38%였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43%로 직전 2주 전 조사보다 2%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 비율은 51%로 2%p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매우 잘했다'가 11%, '잘하는 편이다'가 32%, '못하는 편이다'가 25%, '매우 못했다'가 26%, '모름·무응답'은 7%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여론도 분야별로 조사했다. 일자리와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10명 가운데 6명꼴인 61%가 '못했다'고 답했다. '잘했다'는 응답은 32%였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 비율이 높았는데 응답자의 76%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지만 '긍정적'이라는 대답은 17%에 불과했다.
정부의 코로나 19 백신 대응에 대해서는 응답자 62%가 '신뢰한다'고, 35%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 국가시험(국시) 응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이달 중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한 조치에 대해서는 54%가 '적절한 조치'라고, 37%는 '사실상 특혜'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 등 여론조사기관 4개사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다.
이번 조사 결과는 오늘 오후 6시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되는 <정치합시다. 라이브>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뤄질 예정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와 이번 조사를 수행한 한국리서치의 정한울 전문위원이 출연하며, 유튜브 'KBS News' 채널과 '정치합시다.' 채널을 통해 볼 수 있다.
책 앞뒤 표지와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들. 현란하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은 좋은데, 공포마케팅이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위기'와 '재난'을 강조한 문장과 글귀가 가득하니 지레 질린다.
실은 그래서 책을 읽다 말다 했다. 원체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책을 읽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책 전반부가 그런 미래의 공포에 대한 자료 제시로 가득하다 보니 초반부터 지나친 자극에 오히려 지겨워지는 기분이었달까. 기후변화에 대해 또 더 뭘 읽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분야의 책은 이미 넘치도록 많고, 나 역시 꽤나 많이 읽은 것 같다.
1부와 2부, 기후재난의 실제와 미래 시나리오를 다룬 부분은 '이렇게 심각하구나/심각해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슬슬 읽고 넘어가도 괜찮다. 지구 기온이 파리기후협정에서 '권장'한 것처럼 이번 세기 1.5도 상승에서 멈출지, 혹은 파리협정이 목표로 제시한 것처럼 2도 상승에서 멈출지, 혹은 3~4도 상승할지, 아니면 (비)극적으로 그보다 훨씬 치솟아서 저자가 소개하는 것처럼 재앙으로 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너무 극단적인 시나리오들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정말 큰일이구나' 혹은 '그렇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게 너무 많구나' 싶은 것들도 있다.
폭염, 빈곤과 굶주림, 바다, 산불, 재난, 질병, 경제, 시스템... 저자가 소개하는 재난의 목록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어느새 현재진행형 기후 재난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일어난/일어날 일들을 알게되는 게 더 의미있다고 생각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 책이 재미있어진 것은 오히려 그 뒷부분부터였다.
기후변화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는가, 혹은 회피하는가. 기후학자들은 왜 입을 다물거나 조용히 있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입을 열게 되었는가. 기술이라는 종교 속에서 우리는 어떤 심리적 경향/편향을 갖게 되는가. 대중문화는 어떻게 우리가 기후 위기를 곁눈질하면서도 위안을 얻게 해주는가. 신자유주의의 파도가 수십년 동안 휩쓸고 지나간 세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한가.
직접적인 열기를 평가할 때에는 습도를 고려한 기온인 '습구온도'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현재로서는 최대 습구온도가 26~27도를 넘는 지역이 거의 없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습구온도 한계선은 35도이며 그 이상부터는 순전히 열기만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한계지점까지 8도 정도 여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온열 스트레스 증상은 훨씬 일찍부터 나타날 것이다. 사실 이미 나타나고 있다. (70~71쪽)
수많은 역경이 지구상에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와중에 기후변화라는 문제가 하나 더 얹어진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 온갖 역경이 한데 모여 있는 상황인 셈이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란 미래의 모든 문제와 해결책을 담고 있는 지구환경 그 자체다. (89쪽)
전반부에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 한 토막.
수학자 이라클리 롤라즈는 이산화탄소가 인체 영양에 미칠 심각한 영향에 대해 식생학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 한 가지를 15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산화탄소가 작물을 더 크게 만들 수는 있지만 더 커진 작물은 그만큼 영양가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질수록 지구상에 있는 모든 풀잎은 더 많은 당을 함유하게 된다. 그만큼 다른 영양소가 희석된다." 먹거리가 전부 불량식품처럼 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꿀벌 화분에 들어 있는 단백질 역시 3분의1만큼 감소했다.
2050년쯤에 개발도상국에 거주하는 사람 중 1억5000만명이 영양붕괴의 결과로 단백질 결핍에 시달릴 것이다. 세계 빈곤층은 대다수가 고기 대신 농작물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2018년 주춘우가 이끄는 연구팀은 20억명이 주곡으로 삼고 있는 18종의 벼를 대상으로 단백질 함량을 측정했다. 그러자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을수록 영양소 전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화탄소는 단지 벼 한 작물에 작용하는 것만으로도 6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었다. (94~96쪽)
물이 부족해지는 도시 이야기.
케이프타운 최초의 '데이 제로' 예정일은 2018년 3월이었다. 수십년 만에 최악이라는 가뭄을 겪고 있던 케이프타운에 몇 달 뒤 상수도가 완전히 말라 버린다는 예고가 나왔다.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하면서 실시간으로 기록한 주민 애덤 웰즈 Adam Welz는 물이 완전히 말라 버리기도 전에 케이프타운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는지 극적으로 묘사한다. 대체로 가난한 흑인은 소량의 물을 무상으로 할당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체로 부유한 백인은 이를 두고 흑인이 도시 수원지를 고갈시키고 있다고 불평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흑인이 나태하고 무신경해서 수도관을 열어 놓은 채 방치한다거나 훔친 물을 가지고 판자촌에서 사업을 벌인다는 비난이 거세게 타올랐다. 흑인은 풀장과 잔디밭이 딸린 집에 사는 교외 지역 백인을 손가락질하면서 '호화 백화점 화장실에서 변기 물을 펑펑 내리는' 인간들이라고 일격을 날렸다. 정부가 문제에 관심이 없다거나 첨단 기술을 고의로 숨긴다는 음모론이 나돌았으며 불신은 지방 당국에서 연방 정부로, 연방 정부에서 기상학자로 옮겨 갔다.
결국 2018년 2월 케이프타운 당국은 개인당 물 할당량을 반으로 줄여 49리터로 제한했으며 급수 시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고통을 감지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문제의 원인으로 개인의 무책임을 탓하는 것은 일종의 연막 술책에 가깝다. 실제로 한 보고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뭄이 닥치기도 전에 이미 90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물을 개인적으로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추산한다.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 요구되는 물의 양은 매년 남아공 포도밭에 사용되는 물의 양의 약 3분의 1이면 충분하다.
2015년에 상파울루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2년에 걸친 가뭄 끝에 상파울루에서는 공격적인 배급제의 일환으로 일부 주민의 수도 이용을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했으며 결과적으로 여러 사업체가 문을 닫고 대량 실직 사태가 벌어졌다. 2008년에 도시 역사상 최악의 가뭄에 직면한 바르셀로나에서는 프랑스에서 식수를 수입해야만 했다. 호주 남부에서는 1996년도의 저조한 강수량으로 시작된 ‘1,000년 만의 가뭄’이 2001년부터는 데스밸리와 유사한 계곡 지역에 8년간 지속돼 2010년에 라니냐 현상으로 비가 내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139-141쪽)
위 사례에서 밑줄 친 부분은 주석의 링크를 찾아보니 번역이 잘못된 것. 물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사람이 900만명인 듯.
태평양연구소Pacifc Institute 소속의 피터 글릭Peer Gleick은 훨씬 눈이 뜨일 만한 장부를 제시한다. 바로 기원전 3000년 고대 수메르 에아 Ea 신화부터 시작해 물과 관련된 모든 무력 분쟁 사건을 모아 놓은 단순한 목록표다. 목록 가운데 1900년 이후로 발생한 물 관련 분쟁은 거의 500건에 달한다. 게다가 전체 목록의 거의 절반이 불과 2010년 이후로 발생한 사건이다.
과거에는 분쟁이 나라 사이에서 발생했다면 곳곳에서 국가의 권위가 약화된 지금에는 국가 내부의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리아에서는 가뭄이 2006년에서 2011년까지 5년간 이어지면서 흉작이 초래됐고 그 결과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이 발생해 세계적인 난민 위기가 촉발됐다. 글릭은 2015년 이후 예멘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양상의 전쟁에 특히 더 관심을 기울인다. 이 전쟁에서는 ‘피'만큼이나 '물’ 역시 인적 피해를 치렀다고 할 수 있다. 수자 원 기반 시설이 표적 공격을 당한 결과 2017년에 콜레라 발생 건수가 100만 건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144쪽)
요즘 자꾸 듣게 되는 라임병 이야기.
말라리아 전염에는 병원균 자체에 더해 모기가 필요하고 라임병 전염에는 병원균 자체에 더해 진드기(지구온난화 덕분에 세계를 빠르게 넓히고 있는 모기 이외의 또 다른 위협적인 감염원)가 필요하다. 메리 베스 파이퍼Mary Beth Pfeifer가 지적하는 대로 라임병 환자 수는 일본, 터키, 대한민국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라임병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지만(즉 발병 사례가 0건이었지만) 지금은 감염자가 매년 수백 명씩 늘어나고 있다. (171쪽)
기후변화 대응의 enemy 국가 중 하나였던 호주 사례. 호주는 여러 모로 욕할 구석이 참 많은 나라다. 기후변화 대응도 그렇고, 난민 문제도 그렇고. 하지만 사실 한국 사람이 호주를 욕할 처지는 못 된다. 노무현 정부 때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교토의정서 체제를 거부하면서(실은 아예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청정개발-기후 파트너십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당시 탄소배출량 감축을 거부한 중국과 인도를 포함해 한국, 일본, 호주 등이 거기 들어갔다. 부시에 참 잘도 발맞춰주던 정부를 보면서 어이없어 했던 기억이 난다.
호주는 풍요로운 사회가 기후변화의 압력에 어떤 식으로 억눌리고 주저앉고 재건하게 될지 미리 보여 주는 선례와도 같다. 현지 자연환경을 무시하고 원주민을 학살하는 가운데 세워진 만큼 현대 호주의 야망에는 늘 위태로운 구석이 있었다. 생태적으로 너무나 혹독하고 까다로운 환경임에도 그 위에 날림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것이다. 결국 2011년 호주에서는 단 한 차례의 폭염으로 대규모 고사 현상 및 산호 백화 현상, 식생의 죽음, 토종 새 및 특정 곤충의 개체 수 급감, 해양 및 육지 생태계 변형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호주 정부에서 탄소세를 부과하자 탄소배출량은 떨어졌다. 반면 정치적 압력으로 탄소세를 폐지하자 탄소배출량은 다시 증가했다. 2018년 호주 의회에서는 지구온난화를 ‘현재 진행 중이며 실제 존재하는 국가 안전상의 위기'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몇 달 뒤 기후변화 문제에 깨어 있던 당시 호주 총리는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려 시도했다는 이유로 사임해야 했다. (201쪽)
의외로 유용하게 쓰이는 도널드 럼스펠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후 혼돈의 열두 가지 요소는 적어도 ‘알려진 지식 known knowns(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식)’에 속한다. 이런 지식은 연구하기가 그나마 덜 까다롭지만 지식의 범주는 두 가지 더 존재한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실재한다는 사실, 인간이 기후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 기후변화가 해수면을 높이고 북극 빙하를 녹인다는 사실 등 지구온난화에 관해 꽤 많은 지식을 알게 됐다고 자신하지만 아직 딱 그 정도 알고 있을 뿐이다. 10년 전에는 기후변화와 분쟁의 관계를 다루는 논문이 거의 없었다. 20년 전에는 기후변화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다루는 유의미한 논문이 전혀 없었다. 50년 전에는 기후변화 연구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지금으로부터 50년 뒤에 우리가 얼마나 되는 지식을 알고 있을지 상상해 보자. 북극에서 메탄이 방출되거나 해류 순환 시스템이 급격히 둔화된 탓에 기후변화의 피드백 고리가 활성화돼 있지는 않을까? 대륙 크기만 한 탄소포집 시설을 세우거나 온 인류가 건강 문제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산화황을 붉은 하늘에 퍼뜨림으로써 인류를 보호할 수 있을까?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지식은 ‘알려진 미지 known unknowns(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식)’에 속한다. 럼스펠드의 혜안에 따르면 그보다도 무시무시한 개념(알려지지 않은 미지 unknown unknowns) 역시 남아 있다. (211쪽)
위의 구절은 럼즈펠드가 생각나 옮겨봄. 대테러전 뒤 럼즈펠드의 그 황당한 발언을 비꼬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지식과 무지를 훌륭하게 설명한 저자의 재치. 다만 당시 럼즈펠드의 발언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재미삼아 적어보자면 2002년 럼즈펠드의 발언은 이거였다.
"Reports that say that something hasn't happened are always interesting to me, because as we know,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are some things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the ones we don't know we don't know. And if one looks throughout the history of our country and other free countries, it is the latter category that tends to be the difficult ones."
기후변화의 영향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커지면, 즉 너무나도 전면적이어서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이면 기후변화는 더 이상 이야기거리가 아니라 삶 전체를 감싸는 배경으로 바뀐다. 그 자체로 서사를 구성하는 대신 문학이론가들이 말하는 ‘거 대 담론meta-narrative' 자리로 물러나 (종교적 진리나 신념처럼) 이전 시대의 문화를 지배했던 이야기 틀을 대체할 것이다. 그때는 석유와 탐욕 같은 소재를 다루는 서사극이 거의 인기를 얻지 못한다. 또 과거 대공황 시기의 불안감 속에서 스크루볼코미디가 틀 잡혔던 것처럼 앞으로 로맨틱코미디 역시 온난화의 징후를 배경으로 전개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지구온난화를 묘사하는 이야기를 읽더라도 그리고 거기서 공포감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아직 현실도피적인 민족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기후재난을 먼 미래의 일 혹은 먼 나라의 일인 척할 수 없어진다면 우리의 상상은 ‘기후변화에 대해서’가 아니라’ 기후변화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221쪽)
인도 출신 작가 아미타브 고시 Amitav Ghosh는 일종의 기후 대하소설을 기대한다. “일례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라든가 '9월 11일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같은 전형적인 소설에 등장하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동일한 맥락에서 ‘탄소 농도가 400ppm일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라든가 ‘라르센B 빙붕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같은 질문을 할 수는 없을까?" 아마 그럴 수 없으리라는 게 고시 본인의 대답이다.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딜레마와 드라마는 늘 우리 자신에게 해 오던 이야기에 등장하는 딜레마나 드라마와는 너무나 상이하기 때문이다. (222쪽)
라르센B 빙붕이 무너질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월러스-웰즈는 기후변화 이야기가 대중문화 장르들 속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누구 하나만 악당으로 몰아갈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 둘째, 영웅이 누구인지도 알쏭달쏭하다는 점. 저자의 말을 빌면 "드라마적인 관점에서 집단행동은 너무나 지루한 소재다."(223쪽)
가장 그럴듯한 악당은 석유 회사일 것이다. 실제로 기후 종말을 묘사하는 영화를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영화가 기업의 탐욕을 겨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 탄소배출량에서 운송업과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퍼센트 미만 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기업에 모든 책임을 부과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기후변화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거나 기후변화를 대대적으로 부인하는 기업이라면 충분히 악당이라고 부를 만하다. 기업이 저지를 만한 악행 중에 그보다 끔찍한 악행은 거의 없으며 앞으로 한 세대만 지나도 석유 회사의 지원을 받은 기후부인주의는 현대에 자행된 만행 중에서도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해치는 면에서 가장 악랄했던 사기극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악랄함이 곧 책임으로 이어지진 않으며 단 한 개의 나라(세계 10대 석유 회사 중 2개만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한 개의 정당만이 기후부인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세상에 초강대국이 미국 하나였던 시절에는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세계의 움직임을 저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에 미국은 세계 탄소배출량의 15퍼센트만을 차지하며 미국 국경을 넘어서면 기후부인주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오로지 미국 공화당이나 공화당의 뒤를 봐주는 석유 회사에게만 돌리는 것은 미국 중심주의적인 생각에 가깝다. 아마도 기후변화가 바로 그 미국 중심주의를 깨부술 것이다. 미국 이외의 국가 역시 탄소 배출 문제에 늦장 대응을 하고 있고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강하게 거부하는 상황 속에서 부인주의적인 태도는 문제 축에도 못 낀다. (226-227쪽)
광활한 대지 가운데 22퍼센트는 불과 1992년에서 2015년 사이에 변화를 겪었다. 전 세계 포유류의 무게를 모두 합하면 그중 96퍼센트는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가축의 무게에 해당한다. 나머지 4퍼센트만이 야생 포유류의 무게라는 뜻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고독의 시대를 뜻하는 ‘에레모세 Eremocine’라는 이름이 우리 시대에 더 어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그보다도 훨씬 우려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로 우리가 자연환경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활동이 지속되는 만큼 기후 시스템은 더욱더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과거’에 그랬듯이 인류는 여전히 자연을 넘어서지도 벗어나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자연이 인간을 압도하며 응징하고 있다. 이것이 기후변화가 거의 매일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훈이다. (234쪽)
비록 인류에게 재난을 극복할 회복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 많지만 그런 회복력은 화석연료를 이용해 쌓은 산업 시대의 풍요 덕분에 존재한다. 중세 시대의 왕은 자신이 전염병이나 기근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크라카타우 산이나 베수비오 산 근처에 살던 사람은 자신이 화산 폭발을 견딜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지금 부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걱정하기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향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또 ‘자본주의'를 단지 시장의 힘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만이 공정하고 완벽한 사회 시스템임을 가르치는 종교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엄청난 종교개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기대해야 한다. (252쪽)
일론 머스크가 인류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질타하는 내용도 재미있었음. 아마도 머스크는 지구가 망가질 것이니 화성으로 이주하자는 꿈 같은 프로젝트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와 관련된 황당한 소리 때문에 더 위상이 무너졌을 것 같지만.
아이폰 같은 도구는 인류가 혁신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하지만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아이폰 사용자 수는 전 세계 인구의 10퍼센트에 미치지 않는다. 스마트폰 전체를 보더라도 사용자 수는 전 세계 인구 4분의 1에서 3분의 1 사이에 위치한다.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 훨씬 기본적인 기술을 기준으로 통계를 확인해 봐도 전 세계에 퍼지기까지는 최소한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전 지구상에서 탄소 배출을 완전히 제거하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0~30년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요구되는 기술 혁신의 규모 앞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룬 어떤 업적도 왜소해 보인다. (271쪽)
읽기 전에 좀 고민을 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책을 또 읽어야 하나...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기록을 꼭 해놔야지 싶었다.
저자의 스펙으로만 보면 이 분야 책들 가운데 독보적이다. 예일대 경제학 석좌교수,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책은 그 유명한 상을 받기 전인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낸 것이다. 교토의정서 체제는 끝났고(저자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그런 측면이 실제로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체제를 어쨌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계만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파리 기후변화협정(2016년)은 나오기 전의 그 시기.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기후변화 스핀(기후변화 따위는 없다~ 과장됐다~)'이 판을 치고 미국인들의 인식수준은 점점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곤두박질치던 시기. 오바마 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은 번번이 공화당에 발목을 잡히다 못해 아무 것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도널드 트럼프 시절 같은 최악조차 아니었던 시기.
기후변화는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가져올 것인가, 해수면이 얼마나 올라가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어떤 재난을 당할 것인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경제학자인 노드하우스가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그런 쪽은 아니다.
그의 관심은 경제적 영향과 해법, 그 해법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주의해야 할 사항, 그 해법에 넣어야 할 것들과 그것들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점검해야 할 것들, 제도와 정책을 만들 때 기본 전제가 돼야할 것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집중돼 있다. 말하자면 기후변화 대응체제의 틀이 돼야 할 경제적 개념과 정책 제언을 설명해놨다. 탄소가격제 개념과 탄소세 논의, 기후변화의 피해에 사람들이 둔감한 것을 할인율 개념으로 해석한 것, 자연 생태계의 '가격'을 논하는 것이 대중들을 설득하는 데에 필요한 이유, 윤리적 접근의 의미와 한계, 인간이 관리할 수 있는/관리되는 시스템과 관리할 수 없는 시스템의 특성을 통해 기후변화의 파괴력을 논한 것, 시장을 신뢰하면서도 국가의 개입을 적극 요구하는 것, 기술적 혁신을 앞당기기 위한 제언 등등은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파리 협정이 성사되고 중국과 인도의 태도가 바뀌고 '툰베리 세대'의 등장과 트럼프의 집권-퇴진이 숨가쁘게 이어지기는 했지만, 책이 나온 후의 그런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판돈이 적고 빠른 시일 내에 정답을 알게 될 것 같다면 바퀴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경우 정답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 안개 낀 밤에 전조등을 끄고 커브길이 없기를 기도하면서 시속 100마일로 운전하는 것과 같다. 안개가 걷히고 난 뒤 바로 재난을 맞닥뜨리게 되느니 지금부터 조금씩 실천을 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불확실성과 관련된 경제학적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생산량, 인구, 배출량, 기후변화에 대한 최상의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이 시나리오의 비용과 영향을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라. 그러고 난 뒤 기후카지노에서 가능성은 낮지만 중요도가 높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하라. 이런 위험한 결과에 대한 대비책을 면밀하게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 문제가 그냥 사라지리라고 절대로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57쪽)
최악의 경우를 거론하며 호들갑을 떠는 대신에, 그는 "만일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보험을 들어야 한다"며 보험의 요건을 거론하는 식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IPCC에서 수행한 연구에서 여러 모델은 평균적으로 21세기에 배출된 탄소의 50~60%가 21세기 말까지 대기 중에 남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모델과 배출량 증가율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정말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기후를 바꿀 정도로 의미가 있을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기록이 잘 되어 있는 분야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58년 하와이 섬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관측하기 시작한 과학자들의 선견지명 덕분에 우리는 50여 년에 걸친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2012년까지 매달 관측한 결과 50년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5% 증가했다.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가 인간활동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기후과학자들은 빙핵을 이용하여 지난 수백만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190ppm에서 280ppm 사이였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이제는 390ppm을 넘어섰으니 지구는 호모사피엔스 출현기의 이산화탄소 농도 범위를 훨씬 벗어나게 되었다. (61쪽)
노드하우스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하면서,기후변화의 티핑포인트들을 꼽는다. 그가 보기에 '전 지구적 규모에서 특히 중요한 티핑요인'은 네 가지다. 그린란드와 서남극의 거대한 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올라가는1) 거대한 빙상의 붕괴 2) 해양순환의 거대한 변화 3) 온난화가 더 큰 온난화를 불러오는 되먹임과정 4) 장기적으로 강화된 온난화.
두 번째로 중요한 특이점은 해류의 변화, 특히 일반적으로 멕시코만류라고 알고 있는 대서양 열염순환 Atlantic thermohaline circulation 의 변화다. 지금은 멕시코만류가 따뜻한 표층수를 북대서양으로 보내고 있다. 그 결과 북대서양 사람들은 위도에 비해 훨씬 따뜻하게 살고 있다. 멕시코만류는 수천 년간 안정세를 유지했지만 과거, 특히 빙하기에 거대하고 급격한 변동이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방향을 여러 차례 바꾸기도 했다. 지금은 멕시코만류의 따뜻한 표층수가 북쪽으로 흘러가면서 북대서양지역에 그 열기를 퍼뜨리고, 그 덕에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은 한층 안락하게 살고 있다. 이 멕시코만류는 북으로 가면서 차갑고 밀도가 높아지는데, 어떤 지점에 이르면 이 차갑고 밀도가 높아진 바닷물이 아래로 가라앉아서, 마치 컨베이어벨트를 탄 듯 남쪽으로 되돌아간다. 전체적으로 지구가 따뜻해지면 이 컨베이어벨트가 교란될 수 있다. 고위도에서 기온과 (담수)강수량이 모두 높아질 경우 표충수의 밀도가 낮아지게 된다. 소금물은 민물보다 농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면 차갑고 밀도가 높은 물이 가라앉던 작용이 약해져 컨베이어벨트의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어쩌면 아예 멈췄다가 역류할 수도 있다. (87-88쪽)
이산화탄소는 대기, 해양, 생물권(천연식생, 작물, 토양이 흡수하는 형태로) 등 다양한 저장소에 천천히 나뉘어 들어간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산업용 배출량의 증가로 인한 영향을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되먹임 효과가 나타난다. 그중 한 형태가 해양에서 발생하는 되먹임이다. 복잡한 해양의 화학적 성질 때문에 지구가 따뜻해지고 해양에 녹아 있는 탄소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해양이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21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 해양-이산화탄소 되먹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되먹임이 없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비해 약 20% 증가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강화효과가 훨씬 큰 되먹임은 온난화 때문에 갇혀 있던 탄소와 메탄이 배출되는 것이다.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은 점차 안정된 이산화탄소 화합물로 변환된다. 막대한 양의 메탄이 메탄수화물, 즉 얼음결정 안에 갇힌 메탄분자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메탄수화물은 해양의 퇴적층에 저장되어 있고, 그 외 많은 양이 추운 영구동토층의 땅속에 얼어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 이 두 저장소에 있던 메탄이 대기로 배출되는 양이 늘어나 지구온난화 과정이 강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메커니즘은 인간의 활동에 대한 기후의 중기적 반응과 장기적 반응 간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의 기후 모델은 기본적으로 ‘빠른 되먹임과정’을 계산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는 '느린 되먹임과정'도 있을 수 있다. 느린 되먹임과정에는 식생의 분해뿐만 아니라 빙상의 해체, 식생의 이동, 토양 툰드라 해양퇴적층에 있던 온실가스(앞서 언급했던 동결상태의 메탄 같은)의 배출 증가 등이 관련된다. 가령 빙하와 빙상이 녹거나 봄눈이 좀 빨리 녹으면 지구는 더 어두운 색을 띠게 된다. 이는 알베도(반사율)의 감소로 이어져 지구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일부 모델의 계산에 따르면, 느린 되먹임과정을 포함할 경우 현행의 기후 모델이 계산한 것보다 기후민감도가 두 배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오늘날 대부분의 모델은 이산화탄소의 양이 두 배로 늘었을 때의 장기적인 민감도를 3도로 계산하고 있지만, 이것이 6도가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89-90쪽)
어떤 속도가 되든지 간에 세계 경제는 계속 발전할 것이고, 발전해야만 한다고 노드하우스는 말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그대로 가난에 내려앉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재앙일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이주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려면 대단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인간사회와 경제는 폭넓게 관리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교훈은 우리가 현재 사회를 기준으로 기후변화를 가볍게 추정하면, 경제적 영향을 과대평가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오늘날의 북미 국가들과 맞먹을 정도의 소득을 향유하리라고 가정하기는 힘들지만, 많은 수가 그때까지도 사막에서 가축떼를 몰고 다니는 유목생활을 하리라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153쪽)
약 2만 년 전 지구기온은 지금보다 4~5도 더 낮았고, 해수면은 약 120m 더 아래 있었다. 해수면상승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 바로 열팽창과 육지빙하의 해빙이다. 열팽창은 물의 밀도가 기온과 염도, 압력의 수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평균적으로 바다는 따뜻해지면 팽창하고, 따라서 해수면이 올라간다. 해수면상승에서 열팽창에 대한 부분은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모델도 만들 수 있다. 오늘날의 추정에 따르면, 해수면상승의 속도는 연간 약 3mm 정도다. 평균적인 기후변화 추정하에서 열팽창은 2100년까지 해수면을 약 0.2m 상승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세기에 이루어진 해수면상승의 속도보다 아주 조금 빠른 정도다. 해수면상승의 두 번째 요인은 빙하와 만년설의 해빙이지만, 이에 대한 추정은 대단히 불확실하다. 과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거대한 세 빙상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갇혀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빙상은 그린란드 빙상으로, 해수면을 7m가량 상승시킬 수 있는 양의 물이 얼음 속에 갇혀 있다. 두 번째 빙상은 서남극 빙상으로, 해수면을 5m가량 상승시킬 수 있는 양의 물이 들어 있다. 균형 잡힌 남극 빙상 속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얼음이 있지만, 그곳의 얼음은 워낙 차고 기반이 단단해서 수세기 내에 녹을 위험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54-155쪽)
탄소가 바다로 녹아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낮아지지만 해양의 화학적 성질은 바뀌게 된다. 이산화탄소가 바닷속에서 용해되면, 바다는 산성을 띠게 되고 탄산칼슘의 농도가 낮아진다. 이 탄산칼슘은 산호, 연체동물, 갑각류, 일부 플랑크톤 등 많은 해양유기체가 껍질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다. 해양산성화에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주로 탄소순환에 좌우되기 때문에 기후 모델링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없다. 화학적 성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또는 경향이 워낙 분명하기 때문에 해양산성화에 대해서는 논란이 거의 없다. 둘째, 전체적인 현상이 최근에야 인지되었다. 중요한 발표물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실제로 2001년의 IPCC 3차 평가보고서에는 해양산성화와 관련된 생물학적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셋째, 해양산성화 가설의 핵심 예측들은 세계 주요 바다의 측정을 통해 확인되었다. 대기와 해양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해양의 pH 하락(산도의 증가) 사이에는 확실한 연관성이 있다. 이제까지 연구한 많은 유기체(특히 산호초와 연체동물)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석회화와 재생산 속도가 늦춰지는데, 이는 특히 고위도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석회화에 의존하는 종은 감소하고 석회화와 무관한 종이 증가하는 등, 종의 대대적인 재분포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해양산성화는 이산화탄소 축적과 관련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다. 이는 관리할 수 없는 시스템의 극단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168-169쪽)
기후변화정책에서 주요한 교환관계는 내일의 소비와 오늘의 소비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 오늘의 소비 100단위를 희생하여 기후에 투자할 경우, 미래의 소비를 200단위 늘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좋은 투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소비와 미래의 소비를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 이는 할인을 통해 가능하다. 할인 논란의 중심에는 할인율을 규범적인 관점에서 도출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기회비용) 근거에서 도출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먼저 규범적 관점부터 살펴보자. 저명한 영국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과 다른 저자들은 스턴보고서에서 미래세대의 행복을 할인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래에 있을 기후위해의 현재 가치를 계산하기 위해서 는대단히 낮은 할인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규범적인 관점의 지지자들은 상품에 대한 할인율을 연간 약 1%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일대학교의 정치학자 존 뢰머John Roemer 는 지속가능성을 근거로 대안적인 접근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는 호소력 있는 주장이긴 하지만, 주택이나 에너지소비 같은 것에 적용되는 상품에 대한 할인율과 다른 시기 또는 다른 세대의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할인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소비가 현 세대의 소비보다 가치가 낮다고 평가할 수 있다(즉, 할인하게 된다). 그러면 할인 문제를 바라보는 두 번째 관점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철학자와 경제학자는 부유한 세대의 자원에 대한 윤리적 권리는 가난한 세대의 그것보다 낮다는 데 동의한다. 이는 오늘날의 소비에 비해 미래 소비의 가치를 할인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미래세대가 현 세대보다 더 부유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학파는 이런 철학적 고려가 기후변화 투자를 둘러싼 결정과는 전체적으로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할인율이 주로 사회가 대안적인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실제 수익에 좌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각국은 주택, 교육, 예방의학, 탄소감축, 해외투자 등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다. 어떤 나라가 국제금융시장에서 5%나 10%에 돈을 빌려 그 부족한 재정을 풍력발전에 투자했는데, 수익이 1%밖에 되지 않는다면 결과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 기술적인 관점에 따르면, 할인율은 주로 자본의 기회비용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자본의 기회비용은 대안적인 투자의 수익률이 결정한다. (272-274쪽)
우리는 시장현실이라는 맥락을 벗어난 추상적인 자기자본의 정의가 아니라, 사회가 직면한 실제 시장기회를 반영하는 할인율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할인의 논리는 단순히 미래의 일은 미래에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이기적인 관점이 아니 다. 우리가 우리의 소득 전부를 소비하고 세상이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몇십 년 뒤 미래의 영향은 무시해도 된다는 입장도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세대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고수익 투자도 많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이 할인이다. 할인율은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가장 생산성이 높은 용도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설정되어야 한다. 효율적인 투자의 포트폴리오에는 분명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투자도 들어가 있겠지만, 보건시스템, 열대질병 치료, 전 세계 교육, 모든 종류의 신기술에 대한 기초 연구 등 다른 중요한 분야들에 대한 투자도 들어가 있다.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투자는 결국 다른 투자들과 경쟁해야 하며, 할인율은 경쟁관계에 있는 투자들을 비교하기 위한 척도다. 경제적 분석과 공학적 분석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안전한 한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은 실현가능하다. 경제학 연구들은 정책이 합리적으로 효율적이기만 하면 기후변화를 2.5~3도로 제한하는 비용은 할인된 세계총소득의 1% 미만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82-283쪽)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연비가 좋은 차를 사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대신 집 근처에서 휴가를 즐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여 주주들의 비위를 맞추는 동시에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을 재설계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과 엔지니어, 벤처자본가들에게 이들의 재능을 쏟아부을 유망한 영역은 바로 새로운 저탄소공정과 제품에 투자하는 일이라고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간단한 답이 있다. 에너지 부문 등에 대한 경제적 개입의 역사는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시장메커니즘 중에서 오늘날 누락된 가장 중요한 방식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 즉 ‘탄소가격’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발상의 배후에는 경제학 이론과 역사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된 통찰은 사람들이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행동을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바로 이산화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이는 탄소집약도가 높은 상품의 상대적인 가격을 상승시키고 탄소가 들어 있지 않은 상품의 상대적인 가격을 낮춰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상승곡선을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다. 탄소배출은 경제적 외부효과, 즉 사람들이 물건을 소비하면서 완전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 행위다. 어떻게 이 누락을 수정할 수 있을까? 이는 아주 간단한 경제적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정부는 사람들이 자신의 배출에서 파생되는 모든 비용을 확실히 지불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탄소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감축을 우위에 두겠다는 결정을 사회적으로 내렸음을 의미한다. (320-321쪽)
탄소가격의 아름다운 점 중 하나는 복잡한 탄소 관련 결정들을 단순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는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줄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해야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탄소 관련 결정들을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적응해갈 수 있을까? 모든 탄소배출에 대해 가격이 매겨질 경우 비용은 이미 자동차 여행을 위한 휘발유 가격에, 항공여행을 위한 비행기푯값과 택시요금에, 그 외 모든 대안적인 활동의 비용 속에 포함될 것이다. 일단 탄소가격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면 탄소를 이용하는 모든 활동의 시장가격은 사용된 연료의 탄소함량에 탄소가격을 곱한 값만큼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치르는 가격 중 탄소 때문 에 발생하는 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을 테지만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탄소가격은 배출감축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정한 방식을 취하며, 생산에서 혁신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이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최소화시켜준다. 경제학자들은 적절한 탄소가격을 추정할 때 두 가지 접근법을 사용해왔다. 첫째는 ‘탄소의 사회적 비용’이라고 하는 개념을 가지고 기후변화에서 발생되는 위해를 추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통합평가 모델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환경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탄소가격을 추정하는 것이다. (327-329쪽)
탄소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금에 가장 가까운 형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라고 하는) 달갑지 않은 활동의 결과를 줄여준다는 점에서 이는 고려 중인 세금 중에서 유일하게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시켜줄 수 있는 세금형태다. 또한 해로운 배출, 특히 석탄연소와 관련된 배출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중보건상의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탄소세는 많은 비효율적인 규제안에 힘을 실어주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을 훨씬 개선시킬 것이다. (335쪽)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탄소세를 선호하고, 협상가와 환경전문가들은 총량제한거래제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주요 고려사항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탄소세 지지자들은 조세시스템이 성숙하고 보편적인 정책제도임을 지적한다. 조세제도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총량제한거래제와 관련된 경험은 제한적이고, 국제적인 경험은 사실상 전무하다. 또한 배출량을 겨냥한 접근법에서 양적인 제한은 시장 탄소가격의 심각한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다. 변동성이 높을 경우 경제적 비용이 커지고, 이는 민간부문의 결정권자들에게 일관되지 못한 신호를 보내게 된다. 반면 탄소세는 분명하게 일관된 가격신호를 보낼 수 있고, 해가 바뀐다고 해서 또는 날이 바뀐다고 해서 크게 변하지도 않는다. 표준적인 총량제한거래제와 탄소세 간의 중요한 차이는 누가 돈을 지불하고 누구에게 수입이 발생하는지와 관련된다. 역사적으로 총량제한거래방식의 허가중 또는 허용량은 규제대상인 기업들에게 공짜로 할당되었다. 가령 1990년의 미국 이산화황 프로그램에서는 사실상 모든 배출허가증이 역사적으로 많은 양을 배출했던 전력회사와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할당되었다. 유럽의 이산화탄소 거래계획 초기단계에서도 허가증이 기업들에게 무상으로 할당되었다. 탄소세를 시행할 경우 정부에게 귀중한 세수가 발생하여 소비자들을 위해 재사용되거나 중요한 집합재를 구매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345-346쪽)
규제의 역사는 환경과 관련된 규정들은 지속성이 더 크고 일반적으로 역전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1990년 미국 의회는 이산화황 배출과 관련된 엄격한 규정들을 도입했다. 그 이후로 미국에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가 몇 차례 있었지만, 배출기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분석가들은 총량제한거래정책의 규제방법이 지속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여러 가지 주장을 검토하고 난 뒤 나는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할까? 내 첫 번째 선택은 둘 중 아무거나 괜찮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의 가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탄소세와 관련된 경제적 주장들, 그중에서도 특히 세수와 변동성, 투명성, 예측가능성과 관련된 주장들이 상당히 솔깃하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처럼 새로운 세금에 강한 반감이 있지만 총랑제한거래제, 특히 경매방식의 거래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라면 무절제한 기후변화를 방치하거나 실효성 없는 다른 방법에 의존하느니 총량제한거래제를 택하는 것이 분명 더 바람직하다. 총량제한거래제에 탄소세의 장점을 섞어 혼합형 제도를 만들어내는 타협을 해보면 어떨까? 아마 가장 유망한 접근법은 가격 상한선과 하한선으로 양적인 제한을 설정한 혼합형 메커니즘일 것이다. 가령 탄소세 하한선을 최저 이산화탄소 가격에 대한 양적인 목표로 설정하는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유럽처럼 일부 국가들이 총량제한거래제 모델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정책을 조직할 경우, 각국이 세금 하한선의 몇 배로, 가령 최저수준에 50%의 할증료를 더한 수준에서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 시스템에 상한선 안전밸브를 설정하여 변동성을 줄이면서 프로그램의 경제적 비용을 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348-349쪽)
국가 간 정책을 서로 조화롭게 조정하는 데는 두 가지 접근법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유럽연합이 운영했던 또는 교토의정서가 제안했던, 국제적인 총량제한거래제 정책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계획을 시행할 경우 국가별 배출량에 한도를 설정하고, 국가 간 배출허용량의 매매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시장메커니즘을 사용하면 국가 간 가격은 확실히 동일하게 맞춰질 수 있고, 이는 국가별 감축 한계비용이 동일해지는 결과를 가져와 전 세계가 최소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두번째 접근법은 각국이 서로 조화된 최소탄소가격에 합의하는 체제가 될 수 있다. 최소탄소가격에 합의하고 난 뒤 각국은 탄소배출에 대해 이 최소가격을 부과한다. 기후변화협상을 꾸준히 주목했던 사람들에게 총량제한거래제의 구조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반면, 탄소가격제도는 새로운 발상이다. 기본적인 개념은 각국이 배출한도보다는 탄소가격에 합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각국이 근거로 삼을 만한 탄소가격에 대한 문헌은 상당히 많다. 다음 문제는 각국이 탄소가격 조약에서 이행하는 의무사항들과 관련된다. 최소한 모든 국가가 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합의된 최저가격을 부과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각국은 원할 경우 최저가격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가격을 정할 수도 있다. 국제 표준가격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골조가 되는 협약이 필요하다. 중요한 점은, 최소가격에 대한 협상은 개별국가의 배출한도에 대한 완성된 형태의 협상에 비해 훨씬 간단하리라는 점이다. (360-361쪽)
국제적인 기후변화조약이 어떻게 이행 메커니즘을 도입할 수 있을까? 참여와 준수를 국제무역과 연계시키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령 협약에 참여하지 않거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무역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좀더 구체적인 접근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불이행국가가 수출한 모든 상품에 일률적인 관세(약 5%)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관세가 수출품의 탄소 함량과는 무관하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단순하고 투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367쪽)
국제무역시스템을 기후협약에 활용하는 것이 다른 국가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방법일 수 있긴 하지만, 대단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자유롭게 열려 있는 지금의 무역시스템은 보호주의를 물리치려는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과 전 세계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 기후체제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이 분명하고, 그 편익이 무역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위험만큼의 가치가 있을 때만 기후변화협약과 연계되어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시장에서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 배출의 가격을 형성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둘째, 자유시장은 이 일을 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각국은 총량제한거래제나 탄소세시스템을 이용하여 이산화탄소 가격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를 위해서는 대부분의 국가가 첫 두 단계에 동의하고 전 세계 수준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기후변화협약에는 무임승차를 억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메커니즘이 들어 있어야 한다. 현실을 감안했을 때, 가장 유익한 접근법은 각 나라들이 다른 나라의 투자에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수단 으로 무역제재를 활용하는, 국가별로 어느 정도 조정된 탄소가격제도가 될 것이다. (370-371쪽)
미심쩍은 범주에 속하는 대안들도 있다. 교토의정서와 유럽 배출권거래제도 안에 들어 있었던 ‘청정개발체제’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청정개발체제는 가난한 나라들이 자신들의 배출감축분을 부유한 나라에 팔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또다른 의문스런 제안으로는 녹색에너지’나 ‘녹색일자리’에 보조금을 제공하자는 안이 있다. 에탄올 보조금처럼, 정 치적으로 선호되지만 비효율적인 정책을 위한 포장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판별하려면 항상 '녹색'이라는 수사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런 보조금은 저탄소활동들이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서 탄소집약적인 활동들을 억제하려는 시도에서 시행된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저탄소활동으로 적격인지를 규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째서 하이브리드 차량에는 보조금을 주면서 자전거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는가? 모든 저탄소활동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 해답일 수 있을까? 물론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보조금의 효과가 너무 불균등하다는 데 있다. 미국국립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보조금 1달러당 감축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효율적인 보조금은 하나도 없었고, 어떤 것은 지독하게 비효율적이었으며, 에탄올 보조금 같은 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사실상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켰다. 결국 저탄소활동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보다는 탄소 배출에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훨씬 더 실효성이 있다. (382-383쪽)
각국이 총량제한거래제나 세금을 이용하여 탄소가격을 형성하는 정책을 이행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정치적 불확실성은 남아 있기 때문에 분위기가 바뀌어서 규제나 세금이 언제 줄어들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 규제적인 배출한도는 기업들이 변화하는 정치적 기후 속에서도 저탄소경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줄 것이다. 하지만 주로 규제에만 의존할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일단 규제를 통해 대부분의 배출감축을 시행하려면 말 그대로 수천 가지 기술과 수백만 가지 결정에 개입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정부에게는 경제 전반을 대상으로 규제를 실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가 없다. 이는 두 번째 문제로 연결된다. 규제정책만으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모든 부문과 모든 에너지상품 그리고 모든 서비스에 대해 규제를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규제는 조심스럽게 설계하지 않을 경우 비용이 대단히 많이 들고 심지어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각국 정부가 규제를 선호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규제의 비용이 소비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휘발유의 경우 연비 기준은 정부가 개입했다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동차 가격을 상승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휘발유세를 올리면 대체로 큰 논란이 일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심지어 연료가격 상승이 폭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규제를 선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기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규제를 조작하고 심지어 규제기관을 ‘포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세금은 규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작이 어렵다는 데 있다. 기존의 오염자들에게 값나가는 오염허용량을 무료로 넘겨주었던 총량제한거래제는 기업들이 규제를 선호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392-393쪽)
현실에서 적극적인 정책이 실패하고 난 뒤 남아 있는 해피엔딩을 위한 유일한 희망은 에너지기술의 혁명적인 변화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재생에너지 연료(풍력, 태양, 지열)의 비용이 급락하거나 아직 폭넓게 응용되지 못하고 있는 신기술들이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기후카지노 내에서 이렇게 우호적인 기술적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기술의 역사에는 의외의 사건들이 가득하다. 특히 우리가 안정화된 기후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해 비관적이라면 (저탄소의 관점에서) 긍정적인 기술적 사건들이 가능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397쪽)
향후 40년간 배출량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기술요건을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자. 합동세계변화연구소 Joint Global Change Research Institute와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 National Renewable Energy Laboratories는 기온안정화목표에 부합하려면 미국의 전력부문에 어떤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지를 검토했다. 두 모델은 설계와 초점, 경제적 구조, 과학팀이 완전히 달랐지만 상당히 유사한 결과를 도출했다. 두모델은 전력공급자들이 자본구조를 개혁하여 배출량을 크게 감축하려면 이산화탄소 가격을 대단히 높게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2050년의 탄소가격은 이산화탄소 톤당 150달러에서 500달러 사이다.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목표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전환의 규모다. 현재 전력생산의 70%를 차지하는 기술(석탄과 천연가스)은 다른 기술로 완전히 대체해야 한다. 그리고 절반에 달하는 전력이 아직은 필요한 수준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 기술들로 생산되어야 한다. 또한 4분의 1에 이르는 전력은 미국 대중이 싫어하는 기술(핵발전)을 통해 제공된다. 그리고 동일한 비중의 전력이 지금으로서는 현재의 주류 기술들보다 훨씬 비싼 전원(풍력)이나 공학자들이 보기에는 아직 가능성만 보이고 있는 전원(대규모 태양광발전과 지열발전)으로 채워져야 한다. (404-405쪽)
과학적 발견이 강한 반대에 부딪힌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앞서 담배산업이 어떻게 의심을 팔 아먹는 자들이 되어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고 흡연과 관련된 공공정책에 훼방을 놓았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면 담배문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의사와 과학자들은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흡연의 암 유발 여부와 관련된 문제에서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50년의 교육을 통해 흡연자들마저도 흡연이 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흡연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인 담배세는 오늘날 정부의 주요 재원이다. 그런데 높은 탄소세에는 인간의 건강, 지구, 정부예산과 관련하여 담배세보다 더 거역하기 어려운 경제 논리가 있다. 과학자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반대 측이 아무리 공격해봤자 과학의 분명하고 끈질긴 설명을 대체하지 못한다. 반대 측의 공격에 대한 반박 역시 마찬가지다. 흡연이 그랬듯이 기후과학의 증거는 매년 분명해질 것이다. 방해꾼들은 녹고 있는 유빙에 올라탄 신세가 될 것이며, 정치의 풍향은 결국 바뀔 것이다. (463-464쪽)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벽두에 ‘사면’ 카드를 꺼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건의하겠다”는 이 대표 말에 정치권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관한 권한은 헌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는 헌법 제79조입니다.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아, 대통령이 결정하면 시행됩니다.
한국에서 사면의 역사는 늘 논란과 함께했습니다. 사회에 중대한 해악을 끼친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특혜로 악용된다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마음대로 풀어줄 것이면 왜 법을 지켜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형평성과 자의적인 기준이 문제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국회에 낸 개헌안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 권한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면론에 반발이 이어지자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입니다. 당장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이 사면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떨까요? 대통령의 특별사면, 이대로 괜찮을까요?
■정치인·재벌에 관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
사면은 서양에서는 함무라비 법전,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제도입니다. 군주제에서 군주가 은혜로써 죄인을 풀어준다는 은사권(恩赦權)에 뿌리를 둡니다. 법원이 사실관계와 법리를 검토한 뒤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하고 형벌을 부과했는데, 이것을 대통령이 예외적으로 변경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권력 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면 제도는 현대사회까지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사면법과 관련된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한 결정문에서 대통령 사면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면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원수에게 부여된 고유한 은사권이며, 국가원수가 이를 시혜적으로 행사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도 파악되고 있다.”(2000년 헌재 결정문)
즉 법원 재판에서 혹시 오류가 발생했을 때 시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형벌을 없애줌으로써 원활한 교정과 사회복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회통합’의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통해 국민화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1997년 12월2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정부의 특별사면조치에 따라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각각 석방된 뒤 그동안의 수감생활과 사면조치 등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논란은 정치인과 재벌에 대한 대통령의 특별사면에서 불거집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입니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비자금 사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내란죄·뇌물죄 등이 적용된 이들에게 법원은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무렵인 1997년 12월 두 사람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합니다.
당시 청와대는 “국민대통합을 이뤄 당면한 경제난국 극복에 국가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선자 신분이던 김대중 대통령과도 협의했다고 했습니다. 새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비롯된 갈등의 잔재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민대통합론의 요지였지만, 성공한 쿠데타도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고 한 법원 판결과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사면해 논란이 됐습니다. 김씨는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청와대는 “20세기 마지막 광복절을 보내며 화해와 용서의 정신,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법 집행의 형평성이 결여되고 법치주의와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반발했습니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둔 선심 행사’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2021년 1월4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재벌 총수들이 대거 사면 대상에 올랐습니다. 2008년 8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9년 12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했습니다. 그밖에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도 이명박 정권 때 사면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2012년 “어떤 형을 구형하고 (선고)받았는데도 지켜지지 않고 계속 뒤집히는 것은 법치를 바로 세우는 데 악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8월 최태원 SK그룹 회장, 2016년 8월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사면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경우에는 결국 이건희 회장 사면과 관련해 삼성그룹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제3자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강한 반대 여론에도 특별사면을 강행했고, 이 회장 사면은 삼성의 주요 현안이었다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보고받은 것으로 인정된 이 회장 사면 관련 문건에는 다스 미국 소송에 대한 삼성의 자금지원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 개헌안엔 “대통령 사면권 통제”
정치인 등에 대한 사면이 시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헌재는 번번이 각하 결정을 합니다. 헌법소원을 낼 자격이 안 된다며 구체적인 심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 권력분립과 법의 형평성이라는 법치국가 원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현행 헌법의 개혁 과제로 특별히 대통령의 사면권을 언급했습니다.
4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 사면권이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온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 판결을 변경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부정부패나 선거사범 등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최근 몇 년간 매해 4000~6000명을 대상으로 큰 규모로 시행되는 반면, 국회 동의가 필요해 요건이 까다로운 일반사면은 1996년 이후 시행된 적이 없습니다. 통제 절차가 없는 대통령 사면권이 정권 편의대로 활용된다는 의심이 되는 대목입니다. 특별사면도 법무부장관 아래의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사면법에 규정돼있지만 형식에 불과하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파면 결정을 받은 사례에 대해서도 사면이 가능한지, 대통령이 사면권 행사를 남용한 경우 정치적 책임과 별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와 같은 쟁점도 등장합니다. 이석민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은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 보고서에서 이를 분석했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연방헌법은 탄핵은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탄핵과 별도로 형사판결에 대해서는 사면이 가능하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지만, 탄핵된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로 앤드류 존슨 미국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는 사면권 남용이 포함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탄핵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도 가능합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반역·살인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아예 사면을 배제하도록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는데, 한국 사면법에 명문의 규정은 없는 상태입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국회에 낸 헌법 개정안에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개정안에서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사면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헌법에 못박겠다면서 “대통령의 자의적 사면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절차적 통제 규정을 헌법상 명문화한다”고 했습니다. 개정안은 폐기됐습니다.
1997년 9월3일 시민들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추미애·윤석열은 “대통령 권한…의견내기 어려워”
대통령 사면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오는 단골 질문이기도 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국회에 낸 답변서에서 “사면제도는 역사적으로는 군주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로서 삼권분립이 확립된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으나, 국민의 결단으로 제정한 헌법에 명시한 제도인 만큼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보다는 합리적인 운영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면권은 국가이익과 국민통합이라는 제도의 취지에 걸맞은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투명한 절차를 거쳐 ‘보충적·예외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부정부패 공직자, 선거법 위반범에 대한 특별사면권 행사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2019년 12월 국회에 낸 답변서에서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어서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고만 했습니다.
2019년 7월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회 답변서를 살펴봤습니다. 윤 총장은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을 수사한 책임자입니다. 재벌 총수 특별사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윤 총장은 “사면은 개개 사건 및 대상자, 국민감정 등 제반요소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냈습니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사면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윤 총장은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검찰총장이 의견을 적극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코로나19는 날벼락처럼 찾아왔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4차산업혁명의 대중화'다. 4차산업혁명은 그동안 일부의 선언적인 구호로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그 인식은 크게 바뀌었다. 4차산업혁명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디넷코리아는 신축년(辛丑年) 새 해를 맞아 10개 키워드로 4차산업혁명의 진화 방향을 전망해본다.[편집자주]
②차세대반도체: AI의 뇌, 신경망 가속칩이 뜬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신경망 가속칩과 같이 딥러닝과 추론 등 AI 처리에 특화된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신경망 가속칩은 기존 CPU보다 전력을 덜 소모하면서 훨씬 빠른 속도로 연산을 수행할 수 있어 PC나 스마트폰은 물론 AI 처리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신년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연구개발과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시스템반도체(SoC)에 강점을 지닌 글로벌 기업과 팹리스 뿐만 아니라 기존 반도체 업체도 비(非) 메모리 반도체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신경망 가속칩 관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리포트링커 등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딥러닝을 수행하는 신경망 가속칩 시장은 오는 2025년 245억 달러(약 3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 시장 성장률도 37%로 매우 가파르다.
■ 기존 프로세서 보완해 AI 연산 가속
원래 신경망 가속칩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러 단계를 거쳐 처리해야 했던 복잡한 연산을 명령어 하나로 처리하거나, AI 처리에 필요한 데이터에 특화된 연산을 훨씬 빠르게 수행한다.
신경망 가속칩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딥러닝이나 추론 등 AI 구현을 위한 각종 연산을 가속하는 칩이다. 비트 수가 서로 다른 자료를 처리하거나, 행렬 곱셈과 덧셈 등 연산을 전담해 전력 소모와 처리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다음으로 AI에 필요한 연산을 가속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인간의 뇌세포 자체를 모방해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칩을 들 수 있다. IBM 트루노스(TrueNorth),인텔 로이히(Loihi) 등 일부 제품이 나와 있지만 이를 이용한 상용화 제품은 아직 손에 꼽는다.
■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출범...2029년 총 1조여원 투입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슈퍼사이클(2017~2018) 이후 공급과잉으로 인한 단가 하락 등으로 위기가 찾아오자, 정부는 비(非)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9년부터 시스템 반도체(SoC) 육성에 나섰다.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에 대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에는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 발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강국에서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공개했다.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9월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을 출범하고 오는 2029년까지 총 1조 96억원을 투입해 AI 관련 반도체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AI 반도체 수요기업인 현대모비스, 삼천리, SK텔레콤, 한화테크윈과 이를 개발하는 텔레칩스, 스카이칩스 등 국내 팹리스, 이를 후원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이 개념 검증과 개발, 생산 전 단계에서 긴밀히 협력하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해에는 103개 기업, 32개 대학, 12개 연구소가 총 82개 관련 과제에 참여했다. 또 올해부터 오는 2023년까지 약 3년간 초고속·저전력 메모리, 신경망 하드웨어, 두뇌모사 프로세서 등 신경망 가속칩에 필요한 원천기술 확보에 총 6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 신경망 가속칩, 2025년 36조 규모로 성장
신경망 가속칩은 과거 클라우드 컴퓨팅에 의존해야 했던 AI 처리를 말단(엣지)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기기 내부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전송하고 결과값을 다시 받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연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5G 보급에 따라 데이터 전송시 지연시간은 비약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국방이나 의료 등 분야에서는 데이터 유출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또 음성인식이나 자율주행 등 실시간 처리가 필요한 분야에서도 신경망 가속칩의 중요성이 크다.
지난 해 출시된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안에 신경망 가속칩 블록을 내장하고 있다. 신경망 가속칩은 컴퓨팅 관련 기기 뿐만 아니라 산업용 로봇, 가전제품 등 AI 관련 처리가 필요한 모든 기기에 기본 탑재될 전망이다.
리포트링커 등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딥러닝을 수행하는 신경망 가속칩 시장은 오는 2025년 245억 달러(약 3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한해 시장 규모는 각 업체 기준에 따라 최저 39억 달러(트랙티카 기준)에서 최고 97억 달러(가트너 기준)까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AI 처리가 요구되는 시장 상황 속에서 규모 축소는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 글로벌 AP·프로세서 업체들 각축전
현재 시장에 출시된 신경망 가속칩은 대부분 독립된 형태가 아니라 AP나 PC·서버용 프로세서 안에 블록 형태로 내장된다.
애플은 2017년 이후부터 '뉴럴 엔진'을 포함하고 있고 퀄컴은 지난 12월 공개한 스냅드래곤 888 AP에 AI 처리를 가속하는 헥사곤 프로세서를 내장했다.
삼성전자 역시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 아래 NPU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AP인 엑시노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벗어나겠다는 의도에서다.
지난 해 출시된 갤럭시노트 20 등에 탑재된 엑시노스 990 AP에는 AI 연산 성능 강화를 위해 자체 개발 NPU 2개와 DSP를 탑재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처럼 독립된 신경망 가속칩을 출시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모바일 제품군은 물론 생활가전 등 폭넓은 제품에 탑재할 수 있는 신경망 가속칩과 관련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텔은 2017년 인간 뇌세포를 모방한 칩인 로이히(Loihi) 칩을 개발했다. 기존 프로세서 대비 전력 소모는 1/45 수준이지만 처리 속도는 100배 이상이라는 것이 인텔 설명이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국립대 연구진이 로이히 칩을 이용해 촉각을 지닌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IBM이 개발한 트루노스 칩은 소비 전력을 최대 200mW로 억제하며 초당 46억 회 실행되는 시냅스 연산을 수행 가능하다. 미 공군은 이런 특성을 살려 향후 5년 내 무인기(드론)에 트루노스 칩을 탑재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중이다.
티맵모빌리티 '4대 핵심 사업' 추진…플라잉카로 서울-경기 30분내 연결 "T맵 중심 모빌리티 혁신" 우버와 택시 합작…2025년까지 4조 5천억원 규모로 성장 SKT·카카오·현대차·타다·쏘카 '각축전' 판 커지는 모빌리티…"승자는 누구?"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의 티맵모빌리티가 올해부터 본격 시동을 건다. 사실상 카카오가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티맵모빌리티는 T맵 택시 드라이버, 지도·차량 통행 분석 기술과 우버의 세계적 운영 경험, 플랫폼 기술을 합쳐, 이전엔 없던 택시 호출 사업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플라잉카)도 추진한다.
현대차, 타다, 쏘카 등도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ICT 기술 기반으로 한층 강화된 서비스 구축에 나서면서, 국내 모빌리티 시장 선점 경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티맵모빌리티 "4대 핵심 사업" 본격 시동…플라잉카로 서울-경기 30분내 연결
이종호 티맵모빌리티 대표. 티맵모빌리티 제공
지난달 29일 SK텔레콤에서 분사해 신설된 '티맵모빌리티'가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이종호 티맵모빌리티 대표를 선두로 지난 1일부터는 새로 채용된 경력 직원들이 합류했다.
앞서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분사를 결정했다. 일상과 연계된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반면, SK텔레콤 내비게이션 서비스 'T맵'만으론 영향력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티맵모빌리티는 이동통신·미디어·보안·커머스를 잇는 SK텔레콤의 새로운 핵심 사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기업가치는 연 매출 6천억원, 5년 내 4조 5천억원 규모를 목표로 하고 있다.
4대 핵심 모빌리티 사업은 △주차, 광고, UBI(보험 연계 상품) 등 플랫폼 사업 △IVI(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차량 내 결제 등 완성차용 T맵 오토 △택시 호출, 대리운전 등 모빌리티 온디멘드(On-Demand) △다양한 운송 수단을 구독형으로 할인 제공하는 올인원 MaaS(Mobility as a service) 등이다.
실제 내비게이션 기반 주차·광고·보험 상품과 IVI는 가장 빠르게 확장 가능한 사업이다. 실제로 IVI는 BMW, 재규어랜드로버, 볼보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국내 탑재를 결정했다. SK텔레콤은 티맵을 IVI든, 스마트폰 내비든, 완성차 내부 탑재든 '모든 차량'에 심는다는 걸 목표로 한다.
티맵모빌리티가 달리는 도로는 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플라잉카) 사업 구현이 목표다. △플라잉카 내비게이션 △높은 고도의 지형지물을 고려한 3차원 HD맵 △플라잉카를 위한 지능형 항공 교통관제 시스템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박정호 사장은 "서울-경기권을 30분 내로 연결하는 플라잉카를 비롯해 대리운전, 주차, 대중교통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대표 '모빌리티 라이프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며 "모빌리티 사업이 SK텔레콤의 다섯 번째 핵심 사업부로서 새로운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T맵 중심 모빌리티 혁신" 우버와 택시 합작…2025년까지 4조 5천억원 규모로 성장
우버. 연합뉴스
티맵모빌리티는 비즈니스 파트너로 글로벌 차량공유 플랫폼 우버와도 손잡았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우버는 티맵모빌리티에 약 547억원(5천만 달러), SK텔레콤과 함께 설립하는 조인트벤처에 약 1095억원(1억 달러) 등 총 1642억원(1억 5천만 달러)을 투자한다.
양사는 올 상반기 내 합작회사(JV)를 설립하고 택시 호출 사업에 나선다. 이를 위해 티맵모빌리티가 가진 T맵 택시 드라이버, 지도·차량 통행 분석 기술에 우버의 전 세계적인 운영 경험, 플랫폼 기술 역량을 더한다.
티맵택시는 카카오택시에 밀리며 초기 시장 선점에 실패하면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2018년 '재도약'에 나섰지만 체감할 수 있는 반향은 딱히 없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우버도 국내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다.
그러나 티맵 모빌리티와 '우버'가 가세하면서 시장에선 국내를 넘어 해외사업 기대감과 함께 모빌리티 기반 신사업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장민준 키움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티맵 택시와 우버 택시와의 조인트벤처(JV)를 통해 티맵모빌리티 가맹 택시의 단일 브랜드 디자인 적용, 엄선된 드라이버, 완전 배차 서비스 등으로 차별화할 것"이라며 "강력한 맵 기능을 가진 티맵과 공유 차량 노하우를 가진 우버의 운영 경험이 시너지를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SKT·카카오·현대차·타다·쏘카 '각축전' 판 커지는 모빌리티…"승자는 누구?"
SK텔레콤의 모빌리티 본격 진출로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와 카카오, 벤처기업인 타다, 쏘카 등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각축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택시 호출 시장에서 카카오T의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가입자는 9월 말 기준 2700만명에 이른다. 카카오T 플랫폼을 기반으로 △택시 △대리기사 △자전거 △주차 △셔틀, 시외버스 예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카카오는 티맵모빌리티를 상대로 한층 강화된 서비스 구축에 나서는 만큼, 특화된 영역을 길러내 모빌리티 사업을 보다 굳건히 할 예정이다.
카카오 택시. 연합뉴스
최근 카카오 모빌리티는 자율주행 셔틀 서비스를 선보이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 기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정부세종청사 인근 도로에서 플랫폼 기반 유상 자율주행 셔틀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오토노머스에이투지'와 협업을 시작으로 자율주행 분야 기업 및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확대하면서 이들 기업이 카카오T를 통해 자율주행 서비스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협력 체계도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제품'에서 '제품+서비스'로 사업구조를 변경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2025년까지 61조 1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4월 베이직 사업을 중단한 타다는 가맹 택시 서비스인 '타다 라이트'를 선보이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타다를 운영하는 쏘카는 10월 6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 확보한 투자금은 다양한 서비스·기술 개발, 인재유치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정부의 우호적인 정책도 모빌리티 시장 선점 경쟁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지난해 5월 모빌리티 혁신위원회를 출범하고 현재 8조원 규모인 모빌리티 시장 규모를 2030년까지 15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5G는 결국 IoT로 진화하고 AI, 플랫폼, 맵과 융합해 5G 자율주행자동차 산업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B2B(기업간 거래) 부문에서 큰 폭의 성장이 기대된다"며 "특히 SK텔레콤 티맵모빌리티는 분사 뒤 기업공개(IPO)가 예상되는 만큼, 기업가치가 증대될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뉴스24 안희권 기자] 세계 최대 e커머스 업체이자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인 아마존이 지난해말 2개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공개하고 이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아마존은 의료기관간 데이터 전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간 서비스(B2B) 모델로 아마존 헬스레이크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의료기관이나 생명과학업체간 데이터 전송, 분석, 저장 등을 아마존웹서비스(AWS)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의료정보기반 구축 서비스이다.
또 다른 서비스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제약 서비스 아마존파머시로 기업과 개인간 서비스(B2C)이다. 아마존은 이 2개의 상품의 출시를 계기로 헬스케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아마존의 헬스케어 시장진출을 바라보는 시각이 각기 다르다. 업계는 아마존을 유통 분야의 생태계 파괴자로 보고 있는 반면 소비자는 기존 사업자보다 저가로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서비스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각국 규제기관들은 아마존이 거대 IT 유통 플랫폼 업체로 성장하여 시장을 독식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도 불이익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마존, 3조달러 헬스케어 시장 조준
IT 기업의 헬스케어 시장 진출은 아마존이 처음은 아니다.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잇따라 3조달러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을 추진했다.
이 업체들 대부분은 회사주식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규시장 진출을 추진했다. 물론 이는 거대 플랫폼 업체이기에 가능하다. 아마존은 전자책 판매를 시작으로 판매상품을 가전기기뿐만 아니라 디지털 상품인 음악과 영화, 게임으로 확대했다.
최근에는 홀푸드마켓을 인수해 신선식품 배달과 조제약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과 애플 등과 같은 거대 플랫폼 업체들은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와 막강한 글로벌 유통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해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MS는 개인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를 직접 통제관리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생활 침해로 이어져 이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IT 업체들은 헬스케어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보다 관련업체와 제휴 또는 플랫폼을 활용한 헬스케어 보조 서비스로 이용자의 헬스케어 서비스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1999년과 2000년에 조제약 시장진출을 위해 드러그스토어닷컴에 투자를 했으며 그후 10억달러 가까이 들여 온라인 조제약 배송 업체인 필팩을 인수했다. 여기에 아마존은 제이피모건과 버크셔해서웨이, 헤븐헬스케어 등과 손잡고 헬스케어 합작사를 설립했다.
◆헬스케어 시장 진출은 보험시장 노림수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 업체이지만 전자책 판매시절에 축적한 컴퓨팅과 네트워크 구축 기술을 활용해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인 AWS를 출시했다. 아마존은 이 사업덕분에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 강자로 매분기 두자리수 매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존은 최근 인공지능(AI)과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온라인 영화 추천 서비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또한 아마존은 그동안 축적한 물류배송 노하우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활용해 클리닉과 처방전 조제약 배송 서비스로 헬스케어 사업을 시작했다. 아마존은 이미 직장내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가상 메디컬 클리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마존은 이 서비스를 지난해 9월 아마존케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아마존은 한발 더 나아가 의료보험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아마존은 의료보험 업체와 보험가입을 원하는 서비스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전용 플랫폼을 만들고 스마트홈 기기나 스마트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 사용자를 대상으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통계조사업체 캡게미니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54% 응답자가 거대 IT 기업들이 제공하는 보험상품을 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장 분석가들은 아마존을 포함한 거대 IT 기업들이 앞으로 머지 않아 보험판매나 리스크 관리 시장까지 잠식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