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에세이] 축구장에 등장한 날달걀 '만약 벽돌조각이었다면'
마이데일리 | 기사입력 2007-09-23 14:30 | 최종수정 2007-09-23 16:18 기사원문보기

[마이데일리 = 조건호 기자] 퍽! 오른쪽 뺨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손을 올려 뺨을 만져 보니 얼굴과 머리가 온통 날달걀로 뒤덮여있었다. 순간 내 앞에 있던 다른 한 기자는 피가 흥건한 코를 붙잡고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서는 마치 폭탄처럼 물병과 각종 이물질이 그라운드로 날아들고 있었다. 인터뷰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단의 벤치를 엄폐물로 삼아 대피하려는 순간 이번엔 녹음기를 들고 있는 왼손에 무언가 날아와 터져버렸다. 또 다시 달걀이었다. 옆에서는 인천의 푸카 체력 담당 코치가 머리에 물병을 맞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을 피해 녹음기에 묻은 달걀을 급하게 닦아 낸 뒤 재생 버튼을 눌러 보았다. 날달걀의 비린내가 나는 녹음기의 스피커에서 방금 전 인터뷰한 데얀의 흥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Referee killed Incheon!” (심판이 인천을 죽였다!)

잠시 진정을 하고 있으니 2004년 잉글랜드 포츠머스에서 겪었던 일이 일어났다. 당시 필자는 포츠머스와 사우스햄튼의 지역 라이벌전을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까지 갔지만 벽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와 같은 분위기에 일찌감치 경기장 진입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날 프라튼파크 주변에서는 훌리건들의 난동에 경찰마와 경찰견 수 마리가 부상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심각한 모습이 전개됐다. 양 팀의 팬들은 미리 조각 내온 벽돌을 던지며 경기장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얼마 뒤 지역 신문 The News는 그날 난장판을 벌인 사람들을 축구팬이 아닌 '훌리건'이라고 칭했고, 햄프셔주 경찰 당국은 난동의 주동자와 심한 폭력을 휘두른 이들에게 구속과 함께 장기간의 경기장 출입 금지를 내렸다. 말 그대로 '훌리건'들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정작 축구 경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소동 혹은 싸움 자체를 미리 계획하고 실행했던 축구장 주변의 '건달'들일 뿐이다.

물론 22일 인천 문학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팬들은 축구 경기를 보고 나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었다. 대부분은 홈 팀의 패배를 너무도 안타까워하는 열혈 축구팬들이다. 이러한 팬들이 있을 때 축구장의 분위기는 뜨거워질 수 있으며, 선수들도 지역 팬들과의 일체감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뛰게 된다.

그러나 심판진을 향해 날아든 물건에 날달걀이 포함돼있다는 것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였다. 축구장의 매점에서는 삶은 달걀은 팔아도 날달걀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던지기 위해 미리 준비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달걀은 흉기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로 어떤 물건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잠재된 '훌리거니즘'을 보여주는 증거다. 시간이 흘러 이들이 준비해오는 물건이 달걀이 아닌 조각난 벽돌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팬들이 마음을 함께 하면서 축구에 대해 울고 웃는 것은 축구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을 대비(?)해 던질 물건을 준비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폭력적인 발상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는 위험한 아이디어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기 위해 출입구에 모인 흥분한 인천 팬들. 사진=조건호 기자]

(조건호 기자 pompey14@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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