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 사랑으로 세상을 껴안은 여자
**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사생아를 낳은 적이 있으며, 한때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으며, 마약을 복용했던 흑인 여자. 지금은 교황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전 세계 1억 4000만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는 저명한 여성 앵커. 자신의 쇼는 에미상을 30회나 수상했으며, ‘TV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재산이 10억 달러에 이르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잡지는 월 평균 250만 부가 판매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이 ‘고백을 이끌어낼 때까지 질문하다’라는 동사로 쓰이고 있는 여자. 미시시피의 시골 동네에서 태어난 한 흑인 소녀가 이루어낸 위대한 성취의 역사를 알아본다. **
최근 미국의 한 여행 전문 출판사가, 여행을 갈 때 비행기 옆 좌석에 앉히고 싶은 인물을 알아보기 위해 남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설문 대상자의 32퍼센트로 1위에 올랐다. 그녀는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춘>이 선정한 ‘1999년도 파워우먼 50’ 중 26위에 올랐으며,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세기의 인물’ 중 하나로, <월 스트리트 저널>은 1997년에 그녀를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3위에 선정할 만큼 그녀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그녀는 현재 토크쇼 사회자뿐만 아니라 여성 전용 케이블 TV ‘옥시전(Oxygen)’ 의 동업자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고, TV 프로그램 제작과 출판 및 인터넷 사업 등을 총망라하는 하포 그룹의 소유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연예인 가운데 최고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녀의 재산은 약 1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녀는 인종과 성의 장벽을 뛰어넘어 눈부신 성공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녀의 과거는 행복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시시피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어렵게 자랐다. 친척으로부터 성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그녀는 열 세 살 때 가출, 비행소년 수용소에 보내지려고 할 정도로 문제아였다. 그러나 엄격한 아버지 밑으로 보내진 이후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성경을 암송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녀에게는 하나의 구원이었다.
내쉬빌의 WVOL이라는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 취직해 방송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1970년대 중반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앵커가 되었다. 이후 1984년에 맡은 ‘AM 시카고’라는 토크쇼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얼마 후 ‘오프라 윈프리 쇼’로 명칭을 바꾼 이 토크쇼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폭력과 성차별, 이혼, 아동 학대, 다이어트 등, 여성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로 참석자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그들을 위무했다.
그녀의 토크쇼에 소개됐던 무명의 작가는 방송 후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뛰어올랐으며, 자신의 다이어트 체험을 책으로 펴냈을 때는 전 세계의 여성들이 윈프리의 다이어트법을 배우려고 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전국적인 방송망을 가지고 지금도 하루 1500만 명의 시청자들을 TV 앞에 불러모으고 있으며, 여전히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의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녀는 개인적인 사안으로 보이는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그녀는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모델’로 꼽는 인물이다. 인기와 부에 더하여 ‘존경’까지 받는 인물인 셈이다. ‘oprah’라는 말이 미국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고백을 끌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나, ‘oprahrization(오프라화하다)’이라는 말이 ‘오프라 쇼에서 얘기될 정도의 대중적 파급력이 있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그녀의 쇼가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누구든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드는 그녀 자신의 숨김 없고 거리낌 없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쇼에서, 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으며, 마약을 사용했었음을 시청자 앞에서 엉엉 울면서 고백하기도 했다.
그녀는 토크쇼에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진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쇼는 무척이나 친근하고 자연스럽다. 시청자들을 향해 “저기 저 빨래 걷고 있는 분”이라고 부르며, 방청객들에게 “여러분 중 첫 번째 데이트에서 상대와 잠자리에 드신 분 있어요?” 하고 묻기도 한다.
물론 솔직하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한다. “밍크는 죽어서 코트가 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 아닌가요?”라고 했다가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고, 광우병 파동 때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아야겠네요”라고 했다가 쇠고기 값 폭락이 이어져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공인으로서 마약 복용을 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알면서도 그 사실을 밝혔으며,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을 때는 합의하지 않고 재판을 통해서 무죄를 받아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우리가 그 두려움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을 때 생겨납니다. 우리가 그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두려움은 유령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치료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입니다.”
그녀는 17세 때 출전한 화재예방 미인대회에서 사회자가 “윈프리양, 지금 당장 100만 달러가 생긴다면 뭘 하겠습니까?”라고 묻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라는 상투적인 답변 대신 이렇게 외쳤다. “막 쓸 거예요!”
오프라 윈프리는 자칫하면 단점으로 작용될 수 있는 지나친 솔직함과 감정에 치우치는 태도를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로써 극복하고 그것을 최대한의 장점으로 만들어냈다.
CEO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는 한 해 10억 달러 수익을 내는 하포 그룹(Harpo는 Oprah를 거꾸로 쓴 것으로, 오프라가 자기 개성의 감성적인 측면을 나타낸다면, 하포는 빈틈없는 사업가의 모습을 나타낸다.)의 CEO이며, 개인 재산 10억 달러로 연예인 가운데 최고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억만장자이다. 그녀는 하는 일마다 성공해서 미다스의 손이란 이름으로 불릴 정도다.
하포 그룹은 오프라 윈프리 쇼를 운영할 뿐 아니라, 황금시간대 특별 프로그램, 텔레비전 영화,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0만 달러짜리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방송제국을 창조해낼 만한 사람을 찾아내고 꼭 붙들어둔다는 것이다.
”저는 훌륭한 경영자가 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가슴으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업의 한가운데 있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저는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거지요.”
그녀는 아주 열정적으로 일하며, 그녀의 직원들도 아주 헌신적이다. 하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할 정도로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경영학 수업은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어느 경영인보다 수익을 많이 창출하고 있다. 경영 수완에 대해 묻자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느낌이 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아요. 저는 논리에 따라 일을 하지 않아요. 육감을 따르죠. 그런데 전 꽤 좋은 육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육감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아무 일도 않는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침 6시에 스튜디오에 도착해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그 후에는 오전 9시 녹화를 위해 헤어스타일을 손질하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한 시간짜리 쇼를 녹화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나서고, 그것이 끝나면 녹화 편집작업 회의로 들어간다. 11시에는 두 번째 쇼의 녹화가 시작된다. 점심식사가 끝나도 휴식과는 거리가 멀다. 제작과 영업회의를 주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모든 프로젝트와 더불어 매년 대략 220시간 분의 새로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목요일에는 매주 결제하는 수백 장의 수표에 사인하고, 서류를 검토하여 결재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이 지나간다. 나머지 날들은 인디애나 농장에서 보내는데, 이 때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그녀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일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매일 바쁜 와중에도 그 날 일어났던 일 가운데 다섯 가지 감사 목록을 쓴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감사의 내용이 거창한 것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식 다이어트
1994년 워싱턴 D.C. 해병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나 관중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40번 참가자가 완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40번 참가자는 오프라 윈프리였다. 18개월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운동이라고는 하는 것이 없었던 오프라가 결승점을 통과했다는 것은 하나의 인간승리였다. 1만3800명이 참가해서 4240명이 중도에 포기한 가운데 오프라는 이슬비를 맞으며 4시간 29분 15초의 기록으로 결승점에 골인했다. 오프라는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완주하게 되면 당신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라고 말했었는데 실제 마라톤에서도 완주를 한 것이다.
그 전까지 오프라 윈프리도 다양한 다이어트에 매달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방송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채웠고, 체중은 갈수록 늘어갔다. 그는 마이크 타이슨과 같은 98킬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체중은 계속 불어나, 에미상 시상식 때는 102킬로그램의 체중으로 무대에서 창피함을 느꼈다. 도중에 석달 만에 다이어트로 30여 킬로그램을 줄이기도 했지만, 그 때뿐이었다. 그녀의 몸무게는 무려 107킬로그램까지 불어났다.
결국 그녀는 다이어트 대신, 트레이너인 밥 그린을 소개받아 조깅을 하고, 물을 하루에 여섯 내지 여덟 컵씩 마시면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1994년 그녀의 몸은 68킬로그램이 되었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꾸준한 운동의 결과였다. 그녀는 1995년 9월 한 잡지의 표지에 건강하고 날씬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그 잡지를 그 해 가장 잘 팔린 잡지로 만들어줬다.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나는 모든 여성의 삶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이즈는 경험해보았다”라고 말했지만, 체중 조절은 그녀에게 무엇보다 절박한 것이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체중 문제가 살과의 전쟁이라고 믿은 것이었어요. 전혀 아니거든요. 스트레스를 적절히 조절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알콜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되게 만드는 것과 똑같은 문제였어요. 제게 있어 음식은 편안함, 즐거움, 사랑, 친구 등 모든 것이었어요. 요즈음에는 의식적으로, 음식이 내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는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사랑에 목숨을 걸다
남자에 관한 한 오프라에게도 절망적인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그녀는 연인과 헤어지고 그 상처로 자살을 생각하면서 유서를 쓸 만큼 절망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4년 동안이나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국은 헤어졌다. 오프라는 그 남자가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더 그에게 매달렸다. 그가 가버리면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 마약을 하게 되면 그 남자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그와 함께 코카인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으며,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너는 일단 사랑에 빠지면 목숨을 걸 거다”라고 했다는 부친의 말은 맞았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그러나 오프라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나 한 번쯤 밟고 지나가는 현관 앞에 놓인 매트에 불과했죠.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절대로 다시는 나를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겠노라고….”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상형인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있다. 스테드먼 그레엄이라는 이 남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돕기 좋아하는 친절한 남자라고 한다. 그는 오프라에게 정서적인 안정감, 즉 사랑에 빠진 이들이 그 사랑에서 구하고자 하는 안정감을 주었다. 아직 결혼을 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것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결혼이란 자신의 에고를 희생하는 것이죠.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위해서 말입니다. 전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어요.
오프라에게 있어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녀가 결혼에 이르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일을 더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연인인 스테드먼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그녀를 더욱 활기차게 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오프라는 세 살 때부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책은 그녀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와도 같았다. 책에 대한 오프라의 애정은 각별하다. 책은 그녀에게 많은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미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녀에게 책은 바로 희망과 통하는 문이었으며, 책을 읽는 것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오프라가 자신의 쇼에 북클럽 코너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북클럽 코너를 신설했을 때, 방송계에서는 쓸데없이 위험 부담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심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쇼의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곧 회복되었으며, 1996년에는 경쟁 프로그램보다 무려 두 배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북클럽에서 선정하면 어떤 책이든 50만 부에서 70만 부 정도가 더 팔린다.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 오프라의 역할은 막대했으며, 20년 동안 단 한 권도 안 읽었던 사람까지 책을 읽게 만들었다.
시카고의 한 여학교에서 강연할 때,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여러분도 장차 캐딜락을 몰며 돈을 막 쓰는 멋진 삶을 누리고 싶은가요? 그러면 열심히 공부하세요. 잘 읽지도 셈할 줄도 모른다면, 그리고 미혼의 처지에 임신을 한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면 결코 캐딜락을 갖지 못할 거예요. 이건 장담해요.”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은, 그녀가 단순한 토크쇼 사회자에 머무르지 않고 ‘정신적 스승’의 반열에까지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최고의 삶을 살자(Live Your Best Life)’라는 주제로 캠페인 투어를 가지기도 했으며, 정신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기를 열망한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하고 있다.
* 참고 도서 :
신화가 돈 여자 오프라 윈프리(자넷 로우 지음, 청년정신 펴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특별한 지혜(빌 애들러 엮음, 집사재 펴냄)
꿈을 경영하는 CEO(H.W.브랜즈 지음, 지식넷 펴냄)
**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사생아를 낳은 적이 있으며, 한때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으며, 마약을 복용했던 흑인 여자. 지금은 교황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며, 전 세계 1억 4000만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는 저명한 여성 앵커. 자신의 쇼는 에미상을 30회나 수상했으며, ‘TV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재산이 10억 달러에 이르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잡지
최근 미국의 한 여행 전문 출판사가, 여행을 갈 때 비행기 옆 좌석에 앉히고 싶은 인물을 알아보기 위해 남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가 설문 대상자의 32퍼센트로 1위에 올랐다. 그녀는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춘>이 선정한 ‘1999년도 파워우먼 50’ 중 26위에 올랐으며, 시사 주간지 <타임>은 ‘20세기의 인물’ 중 하나로, <월 스트리트 저널>은 1997년에 그녀를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3위에 선정할 만큼 그녀는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그녀는 현재 토크쇼 사회자뿐만 아니라 여성 전용 케이블 TV ‘옥시전(Oxygen)’ 의 동업자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고, TV 프로그램 제작과 출판 및 인터넷 사업 등을 총망라하는 하포 그룹의 소유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연예인 가운데 최고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녀의 재산은 약 1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녀는 인종과 성의 장벽을 뛰어넘어 눈부신 성공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녀의 과거는 행복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시시피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어렵게 자랐다. 친척으로부터 성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그녀는 열 세 살 때 가출, 비행소년 수용소에 보내지려고 할 정도로 문제아였다. 그러나 엄격한 아버지 밑으로 보내진 이후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성경을 암송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녀에게는 하나의 구원이었다.
내쉬빌의 WVOL이라는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 취직해 방송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1970년대 중반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앵커가 되었다. 이후 1984년에 맡은 ‘AM 시카고’라는 토크쇼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얼마 후 ‘오프라 윈프리 쇼’로 명칭을 바꾼 이 토크쇼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폭력과 성차별, 이혼, 아동 학대, 다이어트 등, 여성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로 참석자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그들을 위무했다.
그녀의 토크쇼에 소개됐던 무명의 작가는 방송 후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뛰어올랐으며, 자신의 다이어트 체험을 책으로 펴냈을 때는 전 세계의 여성들이 윈프리의 다이어트법을 배우려고 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전국적인 방송망을 가지고 지금도 하루 1500만 명의 시청자들을 TV 앞에 불러모으고 있으며, 여전히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의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녀는 개인적인 사안으로 보이는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그녀는 방송인이라면 누구나 ‘모델’로 꼽는 인물이다. 인기와 부에 더하여 ‘존경’까지 받는 인물인 셈이다. ‘oprah’라는 말이 미국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고백을 끌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나, ‘oprahrization(오프라화하다)’이라는 말이 ‘오프라 쇼에서 얘기될 정도의 대중적 파급력이 있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그녀의 쇼가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누구든 편안하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드는 그녀 자신의 숨김 없고 거리낌 없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쇼에서, 어렸을 때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으며, 마약을 사용했었음을 시청자 앞에서 엉엉 울면서 고백하기도 했다.
그녀는 토크쇼에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진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녀의 쇼는 무척이나 친근하고 자연스럽다. 시청자들을 향해 “저기 저 빨래 걷고 있는 분”이라고 부르며, 방청객들에게 “여러분 중 첫 번째 데이트에서 상대와 잠자리에 드신 분 있어요?” 하고 묻기도 한다.
물론 솔직하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한다. “밍크는 죽어서 코트가 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 아닌가요?”라고 했다가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고, 광우병 파동 때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아야겠네요”라고 했다가 쇠고기 값 폭락이 이어져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는 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공인으로서 마약 복용을 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알면서도 그 사실을 밝혔으며,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을 때는 합의하지 않고 재판을 통해서 무죄를 받아냈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두려움은 우리가 그 두려움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을 때 생겨납니다. 우리가 그 두려움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두려움은 유령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치료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입니다.”
그녀는 17세 때 출전한 화재예방 미인대회에서 사회자가 “윈프리양, 지금 당장 100만 달러가 생긴다면 뭘 하겠습니까?”라고 묻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라는 상투적인 답변 대신 이렇게 외쳤다. “막 쓸 거예요!”
오프라 윈프리는 자칫하면 단점으로 작용될 수 있는 지나친 솔직함과 감정에 치우치는 태도를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용기로써 극복하고 그것을 최대한의 장점으로 만들어냈다.
CEO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는 한 해 10억 달러 수익을 내는 하포 그룹(Harpo는 Oprah를 거꾸로 쓴 것으로, 오프라가 자기 개성의 감성적인 측면을 나타낸다면, 하포는 빈틈없는 사업가의 모습을 나타낸다.)의 CEO이며, 개인 재산 10억 달러로 연예인 가운데 최고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억만장자이다. 그녀는 하는 일마다 성공해서 미다스의 손이란 이름으로 불릴 정도다.
하포 그룹은 오프라 윈프리 쇼를 운영할 뿐 아니라, 황금시간대 특별 프로그램, 텔레비전 영화,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0만 달러짜리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방송제국을 창조해낼 만한 사람을 찾아내고 꼭 붙들어둔다는 것이다.
”저는 훌륭한 경영자가 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가슴으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업의 한가운데 있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저는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거지요.”
그녀는 아주 열정적으로 일하며, 그녀의 직원들도 아주 헌신적이다. 하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사생활을 포기할 정도로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경영학 수업은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어느 경영인보다 수익을 많이 창출하고 있다. 경영 수완에 대해 묻자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느낌이 오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아요. 저는 논리에 따라 일을 하지 않아요. 육감을 따르죠. 그런데 전 꽤 좋은 육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육감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아무 일도 않는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아침 6시에 스튜디오에 도착해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그 후에는 오전 9시 녹화를 위해 헤어스타일을 손질하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한 시간짜리 쇼를 녹화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 나서고, 그것이 끝나면 녹화 편집작업 회의로 들어간다. 11시에는 두 번째 쇼의 녹화가 시작된다. 점심식사가 끝나도 휴식과는 거리가 멀다. 제작과 영업회의를 주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모든 프로젝트와 더불어 매년 대략 220시간 분의 새로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목요일에는 매주 결제하는 수백 장의 수표에 사인하고, 서류를 검토하여 결재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이 지나간다. 나머지 날들은 인디애나 농장에서 보내는데, 이 때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그녀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일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매일 바쁜 와중에도 그 날 일어났던 일 가운데 다섯 가지 감사 목록을 쓴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감사의 내용이 거창한 것이 아닌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식 다이어트
1994년 워싱턴 D.C. 해병대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나 관중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40번 참가자가 완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40번 참가자는 오프라 윈프리였다. 18개월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운동이라고는 하는 것이 없었던 오프라가 결승점을 통과했다는 것은 하나의 인간승리였다. 1만3800명이 참가해서 4240명이 중도에 포기한 가운데 오프라는 이슬비를 맞으며 4시간 29분 15초의 기록으로 결승점에 골인했다. 오프라는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완주하게 되면 당신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라고 말했었는데 실제 마라톤에서도 완주를 한 것이다.
그 전까지 오프라 윈프리도 다양한 다이어트에 매달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방송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채웠고, 체중은 갈수록 늘어갔다. 그는 마이크 타이슨과 같은 98킬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체중은 계속 불어나, 에미상 시상식 때는 102킬로그램의 체중으로 무대에서 창피함을 느꼈다. 도중에 석달 만에 다이어트로 30여 킬로그램을 줄이기도 했지만, 그 때뿐이었다. 그녀의 몸무게는 무려 107킬로그램까지 불어났다.
결국 그녀는 다이어트 대신, 트레이너인 밥 그린을 소개받아 조깅을 하고, 물을 하루에 여섯 내지 여덟 컵씩 마시면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1994년 그녀의 몸은 68킬로그램이 되었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꾸준한 운동의 결과였다. 그녀는 1995년 9월 한 잡지의 표지에 건강하고 날씬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그 잡지를 그 해 가장 잘 팔린 잡지로 만들어줬다.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나는 모든 여성의 삶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이즈는 경험해보았다”라고 말했지만, 체중 조절은 그녀에게 무엇보다 절박한 것이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체중 문제가 살과의 전쟁이라고 믿은 것이었어요. 전혀 아니거든요. 스트레스를 적절히 조절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알콜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되게 만드는 것과 똑같은 문제였어요. 제게 있어 음식은 편안함, 즐거움, 사랑, 친구 등 모든 것이었어요. 요즈음에는 의식적으로, 음식이 내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는 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사랑에 목숨을 걸다
남자에 관한 한 오프라에게도 절망적인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그녀는 연인과 헤어지고 그 상처로 자살을 생각하면서 유서를 쓸 만큼 절망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4년 동안이나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국은 헤어졌다. 오프라는 그 남자가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더 그에게 매달렸다. 그가 가버리면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 마약을 하게 되면 그 남자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그와 함께 코카인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으며,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너는 일단 사랑에 빠지면 목숨을 걸 거다”라고 했다는 부친의 말은 맞았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그러나 오프라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누구나 한 번쯤 밟고 지나가는 현관 앞에 놓인 매트에 불과했죠.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절대로 다시는 나를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겠노라고….”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상형인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있다. 스테드먼 그레엄이라는 이 남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돕기 좋아하는 친절한 남자라고 한다. 그는 오프라에게 정서적인 안정감, 즉 사랑에 빠진 이들이 그 사랑에서 구하고자 하는 안정감을 주었다. 아직 결혼을 하고 있지 않은 데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는 것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진정한 결혼이란 자신의 에고를 희생하는 것이죠.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관계를 위해서 말입니다. 전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어요.
오프라에게 있어서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녀가 결혼에 이르지 않고 있는 것은, 아직 일을 더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연인인 스테드먼을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그녀를 더욱 활기차게 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오프라는 세 살 때부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책은 그녀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와도 같았다. 책에 대한 오프라의 애정은 각별하다. 책은 그녀에게 많은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미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녀에게 책은 바로 희망과 통하는 문이었으며, 책을 읽는 것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오프라가 자신의 쇼에 북클럽 코너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북클럽 코너를 신설했을 때, 방송계에서는 쓸데없이 위험 부담을 자초하는 일이라며 심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처음에는 쇼의 시청률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곧 회복되었으며, 1996년에는 경쟁 프로그램보다 무려 두 배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북클럽에서 선정하면 어떤 책이든 50만 부에서 70만 부 정도가 더 팔린다.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 오프라의 역할은 막대했으며, 20년 동안 단 한 권도 안 읽었던 사람까지 책을 읽게 만들었다.
시카고의 한 여학교에서 강연할 때,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여러분도 장차 캐딜락을 몰며 돈을 막 쓰는 멋진 삶을 누리고 싶은가요? 그러면 열심히 공부하세요. 잘 읽지도 셈할 줄도 모른다면, 그리고 미혼의 처지에 임신을 한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면 결코 캐딜락을 갖지 못할 거예요. 이건 장담해요.”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은, 그녀가 단순한 토크쇼 사회자에 머무르지 않고 ‘정신적 스승’의 반열에까지 올랐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최고의 삶을 살자(Live Your Best Life)’라는 주제로 캠페인 투어를 가지기도 했으며, 정신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기를 열망한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하고 있다.
* 참고 도서 :
신화가 돈 여자 오프라 윈프리(자넷 로우 지음, 청년정신 펴냄)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특별한 지혜(빌 애들러 엮음, 집사재 펴냄)
꿈을 경영하는 CEO(H.W.브랜즈 지음, 지식넷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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