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포웰스


전쟁은 생명과 자원의 끔찍한 낭비이며,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전쟁에 반대한다. 다른 한편,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사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많은 논평가들은 그 대답을 심리적인 요인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지 부시 2세는 자신의 부친이 걸프전에서 시작했으나 종결시키지 못한 일을 완수하는 게 자기의 임무라고 여긴다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들은 부시 2세는 백악관에서의 제2기를 보장해줄 단기적이고, 확실한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나는 미국 대통령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부시가 전쟁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은 그의 심리와는 거의 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미국의 경제시스템과 크게 관계되어 있다. 이 시스템―미국식 자본주의―은 무엇보다도 부시네 ‘달러왕조’와 같은 극단적으로 부유한 미국인들을 더욱더 부자로 만들기 위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이든 열전이든 전쟁이 없다면, 이 시스템은 미국의 저 강력한 힘을 가진 부자들이 자신들의 생득적 권리라고 여기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윤을 그들에게 더이상 가져다 줄 수 없다.

미국 자본주의의 커다란 강점, 즉 극단적으로 높은 생산성은 또한 커다란 약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국제 경제시스템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많은 요인들이 엄청난 생산성 증가를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면, 18세기 초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생산의 기계화 같은 것이 그렇다.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가들은 일관공정(assembly line)과 같은 새로운 테크닉에 의한 자동화로써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일관공정은 헨리 포드에 의해 도입된 기술혁신이었으므로, 그러한 기술들은 향후 뭉뚱그려서 ‘포드주의’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대기업들의 생산성은 눈부실 정도로 상승하였다. 예를 들어, 이미 1920년대에 미시간의 자동차 공장 일관공정 라인에서는 셀 수 없는 차들이 매일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자동차를 사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대부분의 미국인은 그 당시 그런 구매행위를 위한 충분한 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산업제품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시장에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갈수록 증가하는 공급과 뒤처지는 수요 사이의 만성적인 부조화 현상의 출현이었다. 그래서 일어난 게 일반적으로 대공황이라고 알려진 경제위기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과잉생산의 위기였다. 제품창고들은 팔지 못한 상품들로 터져나가고 있었고, 공장에는 해고된 노동자가 흘러넘치고, 실업이 폭발하였다. 그러자, 미국인들의 구매력은 한층더 위축되고, 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에서 대공황이 종결된 것은 오직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이었으며, 또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종결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을 아무리 찬미하는 사람일지라도 엄청나게 선전된 그의 뉴딜정책이 실제로 거의 또는 아무런 구제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되고, 1942년 이전에는 미국이 능동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던 전쟁이지만, 그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의 기업이 무제한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게 되면서 경제적 수요가 엄청나게 뛰어올랐던 것이다.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 국가는 1,850억달러 이상을 그러한 물자에 소비하게 되고, GNP 중 군사용 소비가 점하는 비율은 1939년에서 1945년까지 1.5%에서 거의 40%로 상승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은 엄청난 양의 장비를 영국과 심지어 소련에까지, 렌드-리즈(1941년에 통과된 미국의 연합국에 대한 무기대여법―역주)를 통하여 공급하였다.

(한편, 독일에서는, 포드, GM, ITT 같은 미국 대기업의 자회사들에 의해서 온갖 종류의 비행기와 탱크와 그밖의 전쟁도구들이 나치를 위해, 진주만 이후에도, 생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얘기이다.) 그리하여, 대공황의 핵심 문제―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균형―는 거대한 군수품의 주문이라는 수단으로 국가가 경제적 수요를 대규모로 만들어냄으로써 해소된 것이다.

보통의 미국인의 처지에서 본다면, 워싱턴의 군비지출 잔치는 사실상 완전고용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높은 임금을 가져다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대공황으로 인한 광범한 빈곤이 종식되고, 대다수 미국인들은 유례가 없는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전시(戰時) 경제 붐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 나라의 사업가들과 기업들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이윤을 실현하였다. 역사가 스튜어트 브랜디즈에 의하면, 1942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의 가장 큰 2,000개 기업의 순이익은 1936-1939년 동안의 그것보다 40% 더 높은 것이었다. 그러한 엄청난 이익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가 수십억달러의 군수물자를 주문하고, 가격통제에 실패하고, 회사들이 남긴 이익에 과세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러한 관대함은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에 혜택을 주었지만, 특히 ‘대기업’으로 알려진 거대 엘리트회사들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전쟁 동안 총 60개 미만의 기업이 수익이 큰 군사 및 그밖의 국가에 의한 발주의 75%를 획득했다. 거대기업―포드, IBM, 기타―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군사비라는 ‘풍요로운’ 사료통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전쟁 돼지들’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예를 들어, IBM은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전쟁 관련 주문 덕분에 연간 4,600만달러에서 1억4천만달러로 판매를 신장시켰고, 그에 따라 이윤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미국의 대기업은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 포드주의적 전문성을 최대한 이용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미국 국가의 전시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보다 많은 장비와 물자들이 필요했고,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미국은 새로운 공장과 심지어 보다 효율적인 기술을 필요로 했다. 그 결과로, 이 나라의 모든 생산설비의 총가치는 1939년에서 1945년 사이에 400억달러에서 660억달러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새로운 투자를 떠맡은 것은 사적 부문이 아니었다. 30년대 동안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불유쾌한 경험 때문에 미국의 사업가들은 이러한 투자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가가 2,000개 이상의 국방관련 프로젝트에서 170억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이 일을 수행했다. 사기업들은 명목상의 임대료만을 지불하고,

이 새로운 공장들을 빌려서 생산을 하고, 그 생산물을 국가에 판매함으로써 돈을 벌도록 허용되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 워싱턴이 이 투자된 것들을 민간기업에 불하하기로 결정했을 때, 미국의 대기업들은 그것을 실제 가격의 절반, 많은 경우에 3분의 1값으로 사들였다.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전쟁비용을 감당했는가? 어떻게 워싱턴은 GM이나 ITT, 혹은 그밖의 다른 군수품 공급 기업들이 보내온 엄청난 대금지불 청구서에 응할 수 있었는가? 그 대답은, 부분적으로는 과세라는 수단으로―약 45%―그러나 더 많게는 차금(借金)을 통해서―대략 55%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적 부채는 극적으로 증가하여, 1939년의 30억달러에서 1945년에는 450억달러로 늘어났다.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부채는 전쟁 동안에 미국의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엄청난 이윤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축소되거나 청산되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언급했듯이, 미국 국가는 미국 기업이 획득한 횡재에 의미있게 과세하지 못하고, 공적 부채를 버섯구름처럼 부풀리게 허용하였다. 그리고 그 부채와 이자는 일반세입금, 즉 직접 및 간접세에 의해 국가가 거두어들이는 소득으로 해결하였다.

특히 1942년에 도입된 역진적인 ‘국세법’ 때문에, 이들 세금은 점점 갈수록 미국의 부호들과 기업, 기업주, 주요 주주들, 혹은 최고 경영자들이 아니라 노동자와 저소득층 미국인들에 의해 납부되었다. “전쟁 비용부담은 사회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어깨 위에 굳세게 지워졌다”고 미국의 역사가 숀 데니스 캐시먼은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은 전쟁에 마음을 빼앗기고, 완전고용과 높은 임금에 눈이 멀어, 이러한 사실을 주목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풍요로운 미국인들은 전쟁이 자신들을 위해서, 또 그들의 기업을 위해서 돈을 벌어다주는 멋진 방식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더욱이, 워싱턴이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빌린 곳은 바로 그들 자신 ―사업가, 은행가, 보험회사, 그리고 그밖의 큰 투자가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재계는 저 유명한 전쟁채권을 사들여 생겨난 이익을 챙김으로써 다시 한번 전쟁에서 이득을 취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적어도, 미국의 부자들과 권력층은 이른바 자유기업의 큰 옹호자이며, 그리고 그들은 경제에 대한 여하한 국가의 개입에도 반대한다. 그러나, 전쟁 동안, 그들은 미국 국가가 경제를 관리하고 전비를 충당하는 방식에 대하여 전혀 아무런 반대도 제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유기업 원칙에 대한 이 대규모의 국가 주도의 위반이 없었다면, 그들의 집단적인 부는 그 전쟁 동안만큼 증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거대기업의 부유한 소유자들과 최고 경영자들은 매우 중요한 한가지 교훈을 얻었다. 즉, 전쟁 동안에는 돈, 그것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힘든 노력―자본주의 미국경제의 핵심적 활동―은 평화시보다는 전시에 훨씬더 효율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는 우호적인 국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배운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부유층과 권력층은 이러한 사실을 줄곧 예리하게 의식해왔다. 그것은 백악관에 있는 그들의 ‘사람’―자신의 부유한 가족, 친구, 재계의 지인들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 백악관으로 낙하선을 타고 떨어진 ‘돈의 왕조’의 후계자―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봄, 환상적인 돈벌이의 원천인 전쟁이 곧 종식되리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전문가들 가운데, 많은 예언가들은 미국의 정치, 재계의 지도자들에게 매우 불유쾌한 시나리오를 그려보여 주었다. 전쟁 동안 워싱턴의 군비 구매로 인해―다른 어떠한 이유도 아닌―경제적 수요가 회복되었고, 따라서 완전고용뿐만 아니라 미증유의 이윤획득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평화의 도래와 더불어, 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균형이라는 악령이 미국을 다시 사로잡을 위험이 있고,

그로 인한 위기는 ‘추한’ 30년대의 대공황보다도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았듯이, 전쟁 동안 나라의 생산능력은 현저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전쟁참가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민간 일자리를 찾으려 할 바로 그 순간에 해고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따라서 그로 인한 실업과 구매력의 감퇴는 수요부족을 악화시킬 것이다…

미국의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다가오는 실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엄청난 이익을 주던 황금시대가 종결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재앙은 막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국가의 군사비 지출이 높은 이윤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독일과 일본이 패퇴해버린 이제, 이윤창출이 지속되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적들과 새로운 전쟁위협이 시급히 필요하였다. 소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전쟁 동안에 소련은 연합군을 위하여 스탈린그라드에서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해주었던 특히 쓸모있는 파트너였지만, 동시에 그 파트너의 공산주의 사상과 실천 때문에 소련은 미합중국의 새로운 악당으로 쉽사리 변신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역사가들은 이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피해가 컸던 나라였던 소련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훨씬 우월한 미국에 대해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미국정부 자신이 소련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미국의 역사가들은 또한 소련정부가 전후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기를 매우 열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실로 소련정부는 원자탄을 독점한 덕분에 자신감에 넘쳐흐르고 있었던 초강대국 미국과의 갈등으로 얻는 것은 없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미국은―즉 최부유층의 미국은―전후에도 미국경제의 수레바퀴를 최고 속도로 굴리는 데 필요한 거대한 ‘국방’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긴급하게 새로운 적을 필요로 했다.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필요한―또는 차라리 바라마지 않는―이윤폭을 유지했고 심지어는 이윤폭을 늘리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냉전은 1945년 소련이 아닌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의해 부추겨진 것이다. (‘군산복합체’라는 표현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전쟁 경제’로부터 이윤을 만들어낼 줄 아는 최고의 개인과 기업을 그렇게 불렀던 데에서 연유한다.)

이런 면에서, 냉전은 이들이 예상할 수 있었던 어떤 기대치보다도 능가했다. 점점더 많은 전쟁 장비를 생산해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사실상 많은 더러운 독재정권을 포함했던 이른바 ‘자유세계’ 내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장비로 철저히 무장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자체의 군대도 보다 크고 훌륭하며 보다 정교한 탱크, 비행기, 로켓, 그리고 바로 그 생화학 무기와 다른 대량살상 전쟁 도구들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국방성은 이런 상품들에 대해 이렇다 할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언제나 거대한 액수의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방성으로부터의 수주기관은 이번에도 역시 기본적으로 대기업들이었다. 냉전은 전례없는 이윤을 창출했고 이는 대기업의 소유주, 최고 경영자,

그리고/혹은 대주주들인 극단적으로 부유한 개인들의 금고로 흘러들어갔다. (미국에서 보통 군수품 생산과 연관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일반적으로 새로 은퇴하는 국방성 장성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다거나 이런 기업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업가들이 고정적으로 국방성 고위관리,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임명된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인가?)

역시 냉전 기간 중 미국은 채권발행을 통해서 치솟는 군수품 지출비용을 충당했는데, 이 때문에 국가부채가 현기증날 만큼 늘어났다. 1945년 국가부채는 “겨우” 2,580억달러밖에는 안됐지만 냉전이 종식된 1990년에는 무려 3조2천억달러에 이르렀다. 게다가 통화팽창률을 감안해보면 이것은 정말 놀랄 만한 증가이며, 이 때문에 미국은 세계 최대의 부채국가가 되었다.

(부수적으로 덧붙이자면, 2002년 7월, 미국의 국가부채는 6조1천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정부는 군비증강이라는 광란의 잔치에 관련된 기업들이 달성한 엄청난 이윤에 대해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냉전 비용을 충당할 수도 있었고 또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문도 제기된 바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을 통해 경기의 고삐를 다시 조였던 1945년, 기업에 의한 납세율은 전체 세금납부 중 50%였다. 그러나 냉전이 진행되는 동안 기업의 몫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약 1%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대체로 정부가 해도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기업들이 세금부담을 낮추기가 쉬워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들이 다국적기업이 되어, 어떤 미국인 저자가 국제전신전화 회사(ITT)와 관련하여 기술하였듯이, “모든 곳이 다 자신의 국가이면서 어느 곳도 자신의 국가가 아니므로” 어느 곳에서든 의미있는 세금을 피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이 최대의 이익을 내고 챙기고 있는 미국 내에서 모든 미국계 다국적기업 중 37%의 기업들, 그리고 모든 외국계 다국적기업 중 70% 이상의 기업들이 1991년 단 1달러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다국적기업들도 세금으로 자신들의 이익의 1% 미만의 돈을 사회에 환원시켰다.

치솟는 냉전 비용을 감당한 사람들은 냉전으로 인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들은 우연히도 국채에 지불되는 최고 배당금을 계속 타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이 아니라 미국의 노동자들과 중간층들이다. 중간층과 하층에 속하는 미국인들은 냉전 때문에 흥청망청 생기는 이윤으로부터 단 한푼의 이익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이들은 대부분 냉전의 갈등 때문에 생겨난 거대한 국가 부채를 떠맡았다. 그러므로 정말로 냉전의 비용을 떠맡은 것도 이들이고, 자신들의 세금으로 불균형한 공적 부채 부담을 지불한 것도 이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냉전이 발생시킨 이익은 극단적으로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유리하게 ‘사유화’된 반면에, 그 비용은 모든 다른 미국인들에게 해를 입히는 방식으로 가혹하게 ‘사회화’되었다. 냉전 기간 중 미국경제는 거대한 사기극으로 쇠퇴해버렸다. 다시 말해, 미국경제는 부자들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계급뿐 아니라 중간층계급에게도 불리하도록―그런데도 중간층 계급은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다는 신화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국가의 부를 사악한 방식으로 재분배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부를 축적한 반면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다른 미국인들이 달성한 번영은 점차 침식돼 들어갔고,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낮아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은 국가의 전체 부(富)가 특권이 적은 계층의 사람들이 유리하도록 재분배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냉전 기간 중 부유한 미국인들은 더욱 부자가 된 반면에 부자가 아닌 사람들―분명히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은 더욱 가난해졌다. 냉전이 소멸된 1989년 빈곤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에 따르면, 물론 이것은 명백히 빈곤의 문제를 줄여서 평가한 것이지만, 미국인 전체에서 13% 이상이―대략 3,100만명 정도―가난했다. 거꾸로 말하면, 오늘날 미국인 전체에서 1%가 무려 미국 전체 부의 34%를 소유하고 있다. 어떤 ‘서방’ 국가에서도 부가 이보다 더 불균형하게 분배되어 있는 나라는 없다.

아주 적은 비율의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은 이런 식의 발전이 극단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들은 특권이 적은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더욱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의 이미 거대한 자산을 더욱 증가시킨다는 생각을 사랑했다. 이들은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를 원했고, 가능하기만 하다면 이 숭고한 계획을 훨씬더 효율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모든 좋은 일은 끝나기 마련이다. 1989-1990년에 풍요로운 냉전이 지나가버렸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자신들이 전쟁 비용을 감당해왔다는 것을 알았던 보통의 미국인들은 ‘평화 배당금’을 기대했다. 이들은 국가가 그동안 군비에 지출했던 돈이 이제는 자신들을 위한 이익 ―예를 들어, 대부분의 유럽인들과 비교할 때, 미국인들이 결코 향유해보지 못했던 국민건강보험과 다른 사회적 혜택의 형태로 나타나는 이익 ―을 창출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92년 빌 클린턴은 실제로 국민건강계획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 했지만, 물론 이 계획은 결코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 당시 ‘평화 배당금’은 미국의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결코 이득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국가에 의한 사회복지의 공급은 기업가와 기업에게 이윤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군비에 의해 창출되는 어마어마한 이윤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군비지출이 없어져버리는 위협적인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도 시급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국, 아니 미국이라는 기업체는 유용하게 써먹던 소련이라는 적을 잃었고, 높은 수준의 국방비 지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급하게 다른 새로운 적과 새로운 위협을 꾸며낼 필요가 있었다. 1990년에 사담 후세인이 마치 연극에 나오는 임시방편의 신(deus ex machina)처럼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 보잘것없는 독재자는 예전에는 미국인들에게 좋은 친구로서 생각되었고, 그렇게 대접받았으며, 이란과의 더러운 전쟁을 벌일 수 있도록 완전무장되어 있었다. 사담 후세인에게 악명높은 대량살상무기를 처음 공급해준 것은 바로 미국과 독일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었다. 그런데 필사적으로 또다른 새로운 적이 필요하자 워싱턴은 난데없이 후세인을 끔찍하게 위험한 ‘제2의 히틀러’로 지목하였다.

그래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협상 해결안이 분명히 전혀 불가능해보이지 않았지만, 워싱턴은 다급하게 후세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필요가 있었다. 조지 부시 1세는 미국에게 유용한 이 새로운 복수대상을 발견하여, 걸프전을 일으킨 배역 책임자였다. 전쟁 동안 바그다드는 폭탄세례를 받았고, 후세인의 불운한 징집병들은 사막에서 학살되었다.

이라크의 수도로 가는 길은 활짝 열렸는데, 갑자기 해병대의 의기양양한 바그다드 입성계획이 폐기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일으킬지도 모를 위협을 다시 상기시킴으로써 미국이 계속해서 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가 권력을 유지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결국 급작스러운 소련의 몰락은 한 국가가 유용한 적을 잃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잘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쟁의 신은 미국경제의 수호성인으로,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으로 작동되는 이 경제를 조작하여 비용은 감수하지 않고 막대한 이익만을 거둬들이는 기업 마피아의 대부로 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평화 배당금’이라는 멸시받던 프로젝트는 환영받지 못한 채 묻혀버릴 수 있었고, 군비지출 비용은 경제의 활력소이자 충분히 높은 이윤의 원천이 되었다. 이 비용은 1990년대 동안에 가차없이 증가하였다. 예를 들면, 1996년에는 비용이 2,650억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과거 여러 전쟁의 재정지원에 쓴 차금(借金) 이자 같은 비공식적, 혹은 간접 군비지출 비용까지 계산하면 1996년의 총액만도 대략 4,940억달러에 이른다.

하루에 13억달러의 지출을 한 셈이다! 그러나 워싱턴은 상당히 누그러진 사담 후세인을 무시무시한 존재로 부각시키면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적과 새로운 위협을 찾아보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소말리아가 일시적으로 전망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적당한 때가 되자 미국은 발칸반도의 세르비아 지도자인 밀로세비치를 또다른 ‘제2의 히틀러’로 지목하였다. 그래서 90년대 상당기간 동안 구(舊) 유고연방의 갈등이 군사개입과 대규모의 폭격작전, 그리고 더 많은 신무기 구입에 필요한 구실을 미국에게 제공하였다.

‘전쟁경제’는 이렇게 해서 걸프전 이후에도 계속해서 모든 실린더를 가동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 ‘평화 배당금’ 요구와 같은 대중들의 압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런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방송국 등이 모두 대기업의 소유이거나 아니면 대기업에 광고수입을 의존하다보니 미디어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

앞서 밝혔듯이, 미국은 협력해야 하며, 따라서 워싱턴은 기댈 수 있는 남녀 인물들, 가령 대기업 고위급 출신의 개인들과 이미 부자인 미국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데 필요한 높은 이익을 제공하고자 군비지출 비용의 수단을 이용하는 데 전적으로 헌신할 개인들이 가급적 필요하다. 이 점에서 빌 클린턴은 기대에 못 미쳤고, 미국이라는 기업은 그의 원죄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클린턴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형식의 ‘평화 배당금’을 미국인들에게 약속함으로써 대통령에 선출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 선거에서 클린턴의 복사판인 앨 고어가 아니라 군국주의 강경파들로 구성된 한 팀이 백악관으로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체니, 럼스펠드, 라이스, 그리고 물론 걸프전에서 어떻게 전쟁이 수행되어야 되는지를 몸소 보여준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조지 부시와 같이 사실상 모두 예외없이 부유한 ‘기업미국’의 대변자들이었다.

이 부시 내각에는 이른바 평화애호자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또다른 죽음의 사자인 콜린 파월과 같은 인물이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국방성도 있다. 람보가 백악관으로 이동하였고, 그 결과를 보여주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시 2세가 대통령으로 뛰어오른 뒤 한동안은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복수의 대상으로 선포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거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였다. 게다가 수많은 대기업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무역으로 상당한 돈을 벌고 있었다.

군비지출 비용을 충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데 보다 덜 위험하면서 보다 더 확실한 새로운 위협이 필요하였다. 이런 목적을 위해 부시나 럼스펠드, 그리고 대기업이 2001년 9·11 사태보다 더 편리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이 저 끔찍한 공격 준비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그러나 이들은 거기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미국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장시키고, 9·11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에게 폭탄세례를 퍼붓고,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전쟁을 벌이고, 그래서 선례 없는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국방성과 사업을 벌이는 대기업을 위해 이 기회를 충분히 이용하였다.

부시는 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테러리즘이라고 하는, 누구도 실제로 상대해서 전쟁을 벌일 수 없고, 따라서 최종적인 승리도 결코 얻을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구호는 이제부터 백악관이 테러리스트라고 정한 그 누구와도 영구히,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전쟁을 벌일 권리가 워싱턴에 있음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군비지출 증가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냉전종식이 가져온 문제는 분명히 해결되었다. 통계가 스스로 이를 입증한다. 1996년의 2,650억달러의 군비지출 비용도 이미 천문학적인 수치였다.

그러나 2002년 부시 2세 덕분에 국방성은 3,500억달러를 지출하도록 승인받았고, 이어 2003년에는 대통령이 대략 3,900억달러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올해 대략 4,000억달러로 매듭지어질 것이 이제 확실하다. 군비지출이라는 광란의 잔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예를 들면, 가난한 아이들의 무료급식이나 기타 소규모 지원을 취소함으로써 다른 데서는 돈을 아껴야만 한다. 조지 부시가 행복감과 오만한 태도로 거들먹거리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제한된 재능과 지적 능력을 가진 버릇없는 부잣집 아들인 그는 대통령직을 얻는 데 신세를 진 자신의 부유한 가족과 친구들뿐 아니라 ‘기업미국’ 전체의 가장 뻔뻔스러운 기대치도 이미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9·11은 부시에게 어디서든지 자신이 택한 상대는 누구와도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백지위임장을 제공하였다. 이 글에서 분명히 밝히고자 하였듯이, ‘오늘의’ 적으로 누가 지목될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해 부시는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들이 빈 라덴을 은신시키고 있다는 추측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세례를 퍼부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빈 라덴은 유행에서 사라지고 이른바 미국을 위협할 인물로 다시 한번 사담 후세인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왜 부시가 이끄는 미국이 북한이라고 하는,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더 위험한 정권이 아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을 절대적으로 원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다.

두명의 부시와 체니와 라이스―한 유조선이 그의 이름을 따서 라이스로 명명되었다―같은 부시 패거리들과 긴밀히 연계된 미국의 석유 트러스트가 거대한 이라크의 유전(油田)들을 탐내고 있다는 점이 ‘이 특별한 전쟁’을 벌이는 중요한 한가지 이유이다. 이라크 전쟁은 워싱턴의 박자에 맞춰 춤을 추지 않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는 하나의 교훈으로서, 그리고 미국내의 반대를 약화시키고,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의 극우적 프로그램을 미국인들에게 억지로 주입시키는 수단으로서 유용하다.

부와 특권의 미국은 전쟁에 걸려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갈수록 강력한 전쟁이 아니고서는 그것은 더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즉, 바라는 이익을 낼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은 이런 중독과 갈망이 이라크와의 갈등을 통해서 충족되고 있고, 이것은 석유귀족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에 대한 광적 집착이 사담 후세인의 머릿가죽이 탈레반의 터번과 함께 조지 부시의 트로피 진열장에 전시되면 멈출 것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대통령은 벌써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악의 축’이라고 이름붙여진 나라들, 즉 이란, 시리아, 리비아, 소말리아, 북한, 그리고 물론 미국 쪽에서 보면 오랜 눈엣가시인 쿠바가 여기에 들어있다. 21세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조지 부시의 영원한 전쟁의 멋진 신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말해두자. 어떤 전문가들은 전쟁이 실제로는 미국경제에도 나쁘다고 주장한다. 일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이다. 그것은 ‘어떤’ 경제, ‘누구의’ 경제에 대해 말하는가에 달려있다. 대다수 일반 미국인들에게는 이라크전쟁은 명백히 대파국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엄청난 비용을 치르기 때문이다. 이들의 돈과 피로, 모두 가급적이면 남미계나 흑인, 또는 평범한 이들 미국인들이 적의 희생물이 되는 병사들이고, 이미 걸프전에서 드러났듯이,

이들이 오발사고나 발암성 열화우라늄탄과 국방성의 병기고에서 나온 보다 이국적인 무기들을 다루면서 생길 또다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부자나 특권층의 자제들은 집에서 안전하게 머문다. 베트남전쟁 때 젊은 부시 2세가 바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군산복합체와, 부시가(家)와 체니, 라이스, 럼스펠드의 경제를 위해서는,

석유 트러스트와 무기제조상을 위해서는, 또 이런 대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부자 미국인들의 경제를 위해서는 이 전쟁은 다른 일반적인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멋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닥친 죽음과 파괴의 규모만큼이나 많은, 전쟁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제는 전쟁으로 번성한다. 그들의 ‘전쟁경제’는 전쟁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이것이 부시가 끊임없이 미국을 위해 새로운 적을 발견하고, 새로운 위협을 만들어내고,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는 이유이다. 만약 이 세계에 평화가 개화한다면, 부시의 미국경제는 바로 대파국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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