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8장, 도인은 물과 같다

muhanjinin 2007.08.08 09:52

조회 1,726

[原文]

上善若水 水善利萬物 而不爭(而有靜)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리만물 이부쟁 (이유정)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居善地 ;

거선지

心善淵 與善仁(予善天)

심선연 여선인 (여선천)

言善信 正善治

언선신 정선치

事善能 動善時

사선능 동선시

夫唯不爭 故無尤

부유부쟁 고무우

[解 釋]

가장 순수한 선은 물과 같소.

물의 선한 작용은 만물을 이롭게하면서도 다툼이 없는 것이오.

물은 뭇 사물들이싫어하는낮은 곳에서 머물러 있소.

그러므로 도인에 거의가깝다고 말 할 수 있소이다.

도인은 속세 땅에 머물러 살면서도 ,

깊고 고요한 마음을지니고 있어서

세상에 저절로 어진 사랑이베풀어 지는것이오.

( 말없이 하늘의 빛을저절로 베푸는 것이오)

도인은 성실하고 믿음성 있는 말만 하므로

나라의다스림이 저절로 옳바르게세워지는 것이오.

농사 일이저절로 능히 잘될 수가 있는것은

도인이때를 잘맞추어움직이기 때문이오.

이처럼 성인은 오로지 부딪쳐다투지 않으므로

그래서아무런 허물도 없는 것이외다.

[解說]

이 8장은 道의 작용을 물의 성질에비유해서 설명하고,도인이 세속에 내려와서 살게 되는 경우에

몇가지도인의 無爲行과 그 결과에 대해서 예시해 보여 준 내용입니다.

결론은 현상적 경계들과 다툼없이 人依的인 마음을 쓰지 말고"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움을 잃어 버리지 말라는내용입니다.

제6장에서는 옹달샘의 근원부터 샘구멍, 샘구멍에서 나오는 물을 비유해서 도의 본체, 의식의 근원, 의식의 발생까지를 도의 구조와 작용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죠.

이 8장은 그 물이 세상의 온갖것에 작용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수용적인 것처럼, 세상에 내려와살아가는 도인의자세도 항상 물과 같이 순수하고 수동적이며, 온갖 것을 수용하는 無爲的인 行으로 세상에 저절로 도움을 준다는 내용으로 아주 단순하면서 명료한 가르침입니다.

이제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上善若水

善; 착하다,좋다,훌륭하다.若 ; 같다, 이와같다,만약,

여기서 善이란 道의 1차적 작용인 순수의식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도인으로써 세상에 나와 머므르는 도인의 삶, 즉 도인의 행위를 말합니다.

순수의식상태란 道의 본체와 같은 일원적인 상태이지만,

의식의 기본형태로서 주객 이원적인 상태는 아닙니다.

이 기본 순수의식을 보통 존재의식이라고도 하는데,

도의 본체와 가장 근접해 있으며,

이기본의식이 육체의 여러감각기관을 통해서 작용하여

주,객의 상대적인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 순수의식은 우리 육체와 마음, 현상세계의 삼라만상의 주시자라고 하는 것이죠.

道의 本體를 육체몸통으로 비유해 본다면, 이<善>이란 道의 作用이므로, <道의 다리> 또는< 神의 두발>이라고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이善은 上,中,下,라는 계급 단계는 원칙적으로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전체 의식이 있을 뿐입니다.

마음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은 그저 보는자와 보이는 대상으로 나눠진 이원적인 상태를 말하는데, 도인은 이러한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그런 이원적인 대상세계에서 떠나 있읍니다.

도인은 오직 내면의 고요함만이 있으며, 나타난 현상세계전체는 오직 전체가 일체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 도인의 일체적인 의식에서 나오는 行을 여기서 善이라고 이르는 것이죠.

반대로 나타난 현상세계를 各個로 구분짓는 이원적인 상대성 분별마음과 행위는 모두가 惡이라고 도인들은 규정합니다.

이善은 보통이원적인 善과 惡,이라는 상대적인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기서 왜 善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물 자체가 이 나타난 현상적 사물로써, 현상계안에서 작용하는 사물들 중에서 가장

수동적인 작용으로 도의 기본작용을 적절이 비유할 수가 있기 때문에,사람들에게 도의 이상적인 작용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그렇게 상선약수라고 비유한 것이죠.

물자체는 道도 아니고, 단순히 하나의 현상적 사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의 본체는 사람의 의식 내면을 가리키는 것이고, 나타난 현상계는 도의 작용이긴 하지만 경계가 지워진 전체가 순수작용이지, 물이라는 어떤 일개 특정 사물이 순수작용일 수는 없죠.

직역을 해 보면-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라고 번역됩니다만,

다시 단어를 다듬어서 만들면,

<가장 순수한 善(道의 作用)은 물과 같다>

이렇게 번역이 될 수가 있겠읍니다.

다른 번역서들을 보겠읍니다.

<최선의 선은 언제나 물과 같다>

<가장 선한 선은 물과 같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선중의 상은 물의 그것과 같다>

<상선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 而不爭(而有靜)

利; 이롭다,이롭게 하다, 萬物 ; 온갖 생물, 不爭; 다투지 않는다.

有靜 ; 고요함이 있다.而 ; 말잊다,연결조사

여기서 (而有靜)은 약400년정도 앞서 있던 백서본의 다른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왕필본의 而不爭은 백서본의 而有靜으로 되 있던 것이후대에 개조된 것이죠.

내용적으로는 백서본의 而有靜,- 고요하다-,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직역을 해 보면,

-水善은 만물을 이롭게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고요히 있다)-

다시 말을 가다듬어 정리 해 보면,

왕필본-물의 선한 작용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백서본- 물의 선한 작용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고요히 있다.

그래서 왕필본이나 백서본이나 기본 뜻은 거의 비슷합니다만, 이 글의 맨 마지막 결구에 '다투지 말라'는 결론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후대에 이렇게 왕필본이 개작된 것 같습니다.

< 물의 선한 작용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다>

로 번역되겠읍니다.

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을 생장시키는데 필수원소이죠. 모든 생명체들은 물을 기본으로 그 육체가 구성되어 있고, 거의 90%이상이 물로 형성되어 있죠. 애당초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체도 물에서 부터 나왔다고 하죠. 따라서 물은 생명 그자체입니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당장 물이 마른다면 그즉시 전멸하겠죠. 이렇게 물은 만물의 필수요소이면서 모든 만물에 생명을 공급합니다. 그러면서도 물은 어떤 원소와도 맞부디치지 않고 수용하고 화합합니다. 물은 자신이 무엇을 한다는 의식이없죠. 그러면서도 모든 일을 말없이 수행합니다. 옹달샘에서 흘러서 수많은 돌들의 장애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흘로 내립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낮은 곳에 머무르는 것이죠.

그래서 물이 가장 순수하면서도 맞부디쳐서 다투지 않고저절로 흐르면서도 머물때는 아주 고요하다고 하여 도의 작용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이구절의 핵심은 물이 말없이 만물을 도와주며, 수동적이고, 수용적이라는 설명입니다.

다른 번역서들을 보겠습니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지만 그 공을 다투지 않고>

<물의 선은 다투지 않으면서도 이롭게 하고>

<물은 만물을 진정 이롭게 하나 다투지 않고>

대부분의 번역서들이 비슷합니다.

處衆(人)之所惡

處; 곳,살다 ,있다,머무르다. 衆; 무리,많다. 之; 가다,쓰다,의,이,所 : ~바,~것,처소

惡; 악하다,더럽다,추하다,미워하다.

(人)자는 왕필본에서 삽입된 것이고, 그 이전의 백서본에는 없는 글자입니다.

여기서 물이 주어인데, 衆人이라 하면 뭇사람을 말하는데, 물 자체와는 人과는 관계가 없죠.

이문장자체는 물의 순수한 작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人)자는 잘못 삽입된 것이라고 판단되어 번역에서 제외했읍니다.

所惡의 의미는 所가 ~것,~곳,이라는 뜻으로 -싫어하는 것-이 됩니다. 즉, 영어의 to-,나 ~ing또는 관계대명사와 비슷한 것이所이기 때문에, 所惡은-싫어하는 곳-이라고 번역이 되죠.

所는 惡에 붙어서 "싫어하는 것, 또는 곳"이지, 所가 惡과 별개로 떨어진 "장소"라는 의미의 단어는아닙니다.

따라서 이 所를 단독 명사로써 여기면 해석이 완전히 반대로 됩니다.

所를"별도의 장소"로 취급하면,

-뭇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머무는 것을 물은 싫어한다.-로 번역이 되어, 그렇게 번역이 되면 내용이 요상해져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또 다시 머리를 짜내서 적당한 해설과 핑계를 덧붙혀야 됩니다.

어쩌다 글자 한자를 잘못짚으면 완전히 다른 길로 빠지게 되죠.

직역을 해보면,

- 뭇사물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이렇게 번역이 됩니다만,

다시 언어를 가다듬으면

<물은 뭇사물이 싫어하는 (낮은)곳에서 머문다>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는 의미죠.

말하자면 나라는 "에고"가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며,다른 사물들이 있는 곳에서 더 밑바닥에 머문다,라는 의미죠.

신은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통상적으로 말 들을 하지만, 자신이 신의식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마치 물이 항상 낮은 곳으로만 흘러 가고, 낮은 곳에서만 고요하게 머물수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감으로써,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것이죠.(下其身 身上)

다른 번역서들을 보겠읍니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잘 머문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뭇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머물기를 싫어하는 때문이다>

<모두 다 싫어하는 곳에 거하다>

故幾於道

故; 그러므로,고로,옛,幾 ; 몇, 얼마,거의,가깝다. 於;어조사,기대다,탄식하다.

번역하면

<그러므로 도(인)과 거의 가깝다>

위의 문장과 같이 물은 뭇생물들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고요하며, 낮은 곳에 머무는 수동성 때문에 도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도와 비슷하다는 것은 도인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이 현상계안에서 비유적인 측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이지,실제로 도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은 어디까지나 이원성의 현상계 안에서 나타난 사물의 작용일 뿐이지,실재인 도는 대상이 없는 일체이기 때문에 물이 도일 수는 없는 것이죠.

사람들에게 도를 설명해 줄때에 물의 작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지, 물은 절대 도와 같지 않읍니다.

위의 문장을 정리해 보자면,

1. 물은 모든 것에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고요하다.

2. 물은 남들이 싫어하는 가장 천한 곳, 즉 낮은 곳에 머문다.

따라서 도의 작용도,

1. 도인은 삼라만상을 이롭게 하지만, 부딪치며 다투지 않는다. 고요하고 깊은 마음이다.

2. 도인은 항상 의식 넘어 내면 속에 머무르고, 모든 현상계를 수용한다.그리고 수동적이다.

이렇게 정리해 볼 수가 있겠읍니다.

이것은 본문내용과는 좀 방향이 다른 이야기지만, 제가 매일 아침 6시정도에 한강변을 산책하는데, 몇칠전에 강변 어디선가 목탁 두드리며 염불하는 소리가 나서, 주위를 두리번 거려 보니, 어떤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강변에서 강물을 향해서 기도를 올리며 목탁을 두드리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아침 새벽에 간혹 여자분들 두세명이 강물에다 수없이 절을 하며 무언가를 비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물은 우리인간에게 고대부터 神적인 면이 있는 것이죠.

사실 인간의 원초잠재의식 속에는 물이 신성(神性)으로서 잠재해 있습니다. 꿈 속에서 물을 본다던가, 물에 관련된 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잠재의식이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죠.

사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는 90%이상이 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며, 생명자체가 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인간 존재이래 자연현상 중에서 물은 신과 동등한 현상적 존재죠.

그래서 강물에 기도를 하고, 물에다 염원을 빕니다.

그러나 물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의식에 나타난 자연 현상적 일부 사물의 움직임이죠.

물을 물이라고 알고 있는 그 의식자체의 근원으로 돌아 가야지 진짜 신을 만나는 것이죠.

그래서 물을 보며, 물이라고 알고 있는 그 앎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자기의식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물을 보는 그 앎, 의식 넘어에 물을 만든 그 원초 신이 있는 것이죠.

다른 번역서를 보겠읍니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모든 번역서들이 비슷합니다.

居善地心善淵與善仁(予善天) , 言善信正善治 , 事善能 動善時,

위의 7개 구절은 이8장의 핵심내용이며,

여기서는다른 번역서와 내용이 좀 다르게 해석이 되었읍니다.

다른 번역서들은 이 세자씩 7개의 구문을 각각 따로따로 도의 작용으로 번역을 했읍니다.

즉- 도인이, 물처럼 낮은 곳에 머무르고, 마음을 심연처럼 고요히 하고, 남에게 인자함을 주고, 말을 믿을 수 있게 하며, 다스림을 바르게하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움직임은 때를 잘 맞춘다.-

이렇게 전부 道人이 직접 능동적으로 "한다"라고 해석을 했더군요.

그렇게 해석을 한다면, 도인의 무위적인의미는 어딘가로 전부행방불명 되어버리죠.

도덕경 전체가 이 도인의 무위에 대하여 설명한 것인데,

無爲라는 단어만 나와 있지,

실질적으로 해석상의 무위적인 서술내용은 다른 번역에서는 하나도 보이질 않읍니다.

도덕경 2장에서 분명히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라고, 성인은 무위적으로 일을 하며, 말없는 행동으로 가르침을 펼친다고 했읍니다만,

다른 해석서와 주석서들은 어디가나 하나같이 有爲的인 말만 나오지 "無爲的인 면"은 한군데도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읍니다.

무위적인 것이란 성인은 그저 "말없이 마음만 텅 비워있는 채 가만히 있기만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모든 것은성인의 텅빈 마음에 공진되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무엇인가를 '손수 해야 한다면' 이것은 "有爲"로서 성인의 行이 아닙니다.

적어도 해석과 번역은 이 "無爲"를 기준으로 무위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모든 번역서들은 성인이 무엇인가 계속 손수 해야 되고, 고쳐야 되고, 제어해야 되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죠.

이것은 도덕경의 기본적인 자세를 모른 채, 아니면 무위라는 실재적인 상태를 무시하고 단순히 이원적인 분별의식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주석을했읍니다.

이 7개 구문의 구조에서,

맨처음에 居善地는 그다음의 6개구문 전체의 주어구문입니다.

즉, -도인이 세속세상에 내려와 머물러 살때는-, 그 다음에 나머지6개문장은 서술구문이죠.

다시 말해 도인이 세속세상에 내려와서 머물러 살때에는 이런 저런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기본은 <다투지 않는 것(無爲)>이므로,

도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도인이 이러하므로- 라고,원인이 기술되고,

그 다음에 그 어떤 상황이 저절로 변화되는 결과가 묘사된 것입니다.

세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도인(居善地)은 마음(心), 말(言),행동(動)의 세가지를무위적으로

유지 함으로써, 각각에 관련된 인관관계(仁), 정치(治), 일(事)이저절로 조화있기 잘 진행되므로 다투지도 않고 허물도 없다는 요지입니다.

즉 6개문장 중에는 2개문장씩 원인과 결과가 짝을 지게 되고,

그 2문장 중에서 원인은 성인의 무위작용이고,(心,言,動)

그 다음 문장은 상황이저절로변화가 되는결과(仁,治,事)로구성된 문장입니다.

이제 구룹별로 나누어서 해석을 해 보겠읍니다.

居善地心善淵與善仁(予善天)

居;살다,있다,앉다. 地; 땅, 여기서는 세상 또는 속세, 淵; 못,웅덩이 깊다,조용하다.

與; 더불어,같이하다,주다,참여하다. 仁; 어질다,인자하다,사랑하다. 予; 주다,나. 天; 하늘

위에서 (予善天)은 왕필본의 與善仁 대신 백서본에서는 予善天으로 되어 있습니다.

뜻으로 보자면 왕필본의 與善仁은 후대에 개조한 것으로 仁을 무시하는 노자관점에서는 잘못 삽입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히려 백서본의 予善天이 노자적 입장에서 옳바른 문장이라고 판단됩니다.

居善地- 직역하면, -도인은 땅에서 머무른다-, 입니다만,

실질적인 의미는 <도인은속세 땅에 내려와 머물러 살면서도->입니다.

心善淵- 직역하면, - 도인은 고요한 마음으로 한다- 이지만,

<깊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므로>라고 번역이 됩니다.

居善地 心善淵-도인이 세속세상에 내려와 살때도 도인은 마음이 고요하고 깊다,는 표현입니다.

與善仁-직역하면, 도인은 어짐을 베푼다- 이지만,

왕필본은 <저절로 사람들에게 어진사랑이 베풀어 진다.>

백서본은 <하늘(도)의 빛이 저절로베풀어 진다>

여기서 기본의미는 왕필본 보다는 백서본이 더 노자의 원뜻에 가깝습니다.

仁을 베푼다는 것은 노자 도덕경 5장의 天地不仁,聖人不仁,의 내용과도 뜻이 어긋납니다.

위의 세문장을 같이 붙혀 보면,

< 도인은 속세 땅에 내려와 머물러 살면서도,

깊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므로

저절로 사람들에게 어진 사랑이 베풀어 진다.

(세상에 하늘의 빛이 베풀어 진다)>

이렇게 첫문장은 전체의 주어구문이고, 두번째문장은 성인의 무위적인 면, 세번째는 세상에 저절로 펼쳐지는 현상적 작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인은 고요한 道場인 산속에서 뿐 아니라, 세속의 시장바닥에 나와서도그 일원적인 절대본체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이러한 전체가 일체인 도인의 상태는 세속세상에서도 그자신의 일원적인 일체심을 베풀어 준다는 묘사입니다.

절대본체를 깨달은 도인은 그자체가 전체 우주를 아우르는 신 그자체죠.

그래서 도인은 가만히 앉아서도 말없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안하고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는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동시에 거대한 성인들이 밖으로 드러납니다.

세계 1,2차 대전을 전후해서 세기적인 성인들이 태어났죠.

라마나 마하리쉬,구르지예프,라마크리슈나,니사르가다타,라즈니쉬,크리스나무리티, 경허스님, 기타 수많은 성자들이 20세기 전후에서 나타났습니다.

큰전쟁이 나면 어디선가는 큰 성인이 나타나죠. 물론 숨은 성인들은 항상 시대를 막론하고 있겠지만,성인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비참한 전쟁소용돌이 속에서 드러나서 마치 성인의 지혜빛과 전쟁의 비극이 서로 상쇄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성인은 그자체가 빛이며, 태양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성인은 세상에 보이지 않는 신의 빛을 항상 비추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서들을 보겠숩니다.

<땅처럼 낮은 곳에 잘 머무르고, 아주 깊히 헤아리며, 어질게 잘 어울리고>

<처신은 땅과 같이 훌륭해야 하고, 마음은 심연과 같이 훌륭해야 하며,

남에게 줄때는 인애로써 잘 해야 하고>

<그는 비천한 땅에 머물고,연못처럼 마음이 깊고,최선의 인을 베풀며,>

<머뭄은 땅처럼 낮고, 마음은 연못처럼 고요하며, 베품은 하늘처럼 두루 미치고>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하고,

벗을 사귈때는 어질기를 잘하고,>

<머물때의 선을 땅을 살피는 것으로 하고, 마음을 간직하기를 그윽함으로써 선을 삼고,

남과 어울릴 때는 어진 것으로 선을 삼고>

<살아감에 참된 처신이 있고, 마음씀에 참된 깊이가 있고, 베품에 참된 어짐이 있고>

번역내용이 전부 제각각 다릅니다.

言善信 正善治

어려운 한자가 없으니 그대로 해석합니다.

言善信-직역하면- 도인은믿을 수 있는 말을 한다- 입니다만,

<도인은 성실하고 믿음성있는 말만 하므로>->원인

正善治-직역하면- 도인은 다스림을 옳바로 한다- 입니다만,

<(저절로) 나라의 다스림이 옳바로 세워지는 것이오>->결과

두 문장을 합쳐서 연결시키면,

< 도인은 성실하고 믿음성 있는 말로

저절로 나라의 다스림이 옳바로 세워지는 것이다>

도인은 일체가 된 상태로 개인적인 욕망도 없고, 사적인 행위가 없읍니다.

따라서 말이나 행동에서도 개인적인 면이 없고, 보편적인 전체성 입장에 있으므로 상황에 따라서조화로운 말과 행위로서 정치를 다스리겠죠.

성인의 조건에 의하여 나라정치는 저절로 옳바로 바로잡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성인은 억지로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죠. 성인은 믿을 수 있는 말만 할 뿐, 이래라,저래라,, 손수 참견하지 않읍니다.

다른 번역서를 보겠읍니다.

<아주 믿음직 스럽게 말하며, 이치에 맞게 다스리고>

<가장 믿어운 말을 하며, 최선의 다스림으로 바로 잡으며>

<말은 신의가 있어 훌륭해야 하며, 정치는 잘 다스려지게 해야 하고>

<말할때는 믿음직하기를 잘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있게 하기를 잘하고>

<말을 할때는 믿음으로써 선을 삼으며, 올바름을 세우는 것으로 다스림의 선을 삼고>

<말함에 참된 신뢰가 있고, 다스림에 참된 이끔이 있고>

事善能 動善時

어려운 한자가 없으므로 바로 직역하겟읍니다.

직역하면- 事善能- 도인은 능하게 일을 잘 다룬다- 입니다만,

<(저절로)능히 (농사)일이 잘 될 수 있는 것은>->결과

動善時-직역하면,- 도인은 때를 맞추어 움직인다.-입니다만,

<도인이 때를 잘 맞추어 움직이기 때문이다>->원인

이 마지막 문장은 맺는 말이기 때문에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가 앞에 있고, 도인에 의한 원인은 뒤에 배치하여, ~때문이다.로 결론이 맺어집니다.

즉, 농사일이 잘 되는 것은 도인이 천기(天氣)에 맞추어농사공정을 적절히 맞추기때문이라고 묘사를 했읍니다.

여기서도 도인은 농사를 짓는데, 자연과 부딪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죠.

두문장을 합쳐서 종합하면,

<저절로 능히 일이 잘 될 수 있는 것은

도인이 때를 잘 맞추어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서들을 보겠읍니다.

<맡은 일을 잘 처리하며, 때를 잘 마추어 움직인다>

<일은 능력을 발휘해야 하며, 행동은 때에 알맞아 훌륭해야 한다>

<가장 능률적으로 일하며, 때에 맞게 움직인다>

<일할때는 능력있기를 잘하고,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타기를 잘 한다>

<능히 해낼 수 있느냐로 일할때의 선을 삼으며, 움직이는 것은 때를 가리는 것으로 산을

삼아야 하나니,>

<행함에 참된 능숙함이 있고, 행함에 참된 때마춤이 있나니>

夫唯不爭 故無尤

夫; 남편,사내, 대저(대체로 이와같이) 唯; 오직,비록~하더라도, 때문에,바라건데,이

爭; 다투다,간하다,故 ; 그러므로, 옛, 尤; 더욱,허물,탓하다.

夫唯 ; (어떤 경우에는) 제자들을 호칭하는 소리(그대들이여-)

夫唯不爭 ; <위와같이 오직 성인은 맞부딪쳐 다투지 않는다.>

故無尤 : <그러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두문장을 합치면

<위와 같이 오직 성인은 다툼이 없다. 그래서 허물도 없는 것이다>

다른 번역서들을 보겠읍니다.

<결코 그 공을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다>

<오직 다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무 탈도 없게 되는 것이다>

<성인은 오로지 물처럼 다투지 않을 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허물이 없는 것이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어라>

<모름지기 다투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리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니라>

<다툴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허물을 남김이 없읍니다>

이8장은 어려운 해석은 없습니다만, 중간구절의 7개 구문을 각각 별도로 해석을 하느냐, 아니면 원인과 결과라는 두문장씩 구분하여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도인(善)이 무위적인 행을 하느냐, 아니면 유위적인 행을 하느냐,로 해석이 달라집니다.

다행이 맨밑에 결구가 "오직 다투지 않음(無爲)"이라는 명확한 결론이 있기 때문에, 이7개 중간구절은 모두 수동적인 측면으로 "~되어진다"라고 해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인의 무위적인 행함은 "한다"는 능동성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만일 "한다"는 능동성이 있다면, "나"라는 개체적 정체성의 에고가 있다는 것이지요.

성인은 "나"라는 에고가 없는 전체성 입니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저절로 ~되어진다,라고 수동태로 표현됩니다.

여하튼 이8장에서 노자도인이 말씀하시는 것은,

물처럼 말없이 남을 이롭게 하고, 고요하게 있으며,

마음을 비워서, 다투지 않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가르침 입니다.

긴글 읽으시느라고 수고하셨읍니다.

-無限眞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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